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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마당 (2020년 7월호)

 

  새로운 이천 년의 시대와 새로운 신학
  정지련의『조직신학』kmc, 2020

본문

 

인류는 지금 그전에 전혀 겪어보지 못한 미증유(未曾有)의 시대를 살고 있다. 지난해 연말 처음 발생한 코로나19 때문에 전 세계인들이 불안해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그동안 인류는 유럽 인구의 3분의 1이나 몰살시킨 페스트와 그보다는 덜하지만 20세기 초반에 발생한 스페인 독감을 겪었으나, 그때는 지금처럼 교통과 통신이 발달하지 않아서 급격하게 전 세계로 퍼지지 않았고, 전 세계적인 재난으로 알려지지도 않았다. 그러나 이번 신종 코로나바이러스는 최근의 에볼라, 사스, 메르스처럼 바이러스에 의한 감염병의 시작을 알리면서 인류에게 새로운 도전을 하는 듯하다. 많은 사람들은 코로나19가 인류의 문명사를 코로나19발생 전과 후로 나눌 것이라고 전망하는데, 지금의 추세로는 그런 전망에 수긍하게 된다. 그래서 인류는 앞으로 나타날 수많은 바이러스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 것인가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이 바이러스들이 출현하게 된 이유가 기후변화로 인한 생태계의 파괴라는 분석과 함께 기후변화를 야기한 산업혁명 이후의 대량생산, 대량소비의 산업체계와 문화, 그리고 사회조직을 어떻게 개선할 것인지 근본적인 물음을 제기하는 것이다.
눈을 안으로 돌려보면, 코로나19는 기독교와 한국교회에도 패러다임의 전환을 요구하는 충격을 안겨주었다. 이번 재난은 그전까지 “사랑하는 하늘 아버지”를 믿고 따르며 순진하게 살던 신앙인들에게 알 수 없는 수수께끼를 던져주었다. 많은 사람들이 종교, 하나님, 구원, 교회(예배)에 대해서 다시 생각하며 자기 자신을 성찰하고 진정한 종교와 하나님과 구원에 대해서 깊이 고민하도록 강요한 것이다. 지난 4월 부활주일에 가톨릭 교황이 아무도 없는 텅 빈 바티칸에서 혼자 미사를 드리는 모습을 보며 많은 사람들은 알 수 없는 허무한 감정에 사로잡혔다. 베드로의 대리인이 코로나19 앞에서 아주 무력하고 처연한 모습으로 하나님 앞에 선 것이다. 그때 어떤 사람은 인간의 무력함을 절감했고, 어떤 사람은 알 수 없는 분노와 함께 ‘무엇인가에 속았다.’는 느낌이 들었다는 보도도 나왔다.
서양의 점성술에 따르면 12개의 별자리 중 하나의 별자리에서 그다음 별자리로 넘어가는 시간은 2,000년이다. 지금 우리는 기원 1년경에 시작된 물고기자리에서 살다가 2,000년이 지나서 물병자리로 옮겨 왔다. 서양 점성술에서 2,000년을 단위로 시대를 구분지은 것은 그것을 단위로 해서 우주가 그전과 완전히 달라진다고 생각했기 때문일 것이다.
2000년이 막 시작되려고 할 때, 전 세계에서는 뉴밀레니엄(Y2K)에 대한 논의와 우려로 매우 시끄러웠다. 그때 0과 1의 이진법체계로 된 컴퓨터가 1900년과 2000년을 잘못 읽어서 은행이나 각종 제어장치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 혼란에 빠질까 봐 많은 사람들이 불안해했다. 그러나 그때 인류의 무의식은 그런 하드웨어가 아니라 정신적인 변화를 촉구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 당시 물질적 오류의 위험을 두려워한 것이 사실 무의식에서는 새 시대를 새로운 정신으로 맞아야 한다고 촉구한 것인데, 사람들은 그것도 모르고 물질적인 것만 잘못될까 봐 두려워한 것이다. 그러나 그 이후에도 인류는 계속해서 탐욕만을 앞세웠다. 빈부격차는 더 벌어졌다. 지구를 더 못살게 굴었다. 그래서 오늘날 바이러스들이 현대인에게 소프트웨어의 갱신, 정신의 갱신을 강요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공교롭게도 기원 1년부터 1900년대까지 서양 사회는 기독교 정신에 바탕을 둔 사회체계 위에 서 있었다. 앞서 언급했듯 이 시기는 물고기자리였는데, ‘물고기’(ἰχθύς)는 그리스도의 상징이다. 그러면 2000년 이후의 엠블럼인 물병자리는 무엇을 의미할까? 스위스의 분석심리학자 융은, 물병이란 모든 것을 그 안에 담는 것으로서 통합의 상징이라고 주장하였다. 남성 원리와 여성 원리, 노인 원형과 소년 원형,1 동양 정신과 서양 정신 등 그간 존재하던 전혀 다른 대극적 원리들을 통합하여 담을 수 있는 그릇이라는 것이다.
우리 현대인들에게는 그전까지 서로 대립하고 갈등하던 것을 통합하는 새로운 세계관, 새로운 영성이 매우 필요하다. 그렇지 않을 경우, 과학기술의 발달로 강력해진 인간은 스스로의 힘을 억제하지 못하고 파멸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융은 니체가 말한 ‘신의 죽음’이라는 용어 대신 현대 사회를 ‘신의 황혼’의 시대라고 부르면서, 새로운 신의 이미지가 필요하다고 강조하였다. 인간의 지(智)가 발달하였기 때문에 새로운 신은 예전처럼 어디에서 갑자기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기존의 종교들에서 말했던 신의 이미지를 재해석한 형태로 나타날 것이라는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정지련 박사의 『조직신학』은 새로운 시대에 새로운 하나님을 기다리는 한국교회에 새로운 빛을 던져줄 저서라는 생각이 든다. 이 책에서 저자는 기독교의 역사를 관통하고 있는 성서와 교리에 대한 해석학적 전통을 부정신학(否定神學, Apophatic theology)의 방법론으로 고찰하면서, 신학의 주요 주제들을 전통적인 교의학의 순서를 따라 신학의 방법, 하나님, 인간과 죄, 성령, 그리스도, 삼위일체, 구원, 교회, 종말에 관하여 차례로 해명하였다. 그러면서 성서와 교부들이 신앙의 진술에 내포되어 있는 모순을 해소하지 않았고, 오히려 이런 모순 속에서 기독교 신학의 특성을 찾으려 했다는 점을 강조하였다. 저자의 이런 태도는 정당한데, 하나님을 세 위격이면서 하나의 본질로 고백하는 삼위일체론, 그리스도를 참 하나님이요 동시에 참 인간으로 고백하는 그리스도론, 구원이 오직 하나님의 은총에 의해 이루어진다고 고백하면서 동시에 인간의 의지 없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교부들의 구원론은 모순으로 점철되어 있기 때문이다. 기독교의 신론, 그리스도론, 구원론은 모두 모순투성이인 것이다.
저자는 여기서 “그리스도교 전통은 왜 신앙의 진리를 전하면서 지성에는 모순으로밖에 보이지 않는 표현들을 사용하는가? 왜 하나님은 셋이면서 동시에 하나이며, 하나님이면서 동시에 인간이고, 구원은 왜 하나님의 행위이면서 동시에 인간의 행위인가?”라는 물음을 제기한다. 그리고 “그것은 그들이 체험한 신앙의 진리 안에는 모순적 체험들이 공존하기 때문이다. 당신을 계시하시는 하나님은 동시에 당신을 숨기시는 하나님이요, 당신의 본성마저 넘어서서 당신이 창조하신 피조물에게 당신을 내어주는 사랑의 하나님은 동시에 인간을 압도하며 죄를 소멸시키는 공의의 하나님이라는 인식은 이러한 사실을 지시해준다.”라고 답변을 제시한다.
저자는 이런 통찰력에 근거하여 지성을 진리 인식의 척도로 삼을 것이 아니라, 수행(Praxis)과 기도(Theoria)를 통해서 주어지는 은총의 빛 속에서 성서에 접근하는 방법을 선택한다. 기도 없이 성서를 이해하려는 것만큼 자신의 체험을 성서해석의 원리로 삼으려는 영적 교만도 경계해야 한다는 것이다. 조직신학의 주제들을 지적으로 해명하는 데 그치지 않고 영성과의 관련성 혹은 영성적 의미를 부각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본래 하나였던 ‘교의 신학’과 ‘영성 신학’을 다시 하나로 통일하려는 저자의 의도를 간파하게 된다.
이런 그의 신학적 태도는 오늘날 현대인들이 취해야 할, 새로운 시대에 새로운 신을 기다리는 태도를 잘 보여준다. 2,000년 전 바울이 새로운 시대에 알맞은 하나님의 이미지를 헬라적 지성을 가지고 유대교에서 재해석했듯이, 새 천년기에 새로운 신의 이미지를 해석하려는 현대인들에게 가장 필요한 태도라는 것이다.
저자의 이런 신학적 입장에서 한국교회의 모습을 보면, 많은 종교 현상들은 기독교적인 것이 아니라, 종교혼합의 극치라는 느낌을 지우지 않을 수 없다. 사실 한국교회가 지금처럼 혼란해진 것은 1970-80년대에 경험한 급격한 부흥의 후과(後果)이다. 그때 많은 사람들은 경제 팽창의 시대에 전능한 신을 그들의 물질적 욕망을 보장하는 장치(裝置)로 생각하여 교회에 들어왔고, 각 교단에서는 갑자기 들이닥친 신도들을 관리하느라고, 무인가 신학교를 양산하여 인격적으로 갖춰지지 않은 목사들을 배출했다. 그 결과 가장 정신적이어야 할 교회공동체가 가장 본능적인 탐욕 위에 서게 되었고, 시간이 지나면서 그 실체가 지금 하나씩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대부분의 한국 기독교는 지금 이단이라고 하는 신천지 집단을 비판할 자격이 없다. 죽은 다음에 14만 4,000명에 속하려는 그들의 저열한 탐욕과 이 세상에서도 물질적으로 복을 받고 죽어서도 천당 가려는 많은 기독교 신도들의 탐욕은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그가 하나님, 죄, 그리스도 등 신학의 여덟 가지 주제를 다루면서, 그 개념의 본질적 의미를 살펴보기보다는 그 개념이 역사적으로 어떻게 이해되었는지를 중심으로 고찰했다는 점과 그 개념의 단어 풀이(특히 히브리어)에 너무 많은 시간을 들였다는 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는 이 책에서 다른 조직신학 저서들과 달리 부정신학의 전통에 있는 동방교회 교부들과 신학자들의 사상을 전하면서 동서 교회의 균형 잡힌 신학사상을 접하는 데 많은 도움을 주었다. 아무쪼록 이 책이 새로운 2000년대를 사는 현대인들이 진정한 신에게 다가가서, 은총을 통하여 구원을 얻는 데 도움이 되기를 바라마지 않는다.


1 분석심리학자 융(Carl G. Jung)은 인간의 사고와 행동을 결정하는 원형 가운데 남성성/여성성 못지않게, 새롭게 시작하고 창조하며 무엇인가를 추구하는 소년 원형과 안정되게 하고 질서 있게 하며 수확하게 하는 노인 원형이 중요하며, 그 두 원형이 통합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모든 사람을 일컬을 때 ‘남녀노소’라고 하는 것은 그 때문일 것이다.


김성민 | 프랑스 스트라스부르Ⅱ대학교에서 실천신학을 전공하여 박사학위를 받았다. 저서로 『분석심리학과 종교』, 『분석심리학과 기독교』, 『분석심리학과 기독교 신비주의』, 『종교체험』, 『칼 융의 ‘심리학과 종교’ 읽기』 등이 있다. 협성대학교 명예교수이며, 월정분석심리학연구소 소장으로 일하고 있다.

 
 
 

2020년 7월호(통권 73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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