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으로 | 대한기독교서회 | 회원가입 | 로그인
사이트 내 전체검색

Home > 기독교사상 > 책마당 > [책마당]
책마당 (2020년 6월호)

 

  씨알사상의 연원을 도산사상에서 찾다
  박재순의『애기애타(愛己愛他): 안창호의 삶과 사상』홍성사, 2020

본문

 

1.
철학자이자 신학자인 박재순 박사의 『애기애타』는 한마디로 매우 신선하다. 이 책의 부제인 ‘안창호의 삶과 사상’을 연구하며 저자 자신이 되씹어 소화한 후 자신의 철학적・신학적 언어로 기술하고 있는 점이 돋보인다. 그동안 도산에 관한 연구서와 평전들은 대체로 도산의 일대기를 기전체 형식에 따라 기술하였으며, 결론에 이르러서는 도산을 명연설가로, 독립운동가로, 교육자로, 민족의 스승으로 조명하는 범주를 크게 넘지 못했다.
이러한 기존의 흐름에 비춰볼 때 이 책은 조금 달라 보인다. 도산의 삶과 사상을 철학적・신학적 관점에서 새롭고 다양하게 풀어내기 때문이다. 그러면서도 철학과 신학을 전공한 학자들이 흔히 범하는, 이론과 논리를 현학적으로 펼치는 일을 절제하면서 평이한 문체로 독자들에게 다가가고 있어 참신성을 더한다.
이뿐만이 아니다. 최근에도 도산에 관한 전기나 평전류의 출간이 없지 않았지만, 대체로 도산의 생애와 삶이 보여준 그의 ‘위대성’을 되풀이하고 반복하는 수준을 넘지 못한다는 한계가 있었다. 따라서 도산에 대해 남다른 애정과 관심을 지니고 있는 적지 않은 수의 ‘도산 팬’들에게는 물론 오늘과 내일의 신세대 젊은이들에게 너무나 먼 ‘당신’(훌륭한 분)으로만 각인되지 않나 싶어 아쉬움이 없지 않았다. 이러한 점과 비교할 때 박재순 박사의 『애기애타』는 기존의 그것들과 상당한 차별성을 보인다. 집필자의 시각과 관점에 따라 한 인물이 새롭게 그려질 수 있음을 보여주는 좋은 사례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저자의 견해와 입장, 특히 학문적 소신을 거침없이 녹여내고 있는 점 또한 두드러진 차별성이자 특장이라 하겠다. 이에 더해 저자의 주장과 견해를 뒷받침할 기존 연구를 섭렵하여 꼼꼼하게 각주로 실은 점도 이 책의 학문적 무게와 신뢰를 더해준다.
이 외에도 도산에 관한 기존 평전이나 전기류에서 언급하기를 피했거나 놓친 부분을 소개한 점도 신선하다. 예컨대 김일성과 관련된 부분을 소개하기도 했고, 최근 세계 젊은이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방탄소년단(BTS)까지 언급하기도 했다. 방탄소년단의 <너 자신을 사랑하라>(Love yourself)라는 노래의 제목이 도산의 ‘애기애타’ 사상과 철학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저자의 견해는 매우 흥미로운 탁견이 아닐 수 없다. 일단 이 책을 잡으면 큰 인내심 없이 단번에 읽어갈 수 있을 만큼 독자들을 편안하게 해줄 뿐만 아니라 흥미로운 내용이 적지 않다.

2.
이 책은 크게 2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에서는 도산의 삶과 사상을 (1) 도산의 삶, (2) 도산의 가르침, (3) 도산의 생활철학으로 나누어 소개한다. 1부에서 저자는 기존의 도산 관련 연구사를 요약, 정리한 후 지금까지 도산과 관련해 누구도 적시하지 않았던 씨사상의 사상적 뿌리를 언급하고 있어 매우 흥미롭다. 저자는 “오랫동안 유영모와 함석헌의 씨사상을 연구하였는데 씨사상의 사상적 원조가 도산 안창호의 사상에서 비롯되었다는 점을 확인하였다.”라고 말한다. 말하자면 저자가 평생토록 연구하며 화두로 삼은 씨사상의 역사적・사상적 연원을 도산 안창호의 사상에서 찾았다는 ‘환희’를 희열하고 있다. ‘나’ 곧 씨을 나라의 주인과 주체로 깨워 일으켜야 함을 주장하며 덕·체·지(德·體· 知)를 갖춘 ‘나’의 혁신과 민족(인류) 전체의 통일을 추구한 도산의 삶과 사상은 민(民, 씨)이 우주 역사와 생명진화 역사의 근본이라고 보는 유영모와 함석헌의 씨사상과 일치한다는 것이다.
더 나아가 저자는 한국 근현대사의 이면에 도도히 흐르는 정신사의 한국적 독창성과 세계사적 보편성과 차별성을 여기에서 발견할 수 있다고 매우 높게 평가한다. 이뿐 아니라 한국 독립운동사와 해방운동사 속에서 형성된 도산사상과 씨사상은 현대적이고 독창적이며 민주적이고 보편적이라면서 그 의미의 외연을 더욱 넓혔다. 이 밖에도 도산이 민중을 나라의 어머니, 아버지로 비유한 점에 주목하며, 민(民)을 역사의 중심체로 본 도산의 사상이 곧 유영모에게 이어졌다면서 유영모가 『대학』(大學)의 ‘친민’(親民)을 “씨을 어버이 뵙듯 하라.”라고 풀이한 점과 연결시키기도 하였다.
저자는 안창호, 유영모, 함석헌의 사상과 철학이 담긴 그들의 말과 글에서는 오류와 편견을 찾아보기 어렵다고 말한다. 서양의 사상가나 철학자들의 말과 글은 대부분 이성적 이론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점에 반해, 이들 세 사람의 말과 글은 자신의 실제적 삶에서 우러나온, 자신의 몸·맘·얼을 통해서 느끼고 생각하고 깨닫고 체득한 사상과 철학을 담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한편 저자는 도산의 남다른 삶의 궤적, 즉 주어진 조건과 현실을 직시하면서도 이를 뛰어넘어 더 나은 세상을 만들려고 전 생애를 쉼 없이 결단하고 행동하고 실천하는 모범을 보였다는 점을 힘주어 강조하였다. 도산의 인격과 생애가 이렇듯 위대할 수 있었던 것은 인간의 자아 곧 ‘나’를 강조하면서 ‘나’의 인격적 깊이를 높이고 이를 실현했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또한 도산의 인격은 단순한 지성을 넘어 도덕적이고 신앙적이며 영적인 초지성적(超知性的)이라고 하였다. 도산의 인격이 초지성적일 수 있었던 것은 ‘나’의 인격을 끊임없이 부정하고 초월함으로써 자신의 인격을 새롭게 하여 ‘초월적 지성’을 갖추었기 때문이라고 더없이 높게 평가하였다. 저자의 말을 따르면, 도산의 초월적 지성과 삶이 더욱 빛을 발하는 것은 그의 철학과 사상의 형성이 머릿속 이론이나 학설에 바탕을 둔 것이 아니라 “일반 생활 속에서 스스로 깨닫고 체험한 것을 행동으로 실천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의 삶과 사상은 소박하고 단순해 보이지만 심오하면서 통합적이었던 것이다. 저자는 도산의 이러한 면모가 그의 삶과 정신이 이성보다 훨씬 깊고 통합적이었기 때문이라는 점을 거듭 강조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평가와 해석을 위해서는 향후 실증적이고도 역사적인 천착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2부 “인간교육과 철학”에서는 (1) 안창호·이승훈의 교육입국운동, (2) 안창호의 인간교육 철학, (3) 한국 근현대가 낳은 세계적 사상가, 이렇게 세 장으로 내용이 전개된다. 짧지 않은 이 내용을 한두 마디로 요약하기가 벅차지만, 저자의 기본적인 문제의식은 이렇게 정리할 수 있다.
첫째, 지난 1970-80년대를 풍미한 운동권의 분위기에 따라 일부 학자들과 운동권 젊은이들이 도산과 남강의 사상과 구국교육운동론을 ‘도덕적 인격주의’ 혹은 ‘점진적 개량주의’ 등으로 폄하하고 왜곡했던 것을 이제는 바로잡아야 한다는 인식이다. 둘째, 21세기 인류가 직면하고 있는 생태학적 위기와 사회경제적 양극화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결국 민중과 시민의 주체적인 자각과 실천이 요구된다는 인식이다.
저자는 이러한 점에 주목하며 도산과 남강이 주창한 인간교육사상과 철학은 시대 변화에 조응하여 새롭게 인식될 필요가 있으며 재평가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다시 말해, 이들 두 사람이 평생을 줄기차게 주창하며 몸소 실천한 인간교육과 생명철학을 재인식하여 향후 우리 사회와 교육현장에서 체화되어야 한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저자는 오늘의 눈으로 볼 때 도산은 민주화, 과학화, 세계화를 가장 잘 구현하고 실천한 인물이며, 동시에 옛 성현들의 가르침을 믿고 따르기만 한 사람이 아니라 ‘나’를 새롭게 하고 바로 세워 ‘나’라는 자아를 끊임없이 새롭게 형성하고 변화시키려 한, 한마디로 ‘나’를 중심에 세운 ‘나’의 철학자였다고 평가하였다. 그리고 ‘나’를 향한 철학을 실천하기 위한 방안으로 도산이 4대 정신(무실·역행·충의·용감)과 3대 교육덕목(덕력의 교육, 체력의 교육, 지력의 교육)을 중시했음을 강조하였다. 또한 이를 실현하기 위한 구체적 방안으로 자아혁신(自我革新), 활사개공(活私開公), 대공사상(大公思想), 공사병립(公私竝立), 정의돈수(情誼敦修, 사랑공부), 애기애타(愛己愛他) 정신의 구현을 내세웠음에 주목하였다. 말하자면 암울한 현실을 직시하며 이를 뛰어넘을 수 있는 미래지향적 교육덕목과 실천적 방안을 구체적으로 제시했음을 깔끔하게 요약, 정리하고 있다.
저자는 위에서 나열한 도산의 정신을 오늘의 세대와 미래 세대가 이어갈 때 도산이 주창한 대공주의(大公主義) 곧 개인과 사회를 하나로 아우르는 대통합의 성숙한 사회와 나라를 건설할 수 있다고 강조하였다. 그리고 이러한 대통합은 ‘나’ 곧 사회 구성원 개개인의 자아혁신과 인간(민족)개조 교육으로부터 출발한다는 점을 거듭 강조하였다.
이 책을 마무리하면서 저자는 다시 한 번 자신의 문제의식을 밝히는 것을 놓치지 않았다. 그것은 한국 근현대사에서 배태되어 성장한 씨철학(사상)이 지닌 독창적인 생명철학, 씨사상은 한국의 고유한 철학이면서도 동시에 세계적 보편성을 지닌 생명철학이라는 점이다. 또한 씨사상은 도산의 삶과 사상에 그 철학적 뿌리를 두고 있으며, 도산의 삶과 사상은 한국적인 독창성을 뛰어넘어 세계적인 철학이라고 평가하였으며, 이에 따라 도산 안창호는 세계적인 사상가이자 철학자로 자리매김하기에 주저함이 없는 인물이라고 하였다.

3.
그동안 필자는 도산에 관한 많은 글을 읽었고 그에 관해 글을 쓰기도 했다. 그러나 이 책만큼 필자의 견해와 주장이 과감하게 녹아 있는 저서와 연구논문은 보지 못했다. 대체로 전기나 평전과 같이 한 개인에 관하여 연구하고 서술할 때 연구자의 견해는 행간에 담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러한 점에 비추어볼 때 박재순 박사의 『애기애타』는 매우 이례적이라 하겠다.
끝으로 이 책의 제목인 『애기애타』에 관해 몇 마디 첨부한다. 1935년 2월 대전형무소에서 가출옥으로 석방된 도산은 이듬해인 1936년(丙子年)에 ‘愛己愛他’라는 글씨를 남겼다. 도산이 1938년에 세상을 떠났으니, 이 친필은 도산이 남긴 마지막 필적 중 하나로 그 안에는 도산의 정신과 사상이 농축되어 있다고 할 것이다.
이 친필은 『군현필지』(群賢畢至, 어진 현자들이 모였다)라는 서화집에 실려 있다. 이 서화집은 당대 서화 수집가이자 예술품 수장가로 이름이 높았던 오봉빈(吳鳳彬)의 주선으로 편찬되었는데, 당대의 이름난 문필가, 서예가, 화가들의 친필과 화묵 등 100점이 수록되어 있다.(오세창, 이극로, 이종린, 구자성 등) 이 서화집은 현재 흥사단 본부가 소장하고 있다.


윤경로 | 한국 근대사를 전공하였다. 한성대학교 총장을 지냈으며, 동 대학의 명예교수이다. 저서로 『105인사건과 신민회 연구』, 『한국 근현대사의 성찰과 고백』 등이 있다.

 
 
 

2020년 6월호(통권 738호)

이번호 목차 / 지난호 보기

기독교서회
기독교서회
기독교서회
기독교서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