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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마당 (2020년 4월호)

 

  ‘하느님의 부재’ 속에 있는 ‘하느님의 현존’
  엘루아 르클레르, 연숙진 옮김의『감춰진 하느님 나라』분도출판사, 2019

본문

 

우리가 성서를 읽고 해석하면서 항상 기본적으로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 있다. 성서는 무엇보다 ‘그때, 거기서, 그들에게’ 말한 책이라는 사실이다. 그렇게 때문에 성서를 바르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성서가 기록된 상황/맥락을 알아야 한다. 성서의 문자를 여기저기서 마구잡이로 끌어다가 막무가내 식으로 적용하는 것은 해석이 아니라 속임수에 불과하다. 무책임하고 악의적인 성서해석이 얼마나 큰 폐해를 초래하는지, 요즘 우리는 적나라하게 목도하고 있지 않은가.
그런데 성서의 배경과 상황을 파악하는 것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있다. 그것은 바로 해석자의 상황과 관점이다. 해석자의 관점/자리에 따라 성서가 ‘지금, 여기, 우리에게’ 무슨 말을 하는지 그 의미가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성서를 읽고 해석하는 해석자의 경험이 중요하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하느님 부재와 침묵
『감춰진 하느님 나라』를 쓴 엘루아 르클레르(Eloi Leclerc, 1927-2016) 신부는 아주 충격적인 경험을 가지고 있다. 겨우 스무 살 나이에 나치 수용소에서 참담한 고통을 겪은 것이다. 이 책에서 저자가 인용한 베르벤 신부의 기록을 통해, 나치 수용소 경험이 얼마나 끔찍했는지 알 수 있다.(P. Berben, Dahau 1933-1945, 101-102) 바이마르에서 5,000명의 수용자들을 화물칸에 싣고 20일 동안 달려서 다하우에 도착했을 때, 살아남은 사람은 1,200명에 불과했다고 한다. 비좁은 칸마다 100여 명씩 실려서, 짐짝처럼 포개져 피와 오물을 뒤집어쓰고, 굶주림과 정신착란에 시달리며 말 그대로 생지옥을 겪은 것이다. 이런 지옥에서 하느님은 도대체 어디 계시는가? 하느님은 뭐라고 말씀하시는가? 그것은 한마디로 하느님 부재와 침묵의 경험이었다.
그런데 저자는 이런 하느님의 부재와 침묵이 나치 수용소만이 아니라 다른 곳에서도 계속되고 있음을 보게 되었다. 그것은 영혼도 없이, 희망도 없이, 하느님도 없이 사는 도시의 거대한 강제수용소에서 날마다 벌어지는 일이 아닌가? 오늘 우리의 일상에서 겪는 하느님의 부재와 침묵 말이다. “죽음의 밤을 사는 사람들에게 복음은 어떤 희망을 줄 수 있는가?” 이 질문이 저자가 이 책에서 던지는 가장 기본적인 화두이다.
그런데 저자는 복음서를 읽으면서 또 다른 의미에서 충격적인 경험을 하게 되었다. 복음서에서 예수를 만난 것이다. 그런데 그가 복음서에서 만난 예수는 어떤 분이었는가? 그 예수 또한 놀랍게도 하느님의 부재와 침묵을 경험한 분이었다. 십자가는 바로 그것을 말하지 않는가? 예수의 십자가는 버림받은 장소요, 바로 하느님 부재와 침묵의 장소이다. 역설적이게도 예수 자신이 하느님께 버림받고, 하느님이 침묵하는 죽음의 밤을 가장 비참하고 처절하게 경험했다. 그런데 여기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가? 하느님 부재와 침묵의 장소는, 놀랍게도, 하느님이 가까이 계시는 임마누엘의 장소가 되고, 참으로 신비롭게도, 하느님 나라가 감춰진 장소가 된 것이다. 이것은 은총이며 신비이다.
저자가 경험한 ‘하느님의 부재와 침묵’은 그를 예수가 경험한 ‘하느님의 부재와 침묵’으로 이끌었고, 마침내 ‘하느님의 부재와 침묵’ 속에 감춰진 ‘하느님의 현존’으로 이끌었다.

감춰진 하느님 나라
복음서는 인간의 사소한 일상 속에 감춰져 있고 인간의 비참함과 절망 속에 감춰져 있는 하느님 나라를 보여준다. 복음서를 읽는 것은 그렇게 ‘감춰진 하느님 나라’를 찾아 떠나는 여정과 같다. 이 책은 예수의 유년 시절로부터 십자가와 부활에 이르기까지, 총 21장에 걸친 이야기 마당으로 엮어져 있다. 그런데 이 책 전체를 꿰뚫고 흐르는 주제어가 있다면, ‘하느님의 가까이 계심’이라 할 수 있다. 하느님의 부재 속에 있는 하느님의 현존이다. 이제 ‘하느님의 가까이 계심’이라는 주제를 따라 하느님의 부재와 침묵 안에 있는 하느님의 현존을 탐구하는 저자의 여정을 함께 따라가보자.

예수는 어린 시절에 소박한 나자렛 농부의 가정에서, 그리고 이스라엘의 전통 안에서 ‘주님의 가난한 이들’의 영성을 이어받았다. 자라면서 예수의 영성은 점점 더 내밀화되고 깊어지고, 마침내 하느님을 자신의 아버지라 부름으로써 ‘주님의 가난한 이들’의 영성을 뛰어넘는다. 그리고 예수는 세례를 통해 인류를 향한 하느님의 뜨거운 사랑과 계획을 자신의 것으로 삼았다. 예수의 사명은 하느님께서 가까이 계심을 새롭게 일깨우는 것이었다.
갈릴리로 온 예수는 이스라엘 백성 한가운데서, 혼란스럽고 곤궁한 시대상황 속에서 활동을 시작한다. 예수는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고, 병자를 치유하고, 마귀 들린 이들을 고쳐주며, 말씀을 확증한다. 그런데 이렇게 선포되고 퍼져가는 ‘하느님의 주권’은 그 시대에는 제한적이고 감춰져 있다. 예수는 내면 깊은 곳에서 하느님 나라의 오늘을 충만하게 경험했고, 그 경험을 바탕으로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면서, 자신의 독보적인 역할을 이해했다.
예수는 가르침을 통해 ‘하느님께서 가까이 계심’을 드러낸다. 행복 선언은 하느님 나라의 절대적 무상성(無償性)을 공표한다. 복음은 율법을 완성할 뿐 아니라 능가하는데, 율법을 능가하는 것은 거저 베푸는 사랑에 있다. 하느님께서 값없이 새롭게 사람들 곁에 가까이 계시고, 사람들은 가까이 계신 하느님의 현존 안에 머물면서, 세상 안에서도 온전히 신뢰하며 평화를 누리게 된다.
하느님께서 가까이 계심을 보여주는 탁월한 표징은 무엇보다 죄인들의 용서와 부채의 탕감이다. 죄인들에게 용서를 선포한 것은 하느님과 사람들 사이를 가르는 장벽이 완전히 치워진 것을 말한다. 예수는 죄인을 환대할 뿐 아니라 죄인의 집에 찾아가서 함께 식사를 했다. 죄인들과 함께 식탁에 앉는 것은 하느님과 그들의 화해를 보여준다.
예수는 무엇보다 비유를 통해서 ‘하느님의 가까이 계심’을 드러낸다. 곧 나날의 일상 속에 감춰진 하느님 나라이다. 비유는 사소하고 잡다한 일상 속에 깃든 신비, 놀라운 친밀함을 보여준다. 비유는 땅을 향한 하늘의 자애로 가득하고, 하늘나라를 세상 한가운데에 놓는다.
예수는 예루살렘으로 향하면서, 사명을 다한 결과로 맞게 될 십자가의 죽음을 예감한다. 이는 예수의 눈에 감춰진 신비롭고 이해할 수 없는 것이지만, 믿음과 순종의 행위 안에서 받아들인다. 자신의 희생을 통해 세상에 버려진 하느님의 사람들에게, 저주받은 이들에게까지도, ‘하느님께서 가까이 계심’을 드러내게 될 것이다. 예수의 거룩한 변모의 내적 의미도 하느님 나라를 알리는 예고와 같다.
떠날 때가 가까워지자 예수는 아버지와 당신이 맺는 관계 안에 함께하자고 제자들을 이끈다. 예수는 기도를 통해 하느님을 아버지라고 부르게 한다. ‘아빠’라는 말은 아버지와 유일무이하게 맺은 관계를 나타내며 완전히 새로운 것이다. 예수가 제자들에게 준 기도문은 하느님의 자녀가 되어 아버지와의 친밀함 속에 들어와 살라는 요청이다. 이 ‘자녀 의식’은 ‘우리’ 기원을 통해 공동체적 차원으로 나아간다.
마태가 전하는 최후의 심판 비유에서 인자는 가장 비참한 사람들, 가장 궁핍한 사람들과 자기 자신을 동일시한다. 가장 비인간적인 비참함에 잠긴 타인을 환대할 때 우리는 절대타자이신 분의 환대를 받는다. 심판은 새롭게 가까이 오시는 하느님, 곧 예수 안에서 상처받은 인간의 모습으로 우리에게 오신 그분을 받아들이느냐, 혹은 거부하느냐에 따라 결정된다.
예루살렘 입성 또한 예수가 하느님께서 가까이 계심을 그분 백성 가운데서 실현하는 분임을 드러낸다. 예수는 강도의 소굴이 된 성전을 숙청함으로써 성전의 모든 제사가 폐지되었음을 공개적으로 선포하고, 마지막 만찬에서 하느님 나라가 궁극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을 바라보며, 그 실현의 때를 위해 잔을 들어올린다. 그리고 하느님 나라의 도래와 하느님의 가까이 계심은 단순한 의례가 아니라 사람들 사이에 새롭게 맺어진 관계로 이어진다. 이 새로운 관계는 아버지의 사랑이 드러나는 상호 섬김의 관계이다.
“때는 밤이었다.”(요 13:30) 저자는 ‘하느님 부재와 침묵’의 결정적인 장소인 ‘십자가’ 이야기 마당을 ‘밤’이 되었다는 말로 연다. 올리브 산 기도에서부터 십자가 죽음에 이르기까지 깜깜한 밤, 하느님에게서 멀리 떨어진 ‘하느님 부재와 침묵’의 시간이다. 그러나 이 시간은 사람이 스스로 제 운명을 떠안고 그 의미를 부여하도록 주어진 시간이기도 하다. 예수는 버림받은 상황에서도 하느님과의 완전한 일치를 이루었고, 더불어 사람들과도 완전한 일치를 이루었다. 이로써 하느님의 부재를 부르짖는 바로 그곳에서 하느님께서 사람들과 맺는 새로운 관계가 완전히 무상으로 이루어진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십자가는 ‘하느님의 부재’ 속에 있는 ‘하느님의 가까이 계심’을 드러낸다. 그러므로 부활은 십자가의 부정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와 함께 계셨음을 강력하게 선포하는 것이다. 부활의 한복판에서 십자가의 의미가 밝히 드러나며, 부활을 믿는 것은 영광의 십자가를 발견하는 것이다.

서평을 한다기보다는 ‘가까이 계신 하느님’이라는 주제어를 중심으로 줄거리를 소개해보려 했는데, 괜한 짓을 했나 싶다. 살은 다 발라먹고 가시만 남은 찌꺼기로 어떻게 넙치인지 도다리인지 구별하겠는가. 더구나 그 살아 있는 역동적인 움직임과 힘을 어떻게 느끼겠는가. 이 책 자체가 애초부터 충격적인 경험, ‘하느님 부재와 침묵’의 경험에서 출발했고, 저자는 무엇보다 예수의 내면 깊숙이 흐르는 ‘하느님의 가난한 이들의 영성’을 따라가는 순례자가 아니었던가. 이 책은 예수가 걸어간 십자가의 길, 그리고 저자가 걸어간 그 순례의 길로 우리를 초대한다.
이 책은 무엇보다 설교자들에게 많은 영감을 줄 것 같다. 책 한 권을 다 읽어도 설교에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분들을 꽤 보았는데, 풍부한 감성과 상상력, 깊은 통찰로 풀어내는 복음서 이야기는 실제로 설교 착상에 많은 도움이 되리라 생각한다. 그리고 복음서를 전체적으로 꿰뚫어 보고 싶은 독자들에게 아주 좋은 길잡이가 될 것이다.


서재경 | 한신대학교와 동 대학원에서 신약성서신학을 전공하였다. 한국신학연구소에서 연구원으로 일했으며, 강남대, 기장 여신도교육원 등에서 성서를 가르쳤다. 저서로는 『말씀이 우리를 읽을 때까지』, 『슬픔이 슬픔에게』 등이 있다. 현재 수원 한민교회에서 목회하고 있다.

 
 
 

2020년 5월호(통권 73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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