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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마당 (2020년 4월호)

 

  성서와 교회를 토대로 21세기 기독교 정치를 모색하다
  스탠리 하우어워스, 백지윤 옮김의『교회의 정치학』IVP, 2019

본문

 

예언서로서 『교회의 정치학』
이 책의 원제는 After Christendom?: How the Church is to behave if freedom, justice, and a Christian nation are bad ideas이다. 독자들은 이 긴 제목을 통해 스탠리 하우어워스(Stanley Hauerwas)가 미국을 일종의 기독교국가(Christendom, Christian nation)로 상정하고 그것의 중요한 특징을 ‘자유와 정의의 추구’로 이해하며, 미국의 기독교인들이 추구하는 자유와 정의를 ‘나쁜 사상’(bad ideas)으로 규정하면서 이에 대한 해법을 모색한다고 짐작할 수 있다. 실제로 이 책은 제목처럼 미국의 부정적 현실에 대한 하우어워스의 비판적 진단과 해법으로 구성되어 있다.
하우어워스는 기독교국가로서 미국의 기독교 안에 만연한 ‘콘스탄티누스주의’를 시종일관 비판한다. 그는 대표적인 신재세례파(neo-anabaptist) 신학자로서 국가권력과 교회의 유착을 특징으로 하는 콘스탄티누스주의에 대해 뿌리깊은 적대감을 갖고 있다. 이런 감정은 이 책 전체에서 반복적으로 드러난다. 특히 하우어워스가 주목하는 21세기 미국의 콘스탄티누스주의는 ‘자유주의’이다. 자유주의는 계몽주의의 산물로서 현대성의 사상적 토대이다. 계몽주의는 이성과 도덕을 중심으로 서구 사회를 재구성했으며, 그것의 산물로서 자유주의는 자유와 정의를 이상으로 설정한 후 전쟁과 폭력으로 점철된 종교적 광신을 대체하려 했다. 동시에 서구 제국주의를 통해 전 세계로 확장되어 시공을 초월한 보편적 진리로 자리매김했다. 따라서 하우어워스는 이 세상과 자유주의를 동일시한다. “내가 생각하기에 자유주의라고 부를 수 있는 이 세상.”(46쪽)
하지만 하우어워스에 따르면, 자유주의의 영향으로 기독교는 공적 영역에서 추방되어 사적 영역으로 후퇴하고 말았다. 그 결과, 기독교는 대안적 정치세력으로서 자신의 공적 책임을 간과했고, 개인적 신념체계나 심리적 안정기제로 축소되었다. 자유주의가 제공한 정교분리와 종교의 자유가 이런 부정적 현실의 직접적 원인이다. 이뿐만 아니라 자유와 정의라는 구호 아래, 지역과 소수의 목소리가 철저히 부정되고 전쟁과 폭력이 더욱 확장되었으며 가난과 불평등은 보다 심화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적 영역과 관념체계로 축소된 기독교는 이런 자유주의, 그리고 그것이 지배하는 세상에 대항하여 예언자적 비판과 도전의 역할을 수행할 수 없었다. 이런 현실을 관찰하면서 하우어워스는 자유주의에 현혹된 미국 기독교를 냉철하고 일관되게 비판한다. 우상과 하나님을 동시에 섬기며 배교의 늪에 빠진 이스라엘을 통렬히 비판하던 예언자들처럼 말이다.

복음서로서 『교회의 정치학』
하우어워스는 자유주의의 실체를 치밀하게 분석하고 그것의 부정적 영향을 거침없이 폭로하면서 ‘교회’를 세상의 궁극적・현실적 해법으로 제시한다. 특히 구원, 자유, 정의, 성(性) 같은 난제들과 씨름하며 각 주제를 대표하는 사상가들과 맞대결을 펼친다. 구원 문제는 아우구스티누스(St. Augustinus), 정의와 해방의 문제는 존 롤스(John Rawls)와 구스타보 구티에레스(Gustavo Gutiérrez), 자유 문제는 리처드 로티(Richard Rorty)와 윌리엄 베넷(William Bennet), 그리고 성 문제와 관련해서는 버트런드 러셀(Bertrand Russell)을 각각 비판적으로 분석한 것이다. 이 부분에서는 대가(大家)로서 하우어워스의 진가가 유감없이 빛을 발한다. 그리고 그는 이런 대표적인 현대 사상가들을 복음과 교회, 하나님의 통치라는 관점에서 평가하고, 이에 대한 자신의 해법을 제시한다.
하우어워스는 자유주의가 지배하는 세상에서 ‘교회’를 구원의 필수요소로 제시한다. 그는 개인의 가치와 중요성을 결코 폄하하지 않지만, 개인이 세상에서 신실한 기독교인으로 생존하고 제자의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서는 교회라는 공동체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역설한다. 특히 자유주의의 세상을 향해 그 한계와 죄, 오류와 실패를 정확하고 정직하게 지적하며, 진정한 자유와 해방, 구원과 정의를 제시하고 구현하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교회가 ‘제자들의 공동체’로 존재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교회는 그런 의미에서 “우리의 삶을 지배하는 정치의 대안적 정치”(12쪽)이자, “구원을 위해 필수적인 정치적 공동체”(40쪽)이며, 따라서 “교회가 없다면 세상에겐 말 그대로 구원의 소망도 없다.”(53쪽) 하우어워스의 근본적 확신이다.
그렇다면 구원의 공동체로서 교회는 어떤 모습이어야 할까? 하우어워스에 따르면, 구원은 “모든 창조 세계가 그리스도의 주권 아래 놓이도록 회복하시는 하나님의 역사”이다.(54쪽) 그리고 교회가 이런 구원의 공동체로 기능하기 위해서는 먼저 ‘훈련 공동체’가 되어야 한다. 제자는 자연스럽게 탄생하는 것이 아니라 마치 벽돌공이 권위 있는 스승의 가르침에 따라 반복된 훈련을 통해 기술을 습득하듯 장시간 고된 훈련을 통해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또한 교회는 ‘섬김 공동체’가 되어야 한다. 자유주의 세상은 자율적 삶을 자유라고 선전하지만, 교회가 가르치는 자유는 ‘기쁨으로 하나님과 사람을 섬기는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또다른 억압과 폭력을 양산하는 자유주의와 달리, 교회는 어떤 상황에서도 권력과 지배 대신 섬김을 실천하는 사랑의 공동체로 기능해야 한다. 끝으로, 교회는 ‘증인 공동체’가 되어야 한다. 기만적 자유주의나 맹목적 근본주의와 달리, “권력을 위한 이데올로기”의 덫을 피하면서 “아브라함, 이삭, 야곱, 그리고 예수님의 하나님을 증언”하는 것이 교회의 사명이기 때문이다.(194쪽)

묵시록으로서 『교회의 정치학』
하우어워스는 하나님의 존재를 부정하거나 폄하하는 세상에서 그리스도인이 제자로, 교회가 제자 공동체로 존재할 때, 세상과의 ‘갈등’은 불가피하다고 선언한다. 계몽주의 이후, 서구 사회는 공적 영역에서 하나님을 추방했고, 기독교 신앙을 신념체계로, 교회를 사적 영역으로 각각 축소해왔다. 이것이 시대정신이며 선진문명이라고 정당화하면서 말이다. 기독교는 이런 시대적 요청에 타협하고 순응함으로써 자신의 기득권을 유지할 수 있었다.
하지만 교회가 다시 하나님을 만유의 주로 선포하고 제국을 그의 나라로 대체하며 예수 이야기를 궁극적 진리로 증거할 때, 그동안 교회에 친절했던 세상은 지체 없이 공권력을 동원하여 교회의 입을 막고 교세 확장을 저지할 것이다. 따라서 교회가 자신의 본질에 충실할 때, “세상과 교회는 언제나 심오한 갈등 속에 있다.”(122쪽)
이런 상황에서 교회는 세상의 지배적 흐름에 굴복하는 대신, 세상의 정신과 힘에 도전하고 저항해야 한다는 것이 하우어워스의 처방이다. 종교적 광신의 올무에서 서구문명을 구조한다는 명분 아래 자유주의는 정교분리를 주장했고, 교회는 이런 시대적 요청에 무비판적으로 순응함으로써 자유주의의 모순과 한계를 비판할 능력을 상실했다. 전근대적이거나 제국주의적이라는 비판이 두렵고, 정교분리와 종교의 자유라는 법적 장치 안에서 누려온 안정과 특혜를 포기할 수 없었기 때문에 초래된 비극적 결과이다. 이런 무기력한 교회를 향해 하우어워스는 초대교회의 순교자들의 예를 제시하며 결단과 헌신을 촉구한다.
자유주의가 지배하는 세상에서 교회가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 전술적 삶을 살기 위해서는 ‘용기’가 필요하다. 안정된 삶을 희생하며 주류문화에 저항하는 것은 매우 힘든 일이다. 하우어워스의 표현대로, “콘스탄티누스적 권력”(29쪽)을 포기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기 때문이다. 18세기 이후 미국을 포함한 서유럽에서 교회들이 자신들의 존재 이유와 정체성마저 상실하며 자유주의와 기독교신앙을 혼동하고 시대정신의 대변자로 기능한 것도 같은 이유에서였다. 그래서 이 시대에 예수의 제자로서 세상과 갈등하며 저항하고 도전하기 위해선 “아주 큰 윤리적 지적 용기를 필요로 한다.”(198쪽) 하지만 이런 엄청난 일을 개인 혼자 감당할 수 없으므로, “공동체”와 “하나님의 능력”(200쪽)이 필요하다. 절대적으로.

번역서로서 『교회의 정치학』
기본적으로, 이 책의 주된 내용과 주장은 한국교회를 향해서도 의미 있는 도전과 각성의 메시지가 될 수 있다. 사실 그동안 한국교회는 한국 사회의 주류문화와 과도하게 타협하거나 유착되어 왔다. 동시에 추상적 신앙과 개인의 번영에 집착하면서, 복음과 교회의 공적 차원이 간과되고 사적 종교로 퇴화된 모습도 보이고 있다. 그 결과, 한국교회는 타락한 세상과 구별되지 않으며, 진정한 자유와 사랑, 정의를 증거하고 실천하는 대안적 제자 공동체로서 자신의 사명과 책임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교회에 대한 하우어워스의 날카로운 분석, 심오한 통찰, 통렬한 비판은 한국교회가 자신의 실체를 냉철하게 성찰하고 본질을 회복하는 데 유용한 도구와 지침으로 활용될 수 있다.
하지만 자유주의의 지배적 영향하에 있는 미국 사회/미국교회와 달리, 한국 사회/한국교회의 가장 심각한 혹은 일차적인 적(敵)은 자유주의가 아니다. 물론 민주주의, 자본주의, 근대주의 같은 자유주의의 산물이 한국에도 큰 영향을 미치고 있지만, 한국 사회와 교회는 전근대와 근대, 탈근대가 공존하고 있으며, 전체주의와 권위주의, 냉전과 반공주의, 분단과 지역갈등, 천민자본주의와 동양종교문화 등이 혼재해 있다. 동시에 기독교가 과거의 독점적 지위는 상실했지만 여전히 우월한 지위를 유지하고 있는 미국과 달리, 한국에서 기독교의 힘은 결코 압도적이지 않다. 한국에서 기독교는 국가종교였던 적이 없으며, 현재에도 문화적・정치적 영향력은 보편적이지 않다.
따라서 기독교국가 이후(after Christendom) 교회의 존재론을 탐구하는 하우어워스의 고민과 한국교회의 고민은 근본적으로 다를 수밖에 없다. 더욱이 전근대의 잔재가 여전히 남아 있으며 기독교의 영향력이 제한적인 사회에서, 부패한 세상의 대안공동체로 기능하기도 전에 너무 빨리 세속화되고 권력의 맛에 취해버린 교회 자신을 회생시키는 것이 보다 급하고 중요한 과제가 아닐까?


배덕만 | 미국교회사를 전공하였다. 저서로 『교회사의 숲』, 『세계화 시대의 그리스도교』 등이 있다. 현재 백향나무교회 담임목사이며, 기독연구원 느헤미야 전임연구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2020년 4월호(통권 73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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