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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마당 (2020년 4월호)

 

  만주에서 피어난 꽃들의 증언
  다케모리 마사이치, 세리카와 데쓰요 옮김의『만주기독교사 이야기』한국기독교역사연구소, 2019

본문

 

이 책의 불편함과 소중함
이 책을 여는 순간 한국의 독자들은 매우 당황스러울 것이다. 저자 다케모리 마사이치(竹森滿佐一, 1907-90)가 책의 첫 문장에서 봉천 만철도서관장(奉天 滿鐵圖書館長)의 지도로 만철도서관의 자료를 이용하여 이 연구를 시작했다고 말하기 때문이다. ‘만철’은 무엇인가. 그것은 러일전쟁 후 제국주의 일본이 러시아로부터 경영권을 넘겨받아 설립한 ‘남만주철도주식회사’(South Manchuria Railway Company)의 약칭이 아닌가. ‘만철’은 일제가 1932년 만주국(滿洲國)의 성립 이전과 이후에 만주와 동아시아 침략을 위하여 활용한 핵심적 기관 중 하나였다. 그 부속기관인 만철도서관은 그들이 만주에서 수집한 수많은 정보의 저장고였다. 이렇게 저자가 스스로 밝힌 연구의 과정과 식민주의적 맥락이 이 책을 읽기에 불편하게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리고 이미 출간된 지 80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번역되어 읽힐 만한 충분한 가치가 있다. 저자는 자신이 태어나고 성장한 실존적 자리인 만주에서 자신보다 앞서 만주를 깊이 사랑했던 선교사들의 기록을 접하고 만주 기독교의 역사에 애착을 느꼈다. 그는 여러 종류의 개신교 선교부들과 그보다 훨씬 이전에 만주에 정착한 로마가톨릭교회의 세세한 이야기들을 얻기 위하여 당대의 자료들을 읽고, 발로 뛰어 발굴한 인터뷰들을 바탕으로 이 책을 펴냈다. 적지 않은 양의 귀중한 사진 자료들도 첨부하여 당시의 모습을 생생하게 볼 수 있는 즐거움을 준다. 한국과 중국 본토 사이에 있어서 잘 연구되지 않았던 만주 지역의 기독교 이야기를 담고 있는 귀한 자료이다.
이 책에는 역사학 전반에 대한 저자의 예리한 학문적 관점도 보인다. 역사를 서술하면서 개신교회와 로마가톨릭교회, 남성과 여성, 서구 선교사와 만주의 신앙인, 서구 교단교회와 중국 토착교회, 큰 규모의 선교부와 작은 선교부 등 대조적 집단을 의도적으로 배려한다는 점에서 타자(他者)와 권력이 약한 집단을 의식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20세기 초반 중국인들의 기독교에 대한 태도를 관찰한 점도 주목할 만하다. 유럽 기독교 국가들 간의 제1차 세계대전을 보는 중국인들의 시각, 신해혁명 이후 호적(胡適)과 채원배(蔡元培)와 같은 문예부흥 신지식인의 등장, 존 듀이(John Dewey)나 버트런드 러셀(Bertrand Russell)과 같은 비기독교적 경향을 지닌 서구 사상가들의 영향력, 급진적인 공산주의의 등장, 반기독교 운동 등을 조명하면서 저자는 기독교가 당시에 서구 사회를 대표하거나 충분히 긍정적인 이미지를 가진 집단으로 인식되지 않고 있음을 포착해낸다.

기독교인들의 ‘증언’
역자 세리카와 데쓰요(芹川哲世)가 “역자 후기”에서 이 책의 구성과 내용을 13명의 인물로 요약하였듯이, 이 책은 기본적으로 만주에서 활동한 선교사들과 신앙인들을 중심으로 엮은 성인전(聖人傳)이다. 저자는 1935년 8월부터 1936년 1월까지 일본인 독자들을 위하여 “만주전도개교사”(滿洲傳道開敎使)를 「복음신보」(福音新報)에 연재하였고, 그 후 그것을 『만주기독교사화』(滿洲基督敎史話)라는 제목의 책으로 엮어 1940년에 동경의 신생당(新生堂)에서 출판하였다. 책 제목에 ‘史話’를 포함시켰고, 역자 또한 그것을 ‘이야기’로 번역한 것은 탁월한 식견임에 틀림없다. 2,000여 년을 내려온 기독교의 증언은 필연적으로 선교사와 신앙인들이 그 몸으로 써온 ‘이야기’들이고, 이 책 역시 그러한 증언을 충실하게 담아냈다. 요즘 유행하는 ‘내러티브’, ‘스토리텔링’이라는 용어가 바로 ‘이야기’이고, 성서의 언어로는 ‘증언’이다.
그래서 이 책을 읽을 때의 가장 큰 감동은 만주 지역의 숨은 기독교 역사를 대하는 학문적 만족감이 아니라 목숨을 건 기독교인들의 증언을 대하는 먹먹함이다. 만주의 남단 영구(營口, 牛莊)까지 들어가 선교지를 개척하던 중 질병에 쓰러졌지만 임종 병상에서 영국교회에 만주 선교를 요청한 윌리암 번스(William Burns), 1911년 만주의 공식적 보고로만 4만 3,932명이 사망할 정도로 대유행한 페스트에 용감하게 저항하다 사망한 젊고 총명한 의료선교사 아더 잭슨(Arthur Jackson), 법고문(法庫門, Fakumen)에서 디프테리아 환자들을 돌보다 감염되어 1917년에 숨을 거둔 이사벨 미칠(Isabel D. Mitchell), 아편 중독자에서 존 로스 선교사의 사역자로 변화되어 태평산(太平山), 봉천(奉天), 료양(療陽) 등지에서 영웅적으로 선교부를 개척한 왕정명(王靜明), 청일전쟁 전야에 폭도화한 만주 병사에 의해 료양에서 살해된 제임스 와일리(James A. Wylie), 봉천 남관(南關)에 세워진 가톨릭교회당 안에서 의화단에 저항하다가 수백 명의 신자들과 함께 순교한 세인트 크르와(Sainte Croix)와 마리 알베르틴(Marie Albertine) 수녀, 신자 50명의 목숨을 살리기 위해 조양(朝陽)의 의화단원들을 찾아가 명령하는 우상숭배를 거부하고 순교의 길을 간 시각장애인 대전도자 상삼(常森, Blind Chang)의 증언이 바로 그것들이다.

만주 기독교의 건설을 위한 초교파적 노력
200여 쪽의 이 작은 책에서 만주 개신교 선교의 양대 산맥이었던 아일랜드장로교회(Presbyterian Church in Ireland)와 스코틀랜드연합장로교회(United Presbyterian Church) 선교부, 이들보다 먼저 들어와 상당한 교세를 이루었던 로마가톨릭교회 선교부, 그리고 1890년대 이후 들어온 덴마크루터교회(Danish Lutheran Church)와 다양한 기독교 선교부들의 이야기들을 함께 하나의 줄거리로 읽게 되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저자는 초두에서 스코틀랜드연합장로교회의 제임스 잉글리스(James W. Inglis)와 아일랜드장로교회의 미스켈리(W. Miskelly)를 함께 언급하고, 곧이어 로마가톨릭교회의 베롤르(Emmanuel Jean Francois Verrolles) 주교의 이야기를 엮어나간다. 마지막 장에서는 1920년대 이후에 진행된 캐나다장로교회, 감리교회, 침례교회, 오순절교회, 안식일교회, 구세군교회, 진예수회(眞耶蘇會), 영국성서공회 등 비교적 작은 규모의 활동들을 짧게나마 소개함으로써 만주 기독교의 다양한 그림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고 있다. 하남의 캐나다 선교사 조나단 고포스(Jonathan Goforth)가 조선의 대부흥운동을 목격하고 1907년과 1908년에 만주의 교회들에서 설교하면서 일어난 신앙부흥운동을 묘사한 것도 매우 반가운 일이다.
아일랜드장로교회는 번스의 만주 선교 요청에 가장 먼저 응답한 교회였다. 그들은 번스가 남기고 간 선교의 터를 기반으로 만주에서의 사역을 시작하였지만, 초기에는 의료선교사 헌터(J. M. Hunter)가 거의 홀로 전도, 의료, 교육을 담당했다. 스코틀랜드연합장로교회 소속의 존 로스(John Ross)는 만주 개척자, 조선인 전도자, 그리고 중국과 조선에 대한 성실한 연구자로 묘사된다. 그의 동료선교사 크리스티(Dugald Christie)는 봉천에서 병원과 의학교를 세웠을 뿐만 아니라 중국 관청과의 외교나 정치 면에서도 탁월함을 보이며 큰 도움이 되었다. 저자는 두 선교부가 1891년에 합동하여 봉천교구와 우장교구로 이루어진 노회(老會)를 탄생시켰으며, 이로부터 공식적으로 만주장로교회의 역사가 시작되었음을 확인해주고 있다.

흥미로운 편지글과 일기
마지막으로, 이 책에서 독자들을 더욱 줄거리에 빠져들게 하고 학문적으로도 높게 평가되는 점은, 저자가 주인공들의 이야기를 전개하면서 그들의 편지와 일기를 꼭 필요한 지점에 상당한 분량으로 포함시킨 것이다. 1841년에 만주에 도착한 베롤르 주교의 편지들, 번스의 편지와 노트, 이사벨 미칠의 일기문, 순교자 와일리를 위한 조지 더글라스(George Douglas)의 추도문, 의화단에 의해 포위된 두 수녀가 봉천의 천주교회당에서 내보낸 편지들, 봉천 동관교회(東關敎會)의 로스 선교사 추모비문 등은 이 인물들의 삶과 죽음, 현장의 격동하는 사건으로 독자들을 초대한다. 독자들은 그 현장의 관중으로, 또는 사건을 분석하고 이야기를 재창조하는 연구자로서 만주 지역에서 피어난 꽃들의 증언을 생생하게 듣게 될 것이다.
기독교인들의 증언을 이어가기 위하여, 그리고 만주 기독교사의 이해를 위하여 이 책의 일독을 권한다.


박형신 | 버클리연합신학대학원(GTU)에서 교회사를 전공하였다.(Ph.D.) 최근에 『The Rev. John Ross: A Primary Sourcebook 존 로스 선교사 자료집』(전 2권)을 편집하여 출간하였다. 남서울대학교 교양대학 부교수로 재직 중이며, 한국교회사학회 총무로 활동하고 있다.

 
 
 

2020년 5월호(통권 73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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