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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마당 (2020년 2월호)

 

  인도교회를 이해하기 위한 보물창고
  시릴 B. 퍼스, 임한중 옮김의『인도교회사』 CLC, 2019

본문

 

1. 2015년 이래 한국과 인도의 관계는 ‘특별전략적 동반자’로 발전하였고, 2019년에는 인도와의 관계를 한반도 주변 4강과 유사한 수준으로 격상시키겠다는 한국 정부의 발표도 있었다. 정치경제적 차원에서 두 나라는 점점 가까워지고 있다. 국가 간의 관계 증진에 비해 한국교회와 인도교회의 공식적인 교류는 대한예수교장로회(통합), 한국기독교장로회, 남인도교회, 북인도교회, 인도장로교회 차원에서만 진행되고 있다. 아시아 기독교를 대표하는 양 교회 간의 교류는 다른 서구 교회들과의 교류에 비해 아직 부족한 실정이다. 거대한 인도 대륙에 존재하는 인도 주류 교회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한국교회 입장에서 인도교회들과의 ‘동반자적 선교협력’은 사실 요원한 과제라고 생각한다.
임한중 박사가 번역한 『인도교회사』(An Introduction To Indian Ch-urch History)는 인도교회의 전통과 신학, 선교에 대한 이해를 돕는 보물창고 같은 책이다. 역자 서문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인도에서 활동하는 현직 선교사로서, 인도교회사의 줄기를 파악하기 위한 학문적 관심에서 이 책을 접했다는 사실은 인도교회를 소개받는 한국 독자 입장에서 퍽 다행스러운 일이다. 역자에 의하면 책을 집필한 시릴 브루스 퍼스(Cyril Bruce Firth) 박사는 30년 이상 인도에서 선교사로 활동하였으며, 이 책은 현재 인도 대부분의 신학교에서 교과서로 사용된다고 한다.
이 책은 지난 2,000년간 인도 대륙에서 펼쳐진 하나님의 선교의 발자취에 대한 풍부한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시리안 그리스도인으로 알려진 인도 케랄라 지역의 동방교회 흔적과 전통부터 서방교회 교황 레오 10세로부터 교회 관할권을 받은 포르투갈 그리스도인들과 시리안 총대주교의 영향권에 있던 시리안 그리스도인들의 선교적 갈등 이야기, 인도 대륙의 지리적 주변부에서 인도 선교운동의 중심부에 등장한 나갈랜드와 미조람 지역의 북동 기독교 이야기, 세계 교회 앞에 가시적 교회의 연합 모델을 제시한 남인도교회(CSI, 1947년)와 북인도교회(CNI, 1970년) 연합의 기본 조건들, 그리고 ‘자립하고, 자치하며, 자전하는’ 인도교회를 만들기 위해 노력한 지도자들의 헌신과 열정이 이 책에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다.

2. 제1장에서 퍼스 박사는 인도의 남부 케랄라 지역에 정착한 시리안 그리스도인들 사이에 널리 알려진 사도 도마에 대한 전승을 균형감 있게 소개하기 위해 여러 전통을 인용한다. 사도 도마가 인도에서 설교하고 순교의 고난을 겪었다는 일반적인 믿음이 말라바르(Malabar)의 시리안 기독교 공동체 내에서 강하고 지속적으로 주장되어 왔음에도, 분명한 문서의 뒷받침이 부족하다는 점을 지적함과 동시에 이 전승이 3세기 이후로 교부들의 언급을 통해 지지를 받아왔던 전통을 소개한다. 이와 함께 도마가 북인도 지역만을 방문했다는 입장과 남인도 지역만을 방문했다는 입장, 그리고 북인도와 남인도를 함께 방문했다는 주장을 아울러 소개하고 있다. 종합적으로 정리해볼 때, 저자는 오늘의 인도교회가 사도 도마의 전통과 역사적 연결고리가 있다는 점을 인정하고 있다.
제2장에서는 동방교회로부터 영향을 받은 인도교회의 역사적 과정을 소개한다. 시리아의 영향력 있는 교회 지도자들이 적어도 두 차례(기원후 345년과 823년)에 걸쳐 인도에 와서 정착했다고 하는 주목할 만한 이주(Immigration)의 전통이 있고, 그들이 말라바르의 시리안 교회를 크게 부흥시키고 힘 있게 만들었다는 역사를 인용한다. 또한 남인도에서 7세기 혹은 8세기경의 것으로 추정되는 십자가들이 발견된 것은 그 당시에 시리아인들로 구성된 교회가 말라바르에 있었고 페르시아와 연결되어 있었음을 보여준다. 7세기 인도교회는 스스로 대주교를 가질 만큼 충분하게 발전했고, 폭넓은 자치권을 가지고 있었는데, 이는 인도교회가 시리아 본부에서 상당히 멀리 떨어져 있었기 때문이다.
제5장에서는 로마교회의 교황에게 충성하던 포르투갈인들과 메소포타미아에 있는 총대주교 아래에 있던 시리안 그리스도인들의 조우와 갈등을 다룬다. 포르투갈인들이 처음 인도에 와서 시리안 그리스도인들을 만났을 때, 그들의 관계는 우호적이었고 상대방을 동료 그리스도인으로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었다. 하지만 오래지 않아 서로에 대한 지식이 쌓여가면서 점점 더 그들 사이의 차이가 두드러지게 되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시리안 교회들을 서방식 방법에 순응하게 하고 포르투갈 주교들의 통제 아래로 이끌어오려는 정책이 명확히 드러나고 있었다. 포르투갈인들은 교황을 최고의 목자로 여기고 그를 위해서 기도했지만, 시리안 그리스도인들은 시리안 총대주교를 위해서 기도했다. 이 외에도 견진성사와 종부성사의 문제, 성만찬 방식의 차이, 성직자의 결혼 문제, 연옥에 대한 교리 차이, 마리아/성인/성상 숭배의 문제로 갈등을 겪었다. 고아의 대주교를 비롯해서 인도에 있던 포르투갈 성직자들은 메소포타미아로부터 시리안 교회의 주교가 인도에 온다는 사실을 큰 장애물로 생각했다.
제8장에는 루터교도로서 인도 개신교 선교의 서막부에 중요한 기여를 한 덴마크의 왕 프레드릭 4세(Frederick Ⅳ)가 등장한다. 윌리엄 캐리 이전에 개신교 선교사들을 인도로 파송할 생각을 품은 그는 독일 경건주의 운동의 본산인 할레대학교에서 공부한 지겐발크(Ziegenbalg)와 플루차우(Pluetshau)를 파송했고, 두 사람은 1706년 7월 9일 인도에 도착했다. 1714년에 프레드릭 4세는 덴마크 코펜하겐에 선교부를 설립하면서 독특한 선교협력을 시도하였다. 첫째, 덴마크에 있는 선교회가 행정을 담당하고 둘째, 대부분의 선교후보생은 독일에 있는 할레대학교에서 왔으며, 셋째, 영국의 기독교지식진흥회(SPCK)가 선교비와 물품을 추가로 지원했다. 이처럼 인도에서는 초기 개신교 선교부터 국가와 교파를 초월한 에큐메니컬 선교협력이 시작되었고 이는 1726년 마드라스에서, 1767년 트리치노폴리에서 영국의 기독교지식진흥회와 독일의 루터교도의 협력으로 이어졌다.
제9장에는 19세기 초반 동인도회사의 시대에 인도에서 시도된 개신교 선교를 다루면서 세람포드대학, 동인도회사의 정책 변화, 그리고 잉글랜드국교회(성공회)의 선교 구조를 소개하고 있다. ‘아시아의 기독교 청년 및 비기독교 청년들에게 동양문학 및 유럽과학을 가르치기 위한’ 대학이 세람포르 3인방(윌리엄 캐리, 조슈아 마쉬만, 윌리엄 워드)에 의해서 시작되었다. 1819년에 37명의 학생들로 학급을 열었고, 1827년에는 덴마크 왕이 세람포드대학에 학위를 수여할 수 있는 면허를 주었다.
1793년 이래로 동인도회사는 새로운 선교사들의 입국을 거부할 수 있는 권한을 주장했다. 동인도회사의 영토 안에서 일하도록 허락받은 선교사만 그들의 묵인하에서 활동할 수 있었지만, 1813년에 개정된 동인도회사의 헌장에서 거부권이 제거되자, 개신교 선교를 위한 길이 열렸다. 인도에서 이미 선교를 시작한 선교회들이 새롭게 조직되었고 자신들의 활동 영역을 확장하였다. 또한 인도 현장에 들어오지 못했던 선교회들도 들어올 수 있게 되었다. 1813년에 개정된 헌장의 또 다른 중요한 특징은 캘커타의 주교좌와 더불어 세 개의 관구, 즉 캘커타, 마드라스, 봄베이에 각각 부주교를 배치함으로써 잉글랜드국교회(성공회)의 선교 구조와 전통이 공식적으로 인도에 도입된 것이다.
제14장에서는 인도에서 실현된 교회연합의 배경과 과정을 비교적 상세하게 설명하고 있다. 인도에서 활동하던 선교사들이 자기 교파의 입장을 확고하게 유지하기는 했지만 공동의 문제에 대해서는 서로 토론하는 습관을 갖게 되었으며, 아마도 19세기에 인도에 있던 교파들 사이에는 그 시기에 서구에서 존재하는 것보다도 더 많은 형제애와 협력이 시도되었을 것이라고 저자는 강조하고 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1902년에 선교지 분할 정책(comity)에 합의하면서 각 선교회가 차지하고 있는 특정한 영역을 인정하고, 다른 선교회가 그 영역에 들어와 사역하는 것을 금지하는 데 동의했다. 또한 1914년에 전국기독교협의회(The National Christian Council of India)가 구성되면서 외국 선교회와 동등한 입장에서 인도교회가 참여할 수 있게 된 점과 1908년에 만들어진 남인도교회연합교회(SIUC), 1947년에 형성된 남인도교회(The Church of South India), 1970년에 출범한 북인도교회(The Church of North India)의 연합을 위한 기본적인 조건(신구약성경, 사도신경과 니케아신경, 세례와 성찬, 그리고 역사적인 주교제도)의 토대 위에서 교파적 차이를 존중하고 대화해 온 교회연합의 협상 과정에 대한 상세한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3. 인도의 여러 언어에 능통했던 퍼스 박사가 이 책을 집필하면서 인도교회에 대한 초교파적인 자료를 인용하고, 에큐메니컬한 입장에서 인도교회의 역사를 기록했다는 사실은 이 책이 현재까지 인도 신학교에서 교과서로 사용되고 있는 이유를 뒷받침해주고 있다.
역자인 임한중 박사도 인도교회사를 처음 접하는 한국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약어표를 정확하게 번역하고, 어려운 개념이나 용어, 사건 등에 대해서 ‘역주’를 추가했다. 또한 중요한 인물이나 장소의 사진이나 그림을 삽입하는 등 세심한 노력을 기울였다. 사도 도마 기독교인들의 역사와 분화 과정이 담긴 도표(470쪽)와 인도의 각 주별 기독교 인구 현황 도표(472쪽), 그리고 인도교회사의 주요 지명 지도(474-475쪽)가 첨부되어 있어서 인도교회 연구자들에게 큰 도움을 준다.
마지막으로, 역자는 인도 남부에 정착하여 시리안 교회의 전통을 따르는 그리스도인들을 ‘시리아 그리스도인’이라고 번역했는데, 시리아 지역에 있던 그리스도인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인도에 정착한 동방교회 전통의 교인들을 지칭하기 때문에 ‘시리안 그리스도인’이라고 번역했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한경균 | 장로회신학대학교와 아세아연합신학대학교 대학원을 졸업하였다. 필리핀크리스챤대학교(선교학 전공)에서 수학했다. 필리핀그리스도연합교회와 뉴질랜드장로교회에서 에큐메니컬 선교동역자로 사역했다. 현재 대한예수교장로회(통합) 총회 기획국에서 에큐메니컬 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2020년 3월호(통권 73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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