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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마당 (2020년 2월호)

 

  토니의 삶에서 풍겨난 기독교인의 향기
  고세훈의『R. H. 토니: 삶, 사상, 기독교』 아카넷, 2019

본문

 

한 사람의 입체적인 인생과 사상을 하나의 평면적인 책 안에 담아내는 작업은 쉽지 않다. 하지만 『R. H. 토니: 삶, 사상, 기독교』는 가히 그 목적에 있어 성공한 책이라 평할 수 있다. 책을 읽는 독자는 저자인 고세훈 교수가 토니를 오랜 기간, 여러 문헌을 바탕으로 다각적인 구도에서 그의 삶과 사상, 그리고 기독교와의 연관성을 섬세하게 다듬은 하나의 입체적인 조각상을 보게 될 것이다.
저자는 책에서, 사상가들의 사상이 일생 고정되어 있지 않다는 사실을 수많은 평자들이 간과한다고 지적한다. 생각과 사상은 변화한다는 사실을 무시하고 평자들이 ‘사상의 일관성’을 강조하며, 그에 따라 결과물이 ‘곡해’된다는 것이다. 이 책은 그러한 함정을 성공적으로 피해 갔다고 말할 수 있다.

토니의 삶
저자는 먼저 토니의 전체적인 삶을 연대기적 소묘를 통해 전달하며, 그의 삶을 사상과 연결시켜 보여준다. 이를 통해 그가 단순한 학자가 아니었고, 낭만적인 사회주의자나 마르크스주의자도 아니었으며, 단순한 교육자도 아니었고, 그리고 일반적인 기독교인도 아니었음을 볼 수 있다. 토니의 삶에 대한 전반적인 소묘는 토니의 활동이나 저작을 통해 자칫 잘못하면 발생할 수 있는 편견을 미리 차단하는 효과를 준다.
토니는 영국의 상류 중산층에서 태어났다. 그는 엘리트 교육을 받았고, 지적인 활동만을 하며 살아갈 수 있었다. 하지만 토니는 학자이자 실천가였다. 구제활동을 위해 마련된 장소인 토인비 홀에서의 경험은 토니에게 하나의 전환점이 되었다. 여기에서 그는 노동자들이 겪는 고통과 불행에서 그들이 벗어나도록 하려면, 불평등한 구조가 개혁되고 노동자들이 자립할 수 있는 교육의 기회가 주어져야 함을 깨닫는다.
결국 토니는 1905년에 노동자들을 위한 개인교습을 제공하는 단체인 노동자교육협회에 가입하게 된다. 이 교습활동을 통해 토니는 직접 노동자들의 삶과 생각을 구체적으로 경험할 수 있었다고 한다. 토니의 겸손한 학문적 자세와 평등주의적 자세는 학생들에게 큰 감동을 주었다. 이런 현장의 경험은 경제와 사회에 대한 당시의 지식인들과는 다른, 그 사람만의 독특한 관점을 길러주었을 것이다.
여기까지의 경험은 토니를 구조와 계급에만 집중하고 인간의 본성은 간과하는 낭만적인 사회주의자로 만들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토니는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하였고, 그곳에서 인간 본성의 어두운 면을 보게 된다. 솜(somme) 전투에서 부상당한 후 병상에서 쓴 기록인 “공격”(The Attack)에서 그는 “전쟁의 경험이 자신에게 기독교의 원죄의식을 확신시켰다.”라며 인간 본성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암시한다. 전쟁터에서 인간의 이기적인 생존본능을 경험하며 인간 본성에 대한 통찰을 얻게 된 것이다. 그리고 노동자는 그 주인들과 마찬가지로 이기적인 본성을 가지고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고 고백한다.
그러나 토니는 인간 본성의 어두운 면 때문에 산업구조에 대한 개혁 의지를 버릴 생각이 추호도 없었다. 오히려 토니는 전쟁 후 학자로서, 노동당원으로서 더욱더 왕성하게 활동하기 시작한다. 토니는 1919년 3월 ‘왕립석탄산업위원회’(생키위원회)에 참여하였다. 여기에서 그는 산업구조와 관련하여 자본주의에 대한 자신의 생각과 실천적 대안들을 제시하고, 노동당 및 노조지도부와 활발하게 접촉하였다. 그는 이 위원회에서 스타가 되었다. 영국의 산업구조와 경제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 날카롭고 순발력 있는 지성, 탄광 소유주들을 당혹스럽게 만든 예리한 질문들은 그를 영국 노조운동과 관련된 유망한 지식인으로 만들었다.
비록 의원직에는 오르지 못했지만, 토니는 학문적 및 정치적 활동을 지속해나갔으며, 『탈취사회』(1921), 『기독교와 자본주의의 발흥』(1926), 『평등』(1931) 등의 대작을 저술하였다. 이 책들은 사회 세력으로서의 기독교의 역량과 위상, 자본주의, 영국 경제사, 산업구조에서의 자유와 평등 개념, 동료애 등 토니의 깊고 성숙하고 균형 잡힌 사상을 드러낸다.

토니의 사상
저자는 토니의 사상이 문제의 근원과 본질에 대한 깊은 고심 가운데서 얻어진 것임을 독자에게 탁월하게 전달한다. 저자는 여러 종류의 문서에서 토니의 기록을 인용하며 해석하는데, 인용된 자료의 방대함과 깊이를 통해 저자가 토니에 관해 오랫동안 연구하고 천착했음을 볼 수 있다. 토니에 대한 깊은 통찰력과 분석은 독자가 민주주의자로서, 그리고 사회주의자로서 토니만의 독특성을 볼 수 있게 한다.
현실의 고통과 문제에 대해 토니는 피상적이고 일시적인 해결책을 제시하지 않았다. 그는 경제사가로서 현재의 문제가 어디서부터 흘러왔는지를 파악하고 분석한다. 토니는 사회적 불평등과 구조적 고통의 근본적 원인을 재물이나 재산의 부족이 아닌 도덕의 부재로 보았다. 종교개혁 후에 교회가 사회윤리적 권위를 잃어버린 뒤, 사적인 권리에 대한 의식의 발현, 그리고 그로 인한 타인의 자유의 위엄이 이익 추구라는 욕구 앞에 제한 없이 짓밟혀지고 탈취되는 사회가 형성된 것이다.
토니는 이 탈취사회에 벌어지는 일을 3가지로 규정했다. 그것은 권리와 기능의 분리, 신성시되는 사유재산, 경제 이익의 무한추구이다. 사회윤리적 이해가 부재할 때 도덕적 가치가 무너지고, 산업 조직은 공통의 이해를 위한 기능보다는 사적인 이익을 추구하게 된다는 것이다. 토니는 물론 구조 자체에 대한 비판도 수행한다. 하지만 토니의 통찰력에 진정으로 감탄할 수밖에 없는 지점은 애초에 왜 불의한 구조가 형성되고 유지될 수밖에 없는지를 드러낸다는 점이다. 저자는 토니의 이러한 통찰력을 부각하였으며, 또한 그가 단순히 도덕론을 설파하지 않았음을 확실히 한다. 토니는 현대 자본주의를 도덕 가치의 부재라고 비판하며, 기능사회라는 현대 자본주의의 대안도 제시한다. 토니는 권리와 힘이 아닌 기능의 관점으로 노동자와 소유주 사이의 관계를 재정립한다면, 지혜로운 협력 관계가 이루어지리라 전망한다.
기능사회에 대해 다룬 뒤, 저자는 토니가 강조했던 또 하나의 개념인 평등에 관해 설명하기 시작한다. 저자는 탈취사회와 관련된 제6장을 이렇게 마무리짓는다. “요컨대 권력도 부도 그 자체 목적이 아닌바, 목적이란 자유롭고 평등한 개인들 간의 올바른 관계이기 때문이다.” 저자에 의하면, 개인의 운명이 사회 계급과 지위에 의해 정해지는 현실은 토니에게는 도덕적으로 역겨운 현실이었다. 그래서 토니는 『평등』에서 마치 구약의 선지자들과 같이 경고의 메시지를 던지며 분노한다. 불평등은 반인간적이며, 경제적 진보를 방해하고 인간의 기본적 필요를 억압한다는 것이다. 토니는 교회의 사회윤리적인 권위가 무너진 자리에 불평등의 종교가 자리 잡았다고 분석했다.
이런 불평등의 상황을 개선하기 위해 토니는 몇 가지 조치를 제안한다. 사회서비스와 누진세제의 확대 등을 통한 공동체 서비스기금 마련, 노동조합주의와 산업입법을 장려하여 경제 권력의 불평등 약화, 공기업과 협동조합 운동 등의 발전을 통해 경제정책의 주도권을 사회서비스를 책임지는 권위체로 이전하는 것이 토니가 제시한 세 가지 조치이다. 여기서 저자는 토니의 독특성을 다시 부각한다. 저자는 토니가 이러한 개혁안들이 실행될 때, 신속히 행해져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설명하면서, 동시에 토니가 자본주의라는 성채를 공략하기 위해서는 점진적인 지구전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고 설명한다. 그리고 토니의 평등 개념이 ‘재화의 균등한 재분배’라는 단순하고 강제적인 것이 아니라, “부와 경제 문제에서, 권력의 불평등을 포괄하는 넓은 범위에 걸친 것”임을 정리한다. 독자는 저자가 토니의 입체적이고 성숙하고 균형 잡힌 사상을 탁월하게 묘사하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그 후, 저자는 토니가 평등을 실현하기 위해 교육에 집중하였음을 설명하고, 그의 평등사상 자체를 현대의 상황에 비추어 평가하면서, 토니의 평등사상과 관련된 제8장을 마무리짓는다.

토니와 기독교
이 책을 읽는 독자는 토니가 성숙하고 진실한 민주주의자이며, 현실적이고 실천적인 사회주의자였음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저자가 강조하는 토니의 중요한 정체성 중 또 다른 하나는 바로 토니가 기독교인이라는 것이다. 토니의 마지막 제자인 에일머(Gerald Aylmer)는 토니를 “가장 먼저 크리스천이었고, 그다음에 민주주의자였으며, 그다음에 사회주의자였다.”라고 정의한다.
독자는 토니의 삶을 통해 토니가 기독교적 자세와 생각을 가지고 실천적인 기독교인의 삶을 살았음을 보게 된다. 토니는 말년에도 교회에 출석했으며, 기독교위원회에서 왕성하게 활동하였다. 그리고 비망록(1972)을 통해 토니의 사상의 깊은 뿌리에 성서의 교훈이 존재하는 것을 볼 수 있다. 특히, 토니는 제1차 세계대전과 솜 전투에서의 경험을 통해 성서가 이야기하는 원죄에 관한 체험적인 깨달음을 얻었다고 한다. 토니의 도덕적인 삶, 깊은 학문성, 훌륭한 성품, 정직과 검소, 그리고 절제는 분명 진정한 기독교인의 향기를 풍겼다. 그래서 많은 이들이 토니를 통해 기독교로 회심했다고 한다.
그러나 한편 토니는 기독교에 대한 소망과 비판의 시각을 동시에 가지고 있었음을 볼 수 있다. 저자는 제5부 ‘생각을 멈춘 기독교’에서, 특히 토니의 3부작 중 하나인 『기독교와 자본주의의 발흥』(1926)이라는 책을 세밀하게 다룬다. 그 책에서 토니는 기독교가 사회에 영향력을 끼치는 윤리적 권위로서의 지위와 힘을 잃었다고 한탄한다. 그리고 개인적 신앙과 교리에 갇혀 사회를 변혁시키는 데에 관심을 잃었음을 비판한다. 그리고 신교의 개혁이 시작되면서, 개신교가 오히려 소명의식과 개인적 부의 축적을 옹호하였고, 자본주의라는 경제적 질서의 반대자에서 ‘적극적 옹호자로 전환’되었다고 분석한다. 그래서 토니는 계속해서 기독교가 사회변혁의 주체로 활동할 것을 촉구했으나, 변하지 않는 영국 교회를 보며 실망했다고 저자는 설명한다.
그러나 저자는 토니가 소유한 사상의 배경과 근원이 기독교의 메시지에 있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강조한다. 선한 사회는 선한 시민들로 이루어짐을 토니는 강조했다. 토니는 개인의 역량이 존중되고, 그 개인이 연대하여 서로 존중하고 제도적 장치와 위계를 극복하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올바른 관계로서의 ‘동료애’가 형성되는 사회주의를 주창했다. 그리고 저자는 토니의 이러한 비전이 기독교가 말하는 인간이라는 피조물을 암시하고 있다고 설명한다. 기독교가 바탕이 된 토니의 사회주의는 자유로운 선택을 억압하지 않으며, 전제적 권력에 의해 강압적으로 행해지는 혁명도 아니며, 강제적인 사회적 참여가 아니다. 토니의 사회주의 사상 전반에는 인간 개개인의 특성과 가치를 인정하는 기독교의 메시지가 걸쳐 흐르고 있다.
토니는 인간의 어두운 본성을 깨닫고 단순히 제도와 노력으로 유토피아가 이루어지기는 힘들다는 것을 알았다. 그럼에도 겸손한 자세로 각 개개인을 사랑하며, 소망을 잃지 않고 끝까지 정치와 사회, 그리고 교회에 선지자적 메시지를 선포하였다. 이 책에서 만나는 진정한 기독교인으로서의 토니의 모습을 통해 독자들은 다시 희망의 시간을 가질 수 있다고 확신한다.


유경동 | 미국 밴더빌트대학교에서 기독교윤리학을 전공하고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감리교신학대학교에서 기독교윤리학을 가르치고 있으며, 한국기독교학회 총무로 섬기고 있다.

 
 
 

2020년 3월호(통권 73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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