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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마당 (2019년 11월호)

 

  위대한 카파도기아인 그레고리오스의 일생
  스틸리아노스 파파도풀로스의 『신학자 성 그레고리오스』 정교회출판사, 2019

본문

 

왕성한 출판 활동을 통해 교회 전통의 맥을 잘 이어가고 있는 정교회 출판부에서 의미 있는 신간을 선보였다. 이름하여 ‘가장 기독교다운’ 기독교 역사의 중요한 페이지를 형성한 인물이자 심오한 가르침을 남긴 카파도키아 교부 중 한 사람으로 알려진, 그러나 한국 신학계나 교회 일반에는 생소한 나지안주스의 그레고리오스(Gregory of Nazianzus, 328 혹은 329-390)의 생애를 상세히 알려주는 좋은 저서가 지난 여름 무더위를 뚫고 세상에 나온 것이다. 무척이나 반갑고 소중한 순간이다.
정교회 출판부는 위대한 신앙의 유산을 남긴 교부들의 총서를 지속적으로 출간하고 있다. 첫 번째 책으로 ‘불굴의 영적 투사’라는 별칭을 붙여 『성 요한 크리소스토모스』를 펴냈고, 두 번째로는 ‘카파도기아의 빛나는 별, 온 세상의 스승’이라는 수식어가 붙은 『성 대 바실리오스』를 펴냈다. 상처 입은 독수리 『신학자 성 그레고리오스』는 세 번째 총서로 번역된 책이다. 교부들에 관한 이 책들은 자칫 무미건조해지기 쉬운 신앙생활에 활력을 불어넣을 뿐만 아니라 우리의 신학적 사유를 기독교의 본질에 더욱 근접하게 하는 견인차 역할을 한다는 점에서 더욱 의미가 있다. 더 많은 영적 자양분들이 활발하게 소개되길 간절히 소망한다.
이 소중한 책을 저술한 학자는 서평자가 얼마간 머물며 연구한 아덴대학의 유명한 교수 스틸리아노스 파파도풀로스이다. 1992년에 헬라어로 쓰여진 품격 있는 교부 나지안주스의 그레고리오스의 생애는 앙겔리키 박(박효균) 신부의 노고를 통해 우리말로 번역되어 출간되었다. 사실 위인들이나 어떤 공동체의 영광이 되는 지도자의 생애를 서술할 때는 어느 정도 사실을 과장한다는 점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을 것이다. 마치 천상에 있는 베드로가 바티칸에 있는 자기 상(像)의 발을 하도 많은 관광객들이 쓰다듬어 닳고 닳은 상태를 보고 무척이나 겸연쩍을 것이라는 말처럼, 신앙의 선각자들의 삶에 관한 이야기를 기술할 때에는 항상 ‘과장’이라는 함정을 인지하면서 읽어야 함이 정당할 것이다. 따라서 위인들의 전기는 이런 점을 감안하면서 그것이 얼마나 사실에 근접하는가를 점검하며 읽는 자세가 필요하다. 그래야만 정확한 이해에 도달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주인공에 대한 바른 자리매김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이 책의 경우, 4세기 인물에 관한 이야기를 21세기 초의 연구자가 역사적인 문헌을 통해 서술하는 것이므로, 그만큼 역사의 변천 과정을 감안하면서 이 책에 접근해야 할 것이다.
이 책의 주인공인 나지안주스의 그레고리오스는 정통 중의 정통 교리라 할 수 있는 삼위일체 신학의 최고봉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삼위일체 하나님을 영광스러운 빛으로 이해하면서 “빛 안에서 빛을 통해 빛을 바라본다.”라는 탁월한 명제로 삼위 하나님을 이해하고자 했다. 이 책은 삼위일체 교리로 알려진 그레고리오스에 관하여 우리가 알지 못했던 정보를 상세하게 제공해주고 있다. 저자가 얼마나 그레고리오스를 치밀하게 추적했는지를 알 수 있게 하는 대목이다. 이를 통해 그레고리오스의 영적인 영향력을 우리에게 충실하게 전달하고 있으며, 동시에 그레고리오스는 한국 성도들에게 생소하고 무지한 인물이지만 결코 도외시할 수 없는 지도자임을 우리에게 일깨워준다.
이 책에서 필자가 특히 인상깊게 읽은 대목은 그레고리오스의 부모에 대한 이야기였다. 그레고리오스의 아버지는 젊은 시절 ‘휩시스토스’(‘지극히 높은 이’라고 칭해지는 우상)의 영적 세계에 머물러 있었는데, 결혼 이후 지속적으로 중보기도를 해온 어머니를 통해 결국 50세가 넘은 시점에 그리스도인으로 회심하고 세례받는 과정이 매우 감동적으로 묘사되어 있다. 사실 초대 교회의 세례는 그 질적인 강도에서 오늘날 개신교 교회의 세례와 너무나 큰 차이가 있다. 초대 교회에서 세례를 받기 위해서는 3년간의 세례문답 교육과정을 거쳐야 했으며, 교육을 다 마친 후 세례가 베풀어지기 전에는 일주일 동안 금식기도를 해야 했다. 비기독교적인 직장에 종사하는 경우에는 그 직장을 그만두어야 하는 결단을 요구하기도 했다.
필자가 예일대학교에서 그레고리오스에 관해 연구할 때, 그의 아버지의 철저한 회심에 관해서는 제대로 정리할 수 없었다. 그런데 이 책을 통해 당시의 이야기가 정리되어 감동적으로 전달되었다는 점에서, 저자의 노력을 높이 평가하고 싶다.
늦은 나이에 아버지가 세레를 받은 후 그레고리오스를 잉태하는 과정에서 보여지는 어머니의 기도와 경건한 환상에 관한 이야기는 특히 감동적이다. 그레고리오스의 부모는 결혼 후 아이가 없다가 늦은 나이에 딸 고르고니아를 낳았지만, 아들이 없는 상태였다. 그의 어머니 논나는 마치 구약의 한나처럼 아들을 주시면 하나님께 바치겠다고 서원하였고, 결국 아들 그레고리오스가 태어났다. 훗날 성인이 된 그레고리오스가 자신을 하나님께 바치겠다는 어머니의 서원에 동의하는 장면의 감동적인 묘사는 사뭇 진지하다 못해 설교의 내용으로 사용할 수 있을 정도로 탁월하다.
그가 서원에 동의할 수 있었던 것은 단지 어머니에 대한 순종이라기보다, 그가 비밀리에 간직해온 꿈 때문이었다. 그레고리오스의 꿈은 그의 수도사적 삶(주로 동정성의 영성)과 관련이 있으며, 또한 삼위일체 신앙에 반대한 사벨리오스, 아폴리나리오스, 에브노미오스 등에 대항했던 활동과 긴밀히 연관되어 있다. 좀 더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훗날 콘스탄티노플의 총대주교로, 나지안주스 지역의 실력 있는 사역자로 빛을 남기기 전, 그는 혈기 왕성한 청년기에 신학 수업을 하던 중 특이한 꿈을 꾸었다. 그리고 꿈에 등장하는 두 소녀에게 매료되었다. 두 소녀는 그레고리오스에게 순결의 빛을 전해준 후 하늘로 올라갔는데, 그들의 이름은 ‘아그니아’(순결)와 ‘소프로시니’(신중, 절제)였다. 이 꿈을 통해 그레고리오스는 독신 수도자로 살 것을 다짐했다. 어머니가 그를 낳기 전 아들을 얻게 해달라고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어머니에게 그레고리오스의 모습을 보여주었다는 복음적 경험과 일치하는 그의 신앙체험인 것이다. 그는 이렇듯 공감의 영성을 보여주었다. 결국 ‘올바른 교리’는 ‘올바른 실천’과 불가분리의 상황임을 그의 일평생 독신의 영성은 보여준다. 이 같은 신비체험은 기독교 신앙이 결코 삶의 실존적 영역과 동떨어진 것이 아님을 명백히 보여주며, 또한 우리로 하여금 복음적 경험, 즉 하나님의 역사 참여인 ‘카이로스’의 역동성을 되돌아보게 한다.
다양한 감동을 우리에게 안겨주는 이 책은 다음과 같은 장점을 가지고 있다. 첫째, 이 저술은 무엇보다 우리가 파편적으로 알고 있던 한 신학적 거성을 통전적으로 묘사하는, 다시 말해 그의 고차원적 신학이 삶의 지평에서 어떻게 영글었는지를 보여주는 좋은 안내서가 된다. 둘째, 목회 현장에서 가장 이상적인 리더십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실천이라는 열매의 배경에는 분명한 이론적 무장이 함께 있다는 사실에서 한국교회가 어떤 방향, 어떤 방법으로 오늘날의 위기를 극복하고 지난날의 신뢰와 명성을 회복할 수 있을지를 알려주는 지침서가 될 수 있다. 셋째, 진정한 우정을 통해 진리를 삶으로 구현해낼 수 있음을 보여준다. 가이사랴의 바실리오스, 나지안주스의 그레고리, 거기에 닛사의 그레고리오스까지 더해 이들은 철학의 완성이라 할 수 있는 사랑의 신비를, 흐트러지지 않는 우정의 결속을 나타냈으며, 이를 통해 인류사의 빛이 되었음을 잘 보여주고 있다.
약간 아쉬운 대목으로, 중요한 대목에서 오자가 발견된다는 점을 언급하고 싶다. 이를 테면 제5장에서는 ‘정통신앙’ 문제를 다루고 있는데, 그 제목을 ‘전통 신앙’(185쪽)이라고 잘못 표기했다. 그리고 그 장에서 이 두 단어를 혼용한다는 점이 눈에 띈다. 개정판이 나올 때에는 이 부분을 바로잡아야 할 것으로 보인다. 또한 원저자의 참고문헌이나 인용부분 등도 같이 첨가하여 연구가들에게 더 큰 도움을 줄 수 있기를 바란다.


주승민 | 교회사를 전공하였다. 저서로 『초대교회 집중탐구』, 『기독교사상사 1』(공저) 등이 있고, 역서로 『알렉산드리아와 로고스』 등이 있다. 현재 서울신학대학교 신학전문대학원 교수로 재직 중이다.

 
 
 

2019년 11월호(통권 73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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