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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마당 (2019년 10월호)

 

  오래된 미래
  로완 윌리엄스의 『과거의 의미』(양세규 역) 비아, 2019

본문

 

과거를 성찰한다는 것은 인문학적 소양을 갖춘 사람들에게도 늘 환영받는 주제는 아니다. 현실에 직면한 일들도 살피기 힘든 상황에서 과거 문제를 들추는 것이 때로는 사치스럽게도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실용주의적 시각에서는 역사 연구란 별 도움이 되지 않는 일처럼 보일 수 있다. 더욱이 인공지능의 도입으로 인간이 신의 자리에 있는 듯 착각하며 살아가는 21세기에 먼 옛날의 이야기는 설득력을 갖기도, 성찰의 대상이 되기도 힘들어 보인다.
‘교회사’라는 것은 우리의 이야기가 아닌 서양의 역사 및 문화와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일면 낯설기도 하고 흥미를 끌기도 어렵다. 그러나 교회사는 신학의 광맥을 이해하기 위한 필수 요소이다. 이런 측면에서 원본 자료에 접근이 제한된 우리에게 잘 정리된 교회사 서적은 매우 유용하다. 로완 윌리엄스의 『과거의 의미: 역사적 교회에 관한 신학적 탐구』는 단순히 교회의 역사를 나열한 것이 아니라 그 역사의 신학적 의미를 밝혀주고 있기 때문에 더욱 가치가 있는 소중한 책이다.
우리는 서양신학을 극복했다는 말을 자주 듣는다. 한국적 신학, 아시아와 한국의 배경 안에서 신학의 토착화 작업을 해야 한다는 것에 이의를 제기할 필요는 없다. 그런데 무엇인가를 극복한다는 것은 적어도 역사적으로 진행된 모든 내용에 대한 면밀한 검토와 성찰을 전제로 하는 일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교회의 성장과 발달 과정을 이해하는 일이 필수이다. 바로 그러한 갈급함을 갖는 이들에게 이 책은 교회사에 대한 다면적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과거의 의미를 되짚어 본다는 것은 신학자들만의 일이 아니라 곧 오늘을 사는 기독교인들의 모습을 성찰하는 것이자 기독교의 미래를 준비하기 위한 기초 작업이라고 할 것이다.
로완 윌리엄스가 말하려는 핵심은 과거로부터 현재로 이어져 활동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실재성에 대한 신뢰가 기독교 역사 성찰의 전제가 된다는 것이다. 저자는 잉글랜드가 아닌 웨일스 출신으로는 처음으로 캔터베리의 대주교로 임명되어 전 세계 성공회 공동체를 이끌었을 뿐 아니라 영국의 주요 신학교에서 교수로 활동하며 신학과 교회를 이어주는 역할도 감당하고 있다. 다시 말해 그는 명실상부하게 신학과 교회공동체 두 가지 축의 소중함을 염두에 두는 학자이자 사제이다. 저자는 이 책의 목적이 교회의 역사를 신학적으로 신중하게 읽는 법을 제시하는 것이라고 분명히 밝히고 있다. 이 책은 2003년 5월부터 솔즈베리 대성당에서 사룸 칼리지의 후원으로 열린 저자의 강연을 바탕으로 구성되었고, 이어지는 토론에서 제기된 질문과 응답을 덧입혔다.
총 네 개의 장으로 구성된 이 책은 그리스도의 역사적 몸 안에서 과거의 기독교인과 오늘날의 기독교인뿐만 아니라 미래를 살아갈 기독교인까지 연결해내고자 하는 작업이라고 말할 수 있다. 서언의 성격을 담은 1장 “역사 만들기: 우리는 역사에서 무엇을 기대하는가?”에서 역사 서술은 공동 경험의 균열에서 발생한 거리감을 설명하며 간극을 메우고 집단 기억을 정리함으로써 자기 정체성을 재정의하는 일련의 과정으로 일어난다는 사실에 저자는 주목한다. 신약성서에서 시작하는 기독교의 역사 전체가 이러한 과정의 연속이다. 초기 기독교인들은 이러한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등장하는 긴장을 하나님의 활동에 대한 신뢰에 맡겨두었다. 반면에 저자는 이러한 긴장을 인위적으로 매끄럽게 조작하거나 간극 자체를 아예 벌려놓으려는 시도는 기독교 역사에서 언제나 이단으로 단죄되었다는 사실에 주목한다.
나아가 저자는 몇몇 주요 기독교 역사 서술, 즉 초대교회로부터 근현대에 이르는 학자들의 교회사 서술 전통을 되짚는다. 기독교인들은 언제나 역사 속에서 발견하는 자료에서 일정하게 이어지는 이야기를 찾으려 했고, 이를 통해 흔들리는 정체성을 정립하려 했다는 것이 저자의 분석이다.
1장은 교회사 서술이 신학적일 수밖에 없는 이유를 다루면서 마무리되는데, 그리스도의 몸에 속한 한 지체로서 개인은 결코 독립적으로 존재하지 않으며,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는 다른 사람들과 연결되어 존재한다. 다시 말해 기독교의 과거를 성찰하는 것은 오늘의 나를 되돌아보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교회사를 낯선 모습 그대로 정직하게 돌아보면서 과거 기독교인들이 응답한 방식에 관심을 기울일 때, 우리 자신의 모습도 온전히 성찰할 수 있다.
이어지는 2장과 3장은 초대교회 및 종교개혁 시대를 주목한 고찰인데, 단순히 연도와 사건을 나열한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어떤 방식으로 교회의 정체성에 대해 고민했고, 어떻게 만족할 만한 교회의 모범과 정의를 찾고자 하였는지 살펴보며 저자의 해석을 덧붙였다. 저자의 목적은, 이러한 고민과 탐색의 결정적인 전환점이 된 두 시기가 던진 교회의 특성에 관한 근본적 질문을 살펴봄으로써, 교회가 지닌 역사적이며 공동체적인 특성을 규명하는 것이다. 그리고 과거의 사례에 비추어 현대의 사안들을 재조명하고 있다.
2장 “거류 외국인: 초대교회의 정체성”에서 주목하는 것은 그 제목이 드러내듯 초대교회가 끊임없이 주장한 집단적 정체성이다. 저자는 초대교회가 스스로를 정의한 몇 가지 핵심 어휘, 즉 ‘거룩함’, ‘에클레시아’, ‘나그네’에 눈길을 돌린다. 이러한 어휘는 자신만을 절대시하는 당시 체제에 반하는 도전이었고, 그에 따라 교회는 혹독한 대가를 치렀다. 초대교회가 순교를 통해 주장한 이야기, 즉 기독교인은 이 세상의 나그네이며 기독교인의 주권은 오직 하나님에게 있다는 사실은 오늘날까지 이어져오는 교회의 본질이자 모든 판단의 준거이다.
저자는 순교 외에도 초대교회에서 드러난 높은 수준의 윤리적 요구와 규율, 순전함, 동정성에 대한 적극적인 관심을 이해할 수 없는 종교적 광신으로 쉽사리 치부할 수 없고, 오히려 교회의 진정성을 드러내는 기준이 언제나 하나님의 우선성에 있음을 드러내는 실천적 표지로 이해해야 한다고 보았다. 같은 맥락에서 4세기와 5세기 기독교 신학 논쟁의 핵심이 된 예수의 신성과 인성에 관한 이해도 이러한 관점에서 살펴볼 수 있다. 이것은 결코 교리적 순수함을 이룩하려는 것이 아니라 교회의 정체성과 진정성을 찾고자 하는 과정이었다. 따라서 고전 신학의 기독론을 불필요한 철학적 명제로 평가절하하는 것은 그 언어가 지닌 목적과 의미를 간과하는 것이다. 교리의 언어는 예수와의 관계성 안에서 인류가 거룩함에 이를 수 있느냐를 고민한 실천적 결과물로서 가치가 있는 것이며, 그러한 작업은 오늘날에도 이어져야 한다.
점차 사회에 동화되며 잊혀버린 교회의 정체성에 대한 질문이 어떻게 다시 깨어났고 새롭게 조명되었는지를 다루고 있는 3장에서는 종교개혁이 추구한 보편교회의 참 의미를 찾고자 하는 노력을 엿볼 수 있다. 이러한 종교개혁의 교회 이해는 16세기 이후 점차 사회의 주변부로 밀려나게 된 교회가 어떤 의미에서 교회로 남을 수 있는지를 고민한 흔적을 드러낸다. 종교개혁자들은 교회가 이 세상 안에서 안간힘을 다해 자신의 영역을 지키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새로움을 추구하시는 하나님의 창조 활동을 어떻게 충실하게 따를 수 있는지가 관건이라고 보았다. 때문에 하나님의 자유를 교회의 활동과 결정에 예속시키는 위험성으로부터 벗어나게 하는 것이 교회 개혁에서 중요했다.
이 점에서 일부 급진적 주장도 예외일 수 없었다. 하나님의 자유를 증언할 수 없는 교회는 참된 교회일 수 없으며, 교회는 두려움과 강박에서 벗어나 하나님에 대한 자유로운 증언자의 역할을 감당해야 한다는 것이 종교개혁의 기본 원리였다. 세례와 성만찬으로 이어지는 교회공동체의 성례는 오직 하나님의 자유에 의해 그리스도의 몸에 속하게 된다는 점을 드러내는 표징으로, 교회 일치의 구심점이 될 수 있다.
하나님의 고유한 위치와 하나님의 우선성을 증언하지 못하는 교회는 더 이상 교회로 남을 수 없으며, 이런 교회와 일치를 이루고자 애쓸 필요는 없다는 저자의 표현은 에큐메니컬 운동에서 무조건적인 연합을 추구하자는 것이 아니라 관용의 한계를 분명히 나타낸 것이다. 교회는 언제나 하나님의 우선성을 증언할 ‘공통 언어’의 공유 여부에서 그 일치를 발견해야 하기 때문이다.
과거 교회공동체의 모습에 대한 고찰은 그 자체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오늘과 내일의 의미로 이어져야 한다는 시각을 일관성 있게 견지한 이 책은 4장 “역사, 그리고 다시 새롭게 하기”로 마무리된다. 저자는 교회의 과거에 대한 성찰을 오늘날의 교회, 그리스도의 역사적 몸에서 실천적인 방식으로 이루어질 수 있을지와 연결하며 그 해법을 모색한다. 하나님의 부르심에 대한 감사로부터 교회의 정체성을 찾는 것이 그 대답이다. 이를 위해서는 과거의 기독교인들과 연결하기 위한 대화가 필요하다. 그리고 “성육신한 예수와의 만남, 역사에서 공동체라는 몸을 통해 살아 있는 예수와의 만남이 없다면 인간을 변화하게 하는 은총의 손길은 인간에게 닿지 않는다.”(192쪽) 기독교는 구체적인 시간과 공간의 지평에서 일어난 예수 사건을 공동체 안에서 끊임없이 현재화했다. 그러므로 기독교인은 바로 그 공동체, 즉 역사적 교회 안에서 예수를 동시대인으로 만날 수 있는 것이다.
과거의 기독교인과 대화할 때, 과거와 우리를 연결하는 공통의 현실, 즉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가 하나님과 맺는 관계는 우리가 마음에 들어하는 인물과 배경이라는 틀을 넘어 서로 다른 맥락 안에서 우리가 예상하지 못한 여러 가지 방식으로 구현될 수 있다는 확신을 가져야 한다. 저자의 주장 가운데 흥미로운 점은 초대교회의 전통을 소중히 성찰해야 한다고 해서 그것을 단순히 이상화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초대교회로 돌아가자는 말을 자주 듣는 우리가 깊게 생각해볼 대목이다. 이는 또한 오늘날 현대적 시각에서 볼 때 기독교 공동체의 소위 주류 전통에서의 한계들을 극복하고 대안을 찾으려는 시도로서 비주류의 전통을 이상적인 것으로 보려는 성급함도 경계하는 것이다. 현대적 이상을 과거에서 찾으려 하기보다는, 낯설고 불편하더라도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받아들이자는 것이다.
로완 윌리엄스는 우리 모두가 과거와 현재의 연속선상에서 끊임없이 다른 기독교인에게 빚을 진 존재임을 깨달을 수 있기를 소망한다. 기독교 공동체를 이룬다는 것의 의미, 세례받은 기독교인이라는 의미는 이렇듯 과거와의 대화 속에서 온전히 이해될 수 있다. 교회란 역사 안에서 사람들에게 현존하시는 하나님의 활동과 그것이 모두에게 어떻게 연결되어 소통하게 하는지를 드러내는 이야기에 바탕을 두고 있다. 저자는 오늘날의 교회가 어떤 사회적 평판이나 시대의 가치관에 대한 찬성 또는 거부가 아닌, 과거를 있는 그대로 바라봄으로써 발견하게 되는 역사적 교회의 본질에 주목할 때, 다시 말해 언제나 하나님의 우선성을 증언하는 일을 중심에 둘 때, 오늘과 미래를 위한 가장 의미 있는 해답을 제시할 수 있다고 본다.
책의 말미에서 몇 가지 주요 사안에 대한 언급은 에필로그의 성격을 지닌다. 균형잡힌 시각을 견지하려고 했음에도 그 나름의 한계가 있다면, 이 부분의 평가는 오롯이 독자들의 몫으로 남겨둔다.
역사는 중립적인 공간에서 어떤 의도 없이 사건의 나열로 그치는 것이 아니다. 역사 서술은 시간과 지리적 공간을 넘어서서 그 의미를 갖는다. 때문에 유럽을 중심으로 일어난 교회의 역사는 21세기 한반도에 사는 우리에게도 중요하다.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로서 어떻게 우리가 구약의 예언자와 사도의 전통을 이어받고, 오늘 하나님의 자유를 증언하며 새로운 창조의 역사에 동참할 수 있는지를 고민하는 사람들에게 강력히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정미현 | 이화여자대학교에서 공부한 후 바젤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저서로 『체코 신학의 지형도』, 역서로 『울리히 츠빙글리』 등이 있다. 현재 연세대학교 연합신학대학원 교수 및 연세대학교 교목으로 재직 중이다.

 
 
 

2019년 10월호(통권 73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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