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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마당 (2019년 4월호)

 

  야코프 푸거, 그는 누구인가
  그레그 스타인메츠의 『자본가의 탄생』 노승영 옮김, 부키, 2018

본문

 

1

책을 덮으며 한 인간이 역사에 던질 수 있는 무게감에 압도되었다. 야코프 푸거(Jacob Fugger)라는 인물이 경제사를 전공한 필자에게는 결코 낯선 인물이 아니었지만, 책을 덮는 순간 경제와 정치, 종교(교회)의 정교한 씨줄과 날실로 촘촘히 엮인 역사 속에서 그는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다가왔다. 푸거만큼 많은 교황과 주교, 황제와 국왕, 제후 등 권력층과 얽히며 변화의 중심에 서 있던 인물이 또 있을까? 우리는 돈으로 세상을 움직인 푸거를 통해 15세기 말에서 16세기 초의 세계 역사를 읽게 된다. 자본주의의 태생적인 비정함과 냉정함의 전형으로 돈밖에 모르는 냉혈한이라는 비난에도 불구하고 그는 르네상스 이후 새롭게 만들어지던 유럽의 역사 속에 던져져 허우적거림 없이 돈과 배짱, 신에 대한 확신으로 역사의 격랑을 주도적으로 헤쳐나간 전사임이 분명하다.
평민으로 태어나 신에게서 돈 버는 재능을 받았다는 확신에 걸맞게 푸거는 직물업, 광산업, 금융업, 향신료 교역 등 손대는 사업마다 성공하여 역사상 최초로 백만장자가 되었다. 하지만 우리는 르네상스기를 빛낸 피렌체의 메디치 가문은 알지만, 아우크스부르크의 푸거 가문에 대하여는 아는 바가 거의 없다. 현재 증권분석가로 일하고 있는 이 책의 저자 그레그 스타인메츠(Greg Steinmetz)는 대중적 글쓰기에 능숙한 저널리스트로 활동한 만큼 푸거를 사가들의 서재에서 대중 속으로 끌어내는 작업을 멋지게 해냈다. “나는 어느 누구에게도 해를 끼치지 않고 하느님의 은총으로 부자가 되었다.”(11쪽)라는 그의 파란만장한 인생 이야기가 약 500년이 지난 오늘날에 『자본가의 탄생』을 통해 재조명되었다.

2

우리에게 다소 낯선 야코프 푸거라는 인물이 르네상스 시대에 어떤 사업가적 재능과 신앙관으로 당시의 정치와 경제, 교회, 그리고 후세에 영향을 미쳤는지를 저자는 저널리스트의 근면함으로 자료를 찾아 친숙한 언어로 전하고 있다. 15세기 말에서 16세기 초반, 엄밀히 말해 티롤의 지기스문트 대공과 은광을 담보로 한 대출이 성사된 1485년 이후부터 푸거가 66세의 나이로 사망한 1525년 12월 30일까지 40년간 이어진 사업가적 행보는 이 책의 소제목(자본은 어떻게 종교와 정치를 압도했는가)이 말해주듯 당시 정치와 종교를 압도했다. 이 책에서 소개하는 12개의 주제는 중세에서 근대로 나아가는 굵직한 역사적 사건들–고리대금업의 이자금지 해제, 기사전쟁, 종교개혁과 농민전쟁–을 다루고 있다.
정치적인 욕망보다는 지상 최고의 부자가 되는 데 전력을 기울였다지만 역설적으로 그는 돈으로 역사를 바꾸는 정치적 행보에 깊이 관여했음을 2장 “황제에게 꼭 필요한 존재”에서 알 수 있다. 이제까지 세상을 바꾼 왕과 예언자, 시인은 있어도 사업가는 없었다는 토머스 칼라일의 말이 무색하게, 푸거는 보잘것없던 합스부르크 가문의 막시밀리안에 이어 그의 손자 카를에게 신성로마제국의 황제 자리를 안겨주며, 합스부르크 가문을 유럽 제일의 가문으로 탈바꿈시키며 세상을 바꾼 인물들의 대열에 합류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주목할 점은 6장에서 합스부르크 가문의 정략결혼과 고리대금 금지의 해제 과정이 기존의 역사서와 차이를 보인다는 점이다. 대부분의 역사서에서는 막시밀리안 황제와 헝가리 왕의 이해관계에 의해서 정략결혼(겹사돈)이 추진되고 푸거는 단지 엄청난 결혼 비용을 대출해주고 그 대가로 광산에 대한 권리를 양도받은 통 큰 금융업자에 불과하다. 하지만 이 책에서는 푸거가 개입한 4건의 결혼동맹 중 나이 어린 손자(10세)를 대신하여 매독에 걸린 쉰다섯의 막시밀리안 황제가 교회법으로도 인정이 안 되는 11세의 어린 헝가리 공주와의 대리결혼으로 맺은 오스트리아–헝가리의 혼인맹약은 푸거가 먼저 나서서 대출 중단이라는 초강수 압박으로 성사시켰다고 말한다. 푸거가 튀르크의 공격과 농민들의 증오로부터 자신의 황금알을 낳는 거위인 헝가리의 구리광과 은광을 지키기 위해 정치적 판도를 바꾸는 데 주저하지 않았음을 볼 수
있다.
또한 저자는 푸거가 “되받을 생각을 말고 꾸어주라”는 누가복음
6장 35절에 근거한 교회법에 의해 자신의 사업이 위협받자 이자의 합법화를 위해 대금업을 옹호하는 젊은 신학자 요하네스 에크를 고용(?)했다고 본다. 푸거의 청탁을 받은 에크가 “사악한 의도가 없는 거래는 고리대금이 될 수 없다. …정당한 사업적 이익을 추구하는 경우는 합법적”(158쪽)이라고 주장하며 “독단과 근대성의 정면충돌”(157쪽)을 불러왔다. 결국 푸거의 로비를 받은 교황 레오 10세(본명 조반니 데 메디치)는 제5차 라테란 공의회에서 공식적으로 이자를 합법화하였으며, 푸거의 자금줄을 끊어 그가 주도하는 새 경제체제를 가로막으려던 뉘른베르크 지식인들의 시도는 오히려 근대식 경제가 출범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것은 계약상의 일부 조항만 바뀌면 이자 수취에 도덕적인 정당성을 인정할 수 있다는 에크의 논법이 교회의 저항을 받고 있을 때, 교회를 설득하고 비용을 제공하면서 볼로냐대학에서 해명할 기회를 얻도록 지원한 역할로만 푸거를 본 기존의 평가와 미세한 차이점을 보인다.
7장 “종교개혁의 불씨”에서는 면죄부 판매를, 푸거에게 빌린 돈으로 성직매매를 한 마인츠 주교 알브레히트가 그 빚을 갚기 위한 아이디어라고 언급한다. 그리고 그 판매대금을 절반씩 나누기 위해 교황 레오 10세와 푸거가 푸거 궁에서 은밀한 만남을 가졌음을 밝히고 있다. 반면 기존의 역사서에서는 교황의 세금 징수인인 푸거가 상업적 가능성을 포착하고 면죄부 판매에 뛰어들어 판매금의 수송 및 환전을 통해 엄청난 이익을 얻었다고 기록한다. 그러면서 푸거의 빚 청산은 부차적으로 언급되곤 했다. 그렇지만 중세의 암흑기를 끝내고 근대로의 발걸음을 내딛는 마르틴 루터의 종교개혁에 푸거가 관여했다는 점에는 이견이 없다.
“성경에 최종권위를 부여하여”(284쪽) 평화적인 교회개혁을 원하는 루터는 1525년 농민전쟁에서 폭력적인 뮌처와 농민들을 절멸하도록 영주를 부추기며, 농민전쟁을 선동한 “기폭제이자 주원인”(280쪽)이라고 자신을 비난하던 푸거와 본의 아니게 한편이 되어 농민들의 폭동을 진압했다. 푸거와 루터의 악연은 푸거의 죽음 이후에도 이어졌다. 루터파로 개종한 제후들이 구교를 지지하는 합스부르크 가문에 맞설 때 안톤 푸거(푸거의 조카)의 지원을 받은 카를 5세가 남부 독일에서 신교도를 제압하며 독일 전체가 신교화되는 것을 막아내어 오늘날 독일 신・구교의 지형을 형성했기 때문이다.
끝으로 “푸거가 남긴 불후의 유산”(231쪽)이라 할 푸거라이–노동 빈민을 위한 보금자리 주택–의 규칙(입주민은 푸거와 그 가족을 위해 하루 세 번씩 기도할 것)을 통해 기도나 면죄부로 구원을 얻을 수 있다는 중세적 신앙관을 엿볼 수 있으며 푸거에게서 신에게 은총을 얻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중세적 신앙인의 면모를 보게 된다.

3

정보를 최대한 활용하여 적재적소에 과감한 투자를 하며, 회계에 정통한 사업가적 능력 및 통찰력을 지닌 푸거는 슘페터의 혁신적 기업인으로 손색이 없다. 계란을 한 바구니에 담지 말라는 분산투자의 원조이기도 한 푸거는 오늘날 성직매매와 면죄부 판매, 농민전쟁 진압 등에 관련되었다는 부정적인 평가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독일의 젊은이들이 닮고 싶은 인물로 레겐스부르크의 발할라에서 왕과 장군들과 함께 신전을 지키고 있다.
하나님은 푸거에게 부와 권력과 명예, 모든 것을 다 주셨지만 자신의 이름과 가업을 이어갈 정실 자식을 허락하지 않아 ‘야코프 푸거와 아들’ 대신 ‘야코프 푸거와 조카들’로 만족해야만 했던 그의 삶에서 푸거가 그토록 외치던 공평하신 하나님을 떠올리며 약간의 위로를 받는다면, 자본주의의 태생적인 부조리의 원조로서 푸거를 폄하하고 싶은 마음과 막강한 그의 재력에 대한 부러움의 소치리라. 어쩌면 이 책이 역사가가 쓴 역사서가 아니고, 전기 작가의 전기도 아니기에 독자들은 역사적 자료에 근거한 사실에 저자의 저널리스트적 ‘상상적 이해’1가 스며 있는 푸거라는 인물을 오히려 더 생동감 있게 입체적으로 만날 수 있다.
다만 르네상스기의 신앙심을 현대적 시각에서 평가한다는 것 자체가 부질없지만, 신의 뜻이라는 확신 속에 오로지 자신의 자산을 지키기 위한 명분으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돈을 벌고 자선행위를 통해 영적 위안과 구원을 찾던 푸거에 대해 저자가 “뒤틀렸다기보다는 실용적인 사람”(195쪽)이라고 평가한 점은 동의할 수 없다. 현재의 눈을 통해서 과거를 바라보는 것이 역사이며 “역사가의 주된 임무는 기록에 있는 것이 아니라 가치의 재평가에 있다.”2라고 이탈리아의 역사가 크로체가 말했듯 현재의 시각에서 볼 때, 푸거는 분명 천민자본주의적 사업가임을 부인할 수 없다. 저자가 역사가는 아니지만 역사적 인물을 다루는 만큼 역사가의 임무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지 않은가! “푸거를 야심가라고 비난하는 것은 르네상스 시대에 발현된 생명력을 부정하고 인류를 진보시키는 동력을 무시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336쪽)라는 푸거를 위한 저자의 변명이야말로 이 책을 통해 저자가 하고 싶은 말이 아닐까?
16세기 초 상인들이 국가에 번영을 가져다주었기에 ‘고귀한 직업’3으로 여겨졌다는 점을 감안해서라도 푸거를 야심가라고 비난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단지 그에게서 자본가의 탄생을 감지했다면, 그로 인해 파생된 자본주의의 태생적 한계를 부인하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이와는 별개로 이 책은 푸거란 인물을 통해 성직매매 등 배금주의에 물들어 부패한 중세교회의 모습과 종교개혁의 당위성을 촘촘하게 재조명하였기에 한국의 목회자들에게 일독을 권한다.

추신-책의 앞뒤에 1500년대 유럽 지도와 아우크스부르크 지도를, 책의 가운데에 당대의 유명한 화가들이 그린 초상화와 목판화를 배치한 것도 글을 읽고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 단지 야코프 푸거의 성정을 조금 더 자세히 엿볼 수 있는 알브레히트 뒤러의 초상화가 있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내용의 흐름에 따라 적절히 쉼을 허용한 출판사의 독자 우호적인 편집으로 한결 책 읽기가 편했다. 이 책을 읽고 나니 푸거의 도시 아우크스부르크에 가서 막시밀리안 거리를 따라 성 모리츠 성당과 푸거 궁을 걷고 싶어진다.

1 E. H. 카, 박종국 옮김, 『역사란 무엇인가』(육문사, 2013), 37.
2 E. H. 카, 위의 책, 33.
3 리사 자딘, 이선근 옮김, 『상품의 역사』(영림카디널, 2003), 335.

최연수 | 경제사를 전공하였다. 저서로 『세계사에서 경제를 배우다』 등이 있다. 한양대학교 경제금융학부 겸임교수로 재직 중이다.

 
 
 

2019년 4월호(통권 72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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