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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마당 (2019년 2월호)

 

  읽고, 말하고, 함께하기
  이정희 외 14인의 『민중신학, 고통의 시대를 읽다』 분도출판사, 2018

본문

 

서슬이 시퍼렇던 1970-80년대 군사독재 시절, 민중신학은 한국교회에 새로운 희망의 촛불이었다. 이제 역사의 변화 과정을 거쳐 반세기가 흐른 오늘날에 다시 민중을 논하고 민중신학을 거론하는 일은 한국교회 내에서 어떻게 비칠까? 또 교회 밖 세상에는 어떻게 비칠 수 있으며 어떤 이야기를 할 수 있을지 궁금하다. 정치적・사회적・경제적・종교적 억압 가운데 그저 인간다운 삶, 기본적인 생활만이라도 보장받기 위해 일하고, 외치고, 싸우고, 쓰러지고, 함께했던 많은 ‘민중’들이 있었다는 것, 그들이 겪은 고난의 현장에 동참하고 그에 대한 기독교적 이해와 해석에 앞장섰던 많은 신학자들과 목회자들이 있었다는 것에 대해 지금 한국교회는 과연 얼마나 이해하고 있을까?
당시 민중신학은 서구신학에 매몰된 교회와 신학에 새로운 희망의 촛불로 등장하여 많은 이들의 양심과 신앙에 참 신앙의 불을 지폈다. 예수정신 안에서 참 사람이 되고자 했던 사건의 신학이었으며, 또 수없이 많은 고통의 현장에서 운동의 신학으로 역동적인 시절을 보낸 민중신학은 오늘날의 현실에서 어떻게 재해석되어야 할까? 더구나 극렬한 자본주의 체제하에서 한편으로는 더 많은 소비와 안전을 위한 경쟁적 자본 축적의 길에 눈먼 생명들의 질주와 앞으로 다가온다는 소위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눈앞에 두고 자연과 인간, 우주 생명체들의 불확실한 진보 현상의 예측 혼동 가운데, 민중이나 민중신학은 어떻게 그 주장점이 납득되도록 설명하고 해석하고 기술해낼 수 있을까? 하지만 민중신학의 현실을 고려해볼 때 지금의 분위기는 교회나 교회 밖이나 민중이라는 말 자체와 그를 기초로 하는 신학에 대해 논하는 일이 끝없는 무관심의 영역에 놓여있는 것이 아닌지 우울한 생각이 먼저 드는 것이 사실이다.
다행히 이 책의 편집 후기에도 쓰여 있듯이, 대만의 신학자 송천성의 『아시아인의 심성과 신학』을 시작으로 2003년 『한국 무교와 그리스도교』에 이르기까지 총 10권의 ‘아시아 신학 총서’를 펴낸 분도출판사에서 민중신학을 주제로 새로운 책을 출간함으로써 ‘아시아 신학 총서’ 작업을 재개한 것에 대해 개인적으로 참 기쁘게 생각한다. 더구나 편집자의 말대로 가톨릭계 출판사가 개신교 신학인 민중신학에 관한 책을, 그것도 개신교 신학자들로만 온전히 구성된 책을 낸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닐 텐데, 그런 면에서도 이번 『민중신학, 고통의 시대를 읽다』의 출판은 큰 의미가 있다고 할 수 있다. 가톨릭과 개신교의 교회 일치와 연합운동이 오랜 세월 지속되어 많은 성과를 이루었다고 하지만, 이 땅의 현실에서는 아직도 가톨릭과 개신교 간에 협력과 교류보다는 반목과 의심의 눈길이 더 보편적인 상황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다. 그런 면에서도 이 책의 출판은 의미가 있다. ‘같음’을 더 깊이 공유하며 ‘다름’을 상호 인정하는 배움의 과정을 통해 진정한 복음의 일치 정신을 이루려는 에큐메니컬 운동이 이러한 출판 작업을 통해서도 상당한 열매를 맺을 수 있으리라 믿는다. 목회적 교회현장뿐만 아니라 신학 작업의 현장에서도 상호 교류와 공동 연구는 교회 일치와 연합운동의 정신적 기초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이러한 출판 작업이 계속되고 발전하기를 기대해 마지않는다.
자본주의 시대의 주인은 늘 자본이었지만, 오늘 21세기의 지구적 현실에서 그야말로 잔인한 무소불위의 자본은 경제적 권력뿐만이 아니라 사회, 정치적 담론을 좌지우지하고 있다. 종교 권력도 예외는 아니어서 종교의 본래적 정신과 이념이 오히려 시장의 도구로 이용되는 현실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성서가 말하는 ‘누구든지 나를 따르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따르라’는 자기 부인과 성찰의 정신은 ‘항상 기뻐하고 쉬지 말고 기도하며 범사에 감사하라.’는 대략 긍정의 정신으로 대체되었다. 자본의 축적을 위해 쉬지 말고 노력하며 애쓰고 기도해야 하며, 자기 자신이나 공동체에 어떤 아픔과 억울함의 사건들이 벌어져도 모든 것은 하나님이 하시는 감사한 일이라는 무한 긍정의 정신으로 왜곡시키는 한국 기독교의 놀라운 성서해석 능력도, 모두 자본의 교묘한 술책들이 아니라고 부인하기 어려울 것이다.
또한 종교의 텍스트, 전통과 역사는 이미 오래 전에 자본시장의 도구가 되었다. 그래서 한국 기독교는 ‘개독교’가 되기도 하고, ‘세습교’가 되기도 하며, ‘부자(富者, 父子)교’가 되기도 한다. 사회적 현실에서 정의와 공의를 부르짖은 이사야와 예레미야의 외침은 ‘사람의 아들’ 예수가 제시한 이 땅 위에서의 하나님 나라 도래를 위한 믿음의 길이 아닌, 세상을 초월한 저 천국행 구원열차를 타기 위한 ‘그리스도’의 의로 대체되어 교회 강단에서 버젓이 설교되는 현실에 가히 놀라움을 금치 못하는 일도 있다. 십자가에 달려 죽은 예수의 정의와 공의조차도 자본시장이 주는 세상 도피의 전인구원의 길로 이용되고 있는 것이다. 오늘날 자본은 종교를 도구화하여 가히 우리의 육체와 정신과 영혼 모두를 주관하고 있는 현실이다. 자본은 지금 악령이 되었다.
이러한 면에서 이 책에서 가장 인상적인 글은 정경일의 “유혹하는 신자유주의와 사회적 영성”이다. 정경일은 신자유주의 자본주의체제는 그 형태나 행태에 있어서 악령과 가장 흡사하다고 말한다. 악령의 유혹 방식으로 신자유주의는 ‘혼종성’, ‘공모성’, ‘영성’을 사용하고 있다.
우선 악령은 모든 곳에 모든 것으로 있으면서 혼종적으로 작용한다. 심지어 쿠바와 중국을 비롯한 사회주의체제에서도 신자유주의는 계급 권력을 시장 방식으로 재구성하고 있으며, 자본주의 국가에서는 이른바 작은 정부를 말하며 자본 권력에 무한한 자유를 주고 있다. 교육은 신자유주의의 핵심 논리인 경쟁과 개인주의에 물든 신자유주의적 인간을 대량 생산하는 공장이 되었고, 예술과 의료의 상업화는 물론이거니와 언론마저도 자본의 충실한 홍보 매체가 되고 있다.
나아가 악령은 정치적・사회적 계층 구별 없이 모든 사람으로 하여금 시장논리를 따라 살아가는 공모자가 되게 하고 있다는 것이다. 신자유주의적 삶의 원리와 방식은 상식이 되어 대중의 자발적 공모와 동의가 가능하게 만들고 있다. 심지어 반(反)신자유주의 사회운동 같은 자신의 반대자마저도 공모자로 만들고 있다고 한다. ‘공정무역’, ‘친환경상품’, ‘윤리적 구매’, ‘착한소비’ 등 친시장적 언어를 사용하여 ‘운동의 기업화’를 만들고 있다는 설명이다.
마지막으로 영성적 측면에서는 시장 자체가 ‘보이지 않는 신’이 되어 시장이 가장 잘 안다는 믿음에서 시장의 전지성(全知性) 교리를, 모든 것을 해결한다는 믿음에서 시장의 전능성(全能性) 교리를 만들어냈다. 정경일은 이를 신자유주의 종교의 ‘소비 제의’라고 말한다. 종교의 구원론은 ‘생존론’으로 대체되어 초월 명상과 내면의 마음훈련 등이 최고의 기업 엘리트들에게 더 많은 자본축적을 위해 교육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유혹하는 악령으로서의 신자유주의는 ‘혼종성’, ‘공모성’, ‘영성’을 통해 모든 것을 시장화하고 모든 사람을 그를 위해 도구화했다는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비교해보자면, 과거 정치적・경제적 억압에 대항하여 현장에서 치열하게 싸웠던 민중과 민중신학은 상대적으로 단순했다는 생각이 든다. 오늘의 억압적, 불평등적, 착취적 신자유주의의 악령은 규정하기 어려울 만큼 다양하기도 하고, 혼합적이며 상호 관계성으로 교묘하게 정당화, 상식화되고 있으며, 그 정신적・영성적 논리는 기독교나 그 밖의 모든 종교를 초월하는 설득력을 가지고 있다. 현재 한국 기독교가 보이는 세상 도피적 신앙, 개인구원 및 성장과 번영의 신자유주의 신앙과 신학은 그 악령의 공모자가 되고 있다. 1970-80년대의 민중신학도 이미 한국 사회와 종교에서는 싸늘한 찬바람을 날리는 죽은 언어로 나열되어 소수 학자나 과거 운동가들의 폐쇄된 방에 남아 있는 지적 잔치에 불과하다면 지나친 판단인지 모르겠다. 과거에 사건의 신학으로 사건을 만들고, 운동의 신학으로 운동을 만들고, 저항의 신학으로 저항했던 울림과 떨림을 어떻게 되살려낼 것인지가 아마도 민중신학의 가장 큰 고민이 아닐까 생각된다.
책의 프롤로그에서 이상철도 민중신학의 위기를 인정하면서, “사람들을 아주 폼 나고 우아하게, 아주 부드럽고 나이스하게 스스로 낭떠러지로 걸어가게 하는” 오늘의 체제에 과연 민중신학은 어떻게 말을 걸 수 있으며, 또한 말 걸기가 가능한 것일까 의심과 회의가 든다고 말하고 있다. 과거의 민중신학이 목적과 대상에만 집중하느라 말하는 방식에서 몰지각했다고 한다면, 이제 말하는 방식의 개선을 통해 새로운 준거점을 확보해야 할 때임을 강조했다. 보편적 입법에 의해 소외되는 개별자들의 다름과 차이가 존중되는 사회를 이해하고, 들리지 않던 작은 목소리들에 주목하며 거대한 구호에 묻혀버리는 개인들의 자기 음성을 찾도록 돕는 민중신학을 주장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중신학은 스스로를 부정(不正, 不定)적이고 해체적으로 내어주면서 자기의 정체성과 정당성을 유지하는, 탈영토화된 공간에서 작동하는 사건의 연쇄이기에 집착으로부터 자유하고 모순과 차이를 드러내며, 신학과 담론조차 상품화, 권력화하는 힘에 맞서 아니라고 외치는 부정과 저항의 신학으로 남기를 주장했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의 1부 ‘민중을 말하다’에서는 그동안 여성의 문제에 방관했던 민중신학이 페미니즘 관점에서 비판적 글을 소개하고 있고, 한국 사회의 쟁점인 성소수자 문제, 난민, 청년 문제들에 대해 민중적 관점에서 잘 정리하였다. 2부 ‘시대를 말하다’에서는 정경일이 말하는 신자유주의 악령에 대항하는 사회적 영성을 포함하여 현재 한반도의 평화적 분위기에 따른 분단 고통의 민중적 상황과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이 가져오는 서민들의 고통 문제 등을 잘 분석하였다. 3부 ‘개념을 말하다’에서는 민중신학의 개념어인 민중메시아론, 텍스트와 컨텍스트 문제, 안병무의 ‘공’(公) 개념, 민중신학의 교회론 등 민중 고통에 대한 사건적 이해 등을 현대적 시점에서 균형적으로 재해석한다.
세월호 참사도 그렇지만, 지금도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억울한 죽음이 계속되고 있으며, 경제적 불평등 구조에 놓인 노동자들이 닭장 같은 방에서 죽어나가고 있다. 또한 분단의 고통은 서로를 미움과 불신으로 비인격화하고 있다. 오늘 지구촌을 떠도는 난민들의 고통은 그 어느 때보다도 더 극심하고 치열하여 한숨과 눈물이 강을 이루고 있다. 『민중신학, 고통의 시대를 읽다』는 그 고통의 현장을 조금이라도 이해하고 거기에 참여하고자 하는 젊은 신학자들의 울부짖음이라고 해도 좋겠다. 개인과 개 교회, 개 교단에 매몰되어 더불어 존재하는 수많은 우주적 존재들과의 공감과 약자들과 함께함의 신학으로서 민중신학이 한발짝 다시 걸음을 옮기는 귀한 작품이다.

전기호 | 대만 타이난신학교에서 아시아신학(Th.D.)을 전공하였다. 현재 거창씨알평화교회 목사로 일하고 있다.

 
 
 

2019년 2월호(통권 72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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