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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마당 (2019년 1월호)

 

  하나님나라를 향한 영적 급진주의자
  크리스토프 블룸하르트의 『행동하며 기다리는 하나님나라』 전나무 옮김, 대장간, 2018

본문

 

진실한 목소리에는 시대를 초월하는 메시지가 담겨 있다. 크리스토프 블룸하르트(1842-1919), 한 세기 전에 살았지만 불꽃 같은 그의 영혼이 토해낸 하나님나라의 꿈에는 잠든 교회를 일깨우는 힘이 있다. ‘그리스도를 얻고자 하는 열망’으로 가득 찬 그의 영적 급진주의는 당시 독일 민중의 마음에 하나님나라를 향한 꿈을 불러일으키려는 것이었다.
기독교 사회주의 운동에서부터 은사주의 성령 운동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한 영향을 미친 그의 신앙 정신이 『행동하며 기다리는 하나님나라』에 담겨 있다. 이 책에 실린 17편의 설교문에는 그의 뜨거운 목소리가 고스란히 실려 있다.
크리스토프와 그의 아버지 요한 블룸하르트는 독일 민중의 삶에 충실한 목회자였다. 아버지의 치유 목회에는 가난하고 약한 사람들에 대한 헌신과 그 일을 감당할 수 있는 복음의 생명력이 숨 쉬고 있었다. 아들 크리스토프의 시작은 아버지가 전해준 영감이었지만, 하나님나라를 향한 기독교의 믿음이 개인적 차원으로 축소되고 사유화되는 당시의 신앙 풍토에 그는 점차 환멸을 느끼기 시작했다. 사회적인 차원으로 확대된 복음의 현실을 살고 싶었던 것이다. 급기야 목회를 접고 사회민주당에 입당하여 지방의회 의원으로서 6년간 생활하기도 했으나, 현실정치의 편협성은 그를 만족시킬 수 없었다. 결국 더 절실한 마음을 안고 교회로 돌아왔다. 사회적 복음에 헌신하고자 한 그의 활동이 당시 일어나던 종교사회주의 운동에 영향을 주기도 했지만, 중요한 것은 이데올로기적 좌표가 아니라 하나님나라를 향한 열망이었던 것이다.
사상사적으로 보면, 그의 시대는 이미 자유주의적 신학 실험이 한계를 노정하고 있을 때였다. 칼뱅주의의 종교적 교조성을 역사비평적 인문주의로 해소하고자 한 자유주의 신학의 기획은 자신의 계몽주의적 한계에 다다르고 있었다. 기독교가 윤리와 문화의 종교로 안착되고, 교회는 하나님나라의 꿈을 펼치기 위한 공동체적 실험을 하는 대신 외부적인 자선 활동과 내부적인 사교 행위로 시들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이런 위기의 시대에 그는 삶의 철저한 변화를 요청하며 ‘하나님나라’를 호소한다.
이 책의 외침에 담긴 복음적 생동감은 읽는 이들을 소스라쳐 놀라게 할 것이다. 왜냐하면 그 외침은 우리가 그리스도를 향해 열려 있기보다는 얼마나 기독교 종교의 굴레에 갇혀 있는지를 깨닫게 하며, 하나님나라의 이상을 잃은 오늘의 교회가 얼마나 짙은 종교적 열패감에 절어 있는지를 느끼게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신앙의 부흥과 교회의 갱신을 바라는 사람들은 그의 목소리가 잠시 심장을 훑고 가도록 내맡기는 것이 유익하다. 그의 메시지는 간략하지만 모든 신앙의 시대를 관통하는 주제이다. 네 가지로 요약해본다.
첫째, 하나님나라의 꿈을 잃고 단지 종교로서 존립하는 기독교는 이미 죽은 것이다. 니체와 동일한 시대를 살았던 블룸하르트는 신이 죽은 종교현실에 대한 철학의 비판을 수용한다. 그는 자신이 하고 싶은 대로 하기 위해 하나님을 죽인 제도종교의 이기적 욕망에 대해 비판하는 것을 넘어서, 종교 자체가 인류 역사에서 ‘장애물’이었다는 사실을 지적한다. 그는 종교로서의 기독교가 신앙인을 제도에 갇힌 ‘이교도’로 만들고, 살아 있는 그리스도를 박제화했다고 비판한다. 예수는 결코 새로운 ‘종교’의 창시자가 아니었다는 사실을 상기시키며, 만일 우리가 하나님의 계획을 단지 ‘기독교 시대의 도래’로 본다면 그것은 ‘착각’일 뿐이라고 단언한다.(6장 “예수님이 원하는 것은 종교가 아니라 여러분 자신입니다”, 100쪽)
그는 현실에서 종교적인 열심을 내던 이들이 도리어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람이 되고, 조직과 단체를 유지하기 위해 쏟는 교회의 열심이 얼마나 인간적인 것들에 의해서 유지되는지를 직시하라고 조언한다. 차라리 종교에 관한 우리의 사역들을 실패하도록 두면 하나님의 역사가 보다 더 분명하게 일어날 것이라고 말한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종교적 제도의 연명이 아니라, 하나님의 신실하심과 자비와 능력이 우리 삶에 임하는 것이다.
둘째, 교회는 종교로서 유지될 수 있는 제도와 경전이 아닌 하늘을 섬기려는 사람에 주목해야 한다. 블룸하르트는 교회가 세월이 흐르는 동안 ‘하나님의 다스림’ 대신 기독교라는 종교에 익숙해졌고, 성도들은 예수를 믿고도 여전히 변함없는 삶을 살고 있다고 말한다. 그 결과가 ‘일요일의 종교’로 전락한 기독교 신앙의 근원적인 위기이다. 일정한 종교적 교리에 익숙한 자들이 친교에 기반하여 안락한 형식신앙을 즐길 뿐, 서로 격려하고 사랑하며 서로를 위해 희생하는 공동체를 만들지 못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기독교인들은 ‘구원받았다는 안도감 속에서 스스로 속이는’ 삶에 익숙해졌고, 예수를 믿으면서도 이 세상을 이길 수 없는 신앙인이 양산되었다.
그는 신앙인들에게 묻는다. 천국에 대한 ‘감언이설로 비위 맞추는 종교’를 진실로 원하는지.(9장 “자기를 부인하십시오”, 122쪽) 그래서 만일 하나님이 전통과 교회와 교단의 하나님이 아니라 정의와 진리의 하나님이라고 믿는다면, 어려움과 궁핍과 두려움과 고통을 겪으면서도 ‘하늘을 섬기는 자’가 되라고 조언한다. 그리고 하나님나라가 이루어지는 증거는 그런 사람들이 함께 모여 서로 격려하는 공동체를 만들어가는 것에 있다고 말한다.(14장 “깨어서 일할 준비를 하고 있으십시오”, 181쪽)
셋째, 하나님나라와 세상 사이에는 절대적인 간격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나라는 이 세상 속에서 탄생한다. 자유주의 신학의 인문주의적 낙관이 시들어가던 시대를 산 블룸하르트는 인간이 만든 세계, 심지어 기독교적인 세계 역시 하나님의 것이 아니라고 단언한다. 이 세계를 배회하는 죽음은 단지 죽어버린 무엇이 아니라 ‘살아 있는 실체’로서 파괴력을 갖기 때문에, 중요한 것은 새로운 창조가 이뤄지는 그리스도의 미래로서의 하나님나라이다. 크리스토프에게 하나님나라는 저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며, 그리스도의 오심도 신자들로 하여금 저 세상의 영원한 천국으로 인도하기 위함이 아니다.
그는 외친다. “만약 우리의 모든 소망이 천국에 가기 위해 이 땅에서 벗어나는 것이라면 우리는 죄와 사망에 기여하고 있는 것”이요, “이 땅의 삶을 운명이라고 체념하며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고 하나님나라가 이 땅에 임하시리라는 기쁜 소망을 거부한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철저히 경멸하는 것”이라고.(16장 “하나님의 권능”, 193쪽) 보아야 할 것은 우리에게 다가오는 길을 내고 있는 하나님의 분투요, 이 땅에 거룩한 생명을 계시하는 하나님나라이다. 그것을 본 ‘진리의 종이 된 사람들’의 심령에 ‘새로운 마음과 생각과 감각과 가능성’이 태어난다.
넷째, 편안한 기독교는 세상을 바꿀 수 없으며, 필요한 것은 그리스도를 향한 기다림과 순종이다. 교회의 위기는 하나님나라를 위해 일하는 사람이 없다는 사실에서 비롯된다. 믿음의 사람들이 자신들의 특별한 영성을 개발하여 각양각색의 신앙을 가졌다 해도, ‘단순하고 실제적인 방식으로 자신을 내려놓고 열정적으로 그 길을 가는 법’을 배우지 못하면 신앙의 의미가 없다.(7장 “예수님이 원하는 것은 종교가 아니라 여러분 자신입니다”, 105쪽) 신앙의 큰 목표는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 존재의 깊은 곳에까지 완전히 새로운 사람이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의 미래는 멀리 있지 않다. 따라서 모든 신자와 교회는 그리스도의 미래를 지금 경험해야 한다. 그리스도를 갈망하는 사람은 ‘능동적인 기다림’ 속에서 복음이 생생한 현실이 되도록 힘쓰되, 성취욕이 앞선 조급함을 버리라고 그는 조언한다. 하나님나라는 힘이나 노력을 통해서 오지 않고 다른 방식으로 오기 때문이다. 평화를 가져오는 온유한 자들의 간절한 기다림을 통하여!(3장 “서두르십시오. 그리고 기다리십시오!”, 59쪽)

김희헌 | 조직신학/종교철학을 전공하였다. 저서로 『민중신학과 범재신론』 등이 있다. 향린교회 담임목사이다.

 
 
 

2019년 3월호(통권 72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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