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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마당 (2019년 1월호)

 

  생물학적 지성과 도덕비판
  토마셀로 마이클의 『도덕의 기원』 유강은 옮김, 이데아, 2018

본문

 

생물학적 계몽

인간은 어느 생명체보다도 다른 생명의 생존을 심각하게 위협할 수 있다. 그렇기에 인류는 오랫동안 인간의 자연적이며 생물학적 본성을 윤리적으로 연구해왔다. 특히 현대의 진화생물학은 동물과 인간의 사회 행태를 진화적 관점에서 관찰하고 이들 사이의 유사성을 근거로 도덕과 윤리에 대한 새로운 결과를 쏟아놓고 있다. 인간의 본성과 도덕의 기원에 대한 생물학적 계몽이 시도되고 있는 것이다.
그 결과 과거에는 순전히 윤리학의 영역에서 다루던 선과 악, 자유, 이기주의와 이타주의와 같은 문제가 과학적 연구의 대상이 되었다. 최근 진화인류학자 마이클 토마셀로(Michael Tomasello)의 여러 주저들이 우리말로 번역되면서 이러한 논의를 촉진하며 견인하고 있다.
『도덕의 기원』은 그의 또 다른 책 『생각의 기원』의 자매 판이다. 두 저서에서 토마셀로는 사회적 삶의 진화에는 2단계의 연쇄적 관계가 존재한다고 말한다. 첫째는 협업의 형태들이고, 둘째는 문화 조직의 형태들이다. 『생각의 기원』이 협업의 새로운 형태들을 만든 인간 종의 특유한 사고를 탐구했다면, 『도덕의 기원』은 사회적 삶의 새로운 형태들이 초기 인류가 도덕적 행동을 형성하는 데 어떠한 영향을 주었는지를 연구했다.
도덕에 관한 진화생물학적 연구는 일반적으로 이타적 감정과 행동에 중심을 둔다. 토마셀로는 심리적 이타성(진화심리학)과 생물학적 이타성(진화생물학)의 상호 보충성을 해명하는 데 특별한 관심을 갖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는 먼저 진화의 역사에서 인간의 도덕적 발전 과정을 살펴본다. 이러한 역사를 추적하는 방법론으로 대형 영장류(침팬지와 보노보)와 3세 전후의 아동을 대상으로 여러 실험을 시도하고, 여기서 나온 가설에 근거해 도덕성의 심리적 내면을 자세히 논구한다. 결국 이러한 관찰을 통해 인류는 오랜 진화의 과정 동안 공감의 도덕과 공정성의 도덕, 그리고 정의의 도덕을 발전시켜 왔음을 밝혀낸다.

도덕의 기원

쉽지 않은 책의 내용을 자세히 소개할 수는 없으나 대략 토마셀로는 도덕의 진화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인간은 자기보존과 생존과 번영을 위해 사회적으로 상호 작용하며 조직체를 구성해왔다. 도덕은 이러한 협업의 과정에서 생성되었을 뿐만 아니라 이를 촉진하는 동력이다. 인류의 역사에서 이는 두 단계의 역사적 발전을 이루었다. 먼저 초기 인류는 굶주림을 면하기 위해 친족과 친구만이 아니라 타인과의 협업을 위한 인지적 기술과 동기를 발전시켰다. 공동의 목표를 성취하기 위해 파트너와 공동의 지반이 되는 규범적 기준을 만들었다. 그리고 서로 결합된 파트너를 존중하고 동등한 자격을 부여하는 일종의 ‘자연적인 2인칭 도덕’을 형성하였다. 이와 같이 규범적으로 구성된 사회질서 가운데 ‘2인칭 행위자’들은 각자에게 맡겨진 역할에 대한 책임감을 인식하였다. 2인칭 행위자는 ‘나’를 ‘우리’에 종속시키고 ‘그들’의 공격에서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우리’와 연대한다.
15만 년 전에 호모사피엔스사피엔스가 등장하면서 더 큰 무리의 ‘우리’ 집단들이 다른 ‘우리’ 집단과 자원을 놓고 경쟁하게 되었다. 각 집단의 구성원은 집단과 자신을 동일시하고 집단의 생존과 복지를 위해 분업으로 자신에게 부여된 역할을 수행하면서 공감과 충성의 감각을 계발했다. 현대 인류는 이러한 ‘집단적 지향성’에 기초해 문화적 관습과 도덕적 규범을 발전시키고 제도를 창조하였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이러한 도덕규범은 초기 인류가 구상한 ‘2인칭 도덕’으로 확장되었다. 2인칭 도덕은 규범의 객관화를 추구하고, 집단적 헌신을 요구하며, 도덕적 결정의 정당성을 증명해야 할 의무를 강조한다. 일종의 ‘문화적이고 집단의식적인 객관적 도덕’이 형성된 것이며, 이에 근거해 도덕적 행동이 인간의 진화적 성공에 기여했다는 결론에 이른다.
이 책에서 특히 흥미로운 부분은 대형 유인원(침팬지와 보노보)의 사회적 삶의 특징을 경험론적으로 관찰하고 이에 근거해 상호주의적이며 호혜적 협력의 양상을 분석한 것이다. 토마셀로는 대형 유인원이 경쟁적 상황에서 사회적이며 인지적 기술을 사용한다는 점에서 ‘마키아벨리적 지능’을 소유하고 있지만, 집단 내부 경쟁에서 서로에게 협력하는 ‘친사회적 동물’이라고 판단한다. 이를 기반으로 대형 유인원이 인간의 마지막 조상과 공유하고 있는 도덕적 차원을 조심스럽게 긍정한다.
특별히 내집단의 편견과 외집단의 편향에 대한 그의 도덕심리학적 서술에 대해 언급하고자 한다. 토마셀로의 서술에 따르면, 종교는 협력을 장려하는 사회적 수단으로 등장했고 초자연적 실체와 힘에 대한 공유된 믿음이 문화적 공동 기반을 제공함으로 내집단의 유대를 한층 더 강화하는 데 기여해왔다. 이러한 내집단과 외집단의 사고방식은 특정한 시점에 인간의 혐오감과 결합되어 사회적 갈등의 원인이 된다는 사실을 지적한다.
그러나 토마셀로는 각자가 보는 각도에 따라 달리 보이는 ‘네커 정육면체’(Necker cube)처럼 인간이 도덕적 오류와 딜레마에서 벗어나기란 쉽지 않다는 것을 인정한다. 타인을 자신과 동등한 존재로 인정하는 도덕적 태도는 선호나 동기가 아니라 개인의 의사결정이나 문화적 영향력을 수용한 결과라고 확정한다. 그렇지만 인간이 자신의 이기심을 극복하고 도덕적 삶을 산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잘 알기에 책의 말미에서 ‘우리가 도덕적인 것은 기적’이라고 실토하며 도덕의 현상을 생물학적으로만 설명할 수 없는 자기 한계성을 고백한다.

신학윤리적 질문

토마셀로의 경험적 기술을 통해 우리는 일반적으로 진화론적 이론들이 제공하는 두 가지 윤리적 기능을 발견한다. 첫째는 해설의 기능이다. 진화론적 도덕이론은 인간의 태도나 성향에 대해 자연과학적으로 설명하고 해설한다. 이는 윤리적 현상을 보다 깊고 포괄적으로 이해하도록 돕는다. 진화론적 도덕이론은 경험적 윤리의 한 분과로 분류할 수 있다. 경험적 윤리는 여러 집단, 제도, 문화의 다양한 도덕과 양식을 기술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이에 근거해 인간적 태도의 이론을 일반화하기도 한다.
둘째로 진화론적 도덕이론은 해설의 기능만이 아니라 논증의 기능도 하는 듯하다. 인간적 본성에 대한 자연적 인식에서 인간의 도덕적 행위의 근거를 도출하려고 시도하는 과학적 경향은 규범적 윤리의 과제를 수용하면서도 도덕비판적 입장을 고수한다. 다시 말해 지배적 도덕체계를 비판적으로 검토하고 올바른 행동의 형태와 원칙을 논증하려고 한다. 그러나 진화론적 도덕이론이 윤리적 논증의 근거가 되기 위해서는 명령, 금지, 허락과 같은 규범적 개념을 생물학적 혹은 진화이론적 개념으로 설명할 수 있어야 하고, 인간의 모습이 ‘어떠한가’에 대한 인식만이 아니라 ‘어떠해야 하는가’에 대한 이상적 성격도 논증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러한 요청이 경험윤리학의 관심사가 아닌 것은 분명하지만, 진화론적 도덕이론이 쉽사리 자연과학적 환원주의에 빠질 수 있다는 사실만은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자연과학적 도덕설명은 윤리규범의 ‘초월적 측면’을 중시하지 않는다. 과거 환경윤리에 대한 논의에서도 도덕의 자연화에 대한 관심으로 인해 인간을 단지 자연의 한 부분으로 보고, 인간과 자연을 동일한 차원에서 종합하려는 자연주의적 형태들을 찾아볼 수 있었다. 그러나 신학윤리는 자의적 존재인 인간을 자연의 한 부분으로만 볼 수는 없다고 말한다. 인간은 자연의 한 부분을 차지하고 살아가지만 자연에서 연원한 존재는 아니다. 자연을 인간화해서도 안 되지만, 동시에 인간을 자연으로 환원시켜서도 안 된다.
인간은 자연 이상의 존재, 말하자면 하나님의 영의 지배를 받는 존재이다. 하나님의 영은 인간이 자신의 이기적 행동에서 벗어나도록 돕는다. 그러나 하나님은 인간의 ‘자유’까지 빼앗아가시지 않는다. 인간의 본질은 자유요, 동시에 책임이다. 바로 이 점에서 인간은 다른 자연과 실존적으로 다르다. 그러므로 기독교윤리학자 거스탑슨(J. M. Gustafson)은 인간이 자연의 한 부분, 말하자면 생물학적 존재임을 인정하면서도 인간의 문화적 능력을 과소평가하지 않는다.
인간은 자연에서 문화를 창조하는 존재이다. 생명을 연장하고, 질병을 정복하고, 삶을 보다 안락하게 만든다. 그러나 동시에 자원의 결핍, 환경 파괴, 인구의 폭발과 같이 인간의 행위는 수많은 부작용을 낳고 있다. 인간의 이 두 측면 모두가 신학윤리의 주제이다. 인간은 예술과 문학을 창조하고 신화와 상징과 과학을 추구할 뿐만 아니라 자신이 설정한 목표를 이루기 위해 자율적으로 행동하면서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는다. 동시에 인간은 제한된 존재이다. 인간은 생물학적 존재로서 죽을 수밖에 없고 제도나 환경에 종속된 존재이다. 인간이 세계의 운명을 완전히 제어할 수 있다는 생각은 분명 환상에 불과하다.
현대과학은 인간을 창조의 중심에서 몰아내고 자연의 한 부분으로 삼았다. 비록 인간이 많은 생물학적 한계를 가지고 있음을 부정할 수 없지만, 인간의 행동은 합목적적으로 규정되어 있다. 인간의 도덕적 행동은 ‘내적인 의도’에서 나온다. 의도에 대한 의식이 있기에 책임적으로 행동하게 된다. 생물학적 결정론도 책임의 도덕을 제거하지는 못한다. 인간의 도덕논증의 근거는 자유와 이성이다. 거스탑슨은, 윤리란 ‘인간을 위해 선한 것에 대한 가치’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이 세상에서 행하신 것에 대한 결정’ 가운데 대답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는 인간의 행동을 ‘신 중심적’으로 전망하면서도 규범적 윤리이론은 ‘인간학적’으로 논증한다. 이는 합리성과 자율성을 인간적 행위의 조건으로 인정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문화적, 종교적, 신학적, 그리고 윤리적으로 인간, 말하자면 인간 종은 모든 것의 척도였다. 인간이라는 종만이 진실을 측정하고, 평가하고, 동기화하고, 이를 가지고 실험하고 검토하는 능력을 함양하였다. 그러나 이 말은 ‘인간은 만물의 척도’라는 프로타고라스의 금언과는 다른 뜻이다. 왜냐하면 신학적 인간학은, 인류의 역사가 오직 인간의 이기만을 추구하는 인간중심주의를 추구할 때가 많았고 이로 인해 자연 파괴와 인간 이외의 타자의 삶을 경시하는 도덕적 부작용을 낳았음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 기독교인들은 “무엇이 인간을 위해 선하고 가치가 있는 것이냐?”라고 질문하는 대신 “하나님이 지으신 모든 피조물을 위해 선한 것이 무엇인가?”를 질문하며 살아간다.

김형민 | 호남신학대학교 기독교윤리학 교수이다. 『하나님의 권리와 인간의 권리』 등의 저서와 『선의 매혹적인 힘』 등의 역서가 있다.

 
 
 

2019년 3월호(통권 72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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