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으로 | 대한기독교서회 | 회원가입 | 로그인
사이트 내 전체검색

Home > 기독교사상 > 책마당 > 책마당
책마당 (2019년 1월호)

 

  동과 서, 남과 북, 그 사이와 사이 넘어
  요세프 흐로마드카: 체코의 에큐메니칼 신학자 요세프 스몰리크 외, 이종실 옮김 동연, 2018

본문

 

2013년 10월 부산에서 열린 세계교회협의회(WCC) 제10차 총회는 1961년 인도 뉴델리의 제3차 총회 이후 아시아에서 반세기 만에 열린 매우 중요한 기회였다. 우리나라가 개최지로 선정된 여러 이유 가운데 한 가지는 교단 간의 연합, 무엇보다도 전 세계적으로 크게 활성화되고 있는 오순절 교단이 함께할 것이라는 기대감이 긍정적으로 작용했을 뿐 아니라, 분단 국가라는 상황에서 화해와 평화를 향한 화두가 전 세계적으로 중요하게 부각되었기 때문이다.
당시 우리나라와 개최지 선정을 놓고 경쟁한 시리아교회는 정교회의 오랜 전통을 강조하며 개최지로서의 적합성을 부각시켰다. 한국교회는 총회 개최의 기회를 갖게 된 것을 감사하면서 전 세계적 상황과 신학적 담론을 아우르는 동시에 개최지로 선정되지 못한 시리아의 몫까지도 잘 드러내야 했다. 그러나 전 세계적으로 유례없는 내부적 교회 갈등과 분열의 표면화로 총회는 시작부터 끝까지 한국교회의 분열상을 드러내는 얼룩진 형태로 남았고, 모처럼 갖게 된 국제적 기회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는 아쉬움이 크게 남았다.
한국교회의 교파 간 분열 양상은 오래전부터 고질병으로 부각되어 왔다. 그중에서 장로교의 분열은 심각한 정도를 넘어선다. 우리나라에는 ‘대한예수교장로회’라는 교단의 이름으로 140여 개의 서로 다른 교파가 존재한다. 가장 큰 분열의 양상은 1950년대 통합과 합동의 분열이며, 그 배경에는 WCC 가입 문제가 있었다. 교회 안의 이분법적 이념 분쟁의 근거가 교회와 세계의 일치와 평화를 위해 설립된 WCC 가입 문제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은 참으로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WCC 가입 문제로 대한예수교장로회가 통합과 합동 측으로 나뉠 때, WCC의 용공주의를 비판하면서 자주 거론된 이름이 체코슬로바키아의 흐로마드카(Josef L. Hromadka, 1889-1969)이다. 그의 이름과 신학은 우리에게 제대로 소개되기도 전에 이미 반공주의의 틀 안에 갇혀 선입견과 편견으로 거부되었다. 용공이냐, 반공이냐라는 이분법적 흑백논리로 수많은 갈등과 대립의 역사로 얼룩진 우리의 근현대사를 다시금 돌아보아야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흐로마드카의 신학적 사상,
6・25전쟁 발발 이후 토론토 선언문과 연관된 당시 WCC의 반공주의(흔히 편견을 갖고 잘못 알려진 용공주의가 아니라), 그에 대한 흐로마드카의 비판 등에 대한 검토도 본격적이며 다면적으로 시작되어야 할 것이다.
우리는 이제 동과 서, 남과 북의 이데올로기적 갈등을 넘어서서 새로운 화해와 평화의 시대를 준비해야 하며, 이러한 과정에서 과거의 유산에 대해서도 제대로 공부할 필요가 있다. 우리가 선입견을 갖고 보아온 여러 형태의 편견이–마치 가짜뉴스가 확대, 재생산되듯–오늘날까지 너무 많이 이어져 왔기 때문이다. 그러한 점에서 흐로마드카의 생애와 사상에 대해 살펴보는 것은 의의가 있다. 통일을 대비하면서 이후 남북 간, 남남 간의 이념적 간극을 넘어서서 신학과 교회의 역할, 교회의 일치와 협력을 위해서 우리가 준비해야 할 것이 많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와 같은 약소국가이며 주변 강대국에 둘러싸여 수많은 역사적 고난을 당했고 사회주의 국가로 자리매김한 체코의 가장 탁월한 신학자를 조명해보는 것은 우리에게 아직도 낯선 작업이다. 그에 대한 자료가 충분하지 않아서 그 접근성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이러한 때에 체코 현지에서 오랫동안 성실히 활동하면서 체코의 신학적 유산을 소개한 이종실 선교사가 고맙기 그지없다. 그분의 노력 덕분에 흐로마드카의 자서전이 체코어에서 한국어로 번역되었기 때문이다.
흐로마드카는 칼 바르트와 마찬가지로 19세기의 신학적 배경에서 성장했지만 이를 극복하고 넘어선 대표적인 신학자이다. 무엇보다도 그는 ‘문화기독교주의’(Kulturprotestantismus)의 배경에서 신을 문화-시민적 이상으로 가두어버리려는 경향에서 탈피하고자 한 신학자이다. 그럼으로써 이 두 신학자는 신학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에 뿌리를 두는 공통의 출발 기반을 지니는 것이다.
흐로마드카의 신학적 관심도 그의 초기 시절 다른 자유주의 신학자들과 마찬가지로 인문주의적 종교에 있었다. 그러나 오스트리아와 헝가리, 독일 간의 제1차 세계대전의 발발과 1917년 러시아혁명으로 인하여 그는 이러한 자유주의 신학이 어떠한 가치가 있는지에 관해 근본적인 문제제기를 했고, 인간의 죄성에 새롭게 주목하면서 자유주의 신학과 결별했다. 이후 그는 성서가 증언하는 하나님의 말씀을 더욱 진지하게 이해하도록 노력했다. 하나님의 말씀을 순전히, 그러면서도 효과적으로 선포하려는 것이 그의 기본 의도였다. 즉 하나님의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나타난 하나님 사랑의 참된 실재성을 드러내는 구체적 증거라는 것을 역설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는 이러한 성서적 바탕 위에서 교회의 현실을 외면하지 않는 신학, 세계의 상황을 직시하는 신학을 추구하였다.
최근 이 책의 서평을 부탁받고 나서 필자는 무척 기뻤고 감회가 새로웠다. 1990년대 중반 흐로마드카의 수제자인 얀 밀리치 로흐만 교수에게 박사학위를 마치고 돌아왔을 때, 수년간 공부했던 흐로마드카의 신학과 사상을 고국에 소개하고 싶어 「기독교사상」에 원고를 보냈으나 당시 거절된 경험이 있다. 사회주의 체제의 동구권이 무너지고 난 뒤 흐로마드카와 같은 신학자 혹은 신학적 주제를 다루기가 조심스러웠기 때문일 것이다. 전 세계적으로 사회주의 체제가 이미 몰락한 상황에서 자본주의의 승리만을 외치기에는 신자유주의의 폐해가 너무나도 분명하게 드러나는 지금, 우리는 균형 잡힌 시각을 회복하며 자본주의가 지닌 약점에 대한 자체적 비판과 아울러 사회주의의 본래적 이상이 무엇이었는지 복음의 빛에 비추어 고찰하는 것도 필요하다.
흐로마드카의 글에는 ‘행복한 소유자들’(beati possidentes)이라는 개념이 자주 등장하는데, 복음마저도 사유화하려는 자기 정당화의 위험성을 경계하는 내용이다. 물질적 가치로 모든 것을 환산하고 맘몬이 하나님의 자리를 차지한 이 시대에 길들여진 신앙인으로 살면서 어느새 우리에게도 이러한 현상이 가득하지 않은지 되짚어보게 한다. 사회주의 국가와 체제를 하나님 없는 악마적 집단이라고 단순히 비난하기보다, 오히려 우리 자신이 얼마나 복음을 옳게 이해하고 그 뜻에 비추어 살아가고 있는가를 살펴보아야 한다는 것이 그의 핵심 메시지 중 하나이다.
이 책의 독자들은 흐로마드카의 제자 요세프 스몰리크가 쓴 이 전기에서 그의 신학적, 인간적 고뇌와 환희를 느낄 수 있을 뿐 아니라, 당시의 시대적 배경 속에서 유럽 교회의 상황과 신학을 잘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게다가 역자는 아직까지도 우리에게 거리감이 있는 이 신학자를 더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책 후반부에 흐로마드카에 관한 여러 형태의 글을 추려서 편집하여 놓았다. 흐로마드카의 평생 동료인 칼 바르트의 글이나 흐로마드카의 제자인 밀란 오포첸스키의 글을 통해 그의 신학적 사상과 흐름을 이해하는 데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또한 흐로마드카의 딸이 남긴 짤막한 고백은 그의 인간적 면모를 알 수 있게 해준다. 한마디로 이 책은 그 구성이 매우 짜임새 있고 다양하며 번역도 수려하여 진정으로 일독을 권할 만하다.
무엇보다도 바르트는 동과 서의 장벽을 넘어서서 평생 흐로마드카에 대한 철저한 연대성을 드러낸 신학자였다. 그에 대한 인간적, 신학적 유대감을 다음과 같이 표현한 바르트의 말을 소개하며 이 서평을 마무리하고자 한다. 이제 독자들도 이 책을 통하여 흐로마드카의 신학적 여정을 찾아 떠나는 여행을 시작하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내가 그를 읽을 때에 나는 이렇게 생각할 것이다. 비행기 안에서 왼쪽과 오른쪽을 넘어서 지평선까지 이르도록, 태양 아래 멋지게 빛나는 운해를 미끄러져 간다고 말이다. 이것이 산일까? 연속된 산맥일까? 수많은 골짜기로 이루어진 계곡일까? 평지일까? 아마 땅이 아니라, 정말 바다 아닐까? 그 방향은 분명하다. 그 방향은 역시 나의 방향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렇게 나도 함께 날아간다.(『요세프 흐로마드카』, 285쪽)

정미현 | 이화여자대학교에서 공부한 후 바젤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저서로 『체코 신학의 지형도』, 역서로 『울리히 츠빙글리』 등이 있다. 현재 연세대학교 연합신학대학원의 교수 및 연세대학교 교목으로 재직 중이다.

 
 
 

2019년 1월호(통권 721호)

이번호 목차 / 지난호 보기

기독교서회
기독교서회
기독교서회
기독교서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