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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마당 (2019년 1월호)

 

  북한 사회의 변화와 ‘갈라파고스식 진화’ 이해
  평양 자본주의 백과전서 주성하 북돋움, 2018

본문

 

2018년 4월 27일은 한반도의 운명을 바꾼 날이자 세계 평화의 분수령으로 기록되리라 주목받는 판문점 선언이 있던 날이다. 이날 이후 전 세계는 북한이 비핵화를 실행하고 개혁개방을 통해 국제사회로 진출할 것인지 주목하고 있다. 북한의 비핵화 여부에 관하여 전문가들의 일반적인 견해는 부정적이다. 그들은 정치·외교 분야에서 북한을 오랫동안 연구하거나 현장에서 북한을 상대해온 사람들이다. 반면 소수의 경제 전문가들만이 북한이 경제를 살리기 위해 핵을 포기하고 개혁개방으로 나아갈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렇지만 이들의 주장은 구체적인 증거자료가 부족하여 설득력이 떨어진다. 이런 가운데 북한의 변화상을 현장감 있게 담은 책이 나왔다. 바로 주성하의 『평양 자본주의 백과전서』이다.
주성하는 김일성종합대학 영문학과를 졸업한 탈북민이다. 1998년에 탈북해서 2002년 한국에 입국했고, 이듬해부터 「동아일보」 기자로 활동하면서 북한 문제에 관하여 주목할 만한 저술활동을 벌이고 있다. 『서울에서 쓰는 평양 이야기』, 『김정은의 북한, 어디로 가나』 등의 저서를 펴냈고, ‘서울에서 쓰는 평양 이야기’라는 블로그도 운영하고 있다. 블로그에는 그가 신문에 기고한 이야기를 담은 ‘서울에서 쓰는 평양 이야기’와 대북 방송 내용인 ‘북녘에 보내는 편지’ 두 종류의 글이 실려 있다. 전자는 언론인 주성하가 남한의 독자에게 들려주는 북한 주민들의 삶에 관한 이야기이고, 후자는 탈북자 주성하가 북녘의 동포들에게 들려주는 통일의 메시지이다.
그가 쓴 글을 보면 여느 탈북자들과는 다른 점을 발견하게 된다. 그것은 통일 문제에 관해 치열하게 고민하면서도 이데올로기에 얽매이지 않는 균형 감각이 돋보인다는 점이다. 남북관계나 북미관계 등의 정치·외교에 관한 글도 있지만, 주된 소재는 북한 주민들이 살아가는 이야기이며 그 속에서 변화하는 북한 사회의 모습을 추적한다. 따라서 판문점 선언을 바라보는 시각 또한 남다르다. 그가 판문점 선언을 바라보며 페이스북에 올린 글 “새 역사의 출발점에 선 단상” 일부이다.

드디어 내가 오래전부터 소망했던 그런 그림이 한반도에 그려지기 시작한다. 물론 최대 목표인 북미회담과 북미수교가 아직 남았지만. 남북교류협력의 시대에 들어가 북한에 개성공단 같은 것이 10개 이상 세워질 때쯤 되면 북한이 크게 바뀌고, 그렇게 바뀌면 다시 뒤로 돌아가기 어렵다는 것이 이전부터 내가 해온 주장이었다. 남북이 후회하지 않는 통일을 만들려면 결국 그 길밖에 없다.

이 책은 ‘김정은 시대, 북한은 어떻게 변화하고 있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평양 사람의 생활현장에서 제시한다. 첫 번째 이야기는 “강남 졸부 뺨치는 돈주의 전성시대”이며 “0.01%급 금수저 인터뷰”로 시작한다. 평양 최고 부자들은 최고급 사우나, 최신식 안마시술소, 뉴욕의 맨해튼에나 있을 법한 바에서 최고급 양주를 마시고 애인과 하룻밤을 즐기며 수천 달러의 돈을 쓴다. 국제사회의 대북제재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명품과 사치품이 넘쳐난다. 예쁘고 젊은 애인을 두려면 기본적으로 10만 달러 정도의 아파트는 사줘야 한다. 도발적인 이야기의 주인공은 ‘돈주’(돈의 주인)라고 불리는 북한판 자본가이다. 이들은 장마당에서 벌어들인 돈을 다시 아파트 건설에 투자하여 떼돈을 번 사람들이다.
두 번째는 자연스럽게 “시장경제의 펌프, 장마당” 이야기로 넘어간다. 그 속에 “북한 권력도 물러서게 한 시장 바람”, “장마당엔 없는 것이 없다”, “완장 찬 시장 관리원과 암달러상”, “한국 제품도 인기리에 유통” 등의 비화가 펼쳐진다. 장마당은 한국산 신라면부터 최고급 자동차 벤츠까지 파는 대형마트로 변신 중이다. 2018년 9월을 기준으로 공인된 장마당만 480여 개에 달한다. 대규모 장마당 주변에는 수많은 소규모 위성 장마당이 존재하며 골목시장, 야시장 등 다양한 형태로 분화하는 중이다. 인민은 생활 수요의 80-90%를 이곳에서 해결한다. 북한 주민 3분의 1 이상이 3분의 2 이상의 수입을 장마당에서 올린다. 북한에서 휴대전화 가입자 수가 폭발적으로 늘어난 것도 장마당이 활기를 띠면서부터이다. 상인들은 상품거래 정보를 스마트폰을 통해 주고받는다.
장마당에서 시장경제를 경험하고 돈맛을 본 상인들이 국영 상점에 투자하면서 장마당 경제의 변종이라 할 수 있는 ‘민수 기업’이 생겨났다. 민수 기업은 국영 상점을 개인 명의로 운영할 수 없기 때문에 국가기관에 적을 올려놓고 일정한 비용을 지불하지만, 돈주는 경영의 책임자이고 이윤도 그의 몫이다. 민수 기업의 돈주는 다시 국영 상점을 기반으로 외화벌이 기관과 연결하여 장마당에 상품을 공급하는 순환구조를 만들었다. 이렇게 장마당에서 자본을 축적한 돈주는 김정일·김정은 기금에 돈을 바치고 외화벌이꾼으로서 ‘노력 영웅’의 반열에 올랐다. 북한에서 장마당 세대는 1980년대 중반부터 1990년대 후반 사이에 태어난 2030세대이다. 사회주의 경제의 몰락과 자연재해로 인해 가장 사망률이 높고 발육이 부진했던 탓으로 국가가 자신의 문제를 해결해주리라 믿지 않는 최초의 세대이다. 따라서 자신의 운명을 국가 체제에 맡기지 않고 독자 생존하는 지혜를 체득했다. 지금 장마당의 성격을 잘 말해주는 대목이다.
이 책은 장마당을 통해 형성된 자본주의가 북한을 어떻게 변화시키는지 그 사례들을 소개한다. 1장에는 돈주와 장마당 이야기에 이어 “아파트 재건축 바람과 투기 열풍”, “외화벌이 실태’, “여명거리와 미래과학자거리”, “사람의 운명도 바꾸는 뇌물” 등의 겉모습을 소개하고, 2장에는 “술과 접대문화”, “젊은이들의 데이트 코스와 한류”, “강남 뺨치는 학부모 치맛바람”, “무상의료 체계와 자본주의 의사” 등으로 일상생활의 변화를 다루고 있다. 이런 이야기는 그동안 평양을 방문한 외국인들에 의해 단편적으로 듣던 것인데, 탈북민인 저자는 평양에 거주하는 지인들의 이야기를 빌려 훨씬 심층적이고 적나라하게 묘사하고 있다.
그리고 3장 “사람과 욕망의 도시, 평양”에서는 “연애와 결혼 이야기”, “북한의 성과 섹스”, “일상을 파고든 매춘과 마약” 등 자본주의 유입에 따른 부정적인 면을 소개하고 있으며, 이어서 4장 “통일시대 창업 블루오션, 이제는 평양이다”에서는 “창업 블루오션, 평양!”, “평양을 알면 돈이 보인다–창업 아이템”, “북한에서 사업할 때 알아두어야 할 비즈니스 문화” 등으로 독자들에게 통일시대를 향한 꿈과 비전을 제시한다.
필자는 이 책을 접하자마자 며칠 밤을 지새우며 열독했다. 10년 전까지 평양을 주기적으로 방문하다가 남북관계 경색과 개인 사정으로 방북하지 못하면서 그동안 어떻게 변했는지 궁금하던 것들이 한순간에 해소되었기 때문이다. 너무나 충격적인 내용 때문에 다시 며칠을 사색하면서 필자가 직접 보고 경험한 것들과 비교 분석하는 시간을 가졌다. 그 결과 나름 느끼고 판단한 내용을 독자들과 나누고자 한다.
우선 독자들은 이 책의 내용이 평양에 사는 극소수의 특수층에 관한 이야기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저자의 표현을 빌리면 0.01%의 금수저와 1% 부자가 취재원이다. 230만 평양 시민의 0.01%라면 230명에 불과하다. 다른 이야기 또한 북한에서 특권층만이 사는 평양 모습이다. 그러나 이 이야기가 말하는 상황과는 달리 많은 북한 주민들은 지금까지도 식량 부족으로 고통당하고 있다. 지난 10월 10일 유엔 산하 세계식량계획(WFP)은 “북한 인구의 약 40%에 해당하는 1,000만 명이 넘는 주민이 영양실조 상태에 놓여 있으며 인도적 원조가 필요한 상황이다.”라고 발표했다. 이것이 북한의 현실이다.
무엇보다 이 책에서 가장 주목할 부분은 역시 장마당에 관한 상세한 설명이다. 장마당은 ‘북한 자본주의의 맹아(萌芽)’이다. 그 씨앗이 싹트기 시작한 지 벌써 한 세대가 지나간다. 지금은 그 싹이 어떻게 자라는지 관찰하고 올바른 방향을 제시해야 할 때이다. 바로 그 점에서 장마당의 발생 연원에서부터 시기별로 정리하고 실상을 구체적으로 소개한 것은 외부인들이 북한 경제의 실체를 이해할 수 있는 귀중한 자료이다.
이 책에 나온 이야기는 탈북민인 저자가 평양에 거주하는 지인들로부터 전해 들은 이야기를 서술한 소위 ‘카더라 통신’이다. 따라서 신뢰도에 약간의 오차가 있을 수 있으나, 이러한 점을 감안하더라도 평양 시민의 일상에 관한 구체적이고 유익한 정보를 제공해주고 북한 사회의 변화 흐름을 알려준다는 점에서 매우 유용하다. 특히 내용 가운데 이집트 기업 오라스콤이 북한의 ‘이중 환율’ 문제를 제대로 대처하지 못해 큰 손실을 당한 사례는 앞으로 대북 사업을 전개할 우리 기업에 타산지석(他山之石)이 될 것이다.
서평을 마무리하면서 그의 통일론을 생각해본다. 그가 이 책에서 말하려는 것은 시장경제의 활성화와 개혁개방을 통한 북한의 경제 발전이 후회 없는 통일을 가져올 것이라는 메시지이다. 저자는 머리말에서 “북한 체제는, 특히 평양 사회는 현재 시장경제로 급격히 진화하는 중”이라고 전제한 후 본문에서 구체적인 현상들을 소개한다. 아이러니하게도 북한의 핵과 미사일로 인한 국제사회의 유례없는 경제제재가 시장경제를 더욱 활성화하고 민간자본의 확충을 촉진시킨다. 이렇게 외부와 단절된 채 이루어지는 북한의 시장경제화를 ‘갈라파고스식 진화’라고 정의한다. 책을 읽다 보면 시장경제와 자유화의 바람이 평양을 뒤덮고 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그러나 현상과 인식의 차이를 감안하더라도 외부에서 느끼는 북한은 별로 달라진 것이 없다.
주성하의 『평양 자본주의 백과전서』를 읽으면 외부에 드러나지 않은 평양의 속살을 들여다보는 것 같은 신비로움을 느낀다. 간혹 어떤 이야기는 오류일 수도 있고 지나치게 과장된 것일 수도 있지만, 평양에서 새로운 변화의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는 사실은 그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 그리고 이러한 변화의 물결이, 물방울이 바위를 뚫는 것처럼 북한 사회를 변화시킬 것으로 기대해본다. 탈북자 출신의 언론인 주성하가 전하려는 통일의 메시지를 주목해야 할 이유이다. 남북 관계의 발전과 한반도 평화를 바라는 독자들에게 일독을 권한다.

김형석 | 역사학을 전공하였다. 저서로 『광주, 그날의 진실』, 『한국교회여 다시 일어나라』 등이
있다. 현재 통일과역사연구소 소장으로 일하고 있다.

 
 
 

2019년 1월호(통권 72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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