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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마당 (2018년 12월호)

 

  동성애 논의와 성서
  윌리엄 로더 외 3인의 『동성애에 대한 두 가지 견해』Ivp 2018

본문

 

1
이 책은 교회에서 제기되는 동성애 문제에 대해 서로 다른 입장에 선 네 학자의 견해를 대결시키고 있다. 네 명의 학자가 각 장에서 한 사람씩 자신의 견해를 충분히 밝히고, 나머지 3명의 학자들이 짧게 응답 내지는 반론을 제기한 뒤, 이에 대해 원래 글을 쓴 학자가 재반론을 펼치는 방식으로 구성되었다. 그래서 각 장마다 5편의 글이 한 묶음으로 되어 있고, 책의 맨 앞과 뒤에는 편집자인 스프링클(P. M. Sprinkle)의 글이 실렸다. 그래서 꽤 묵직한 한 권의 책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마치 다이아몬드를 손에 쥐고 여러 각도로 비추어보듯이 한 저자의 입장을 다양한 각도에서 반복하여 입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 책을 읽으면서 이러한 편집 방식의 장점을 실감했다. 우리 교회와 사회에서도 동성애 문제처럼 뜨거운 논쟁의 대상이 되는 주제들을 이러한 방식으로 다루어 책을 낸다면, 시간과 노력은 훨씬 배가되겠지만, 그 과정에서 논의의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릴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책의 저자들은 주제에 대해 상이한 견해를 가졌고 다양한 배경을 지니고 있지만, 중요한 공통점이 있다. 하나는 성서와 기독교 전통의 중요성을 매우 존중하기 때문에 시대의 변화를 앞세워 쉽게 성서의 관점을 후퇴시키지 않는다는 것이고, 이보다 더 중요한 공통점은 동성애 자체를 인정한다는 것이다. 이때 인정한다는 것은 동성애라는 성적 지향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그것을 고칠 수 있는 질병 같은 것으로 보지 않는다는 뜻이다. 이것은 네 명의 저자들 중 상대적으로 가장 보수적이라고 할 수 있는 스티븐 홈스마저도 공유하고 있는 부분이다. 따라서 동성애를 인정할 것인가의 여부가 논의의 주제가 되지는 않는다. 대신 상호 간에 독점적이고 지속적인 사랑의 관계를 유지하는 동성애자들의 성관계, 내지는 법적인 결혼을 인정할 것인가의 여부를 성서적, 신학적으로 탐구하는 것이 실질적인 논점이 된다.
동성애 문제는 오늘날 한국 개신교에서 가장 뜨거운 논쟁적 주제 중 하나이고, 자칫하면 어느 편에서든 언어적・물리적 폭력이 난무하기 십상이다. 이러한 우리 현실에서 이 책을 읽으며 가장 부러웠던 것은 저자들 모두 상대방을 매우 존중하는 태도를 보일 뿐만 아니라, 동성애 논의 자체가 게이와 레즈비언 형제자매들의 삶과 정체성을 건드린다는 사실을 깊이 자각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편집자 스프링클이 서문에서 밝혔듯이 동성애는 그저 논쟁할 쟁점이 아니라 “인간 존재의 핵심을 건드린다.”(11쪽) 동성애는 실제 사람의 중심과 인간성을 직접 다루는 문제이고, 사람은 단순한 쟁점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문제를 대하는 그리스도인의 자세는 언제나 폭력이 아니라 “사랑의 원칙”(264쪽)을 따르는 것이어야 한다. 실제로 이 책에서는 동성애를 죄라고 보는 전통적 입장에 서 있는 학자라 할지라도 그로 인해 상처 입을 수 있는 사람들을 존중하고, 그들에 대한 사랑을 보여준다. 깊이 새겨야 할 대목이다.

2
책 제목이 말하는 “동성애에 대한 두 가지 견해”란 동성애 자체에 대한 긍정과 부정 입장이 아니다. 그보다는 “서로 합의한 배타적 동성애 관계는 하나님의 복을 받을 수 있고 교회 생활에 온전히 참여할 수 있으며, 따라서 게이와 레즈비언 결혼 관계도 하나님 앞에서 신성한 관계로 인정받을 수 있다.”(21쪽)라는 관점을 이 책에서는 ‘긍정’의 입장이라고 한다. 4명의 필자 중 윌리엄 로더(William Loader)와 메건 드프란자(Megan K. DeFranza)가 이러한 ‘긍정’의 입장을 취하고 있지만, 세부적으로 들어가면 문제가 되는 성서 본문들에 대한 두 사람의 주석적 견해는 전혀 다르다.
다른 한편으로 모든 종류의 동성 간 성관계를 성서와 기독교 신학이 금지한다고 보는 입장을, 이 책에서는 ‘부정’이 아니라 ‘전통적’ 입장이라고 칭한다. 그 자신이 동성애자임을 커밍아웃 한 웨슬리 힐(Wesley Hill)과 스티븐 홈스(Stephen R. Holmes)가 이 ‘전통적 입장’에 서 있다. 이들은 성서와 기독교 신학이 동성애적 성관계와 결혼을 금지한다고 보면서도 교회가 동성애자들을 받아들일 수 있는 신학적・목회적 길을 열어놓고 있다. 따라서 이 책은 동성애에 대한 ‘긍정’과 ‘전통적’ 입장 두 가지를 이야기하고 있지만, 결과적으로는 ‘긍정’이든 ‘전통적’ 입장이든 교회가 어떤 방식으로 동성애자들과 공존할 수 있을지 성서적・신학적으로 그 길을 모색하고 있다는 점에서 기본적으로 동성애자들에 대한 포용주의적 입장에 서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이 책의 저자들은 대체로 두 가지 층위에서 논의를 전개하고 있다. 하나는 현실적이고 제도적인 층위에서 동성애자의 결혼을 인정할 것인가 하는 문제이고, 다른 하나는 성서적・신학적 층위에서 동성애를 죄악시하는 성서 본문과 신학적 입장을 어떻게 평가하고 받아들이냐는 문제이다. 당연히 이 두 층위는 서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지만, 첫 번째 층위는 수면 아래 잠겨 있고, 두 번째 층위의 결론으로만 도출된다. 따라서 네 학자의 대결은 성서적・신학적 층위에서 본격적으로 이루어지는데, 성서 본문 중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로마서 1장 26-27절이고, 성서 외의 신학전통으로는 아우구스티누스의 “결혼의 이익에 대하여”에 나타나는 기독교적 결혼관, 즉 결혼의 목적을 출산으로 보는 결혼관이 논의된다.
동성애와 관련된 성서 본문들을 다룰 때 네 명의 저자 사이에서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성서의 저자들이 오늘날과 같은 성적 지향으로서의 동성애에 대해 알고 있었느냐는 것이다. 이에 대해 어떤 입장을 취하는가에 따라 성서의 반동성애 본문들에 대한 해석이 달라진다. 만일 성서 저자들이 성적 지향으로서의 동성애에 대해 알지 못했다면, 설사 성서에 반동성애적 본문이 소수 나온다 해도 그것은 이성애자의 동성애 행위나 동의하지 않은 동성 간 성행위를 금하는 것일 뿐, 성적 지향으로서의 동성애를 죄악시하는 것은 아니라는 결론이 나온다. 반면 성서 저자들이 성적 지향으로서의 동성애까지도 알고 있었고, 이를 죄악시한다고 보는 경우 반동성애 본문들은 오늘의 동성애자들을 향해서도 날을 세우게 된다.
윌리엄 로더는 플라톤의 『향연』에서 아리스토파네스가 말하는 바와 같은 성적 지향으로서의 동성애를 유대인들도 알고 있었다고 본다. 그리고 창세기 1장 27절의 남녀창조에 대한 이야기가 신구약성서 및 후기 유대교의 반동성애 본문들의 기본 전제라고 본다. 따라서 유대인들은 이성애를 하나님의 뜻으로 보았으며 여기에 위반되는 모든 것, 즉 이성애자들의 동성애 행위만이 아니라 성적 지향으로서의 동성애까지 모두 죄로 보았다고 결론을 내린다. 말하자면 성서와 유대교는 기본적으로 동성애에 대한 절대적 금지의 입장을 취하고 있다는 것이 로더의 입장이다. 이렇게 되면 ‘긍정’의 입장에 선 로더가 성서에 근거해서 동성애자의 결혼을 인정하고 그들을 이성애자와 동등하게 있는 그대로 교회 안에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해석학적 비약이 필요하다.
로더는 그러한 해석학적 근거를 성서 자체와 기독교운동의 역사에서 찾는다. 가령 안식일을 비롯한 율법 문제와 관련해서 당시 유대교와 논쟁을 벌일 때 예수는 구약성서와 그 시대의 인간적 경험 둘 다를 고려했으며, 사랑에 초점을 맞추어 성서와 율법 안에서 우선 순위를 분별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막 2:27, 7:1-23) 또한 기독교 역사 속에서도 노예제도, 여성의 역할, 이혼 등 사회의 변화에 따라 성서의 특정 명령들을 제쳐두거나 재해석해온 전통이 있다.(73-75쪽) 따라서 로더에 의하면 인간이 단지 남자와 여자가 아니라 이성애자도 될 수 있고 동성애자도 될 수 있다고 인정하는 것은 성서를 존중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구체적인 사람을 중시하고 사랑을 우선시한 성서 자체와 기독교 전통을 따르는 것이 된다.
이에 반해서 드프란자는 19세기 이전까지는 오늘날과 같은 성적 지향으로서의 동성애에 대한 인식이 없었고, 성서에서 말하는 동성애 행위는 이성애자의 동성애 행위이거나 노예에 대한 성적 착취 또는 아동 성학대를 가리킨다고 본다. 가령 로마서 1장 26-27절에서 바울은 사회적 하위계층에 대한 상위계층의 성적 착취를 엄하게 경고하는 것이지 오늘날과 같은 성적 지향으로서의 동성애를 죄악시하는 것은 아니라고 본다. 드프란자의 입장은 오늘날 성서의 반동성애적 본문들을 완화하고자 하는 많은 학자들이 취하는 입장이다. 이것은 성서의 반동성애적 본문들을 최대한 세탁해서 본문 자체를 살리고자 하는 시도이며, 교회 안에서 성서가 차지하는 권위에 비추어볼 때 납득이 가는 접근 방식이라고 할 수 있다. 다만 그것이 주석적으로 시대적 상황과 본문 증거에 부합하는지는 각 본문마다 따져볼 문제이다. 이와 같이 로더와 드프란자는 둘 다 ‘긍정’의 입장에 있지만, 성서 본문 해석에서는 전혀 다른 입장을 보인다. 로더는 성서의 주장이 우리 시대에 맞지 않는다 하더라도 있는 그대로 그 의미를 밝히는 것이 성서의 권위를 존중하는 태도라고 한다.
한편 웨슬리 힐은 성서는 동성애적 성행위는 금하지만, 동성에게 이끌리는 것 자체는 죄악시하지 않는다고 본다. 동성애자인 힐은 동성애적 지향이 성적인 층위만이 아니라 동성 간의 우정과 존경 등 보다 넓은 층위를 지닌다고 주장하며 독신, 즉 성행위를 하지 않는 동성애적 관계는 성서적・신학적 근거에서 허용된다고 본다. 이러한 힐의 입장에 서면 동성애자들의 결혼을 지지할 수 없다. 이 경우는 동성애자들의 자유로운 성적 자기표현을 신학적으로 금하고, 독신이라는 선택지만을 동성애자들에게 남겨 놓는다는 문제가 있다.
스티븐 홈스는 성서 주석보다는 아우구스티누스에 근거해서 결혼의 목적은 출산이므로 동성애적 성관계나 동성애자들의 결혼은 성립할 수 없다고 한다. 홈스에게서 눈여겨볼 대목은 그가 동성애자들만이 아니라 이성애자들에게까지도 이러한 원칙을 적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는 이성애자들의 경우도 출산의 목적을 제외한 성행위는 기독교적 성 윤리에 맞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결혼은 쾌락을 추구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수련을 위한 것이고, 나아가서 세계 안에서 생명을 지속시키려는 하나님의 거룩한 의도에 복종하기 위한 것이다. 아우구스티누스의 결혼관을 현대의 성 윤리에 직접 적용하려는 그의 입장이 얼마나 호응을 얻을 수 있을지는 미지수이지만, 다음 단계에서 이 보수주의자는 놀라운 목회적 관용의 태도를 보여준다. 아시아나 아프리카 선교에서 일부다처제나 축첩 등을 문제삼지 않고 받아들였듯이 교회는 동성애자들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다. 신학적・윤리적 원칙의 문제에서는 동성애가 죄임을 분명히 해야 하지만, 목회적으로는 그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의 보수주의자들도 이 정도 공정성과 목회적 관용을 보여준다면 더 이상 바랄 것이 없겠다.
위에서 제시한 네 학자들의 견해는 엄격한 성서 주석과 오늘의 사회적 변화에 입각한 비판에 대해 열려 있다. 한국 개신교는 동성애 문제와 관련한 진지한 논의를 아직 시작조차 하지 못했지만, 이들의 토론에서 겸손과 경청의 태도를 배울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소수지만 우리 가운데 일부는 동성을 향한 성적 지향을 가지고 태어난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러고 나면 이성애자들과 마찬가지로 그들도 자신의 성적 지향을 도덕적으로 책임 있게 표현할 수 있도록 해주어야 하지 않겠는가? 그 길을 막는 것이야말로 로더의 말대로 성서와 율법을 앞세워 “예수와 바울을 배격했던 사람들 편에 서는 것”(107쪽)이 아니겠는가?


박경미 | 이화여자대학교에서 공부하였다. 현재 이화여대 기독교학과에서 신약학을 가르치고 있으며, 신학대학원장, 이화여성신학연구소 소장을 맡고 있다. 저서로 『예수 없이 예수와 함께: 요한공동체의 문학과 신학』 외 다수가 있다.

 
 
 

2019년 2월호(통권 72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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