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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마당 (2018년 11월호)

 

  일본을 보는 시각의 온도 차이
  심훈의 『역지사지 일본』한울 2018 / 조찬선・최영의 『일본의 죄악사』풀잎향기 2018

본문

 

한국과 일본 사이에는 아직 식민지배 역사의 상흔이 깊게 남겨져 있으며, 그것은 감정적인 벽이 되어 양국 사이에 놓여 있다. 최근 몇 년간 ‘소녀상’ 등을 둘러싸고 그 벽은 한층 더 견고해지고 있는 듯하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서로에 대한 양국의 관심은 모두 높다. 여기서 평하는 두 권의 책도 일본에 대한 관심에서 나온 책이지만 그 관점은 전혀 다르다.
심훈 교수의 『역지사지 일본』은 일본에 거주한 경험이 있는 저자가 2009년 10월에서 2011년 4월까지 「세계일보」에 연재한 칼럼을 모아서 정리한 것이다. 저자의 다른 저서인 『일본을 보면 한국이 보인다』의 속편에 해당한다. 저자는 한국에는 언어적인 유사성 등으로 인해 한일 양국이 모든 점에서 닮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고 지적하면서, 이에 대해 『역지사지 일본』은 “동질성을 띨 이유가 별로 없는 이웃 나라의 모습을 지리적, 역사적, 문화적인 시각에서 풀어보고자 한다”(6쪽)라고 서술 의도를 밝혔다. 이러한 서술을 위해 저자는 자기중심적인 시점으로 상대를 보는 것이 아니라, 본서의 제목에도 나타나듯 ‘역지사지’(易地思之) 곧 상대방의 처지에서 생각하는 자세를 취하였다. 요컨대, 될 수 있는 한 객관적으로 혹은 냉정히 일본을 보고자 하였다.
『역지사지 일본』은 동아시아에서 사람을 만드는 기운으로 여기는 ‘하늘’(天), ‘땅’(地), ‘사람’(人)에 따른 3부로 구성되어 있다. 제1부에서는 ‘하늘’과 관계되는 벼락이나 돌풍, 일기예보에 대해서, 제2부에서는 ‘땅’과 관계되는 해안선의 길이 및 평야와 인구의 관계, 꽃꽂이, 삼나무 등에 대해 통계 데이터 등을 사용하여 기술하였는데, 때로는 한국이나 다른 나라와 비교하기도 하였다.
두 가지 정도 간결하게 그 내용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예를 들어, 일본의 기상청 예산(2016년 기준 약 5,870억 원)은 영국의 기상청 예산(2017년 기준 약 1,150억 원)보다 5배 정도 많으며 또한 양국은 같은 예보 모델을 사용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일본의 날씨 예측은 그 정확성에서 영국보다 못하다고 한다. 그 이유는 가장 큰 유라시아 대륙과 가장 큰 바다인 태평양이 접촉하는 지점에 있는 동아시아의 지정학적 위치로 인해 날씨 예측에서 중요한 요소인 기압이 심하게 변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또한 저자는 현재 세계 2위의 인구밀도를 가지며 역사적으로 한반도의 인구를 계속 상회해온 일본의 인구에 대해 언급하면서, 일본이 그러한 인구를 가질 수 있었던 이유를 세계 4위에 해당하는 해안선 길이(3만 6,000km)와 대규모 평야의 존재에서 찾는다. 특히 저자는 간토(關東)평야를 예로 들면서, 간토평야는 한국 최대 평야인 호남평야(1,600㎡)보다 약 10배나 큰 면적(1만 5,000㎡)의 옥토로서, 그곳에서 소출되는 다량의 농산물로 인해 많은 인구를 지탱해 올 수 있었다고 말한다. 또한 저자는 한일의 역사를 언급하며 1900년대 초 일본의 기술과 과학이 비약적으로 발전했다는 사실뿐 아니라 당시 일본의 인구가 조선보다 4배 많았던 점도 조선의 독립을 어렵게 한 요인이었다고 본다.
제3부 ‘사람’에서는 ‘민속지학적’인 고찰이 이루어지고 있다. 여기에서는 일본에 흡연 금지나 전철 내에서의 휴대전화 통화 금지 등 금지나 경고를 알리는 표시가 넘친다는 점, 그리고 일본 사회가 얼마나 획일적이며 전체주의적인지를 지적하고 있다. 후자에 관해서는 초등학교의 운동회에서 하고 있는 합동 체조(일본명 구미타이소)와 특히 3-15명이 한 조로 만드는 인간 피라미드를 예로 들고 그것을 한국 및 미국과 비교하면서 일본의 특이성을 말하고 있다.
『역지사지 일본』은 한국 독자들이 일본을 이해할 수 있는 다양한 소재가 소개된 책이며, 또한 일본 독자들에게도 외부의 눈을 통해 자기 사회를 이해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서적이라고도 말할 수 있다. 저자는 자신의 자녀가 다닌 초등학교의 운동회에 참석해 합동 체조를 보았을 때의 놀라움을 “내가 지금 초등학교 운동회에 온 것이 맞나?”(104쪽)라고 표현할 정도였는데, 일본에서 나고 자란 사람들은 합동 체조를 당연한 것으로 여길 것이고, 또한 일본에 금지 표시가 많다고 의식하는 사람도 적을 것이라 생각한다.
내용과는 별도로, 이 책의 몇 가지 서술상의 사소한 오류를 지적해두자면 다음과 같다. ‘가네가와’(21쪽)는 ‘가나자와’, ‘아마오토메’(38쪽)는 ‘덴녀’(天女), ‘13-14세기의 전국시대’(47쪽)는 ‘16-17세기의 전국시대’, ‘오카 다다스케’(159쪽)는 ‘오오카 다다스케’, ‘でんわにでんわ’(183쪽)의 번역은 ‘전화기로 통화해’가 아니라 ‘전화를 안 받네’로 바로잡아야 할 것이다.
『역지사지 일본』이 ‘냉정히’ 일본을 바라보며 쓴 책이라면, 조찬선 교수와 최영 교수의 공저인 『일본의 죄악사』는 저자들이 “이 책 속에서 일본인의 만행에 대한 분노를 결코 축소하지 않기로 합의했다”(22쪽)라고 밝히고 있듯이 ‘뜨거운 분노’를 품고 일본을 바라보며 쓴 책이다. 저자들에 의하면 이 책의 목적은, 한국인이 일본인에 의해 얼마나 짓밟혀 왔는지 한국인에게 알리는 것과 일본인이 한국인을 얼마나 짓밟아 왔는지를 일본인에게 알리는 것이다.
그 목적에 의거해 이 책은 대부분의 지면을 일본이 범한 범죄 행위나 역사 조작 및 은폐 행위를 서술하는 데 할애하고 있다. 그 내용을 보자면 광개토대왕릉비의 조작, 창씨개명 등 민족의식 말살 정책, 역사교과서 조작, 독도 문제, 도요토미 히데요시에 의한 침략, ‘위안부’를 둘러싼 만행과 부인, 하시마(端島, 별명 군함도) 강제 징용을 둘러싼 일본 측 대응의 문제점, 신사참배의 강요, 명성황후의 시해, 민족문화재의 약탈, 관동대지진 때의 조선인 학살, 난징대학살, 제암리교회 사건, 731부대에 의한 생체실험 등 포괄적이다.
이 책에 기술된 내용의 정확성에 관해 판단하는 것은 평자의 역량을 넘는 일이지만, 몇 가지를 언급해본다. 먼저 역사적 사실의 근거를 인터넷 블로그 기사에서 찾는 경우가 있는데(예를 들어 258쪽의 독도에 관한 서술), 그러한 인용에는 신중을 기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또한 지금의 아베 신조(安倍晋三) 수상은 마지막 조선 총독인 아베 노부유키(阿部信行)의 손자·증손이라고 쓰여 있는데(55, 216, 325쪽), 성의 한자가 다른 것으로도 알 수 있듯이 양자는 친족관계가 아니다. 아베 수상의 외할아버지는 전 A급 전범피의자이며, 패전 후 수상이 된 기시 노부스케(岸信介)이다. 그 밖에 오류라고 생각되는 것들을 지적해두면 다음과 같다. ‘창덕궁’(19쪽)은 ‘경복궁’, ‘소또주의’(21쪽, 일본어에 그런 표현은 없음)는 ‘확장주의’, ‘사쿠오(酒句景信)’(28쪽)는 ‘사코우(酒匂景信)’, ‘아누이족’(30쪽)은 ‘아이누족’, ‘갱까도리’(55, 135쪽)라는 표현은 일본어에 없으며, ‘上檀外’(72쪽)는 ‘上垣外’, ‘和魂洋財’(120쪽) 및 ‘和魂兩材’(389쪽)는 ‘和魂洋才’, ‘上聲’(179쪽)는 ‘井上馨’, ‘欠內原’(204, 330쪽)는 ‘矢內原’, ‘후키시마호’(220쪽) 및 ‘후쿠시마호’(285, 401쪽)는 ‘우키시마호’, ‘나시모도노 미야마사꼬(梨本客方子)’(322쪽)는 ‘나시모토노미야 마사꼬(梨本宮方子)’, ‘엔도 슈샤쿠’(323쪽)는 ‘엔도 류사쿠’, ‘을사보호조약’(359쪽)은 ‘한국병합조약’, ‘모래야마, 고노 총리’(379쪽)는 ‘무라야마 총리, 고노’이다.
『일본의 죄악사』의 저자들은 일본을 지금도 그 죄를 인정하지 않으며, 또한 잘못된 역사를 왜곡하는 범죄국가이면서 위험한 존재라고 본다. 그러한 일본이 한국의 참된 이웃이 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참회와 자기의 행위에 대한 책임, 그리고 현재 아베 정권이 진행하고 있는 전쟁 준비를 멈추는 것이라고 본다. 일본이 이를 실천할 방안에 대해 저자들은 몇 가지 제안을 하고 있는데, 특히 최근 한일 간 갈등을 고조시키는 가장 큰 원인 중 하나인 ‘위안부’ 문제와 관련하여 다음과 같은 결론에 이르고 있다. 즉 일본이 가장 두려워하는 수치심을 환기함으로써 일본을 움직일 필요가 있으며, 구체적으로는 전 세계에 ‘소녀상’을 세워나가고, 또한 일본의 죄를 세계에 고발하는 문화예술 활동 및 연구 등을 전개할 필요성이 있다고 본다.
저자 중 한 사람인 조찬선 교수는 해방 전 일본의 대학에서 유학했으며 학도병이 된 경험을 가진 100세가 넘는 분이다. 그러한 분이 책을 썼다는 사실만으로도 경복할 만한 것이며 책에 큰 가치를 부여하고 있다. 그래서 이 책에 대해 비판적인 의견을 말하는 것이 망설여지지만, 한 가지 정도만 언급하고자 한다.
저자들의 일본 혹은 일본인에게 대한 평가는 “쌓인 분노” 때문인지 상당히 신랄하다. 일부의 표현만 예로 들면 다음과 같다. “결국 일본인은 스스로 사람 되기를 포기한 사람들이었다. 저들은 사람으로 위장한 악마들이 아닌가?”(199쪽), “일본인은 조선인을 괴롭히기 위해 태어난 민족임이 확실하다. 아니다 ‘조선인을 죽이기 위해 태어난 민족’이라고 우리는 합의했다.”(224쪽)
저자들의 분노를 고려하면 이런 표현을 쓰는 것이 일정 부분 이해되지 않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이런 형태로 ‘민족’을 본질화하여 일본 민족 대 한민족으로 나눈 이원론의 틀 속에서 과연 한일 사이의 갈등과 문제가 해결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의문이다. 특히 상대를 악마화하면 그 상대는 점차 마음을 닫게 되며, 그렇게 되면 결국 자기 자신의 마음마저 닫히게 되는 것이 아닐까 싶다. ‘민족’에 근거한 아이덴티티 정치는 어떤 경우 효율적으로 작동할 때도 있겠지만, 한일 간의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거꾸로 독이 되는 것이 아닐까 싶다. 결국 가해국과 피해국 간의 입장의 차이는 있겠지만, 한일 사이에 가로놓인 벽을 부수고 역사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민족’이라는 틀이 아닌 ‘인류’라는 틀이며, ‘냉정히’ 일본을 보면서 ‘분노’를 창조적인 힘으로 변용해가는 것이 아닐까 싶다.


이상훈 | 연세대학교에서 선교학을 전공하여 박사학위를 받았다. 재일 코리안 3세이다. 현재 연세대학교 한국기독교문화연구소 전문연구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2018년 11월호(통권 71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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