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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마당 (2018년 10월호)

 

  번역을 통해 생각하는 불교, 불교들, 불교문화
  후나야마 도루의 『번역으로서의 동아시아』 푸른역사 2018

본문

 

누군가는 언젠가 하나의 오롯한 불교가 존재한 적이 있거나 어딘가에 존재할 거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종교사적으로 볼 때, 우리가 실제로 경험해온 불교는 그런 이념형이 아니다. 현실을 살아가는 우리는 ‘불교’를 표방하는 다채로운 문화 현상을 통해 불교를 이해할 수 있을 뿐이다. 심지어 불전(佛典) 속의 가르침도 많은 불전의 수만큼, 또 그것이 저술되고 번역되고 읽힌 시대와 문화만큼 매우 다양하다. 이는 불전의 기록과 해석이 모두 특정한 시공간에 사는 사람들의 문화적 활동임을 환기시켜 준다.
다시 말하자면, 우리는 경전을 통해 전승된 종교를 대면할 때조차 그것이 기록된 시공간과 해석되는 시공간의 상이한 문화적 향기를 맡고 느끼고 구별할 수 있다. 이와 같은 사실을 염두에 둔다면, 불교만이 아니라 세계의 수많은 종교를 대할 때에도 이전에는 잘 보지 못했던 사실들을 새롭게 포착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인간의 문화적 활동을 통해 존재하는 불교에 대해 생각해보는 일은 인류의 문화와 우리 스스로의 종교적 삶을 보다 잘 이해할 수 있는 기회가 된다고 하겠다.
현재 교토대학 교수로서 불교사를 다각적으로 연구해온 후나야마 도루(船山徹)의 『번역으로서의 동아시아: 한자문화권에서의 ‘불교’의 탄생』은 바로 그런 기회를 우리에게 제공해주는 저작이다. 이 책은 한자문화권 속에서 이루어진 불교 경전 번역의 역사를 통해 마치 생물의 자연사처럼 상동과 상사의 축을 따라 역동적으로 펼쳐진 동아시아 불교문화사의 거대한 파노라마를 일견하게 해준다. 2013년에 일본어로 출판된 이 책은 이향철 교수의 노력에 의해 우리말로 옮겨져 올해에 출판되었다.
저자인 후나야마 교수는 이 책을 불전 한역의 역사에 대한 전문적인 식견이 있는 독자만이 아니라 일반 독자들도 충분히 읽을 수 있게 만들고자 노력한 것으로 보인다. 물론 불전의 역사를 다룬 모든 글이 그렇듯이, 불교사에 관한 지식이 적은 독자라면 다수의 경전, 논서, 승려 등의 이름들을 대하는 것만으로도 어려움을 느낄 수 있다. 그러나 이 책은 불전 한역의 통사적 개관에 집중하는 여타의 문헌과는 달리, 그것을 출발점으로 삼아 훨씬 더 흥미롭고 유익한 논의를 펼쳐내고 있어서 전문 독자들만이 아니라 일반 독자들도 즐겁게 따라 읽을 수 있다. 특히 이른바 ‘역장’(譯場)에서 이루어진 분업화된 공동 작업과 구체적인 번역 과정, 외국인 번역자의 중국어 실력과 중국인 승려의 인도어 실력, 음역(音譯)과 의역(意譯), 그리고 축어역(逐語譯) 등의 선호 이면에 놓인 번역 불가능성의 문제, 진경(眞經)과 위경(僞經)을 둘러싼 중국 경전 편찬의 쟁점들과 한계, 불전의 번역과 편집이 이끌어낸 문화와 세계관의 변화 등을 다루는 구절구절이 독자의 눈을 사로잡는다.
불전의 한역은 단지 인도어 기록물을 한문으로 옮기는 기계적인 번역 과정이나 ‘불교’라는 한 개별 종교전통 내의 신행에 그치지 않는다. 그것은 인도 대문명의 일부와 동아시아 대문명이 향유해온 ‘경전’(經典) 문화 사이에 일정한 긴장을 형성하며 전개된 활동으로서 훨씬 넓고 깊은 함의를 지닌다. 따라서 불전 한역에 내포된 문화적 의미는 산스크리트어, 팔리어, 간다라어 등으로 쓰인 원전의 어휘들이 고전 한어로 얼마나 정확하게 옮겨졌는가를 살피는 것만으로는 충분히 드러날 수 없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볼 때, 언어학적 이슈들이나 번역학적 논제들을 검토하는 자리로부터 한 걸음 더 나아가 불전의 한역이 갖는 세계 문화사적 의미까지 주목하는 이 책은 학술적으로 매우 중요한 함의를 갖는다. 특히 불전의 한역이 고전 한어와 현대 중국어에 새로운 어휘와 한자들을 만들어내었을 뿐만 아니라, 인도의 사상과 문화적 요소에 상응하는 한자문화권의 대응물을 탐색하게 했으며, 이 과정을 통해 결과적으로 동아시아 문명이 내외적으로 상대화되는 인식론적 효과를 빚어내었다고 역설하는 저자의 주장은 단지 불교학자들만이 아니라, 동아시아 문화사에 관심을 지닌 다양한 분야의 연구자들, 나아가 일반 독자들까지도 풍부한 토론과 논평의 장으로 초대한다.
이 책의 지식과 통찰이 함축하는 몇 가지 주요 논점은 특히 더 많은 생각과 논의의 출발점이 된다. 첫째, 불전의 한역은 매우 광범위하면서도 구체적인 역사적 과정을 통해 전개되었다. 불전 한역의 역사는 균질한 시간의 흐름을 반영하지 않는다. 즉 시대에 따라 번역활동이 상대적으로 융성하게 이루어지거나 반대로 정체되는 여러 계기가 있었으며, 이는 인도와 중국이 각각 처했던 역사적이고 문화적인 상황과 무관하지 않다. 또한 시기를 달리하지만 주요 번역자로서 언급될 수 있는 사람의 수도 60명 이상이나 된다.
이런 요인들에 따라 한역 문헌의 장르와 종류, 그리고 거기에 담긴 사상적 지향이 다채롭게 나타났다. 결과적으로 그 규모와 기간의 방대함을 특징으로 지니게 된 한역 불전은 히브리어, 아람어, 희랍어 문서들을 번역하고 편집하는 과정을 통해 성립된 기독교의 경전 및 유럽 문헌의 번역사와 여러 가지 측면에서 비교해볼 만할 것이다.
둘째, 현존하는 한역 불전의 종류와 각각의 지위 이면에는 더 커다란 다양성과 치열한 경쟁이 함축되어 있다는 점도 간과할 수 없다. 불전의 한역이 단지 한두 사람의 노작이 아니고 대체로 다양한 동기를 지닌 개인들이 참여하는 분업화된 공동 작업을 통해 이루어졌다는 사실은 중요하다. 특히 경전을 암송할 수 있는 인도인 승려의 참여 여부는 인도어 문헌 자체의 전래 여부와 상관없이 해당 한역 불전의 정통성과 권위의 근거가 될 수 있었다.
나아가 한역 불전이 지닌 다채로움의 문화적 의의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주요 번역자들이 한역의 가치와 기능에 관한 상이한 이론적 관점을 가지고 있었다는 점, 한역 과정에서 단순 번역을 넘어서는 창조적인 작업이 이루어지기도 했다는 점, 결과적으로 상당히 많은 ‘편집 경전’을 보유한 중국 불교사에 진경과 위경의 진위 이분법을 적용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점 등도 함께 고려되어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현존하는 한역 불전들은 그 다양한 시도 속에서 문화적 적합성을 확보해 살아남은 것들이라는 사실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이처럼 한역 불전의 세계에는 다양성을 가로지르는 문화적 경쟁과 선택의 과정이 내포되어 있는 것이다.
셋째, 번역은 낯선 세계를 이해하고 익숙한 세계를 한 걸음 떨어져서 보게 함으로써 세계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형성한다. 이는 단지 기존에 없었던 어휘와 어법이 등장하는 현상에 한정되지 않는다. 그것은 세계 인식의 문제와 연관되는 과정이다. 특히 성전(聖典)의 번역에서는 이러한 과정이 더욱 잘 드러난다. 가령 기독교 경전인 성서에서 신(神) 개념의 번역 문제가 간단하지 않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이는 70인역과 불가타역을 낳은 히브리어와 희랍어 혹은 라틴어 사이의 번역에서만이 아니라, 영어의 God, 중국어의 天主와 上帝, 일본어의 大日, 한국어의 하느님 등의 번역어 선택에서도 뜨거운 이슈였다. 이러한 사례는 자신에게 의심할 바 없이 절대적인 것으로 여겨지고 있는 개념조차 번역의 과정에 직면할 때에는 그 상대적 지위가 드러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불전 한역 과정은 중국 문화를 세계를 인식하는 절대적인 준거로 여기던 사람들에게 중국 문화의 상대적 지위를 감지할 수 있게 해주었다. 짐작컨대, 그러한 인식론적 변화는 인도인 번역자들의 입장과 세계관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로 작용했을 것이다.
넷째, 위의 논점과 밀접히 관련된 것으로서, 불전의 한역은 상이한 문화들 사이의 일반성과 특수성의 이슈를 함축한다. 이는 소위 번역이 불가능한 근원적 개념을 대하는 세 가지 방식에서 잘 드러난다. 즉 음역을 하거나, 새 어휘를 만들거나, 문화적 대응물을 찾아 번안하는 방식들이다. 첫 번째 방식은 원전의 특수성을 강조하는 방안이고, 두 번째 방식은 특수성과 일반성 사이를 창조적으로 중재하는 방안이며, 세 번째 방식은 차이와 특수성 이면에 담긴 모종의 공통성과 일반성에 대한 인식을 반영한 방안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책에서 후나야마 교수는 특히 위의 세 번째 방식과 관련하여 인도어 ‘아리야’(a-rya, ariya)를 번역하기 위해 불전 한역에서 사용된 ‘성’(聖)의 개념이 ‘동적 등가’(dynamic equivalence)와 유사한 번역 과정에 의해 유교, 도교, 기독교 등의 상응 개념과 관련된 중층적인 의미를 갖게 되었음을 보여준다. 한역 불전에는 위의 세 가지 방식이 모두 나타나지만 세 번째에 해당하는 문화대응형 번역어의 중요성에 특히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것은 일반성과 특수성 사이에서 새로운 의미의 층위가 생성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이기 때문이다.
물론 이 책의 논지들은 중국의 영역을 넘어 한국과 일본의 사례들을 적극적으로 아우르는 더 포괄적인 범위의 다양한 사례들을 통해 자세히 검토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이러한 남은 과제에도 불구하고 이 책이 불전 한역의 역사를 통해 단지 불교 자체만이 아니라, 인류의 문화 전반에 관한 중요한 통찰을 제공하고 있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다. 특히 이 책에서 다루는 불전 한역의 과정은 인류의 문화전파 과정에서 나타나는 매우 중요한 양상을 환기시켜 준다. 즉 문화전파에는 특정 문화요소가 단지 전달되는 것이 아니라, 수용자에 의해 창조적으로 구성되는 과정이 포함된다는 것이다. 이 책을 통해 우리는 불전의 한역이 하나의 이념적 ‘불교’를 전달받는 과정이 아니라, 동아시아의 역사 속에 등장하게 될 다양한 ‘불교들’을 배태한 문화적 활동이며, 다채로운 ‘불교문화’ 그리고 더 나아가 동아시아의 종교문화의 특수성과 일반성을 가로지르는 인류의 구체적인 삶의 모습이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구형찬 | 종교학을 전공하여 박사학위를 받았다. 저서로 『우리에게 종교란 무엇인가』(공저) 등이 있다. 연세대학교 국학연구원 동아시아고전연구소 전문연구원으로 재직 중이다.

 
 
 

2018년 10월호(통권 71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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