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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마당 (2018년 10월호)

 

  삶의 터전에서 쫓겨난 자들의 강인한 고백, 하나님과 하나가 되다
  존 쉘비 스퐁의 『아름다운 합일의 길 요한복음: 어느 유대인 신비주의자의 이야기』한국기독교연구소 2018

본문

 

이 책은 미국 성공회 주교인 스퐁(J. S. Spong)의 The Fourth Gospel: Tales of a Jewish Mystic(HarperOne, 2013)에 대한 번역서로, 변영권 목사(예사랑감리교회)가 번역했다. 영어 제목을 그대로 옮기자면 ‘제4복음서: 한 유대인 신비주의자의 이야기들’인데, 번역서 제목에는 “아름다운 합일의 길”이라는 표현을 추가함으로써 고된 신앙의 삶을 살았던 요한공동체가 새로운 차원의 삶을 지향하며, 심오한 차원에서 신비주의적 이야기들을 형성했음을 강조한 저자의 의도를 잘 드러내고 있다.
스퐁 주교는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진 저자로, 그동안 한국기독교연구소는 그의 주요 작품을 상당히 많이 번역하여 출판한 바 있다. 그는 많은 저서를 통하여 성서에 대한 문자주의적, 근본주의적 해석과 굳어진 교리 중심주의를 일관되게 비판하며, 신앙과 성서해석에 관한 새로운 관점을 줄기차게 제시하였다.
요한복음에 관한 이 책에서도 저자는 비판적 관점에 입각하여 이야기를 전개하고 있다. 이 책을 집필하기 위해 저자는 스스로가 밝히고 있듯이 오랫동안 요한복음 주석서들과 다양한 전공서적들을 읽은 것으로 보인다. 이 책은 학술적 전공 분야에서 다루는 여러 내용을 충실히 담아내고 있으므로 학술적 논의를 접하지 않은 독자들에게는 매우 신선한 흥미를 주는 책이 될 것이다. 우선 이 책의 전체적 구성을 보면, 제1부에서는 요한복음 개론을 다루고, 이어서 표적들의 책(제2부), 고별담화와 대사제의 기도(제3부), 수난이야기(제4부), 부활(제5부)을 각각 다루고 있다. 이는 보통의 학술적 주석서가 보여주는 틀이라 할 수 있다.
이 책의 내용을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요한신학에 관련된 기본적인 전제를 파악할 필요가 있다. 저자는 유대교 회당에서 축출되어 유대교와 분리된 어떤 유대인들이 요한복음서의 기록 배후에 있음을 전제하고 있는데, 이러한 전제는 요한신학 전공 분야의 핵심 부분에 해당한다. 이는 일찍이 마틴(J. L. Martyn)과 브라운(R. E. Brown) 등이 제시한 것인데, 이 중 브라운의 책은 『요한공동체의 역사와 신학』이라는 제목으로 번역되어 있다. 이 기본 전제를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저자도 아래의 내용을 다루고 있다.)
요한복음에서는 세 번에 걸쳐 ‘회당에서 쫓겨남’을 가리키는 단어가 사용된다. 개역성서는 이를 ‘출교’라는 말로 번역했는데, 이에 해당하는 그리스어 ‘아포쉬나고고스’(aposynago-gos)는 회당(synagogue)에서 추방(out)되는 것을 명시한 형용사이다.(새번역과 공동번역은 ‘회당에서 쫓겨남’으로 번역했다.) 특이한 점은 이 단어가 요한복음에서만 세 번 나오고, 신약성서의 다른 곳에서는 전혀 사용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요한복음을 전공한 학자들의 일치된 견해는 이 단어가 요한복음이 기록된 정황을 추정하는 데 매우 중요한 단서가 된다는 것이다.
이 단어는 요한복음 9장에 처음 언급된다. 예수의 치유로 눈을 뜨게 된 소경의 부모는 유대인들을 무서워했는데 그 이유는 예수를 그리스도로 시인하는 자는 회당에서 쫓아내기로 결의했기 때문이라고 한다.(요 9:22) 또한 12장에 따르면, 유대인 지도자 중에서도 예수를 믿는 사람이 많았지만 바리새인들 때문에 드러나게 말하지 못했는데, 이는 회당에서 쫓겨날까 봐 두려워서였다고 한다.(요 12:42) 마지막으로 제자들을 향한 고별설교에서 예수는, 사람들이 신자들을 회당에서 쫓아낼 것이고, 심지어 그들을 죽이면서 그것을 하나님을 섬기는 일이라고 여길 때가 올 것이라고 예언한다.(요 16:2)
요한공동체는 바로 이 ‘회당에서 축출된 유대인들’이 중심이 되어 시작된 것이라고 여겨지는데, 이러한 ‘회당 축출’이 언제부터 있었는지가 관건이 된다. 이 물음에 관하여 요한신학 연구에서는 ‘얌니아’ 랍비회의라는 개념이 다루어지곤 한다. 유대-로마 전쟁에서 패망한 70년 이후, 유대인 지도자들은 팔레스타인 북부의 얌니아(혹은 야브네)에서 랍비회의를 열고 유대교의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 강력한 조치들을 마련했다고 추정되는데, 80-90년 사이에 이 회의가 있었으며, 이때 유대교 전통에 어긋나는 분파들을 회당에서 쫓아내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축출 대상은 특히 기독교인들을 겨냥했다고 본다. 그러니까 요한공동체는 바로 이러한 조치의 결과로 회당에서 축출된 자들을 주축으로 시작되었고, 따라서 앞서 언급한 ‘아포쉬나고고스’라는 단어가 요한복음에만 세 번 사용된 것은 요한공동체가 이러한 조치의 희생자들이라는 추정을 가능케 한다. 그러므로 요한복음 9장, 12장, 16장에 언급된 이 표현은 80년 이후의 정황을 예수 시대의 상황으로 소급하여 적용한 것이며, 요한공동체가 생겨나게 된 정황을 보여주는 증거라는 것이다.
물론 얌니아 회의가 실제로 있었는지, 회당 축출의 실제 행위가 어떠했는지에 관해서는 학자들의 견해가 엇갈리지만, 확실한 것은 요한공동체가 회당에서 쫓겨나서 심각한 생존의 위기에 처해 있던 자들이었고 유대인이었다는 사실이다.
이 책은 요한복음이 기록된 배후에 있는 이러한 정황을 토대로 이야기를 전개하면서, 요한복음이 여러 차례에 걸쳐 편집되었다는 점도 밝히고 있다. 가령 요한복음 15-17장이 14장과 18장 사이에 나중에 추가되었고, 21장도 후대의 첨가라는 비평적 견해를 받아들이면서 논의를 전개한다. 즉 이 책에서 다루는 내용들이 대체로 전문성 있는 연구 결과들에 기반하고 있기 때문에, 독자들은 요한복음 연구에서 논의되는 전문적 배경들을 접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스퐁은 이와 같이 요한신학에 관한 배경지식을 동원하여, 요한복음 저자가 1세기 유대인 신비주의자였으며, 신비주의자의 관점에서 많은 등장인물들을 재해석하고 때로는 창작했다고 본다. 이로써 요한복음 기자는 하나님과 예수가, 그리고 신앙인이 합일에 이르는 신앙적 삶의 또 다른 차원을 강조했다는 점을 주장하며, 이러한 강력한 메시지가 새로운 차원의 기독교의 모델을 제시하는 중요한 근거가 될 것이라고 믿는다. 실제로 이 책은 성서주석, 교리사, 교회사를 폭넓게 다루면서 이를 포괄적이고 유기적으로 연결하고 있고, 또한 그런 논의를 현재의 신앙과 기독교상에 적용함으로써 독자들로 하여금 큰 울림을 느끼게 만들고 있다.
이 책을 통해 독자들은 신선한 자극과 새로운 통찰력을 접하게 되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몇 가지 점을 염두에 두고 이 책을 읽는 것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첫째, 스퐁은 이 책의 제목에서 명시되듯이 요한복음이 “디아스포라 유대인이 아닌 팔레스타인 지역에 거주했던 유대인들의 작품”(32쪽)이고, “유대인 이외의 사람에게는 낯선 작품”(63쪽)임을 여러 차례 강조한다. 그 근거로 요한공동체가 ‘회당에서 축출된 자들’로 출발했다는 점, 그리고 요한복음에서 유대적 문화와 배경에 대한 묘사가 풍부하다는 점 등을 제시한다. 하지만 요한복음 저자가 인종적으로 유대인인지 아닌지의 주제는 확증하기가 매우 힘든 부분이다. 1세기 당시 유대교 문화를 팔레스타인 내부(본토)와 외부(디아스포라)로 뚜렷이 구별하기도 힘들다. 어떤 글에서 유대 문화에 대한 상세한 내용이 나오더라도 그것만으로는 저자가 속한 문화권을 팔레스타인 내부로 단정지을 수는
없다.
가령 마르틴 헹엘은 『유대교와 헬레니즘』이라는 책에서 그리스-로마제국 시대의 통일된 문화권 속에서 팔레스타인 유대교와 디아스포라 유대교를 구분하는 것은 무의미하다고 주장했는데, 당시의 시대가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깊은 세계화의 물결 속에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유대교 사상은 그리스-로마제국 사회 곳곳에서 낯선 종류의 것이 아니라, (적어도 지식인들 사이에서는) 상상 이상으로 널리 알려진 것이었다.
그러므로 요한복음의 저자가 팔레스타인 내부인이었는지, 더 나아가 유대인이었는지의 여부는 확증하기 힘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퐁의 주장이, 요한복음서가 유대교 사상에 대한 확실하고 수준 높은 이해를 바탕으로 기록되어 있음을 강조하고, 또 요한복음의 신비주의적 요소가 전혀 낯선 외래적 기원이 아니라 유대교 사상 자체에서 연원한 것임을 암시한다는 점은 매우 설득력 있고 요한복음 해석에서 꽤 중요한 전제가 되는 것은 부정할 수가 없다.
둘째, 요한복음의 문학적 구성이 매우 탄탄하다는 점을 제시하기 위해서 다소 비약적인 결론들이 더러 보인다. 가령 요한복음의 표적(기적)들은 실제 일어난 적이 없으며, 대부분의 등장인물은 실존 인물이 아니었다는 주장(36쪽)이 그렇다. 나사로도 실제 인물이 아니라 표적이며 상징의 차원에서 가공된 인물이라고 본다.(204쪽) 물론 요한 연구에서 이러한 견해가 일부 존재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지배적인 학설은 아니다. 요한공동체는 요한복음의 등장인물들과 표적들을 사실 그대로 받아들였을 개연성이 더 높다.(가령 요한복음 20장 30절은 요한복음에 기록되지 않은 많은 표적이 있었다고 말한다.) 이러한 비평은 성서 기록의 사실성을 무조건 옹호하려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신비주의적 관점에서는 무엇이 사실이고 무엇이 경험인지(아니면 해석인지) 구별이 모호하고, 나아가 그러한 구별이 무의미하다고 보는 것이 더 나을 수 있다. 물론 ‘신비주의’라는 개념에 관해서도 엄밀한 논의가 더 필요하겠지만 말이다.
달을 보라고 하는데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만 본다는 말이 있다. 저자 스퐁 주교는 네 개의 복음서 가운데 가장 이질적으로 여겨지고 역사적 예수와 초기 기독교 역사에서 벗어나 있는 것으로 오해될 수 있는 요한복음이 유대 사상적 기원에 충실한 책이고, 또한 심오한 합일적 신앙을 제시하는 뛰어난 신앙의 기록물이라는 것을 보여주고자 한다. 이 서평에서 지적한 바는, 단지 그것을 가리키는 손가락의 섬세한 부분에 대한 균형 있는 감각을 보태고자 한 노력이다. 깊고 깊은 요한의 세계, 그것이 저자가 보여주려고 한 밝고 커다란 ‘달’이었다는 점을 독자들이 가슴에 담고 이 책을 읽기를 바란다.

박찬웅 | 하이델베르크대학교에서 신약학을 전공하여 박사학위를 받았다. 저서로는 『초기 기독교와 요세푸스』 등이 있다.(제12회 소망학술상 수상) 현재 목원대학교 신학과 겸임교수로 재직 중이다.

 
 
 

2018년 10월호(통권 71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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