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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마당 (2018년 9월호)

 

  신앙과 불신앙이 서로 껴안을 때
  안셀름 그륀・토마시 할리크의 『신이 없는 세상』 분도출판사 2018

본문

 

성금요일에서 부활절까지
책은 저자가 의사소통하는 매체이다. 저자는 책의 질문을 상정한다. 그리고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은 책의 내용이 된다. 『신이 없는 세상』의 저자는 안셀름 그륀과 토마시 할리크이지만, 편집자는 빈프리트 논호프이다. 편집자가 따로 있으니, 이 책이 담고 있는 질문은 저자의 것이라기보다는 편집자의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신이 없는 세상』에서 먼저 고려할 것은 편집자의 질문이며, 더 나아가 편집자가 제기하는 질문의 맥락이다.
『신이 없는 세상』이 나오게 된 맥락은 무엇인가? 21세기 초엽 세속주의와 무신론이 판치는 세상에서 신과 종교가 귀환하는 상황이다. 성금요일에서 부활절로 상황이 변화한 것이다. 신의 퇴장과 죽음이 자연스러워진 현대사회에서 신의 귀환과 부활이라는 예기치 못한 사태는 사뭇 당혹스럽다.
불신앙과 신앙이 교차하는 지점에서 그리스도교는 무엇을 할 수 있는가? 무신론과 불신앙은 그리스도교와 신앙에 어떤 의미를 지니는가? 바로 이 책이 던지는 질문이다. 대답을 위해서 두 사람이 초대된다. 가톨릭 사제 그륀과 할리크가 그들이다. 둘 다 전 세계에 잘 알려진 작가들이며, 한국에도 이들의 저작 상당수가 번역되어 있다.
그렇다면 왜 이들인가? 이들이 보여준 삶의 궤적이 신앙과 불신앙, 신과 무신론에 대한 성찰과 밀접한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무신론과 불신앙에 관련된 자신들의 개인적, 지적, 사회적 배경이 책 안에서 언급되는데, 그 삶의 얼개는 이렇다.
안셀름 그륀은 1945년 독일에서 태어나 매우 신앙적인 가정환경에서 성장했다. 그는 1964년 김나지움을 졸업한 후 바로 성 베네딕도회 뮌스터슈바르자크 수도원에 들어갔고, 1965년부터 1974년까지 성 오틸리엔과 로마의 성 안셀모 대학교에서 철학과 신학을 공부했다. 수도승 전통, 특별히 사막 교부들에 관심을 가졌으며, 칼 융의 심리학과 비교하는 작업도 하고, 동양의 명상법에도 관심을 가졌다. 현재는 뮌스터슈바르자크에 있는 베네딕트 수도원의 원장이다. 1968년의 문화혁명을 경험하고 세속사회와 무신론을 대면한 그륀이지만, 신앙에 대한 회의는 수도원에 들어가면서 무신론적 의문으로 시작된다.
토마시 할리크는 1948년 체코 프라하에서 태어났다. 그는 공산주의 정권, 무신론적 이데올로기 아래서 자랐다. 프라하 카를대학교에서 사회학과 철학, 심리학을 공부하고, 공산 치하에서 심리치료사로 일했다. 그는 불교와 동아시아 영성에 심취했지만, 어느 날 아버지 방에서 발견한 체스터턴의 『정통주의』를 읽고 역설의 종교로서 그리스도교를 깨닫게 된다. 그는 1978년 동독에서 비밀리에 사제 서품을 받고 지하교회에서 활동했다. 1989년 공산정권 붕괴 후에는 하벨 대통령 외부 자문단으로 일했고, 체코 주교회의 총대리로 사역했다. 현재 프라하 카를대학교 사회학 교수로 있다. 할리크는 공산주의를 경험한 무신론 세대이지만, 사제가 된 독특한 이력을 가졌다.
그륀과 할리크는 독일의 가톨릭 가정과 체코 공산주의 사회에서 성장하면서 서유럽의 세속적 무신론과 동유럽의 이념적 무신론을 경험했다. 성장 배경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세속사회와 무신론에 지속적으로 관심을 기울였다는 공통점이 있다. 또한 두 사람 모두 심리학을 비롯한 현대 학문에 정통하다. 그리스도교 신앙을 일종의 여정으로 생각한다면, 무엇보다도 이들은 무신론과 불신앙과 대화하는 열린 신앙인이며, 신앙에서 신비와 깊이를 추구하는 수행하는 신앙인이다.

니체의 죽은 신에서 바오로의 아레오파고스 연설까지1
『신이 없는 세상』의 구조는 편집자의 기획을 반영하고 있다. 이 책은 현대 무신론적 세속사회에서 그리스도교 신앙의 자리를 모색한다. 현재 무신론, 불가지론, 무관심론의 상황에서 불신앙의 동기와 태도 등을 따지면서 불신앙을 품는 신앙, 신앙과 불신앙이 함께 얽히는 그리스도교를 제시한다. 그 여정은 할리크의 프롤로그 ‘니체의 죽은 신’에서 시작해서 그륀의 에필로그 ‘바오로의 아레오파고스 연설’로 이어진다. 우리 문명 전체에 죽은 신의 그림자가 드리운 상황이 문제 제기라면, 그리스도교는 바울의 아레오파고스 선교 연설을 오늘의 무신론자와의 대화에서 진지하게 고려해야 한다는 마무리가 그 대답이다.
서두와 마무리 사이에 펼쳐진 다섯 마당은 ‘신이 침묵할 때’, ‘다양하게 실행된 무신론’, ‘탐색으로의 전향’, ‘신비를 살다’, ‘신비로 가는 길’이라는 이름을 달고 있다. 각각 현대 무신론의 상황, 다양한 무신론, 무신론에서 신앙의 탐색, 신앙의 신비와 깊이, 불신앙을 품는 신앙을 이야기한다. 각 마당마다 할리크와 그륀이 주거니 받거니 한 편씩 글을 썼는데 이들의 글은 각 마당마다 해당 주제에 대한 이견보다는 공감이 두드러진다. 글의 구성은 이들이 공유한 배경과 관점 탓인지 비슷한 색조의 씨실과 날실을 함께 엮은 양탄자 같다. 이들의 논의에는 그리스도교 신앙인, 가톨릭과 개신교 신학자, 동양종교 전통, 현대 철학자나 심리학자 등이 조연으로 등장한다.
그륀과 할리크는 이 책에서 신의 죽음과 무신론에 대한 통속적 이해를 넘어선다. 이들은 ‘신의 죽음’에 대해 “어떤 신이 죽은 것일까?”라는 질문을 던진다. 또한 무신론은 신을 거부한다는 의미의 신 존재 부정이 아니라 특정 형태의 유신론, 즉 특정한 신 관념에 대한 거부라고 지적한다. 나아가 유신론이라 하더라도 신에게 나아가는 길에 도움보다는 방해가 되는 경우도 많다고 언급한다. 반면에 특정 비판적 무신론은 신앙의 길에서 방해물을 극복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주장한다. 신앙의 반대는 무신론이 아니라, 우상숭배 즉 상대적 가치를 절대화하는 것이다. 이들에게 신앙과 불신앙은 동전의 양면처럼 한 개인의 마음이나 정신 안에서 일어나는 대화나 갈등이며, 그것은 온전한 신앙의 길을 가는 데 자연히 발생하는 것이다.
이런 출발점에서 그륀과 할리크는 여러 종류의 무신론을 언급한다. 공산주의적 이념적 무신론, 슬픔의 경험에서 온 고통의 무신론, 인간의 과도한 자기주장에 따른 투사나 환상의 무신론, 자기만족적인 일상적 무신론, 논리적 탐색적 무신론 등이다. 하지만 이런 무신론은 신에 대한 거부가 아니라 특정 형태의 유신론을 거부하는 것이다. 실존적 고통의 무신론이나 논리적 탐색적 무신론은 신앙으로 포용해야 할 대상이다.
그륀과 할리크는 신앙인과 무신론자를 단순하게 이분법으로 구분하지 않는다. 신앙인이지만 실제로는 비신앙인일 수도 있고, 무신론자이지만 신앙적인 사람일 수도 있다. 유아적 신앙 상태나 종교적 근본주의나 종교적 광신, 즉 종교로 과포화된 사람들은 그들의 신앙이 표면에만 머물러 있기에 피상적이다. 이들의 마음 깊은 곳을 들여다보면 배타적이고 냉담하고 이기적이고 “신앙이 없다.” 반면에 ‘마음의 은총’을 지닌, ‘본성적으로 그리스도교적 영혼’을 가진 사람이 그 내면의 빛이 의식의 영역으로 표면에 나오지 못해 무신론자로 간주되기도 한다.
이들은 신앙인과 무신론자를 연결하는 용어로 ‘탐색’을 제시한다. 탐색하는 사람은 신을 향해 가는 길 위에 있으며, 무신론자와 유신론자가 탐색의 길에서 서로 만나 이해하고 질문하다 보면 결국 신비 앞에 이르러 경탄하게 된다고 본다. 신앙과 무신론은 이 과정에서 서로 만나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신앙인이나 무신론자 모두 하느님이 부재하는 순간을 알지만, 그 차이는 인내에 있다. 무신론은 하느님의 침묵을 신의 죽음으로 해석하는 반면, 성숙한 신앙은 인내한다. 믿음과 사랑과 희망은 하느님의 침묵에 직면했을 때 인내를 보여주는 세 가지 표현이다.
오늘날 신앙과 종교가 멀고 낯선 언어, 이해도 안 되고 재미없는 진부한 언어가 된 상황에서, 신앙은 더 이상 자연과 역사의 무대 뒤에 있는 ‘외부의 신’을 찾을 수 없다. 그륀과 할리크는 ‘현실의 깊이’로서 신을 찾으라고 권한다. 이것은 근대 무신론자들이 말하는 외부의 신을 거절하고, 포이어바흐의 무신론과 종교를 인간학으로 축소하는 휴머니즘적 무신론을 거부하고, 표면적 소비와 연예산업 같은 종교를 거절하는 것이다.
책의 후반부에서 그륀과 할리크는 깊이에 이르는 신앙, 신비에 이르는 삶을 성서의 이야기를 통해서 다시 해석한다. 영혼의 바닥이 침묵의 장소이며, 그리스도교인에게 그 바닥은 사랑의 장소이다. 그곳에서 사랑은 어떤 감정이 아니라 존재의 성질이다. 깊이에 머무르는 삶, 깊이를 관조하는 삶, 그것이 바로 신앙의 삶이다. 인간 영혼의 깊이에 이르는 길은 신앙인과 무신론자가 같이 갈 수 있다. 신앙인과 무신론자는 깊이의 체험을 다양한 방식으로 해석할지라도 ‘성스러움’과 ‘신비’와 ‘믿음’은 유신론자와 무신론자가 서로 주고받을 수 있는 개념이기 때문이다.
에필로그에서 그륀은 아레오파고스 연설에서 바오로가 그리스 철학자들과 대화를 나누는 방식이 오늘날 무신론의 시대에 매우 중요하다고 지적한다. 무신론을 이해하고 친구로 삼을 때, 그 무신론은 신적 초월체험, 즉 모든 것을 넘어서는 체험의 파수꾼이 될 것이며, 우리 신앙에 겸손을 가르쳐 줄 것이다. 이것이 무신론과 불신앙이 신앙에 주는 선물이다.

신앙과 불신앙이 서로 껴안을 때
『신이 없는 세상』에서 저자들은 무신론의 시대에 신앙의 의미를 추구한다. 저자들은 신앙과 무신론은 많은 점에서 서로 중첩되며, 유신론적 관념들이 용해되며 무신론적 관심사가 신앙에 수용된다는 것을 언급한다. 동시에 한 개인 신앙인은 실존으로서 신앙인인 동시에 불신앙인이며, 유신론자이면서 동시에 무신론자임을 강조한다. 이들에게 무신론은 특정 유신론과의 결별을 의미하며, 무신론은 성숙한 유형의 신앙을 위한 준비 단계가 되면 정화의 가능성을 지닌다고 한다. 비판적 탐구적 무신론은 순전히 이성적으로 논증하면서 종교적 근본주의와 종교적 이데올로기에 휩쓸리지도 않으며, 관용적이라고 본다. 그러니 무신론자들과 대화하고 연대하고 포용하라!
『신이 없는 세상』에서 무신론과 불신앙에 대한 이들의 논의는 자신의 삶을 거울에 비추어 보고 성찰한 결과물이다. 이 책은 동시에 한국교회를 비추는 거울이 될 수 있다. 세속화된 무신론의 시대에 미숙한 유아적 신앙과 근본주의적이고 광신적인 신앙으로 얼룩진 한국교회의 배타성을 비출 거울 말이다. 책도 사람처럼 만날 시기가 있다. 이 책은 한국교회와 만날 만한 시기에 나온 만날 만한 책이다. 이 책을 통해서 한국교회와 우리의 신앙을 비추고 성찰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1 이 글은 가톨릭 출판물에 관한 서평이기 때문에, 책에 표시된 가톨릭 표기법을 그대로 사용하였다.

신재식 | 조직신학을 전공하였다. 저서로 『예수와 다윈의 동행』 등이 있다. 현재 호남신학대학교 교수로 재직 중이다.

 
 
 

2018년 11월호(통권 71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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