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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마당 (2018년 9월호)

 

  시장 종교의 비종교화
  하비콕스의 『신이 된 시장: 시장은 어떻게 신적인 존재가 되었나』 문예출판사 2018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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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무더위 속에서는 습관적으로 재미있는 책을 찾아 읽는 버릇이 있다. 이번 여름에 필자의 눈에 들어온 책은 『신이 된 시장』이다. 서명뿐만 아니라 부제 ‘시장은 어떻게 신적인 존재가 되었나’에도 꽂혔다. 저자도 우리가 익히 아는 세계적인 신학자 하비 콕스라서 더욱 끌렸다. 이 책을 보자 1965년에 출판되어 세계 신학계의 주목을 받은 그의 저서 『세속도시』가 떠올랐다. 그는 세기의 신학자 디트리히 본회퍼의 『옥중서간』의 영향을 받아서 ‘세속화 신학’을 주창하였다. 그의 최근 저서인 『신이 된 시장』을 접하면서 혹시 이 책에서 그의 세속화 신학을 완결시키는지를 알고 싶었다.
하비 콕스의 이번 저서는 프란치스코가 2013년에 교황으로 선출된 후 발표한 『복음의 기쁨』이라는 문서에 힘입어 현대의 고삐 풀린 소비주의와 ‘배제와 불평등의 경제’에 대해 개신교 신학자로서 응답하여 서술한 책이다. 이 문서에서 교황은 ‘신격화된 시장’과 ‘시장의 절대적인 자율성을 옹호하는 갖가지 이데올로기’에 관해 이야기하며, 그 체제는 “이윤증대를 가로막는 모든 것은 집어삼키는 경향이 있다.”라고 하였다. 이러한 논쟁적인 주장을 한 교황의 문제제기에 하비 콕스가 동참한 것이다.
이 책 본문에서 ‘시장 종교’라는 구절은 단순히 비유적 표현이 아니다. 실제로 그는 시장의 작용에 관한 믿음이 자체적인 사제와 의례, 교의와 신학, 성자와 예언자, 온 세계에 복음을 전하고 모든 곳에서 개심자를 확보하려는 열망을 완비한 채 기능하는 종교의 형태를 띠고 있음을 날카롭게 지적한다. 따라서 ‘시장 종교’는 ‘시장 신학’으로 탐구할 수 있는 대상이 된다. 이렇듯 시장을 에워싼 신비와 시장이 불러일으키는 숭배를 나타내기 위해 저자는 대문자를 사용하여 ‘The Market’이라 쓰고 있고, 역자는 작은따옴표를 붙여 ‘시장’으로 적고 있다. 필자의 글에서도 ‘신격화된 시장’은 역자와 뜻을 같이하여 ‘시장’으로 써 나갈 것이다.
특히 저자는 ‘하지만’(however)이라는 말로 다른 사람들의 생각은 어떠어떠하지만, 그의 입장은 이러하다는 변증법적 구사를 하고 있으니 주목해 보아야 할 것이다. 물론 그는 신학과 경제학에 관한 해박한 지식을 통해서 논리를 펴나가고 있다. 저자가 매우 설득력 있게 그의 생각을 펼치고 있으니 우리가 잘 이해할 수 있는 쪽으로 이 책의 문맥을 그대로 따라가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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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시장’은 구약에 등장하는 야훼에 가까운 존재가 되었다. 단지 다른 신과 경쟁하는 우월한 신이 아니라 온 세상이 그의 통치를 받아들여야 하고 어떤 경쟁자도 허용하지 않는 ‘지고신’(Supreme Deity)으로서 ‘시장신’이다. 종교에서도 예배에 비용을 매기는 일을 꺼리지 않는다. 기도, 미사, 축복, 치유, 임직, 세례, 장례, 부적 등은 떠들썩한 호객 행위를 통해 팔리지 않는가? 거대 은행과 대형교회는 둘 다 ‘몸집을 키우지 않으면 죽는다.’는 월 스트리트의 신성한 주문을 받아들였음을 알 수 있다. 두 기관 모두 ‘시장’이 정의하는 기풍과 성장은 훌륭한 목표이며 자기 존재를 추동하는 생의 약동이라는 확신이 있었다.
은행과 무역회사, 교회, 기타 종교기관은 모두 동일한 ‘시장’ 모양의 문화에 거주한다. 그들은 모두 ‘이윤추구’라는 똑같은 공기를 호흡한다. 따라서 거대 은행과 대형 교회는 둘 다 ‘시장’의 그림자 속에서 지어지기 때문에 양자의 유사성은 일방통행로가 아니다. 양자의 영향력은 양쪽으로 흐른다. 열광적인 정신 상태를 부추기는 한 양자는 부지불식간에 우리의 유한한 지구에 커다란 위협을 제기한다. 어느 것도 영원히 커질 수 없는 법, 사방이 초대형으로 뒤덮인 시대에도, 아니 그런 시대야말로 작은 것이 여전히 아름다울 수 있다.
다른 영역과 마찬가지로 신학의 역사 또한 승자의 기록이다. 어떤 종교도 ‘시장’의 주문이나 교묘하게 배치된 부의 설득력 있는 영향력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금전의 가치는 기독교 초창기부터 다양한 방식으로 기독교 역사에 영향을 주었다. 이런 거래의 역사를 일부 추적해보면, 오늘날 거래가 어떻게 지속되는지 살펴보는 데 도움이 된다.
그 예로 기독교 세계에서 펼쳐진 대표적인 교의 논쟁이라 할 수 있는 아우구스티누스와 펠라기우스 사이에 벌어진 사건을 들 수 있다. 자유의지와 원죄, 은총의 성격 등 명백한 신학적 쟁점에 집중하면서 벌어진 이 논쟁에 감추어진 사실이 있다는 것이다. 처음에 교황이 아우구스티누스를 지지하기를 꺼렸음에도 아우구스티누스와 그의 추종자들이 마침내 펠라기우스를 이겼을 때, 단순히 신학적 관념이 승리한 것이 아니었다. 현금의 조용한 속삭임은 언제나 정치에서 위력을 발휘한 것처럼, 종교에서도 그만큼 설득력을 보였다. 아우구스티누스 팀은 적재적소에 돈을 썼고, 돈을 뒷받침하는 정치공작에도 능숙했다. 그러고서 아우구스티누스는 재물이란 일종의 은사로 하나님이 주신 신비로운 선물이며, 여기서 문제는 재물을 어떻게 획득했는지가 아니라 ‘그 재물로 무엇을 했는가.’라는 사고를 내놓았다. 재물에 관해 ‘묻지도 말고 말하지도 말라.’는 원칙이 많은 사람의 지지를 받게 되었다. 이처럼 교의 설정에 관한 사건을 볼 때 그 안에 감추어진 정치와 현금의 흐름이라는 요소가 배제되는데, 우리는 교의의 행간에서 드러나는 올바른 내용을 식별할 필요가 있다.
저자는 애덤 스미스가 사실 근대 경제학의 창시자가 아니며, ‘경제학의 성자’이자 ‘구속받지 않는 자유시장의 후원자’라는 지위 역시 의심스럽다고 말하고 있다. 오히려 그를 ‘경제학의 예언자’로 보아야 더 잘 이해할 수 있다고 제안한다. 스미스는 당대에 크게 유행한 ‘자연신학’의 실천가로서 하나님은 세상을 창조할 때 제정한 자연법을 통해서 일하시지, 자연법을 거스르며 일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그의 저술은 많은 고전적 신학자나 당대 신학자와 비슷한 추론 패턴을 따른다. 가장 유명한 저서 『국부론』(원제는 An Inquiry into the Nature and Causes of the Wealth of Nations)의 제목은 이사야 60장 5절에 나오는 ‘이방 나라의 재산’(the wealth of the nation)이라는 성서 구절에서 빌려온 것이다. 저자는 스미스를 신학자로 여긴다고 말하며, 우리가 스미스를 신학자로 본다면 오늘날 경제학과 신학을 괴롭히는 여러 문제와 씨름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언급한다.
또한 저자는 스미스를 성자가 아닌 예언자로 보면서, 히브리 예언자의 가장 중요한 특성, 즉 그들이 이스라엘의 정치적・문화적 삶에 한 층으로 깊이 묻혀 있으면서도 결코 그 삶에 의해 전적으로 규정되지 않았다는 점을 언급한다. 예언자의 목소리는 오늘날 우리가 사는 세계를 왜곡하는 거대한 불평등과 불필요한 고통이라는 지독한 부정의를 가차 없이 직면하게 만드는 특성이 있다. 스미스가 보여주는 예언자적 특성은 많은 사람이 경탄하는 스미스의 저서 『도덕 감정론』의 강의 내용에 잘 나타나 있다. “부자와 권세가에 대해서는 감탄하고 거의 숭배까지 하는 성향이지만 가난하고 비천한 상태에 있는 사람을 경멸하거나 적어도 무시하는 경향은… 동시에 우리의 모든 도덕 감정을 타락시키는 가장 크고 보편적인 원인이다.”
지난 몇 세기에 ‘시장’은 사회의 정점이자 중심축으로 부상하면서 결코 자신을 ‘경제’ 영역에 국한하지 않았다. ‘시장’의 언어와 이미지, 그리고 가치는 문화 전체에 침투하여 우리가 생각하고 살아가는 방식에 스며들었다. ‘시장’은 우리가 의식하지 못하는 방식으로 우리의 모습을 바꿨다.
최근에 부상한 ‘시장신’에도 성령에 해당하는 존재, 즉 인간에 내재하는 동격의 협력자가 있을까? 저자는 그렇다고 생각한다. 성령과 그가 말하는 ‘시장정신’, 좀 더 심리학적인 용어로는 ‘시장심성’의 유사성을 검토하면서 그는 이런 질문에 대답하고 있다. “‘시장’은 어떻게 그 영을 부어줄까?” “어떻게 그 정신을 내면에 주입할까?” 그 복음이 하는 대답은 간단하다. “이걸 사면 당신은 행복해질 것이다.”
‘시장신’의 메시지가 기독교 복음처럼 모든 사람과 장소에 전해져야 한다면 ‘시장’의 사도들은 어떻게 하였는가? ‘시장’의 관리자들에게 ‘온 세계로’ 나아가도록 강제하는 것이 무엇인지부터 먼저 말해야겠다. ‘시장’은 선택의 여지가 없다. 시장은 끊임없이 확장하지 않으면 정체하고, 정체하는 즉시 사멸한다. 이것은 자본주의 체제의 내적 논리이다. 시장 성장은 선택사항이 아니다. 시장 복음은 전 매체를 동원해서 계속 메시지를 전한다. 이제는 전자 이미지의 시대가 왔기 때문에 라디오와 텔레비전, 그리고 스마트폰으로 사람들의 감정에 호소하고, 계속 공세를 펼치며 간결성과 반복성으로 소비자들의 마음에 파고든다. 시장의 내적 논리는 획일성으로 치닫고 종말로 향하고 있다.
그런데 ‘시장’ 교회가 직면한 가장 큰 문제는 그것이 전광석화처럼 성장하고 지구 곳곳으로 확산하면서 모든 곳에서 공통된 양식을 강요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다양성과 표준화의 요구를 어우러지게 하는 데 점차 어려움을 겪는다. 그러나 최근 전 세계 대다수의 종교와 교파는 수많은 교회일치운동과 종교 간의 대화운동을 통해 종교의 다양성을 개탄하기보다는 긍정하고 인정하는 분위기이다.
저자는 이 책에서 시장에 본질적으로 잘못된 점은 없다고 말한다. 시장은 정해진 일정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인간이 구성한 제도이며, 많은 경우 시장은 이런 역할을 잘 수행했다. 그런데 시장이 신격화(전지, 전능, 편재)된 결과, 원래 의도된 목적에 이바지하지 못할 뿐 아니라, 가정과 예술, 교육과 종교 같은 중대한 제도에 끼어들어 그것들을 왜곡하고 있다. 또한 아직까지 종교와 기업의 대화는 꽉 막혀 있다. 이는 무지 때문이기도 하고, 시장이 어울리지 않게 신의 자리에서 아직 쫓겨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시장이 본래의 자리로 돌아가도록 해야 할 것이다.
저자는 이 책 마지막 장에서 결론을 내리는데, 여기서도 그의 말대로 정리해보겠다. 세상은 ‘언제나 좋아지기만’ 하는 것은 아니며 이런저런 차질이 생기기도 한다. 그러나 개신교 신학자들은 흥망성쇠를 통해 정의와 평화로 진전하는 ‘인간회복’(restoratio humani) 드라마를 보았다. 종교에서는 ‘미래에 의해’라는 구절이 열쇠를 제공한다. 시장은 약자와 고통받는 사람, 가난한 사람에 대한 사회적 책임을 수행하든지, 신의 지위를 포기하고 다시 평범한 시장이 되어야 한다. 시장의 영혼은 구원받을 필요가 있지만, 시장은 스스로를 구원하지 못한다. 오직 여기에서 인간회복이 시장을 구원할 수 있다. 어떤 개인이나 기관, 심지어 시장도 신이 되기에 적합하지 않다. 이제 신이 될 필요가 없다는 사실을 인정한다면 시장은 훨씬 더 행복해질 수 있을 것이다.

3
우리에게 영향을 미친 세계의 신학은 대륙신학과 영미신학으로도 나누어 생각할 수 있다. 대륙신학은 기독교 교의에서 나오는 주제들을 주로 연구한다. 영미신학은 사회복음으로 시작하여 문화신학, 세속화신학, 정치신학, 해방신학, 혁명신학, 여성신학 등 교회와 사회에서 신학의 영역을 넓히고 있다. 그리고 한국 신학에서는 민중신학으로 가세하더니 생명과 평화 신학, 물질신학, 통일신학이 나올 듯 기미가 보인다. 이런 점에서 하비 콕스의 시장신학은 한국 교회와 사회에 여러 가지 시사하는 점이 많다.
하비 콕스는 이 책에서도 교회와 사회 문제에 신학적 가르침을 주는 세계적인 학자임을 여실히 증명하였다. 본회퍼가 세상 한복판에서 그리스도인의 삶(Life for Others)을 말하고자 했다면, 하비 콕스는 시장 한복판에서 인간의 삶을 이야기했다. 그런데 이 저서에서 라인홀드 니버는 소개하면서 본회퍼를 한 번도 언급하지 않은 점이 좀 의아하다. 필자는 본회퍼의 ‘기독교의 비종교화’를 잊지 못하기에, 이 글의 제목을 ‘시장 종교의 비종교화’라고 붙였다. 하비 콕스는 시장이 종교가 되었다는 점을 역설하고 있으니, 또한 ‘인간회복’으로 비종교화되어야 할 것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시장’이 사회의 주인이 아니라 하인이라는 적절한 역할을 회복해야 한다고 말한다. 종교 영역에서 유래한 단어를 고안하자면, 교황은 ‘시장’을 ‘탈신격화’해서 ‘시장’이 다시 시장이 되기를 원한다. 그런데 역신격화(reverse apotheosis)가 가능할까? 시장은 과거의 우상처럼 인간의 손으로 만들어진 것이기 때문에 유사종교이다. 그러므로 저자는 가능하다고 믿는다. 우리도 이 편에 서야 하지 않겠는가?

김영일 | 건국대학교 대학원에서 한국철학을 전공하여 박사학위를 받았다. 대표 저서로는 『정약용의 상제사상』이 있다. 현재 강남대학교 명예교수이며, 천성교회 담임목사로 일하고 있다.

 
 
 

2018년 11월호(통권 71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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