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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마당 (2018년 6월호)

 

  고난과 순교를 뚫고 피어난 꽃: 개혁교회 이야기
  박경수의 『개혁교회, 그 현장을 가다』 대한기독교서회

본문

 

“종교개혁은 끝나지 않았다.” 이 한마디가 이 책에 대한 필자의 소감이다. 그동안 「기독교사상」에 연재된 박경수 교수의 유럽 개혁교회 현장 탐방 이야기를 읽으면서, 역사의 아버지로 불리는 헤로도토스를 생각했다. 그가 쓴 최초의 역사책 『역사』의 의미가 ‘조사와 탐구’라는 뜻이니, 박경수 교수의 『개혁교회, 그 현장을 가다』는 역사다운 역사이며, 그의 표현처럼 “발로 쓴 역사”였다. 끝나지 않은 종교개혁, 아니 끊임없이 지속되는 개혁의 흔적을 추적해서 우리 손에 쥐여준 이 책은 읽는 이의 심장을 다시 쿵쾅거리게 만들기에 충분하다.
사실 이 책의 자매편인 『종교개혁, 그 현장을 가다』라는 책이 2013년에 출판되었을 때에도 종교개혁의 역사를 생동감 있게 전해준 저자의 노고에 감탄하였는데, 그 후속편이라고 할 수 있는 『개혁교회, 그 현장을 가다』는 프랑스 개혁교회의 아프고 힘든 역사를 우리에게 생동감 있게 전해준다. 필자는 이 책에 대한 ‘서평’을 부탁받았지만, 그 먼 거리를 여러 번 직접 방문하여 땀으로 쓴 글을 쉽게 ‘평가’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왜냐하면 아직 아무도 가보지 않은 길을 처음 걸어가며 느끼고 기록한 개혁의 현장 이야기는 그 뒤를 따라 걸어가려는 모든 순례자를 안내하는 불빛과도 같기 때문이다.
책의 제1부는 프랑스 개신교 위그노(Huguenot)의 이야기이다. 오늘날 프랑스 개신교는 개혁교회와 루터교회의 연합체인 프랑스 개신교 연합교회로서 신자가 약 150만 명(인구의 2-3%)에 불과하다. 파리에 머물던 칼뱅이 개신교에 대한 박해로 인해 탈출한 후 제네바에서 시작한 종교개혁의 불길이 다시 프랑스로 돌아간 것은 1559년 제네바 아카데미에서 훈련받은 프랑스 학생들 때문이었다. 1562년 위그노 전쟁 때만 해도 이미 위그노의 숫자는 200만 명이 넘었다고 전해진다.
프랑스 개신교는 학살의 역사를 견딘 교회이다. 바시(Wassy)의 학살(1562)에서부터 성 바돌로매 축일의 대학살을 거쳐 낭트칙령(1598)에 이르기까지 36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벌어진 종교전쟁의 희생자는 200만 명 이상이다. 나바라의 여왕 잔 달브레의 사망 이후에 위그노는 더욱더 박해를 받았다. 위그노 신앙에서 가톨릭 신앙으로 변경하면서까지 종교적 평화를 이루어보려고 했던 낭트칙령의 주인공 앙리 4세 역시 1610년에 그의 가톨릭 개종을 의심하던 열광주의자의 손에 암살당하고 만다.
특히 대서양 연안에 있는 위그노의 도시 라로셸(La Rochelle)의 처절한 항거의 역사는 책을 읽는 이의 마음을 숙연하게 만든다. 라로셸에서 우리가 만난 개혁자는 신학자나 목회자가 아니라, 한 여성이다. 잔 달브레(Jeannne d’Albret, 1528-72)는 나바라의 왕 앙리 달브레와 프랑스 왕 프랑수아 1세의 누나인 마르가리타 당굴렘의 딸이었다. 1548년에 부르봉 가문의 앙투완과 결혼하여 1553년 훗날 낭트칙령의 주인공인 앙리 4세를 낳은 그녀는 스페인과 국경지대인 베아른 공국을 프로테스탄트 지역으로 만들었고, 라로셸 인구의 절반인 1만 2,000명 정도가 위그노가 된 일과 프랑스 개혁교회의 신앙고백인 ‘라로셀 신앙고백’(1571)에도 영향을 끼친 인물이다.
1598년 낭트칙령으로 프랑스 위그노에게 신앙의 자유가 허락된 것처럼 보였지만, 1620년 위그노의 거점인 베아른 공국은 프랑스 국왕 루이 13세에 의하여 점령되었고, 심지어 1628년에는 라로셸도 프랑스군에게 완전히 항복하고 말았다. 1685년에 이르러서는 낭트칙령의 폐지로 인해 위그노는 프랑스를 떠나야 했다.
저자는 이처럼 아픈 프랑스 위그노의 역사를 직접 찾아가서 보고, 우리에게 생생하게 전해준다. 위그노 예배당의 잔해 위에 덧세워진 가톨릭교회 대성당의 모습은 과거 잔인한 역사를 그대로 보여준다. 종교의 자유를 누리는 오늘, 450년 전 위그노 조상들이 박해 속에서 예배드리던 바로 그 장소에 모이는 소수의 프랑스 프로테스탄트들을 만난 감동은 이 책을 통해 고스란히 우리에게 전달된다.
프랑스 전역에 흩어져 있는 위그노의 유적을 모두 언급할 수는 없지만, 남프랑스 콩스탕스 탑의 감옥은 우리에게 큰 감동을 준다. 1685년 낭트칙령 폐지 이후 1787년 루이 16세의 관용령이 반포되기까지 100여 년의 시기는 위그노들이 극심한 박해를 받은 소위 ‘광야시대’였다. 마리 뒤랑(1711-76)은 프로테스탄트에게는 정말로 가혹했던 그 광야시대에 살았던 인물이다. 19세의 나이에 체포된 마리는 콩스탕스 탑의 감옥에서 57세까지 갇혀 살았다. 자그마치 38년간! 그런 역경 속에서도 마리가 갇혀 있던 감옥의 돌바닥에 새겨진 “저항하라!”(Resister)라는 글귀는 신앙의 자유를 향한 도전과 승리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
는가?
프랑스 프로테스탄트의 삶에서 받은 감동에 이어, 이 책은 제2부에서 우리를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의 종교개혁지로 이끌어간다. 도버 해협을 사이에 둔 두 나라의 종교개혁은 그 시작이나 결과가 사뭇 다른 양상으로 전개되었다. 1534년 영국 왕 헨리 8세의 수장령이 개혁의 시작이라는 옛 주장은 영국 종교개혁의 일반적 상징일 뿐이다. 이미 14세기 중반에 등장한 위클리프의 교회 비판은 널리 알려져 있다. 그의 명성은 프라하의 후스(Jan Hus)에게도 영향을 주었고, 위클리프의 영어 번역 성서는 교회개혁의 기준이 되었다. 그리고 저자는 루터의 독일어 성서에 자극받아 그리스어로 된 신약성서를 영어로 번역한 윌리엄 틴들(William Tyndale, 1494-1536)을 소개하고 있다. 1526년에 출판된 이 성서는 영국 종교개혁의 결정적인 불씨가 되었다.
왕의 신앙에 따라 상황이 뒤바뀌던 영국 종교개혁의 역사에는 가슴 아픈 순교자들의 이야기가 깊은 흔적으로 남아 있다. ‘피의 메리’ 시절, 존 로저스는 런던의 스미스필드에서 자신의 프로테스탄트 설교 때문에 화형을 당했다.(1555. 2.) 저자는 뒤이어 순교한 존 브래드포트, 존 필팟을 포함한 스미스필드의 순교비를 소개한다. 그뿐인가? 옥스퍼드에도 휴 라티머(1555. 10.), 니콜라스 리들리(1555. 10.), 그리고 캔터베리의 대주교 토마스 크랜머(1489-1556)의 순교기념탑이 있다. 옥스퍼드 발리올 칼리지 앞 도로 한복판에 세 사람의 화형 장소가 무심하게 표시되어 있다. 정말로 역사를 모르면 그냥 밟고 지나쳐 갈 만한 표시이다. 신앙의 흔적도 눈여겨보아야 보이는 것인가?
영국 종교개혁의 역사 속에서 반드시 기억해야 할 사건은 청교도 운동이다. 엘리자베스 여왕이 즉위(1558)한 후, 극도로 혼란하던 종교적 상황을 안정시키기 위한 ‘중도의 길’(via media) 선포와 함께 영국국교회가 시작되었다. 하지만 프로테스탄트 정신은 가톨릭교회의 잔재와 동거할 수 없었다. 이 정신이 낳은 사람들을 청교도, 퓨리탄(puritan)이라고 부른다. 그리고 당연히 이들은 비국교도(dissenters)로서 당국의 박해를 받게 되었다. 저자는 케임브리지대학 교수 토머스 카트라이트와 대학의 부총장 존 위트기프트 사이에서 촉발된 논쟁(1570)을 소개하고 있다. 카트라이트는 감독을 중심으로 한 영국국교회의 위계질서 체제는 성서적이지도 않고, 동시에 올바른 개혁교회 전통이 아니라는 점을 강력하게 주장하였다. 종교개혁은 가톨릭에서 분리하는 것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종교개혁은 교회론과 매우 밀접한 관계이기 때문에, 개혁된 교회의 구조를 끊임없이 추구해야 한다. 여기서 우리는 루터의 만인제사장설과 칼뱅의 교회직분 및 제네바 콘시스토리 개혁전통의 실천 현장을 보게 된다.
그러나 제임스 1세(1603-25) 시대에 청교도들은 국교회와 갈등하였고, 메이플라워호를 타고 신대륙으로 건너가는 역사적 사건(1620)의 주인공이 되었다. 다음 국왕인 찰스 1세(1625-49) 통치하의 잉글랜드는 정치적・종교적 갈등이 극에 달하던 시기였다. 왕당파는 찰스 국왕과 국교를 지지하였고, 의회파는 청교도 중심이었다. 이때 활약한 올리버 크롬웰(1599-1658)은 청교도 혁명의 지도자였으며, 찰스 1세를 처형하고 왕정 시대의 막을 내린 인물이다. 이 기간에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1646)이 채택되어 오늘까지 장로교회의 표준 신조로 사용되고 있다.
1660년 다시 찰스 2세가 등극하여 왕정으로의 복고가 이루어지고, 크롬웰은 1661년에 부관참시를 당했다. 이후 영국 비국교도들은 탄압과 투옥의 대상이었는데, 저자는 그중에서 존 번연을 우리에게 소개한다. 그가 쓴 『천로역정』(Pilgrim’s Progress)은 1660년에서 1672년까지 12년간의 투옥 기간에 기록된 책이다. 저자에 따르면 1895년 게일 선교사가 번역한 『천로역정』은 한국 근대 첫 영어번역 소설이라고 한다. 존 번연의 유적지와 함께 소개되는 천로역정 이야기는 개혁교회의 역사뿐만 아니라, 기독교 문학에 관심 있는 독자들에게 흥미로운 대목이다.
개혁교회의 현장 탐방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네덜란드의 레이든 공동체, 필그림이 오랜 항해 끝에 도착한 뉴잉글랜드의 플리머스 공동체, 그리고 잉글랜드와는 또 다른 개혁교회의 유산을 가진 스코틀랜드의 장로교 개혁교회 이야기는 종교개혁의 역사가 여전히 진행형임을 알려준다. 스코틀랜드에서도 존 녹스가 등장하기 전까지 이어진 박해와 순교의 역사는 여전하다. 패트릭 해밀턴, 조지 위셔트의 순교지와 에든버러 세인트 자일스 교회 주차장 23번 바닥에 남겨진 존 녹스의 무덤은 개혁교회 신앙을 일구고 지키기 위한 모든 순교자와 개혁자의 거칠고 고단했던 일생을 그대로 보여준다.
끝나지 않은 개혁교회의 현장을 순례하는 저자의 노고로 이 책이 나왔다. 그 덕분에 영국과 스코틀랜드뿐만 아니라, 우리에게 다소 덜 알려진 프랑스 위그노 개혁 현장에 대한 세간의 관심이 높아질 것으로 확신한다. 특히 발도파의 처절한 개혁신앙 이야기는 작은 목소리로 끈질기게 이어온 개혁교회 전통의 본질을 보는 것 같아 감동적이었다. 저자의 두 번째 종교개혁 현장 탐방기가 독자들을 교육하고 안내하는 일에 성공한 것을 축하한다. 그리고 저자의 다음번 종교개혁 탐방지는 어디일까 기대해본다.

홍지훈 | 연세대학교, 장로회신학대학교를 거쳐 독일 본대학교에서 신학을 공부하여 박사학위를 받았다. 한국교회사학회 회장과 한국루터학회 회장을 역임하였다. 현재 호남신학대학교 역사신학 교수로 재직 중이다.

 
 
 

2018년 7월호(통권 71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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