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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한국적 찬송가란 무엇인가
우리는 한국적인 찬송가를 말할 때 흔히 5음 음계의 멜로디를 가진 찬송가를 생각한다. 즉 서양의 7음 음계가 아닌 우리나라 전통적인 5음 음계의 멜로디를 사용하여 찬송가를 만들면 이것을 토착 찬송가 또는 한국적 찬송가라고 부르는 것이다. 물론 찬송가의 멜로디를 우리 전통음악에서 찾는 것은 찬송가의 한국화에 매우 중요한 작업일 수 있다.
그러나 찬송가는 곡이 먼저가 아니라 가사가 먼저이다. 즉 찬송시에 멜로디의 옷을 입힌 것이 찬송가이다. 그러므로 한국적인 찬송가를 정의하려면 우선 가사부터 살펴야 한다. 가사가 한국적이라는 의미는 무엇일까? 한글로 된 가사로 부르면 모두 한국적인 찬송가인가? 그렇지 않다.
찬송가가 한국적이 되려면 가사에 한국적인 흔적이 있어야 한다. 즉 한국교회가 걸어온 삶의 발자취와 흔적이 가사에 반영되어 있어야 비로소 한국적인 찬송가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한국교회는 이제 130년이 되었고, 수없이 많은 역사의 발자취와 삶의 흔적을 남겼다. 한국의 찬송가는 이것들을 가사에 주워 담고 표현해야 한다. 즉 찬송가의 가사만 모아보면 한국교회사가 한눈에 읽혀져야 한다. 한국교회의 130년 역사 속에서 일어난 크고 작은 사건들과 역사의 매듭이 찬송가 가사와 곡조에 반영되어 있어야 비로소 한국적인 찬송가, 토착 찬송가가 되는 것이다.
2. 삼일절 찬송가도 없고, 광복절 찬송가도 없다
이런 관점에서 한국교회의 찬송가를 분석해보면, 우리나라에는 아직도 한국적인 찬송가가 만들어지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찬송가의 한국화를 위한 지금까지의 노력이란 결국 찬송가의 멜로디나 리듬을 한국식으로 해보려는 시도가 전부였다고 보아도 과언이 아니다. 현행 찬송가도 마찬가지다. 한국인 작사자와 작곡자의 작품을 많이 넣었다고는 하지만, 가사에서 한국적인 면모를 발견하기란 쉽지 않다.
이 찬송가를 가지고 삼일운동 기념예배 때 무슨 노래를 부를 수 있을까? 삼일운동이야말로 한국교회의 자랑스러운 역사적 사건임에도 불구하고, 찬송가에는 삼일운동에 대한 구체적이고 확실한 가사를 동반한 곡이 없기에 엉뚱한 역사에서 파생된 외국 찬송을 부를 수밖에 없는 형편이다. <뜻 없이 무릎 꿇는 그 복종 아니요>(460장)든지, <어느 민족 누구게나 결단할 때 있나니>(586장) 등은 우리 삼일운동을 위한 찬송가는 아니지 않는가? 삼일운동 100주년이 되도록 한국교회는 무엇을 했단 말인가?
또한 광복절이야말로 한국교회의 간절한 열망이었고, 하나님의 역사라고 매년 설교하고 기념하지만, 정작 광복절을 위한 찬송가는 없다. 한국교회의 신앙고백으로서의 광복절 찬송가가 없기에 우리는 엉뚱한 외국 노래를 광복절마다 부르고 있으며, 여기에 대한 죄책감이나 부끄러움이 없는 것은 크게 반성할 일이라고 생각된다.
광복절을 위한 찬송가를 단 한 곡도 만들지 못하고, 아무 관련도 없는 <시온의 영광이 빛나는 아침>(550장)이나 <내 주는 강한 성이요>(585장) 같은 외국 찬송가를 부르는 한국교회가 몇 만 명이 모이면 무엇하고, 몇 백 억의 예산을 자랑한들 무슨 소용이 있을까? 광복 70주년을 넘기도록 한국교회는 어디에 관심을 두고 살았는가?
3. 1909년의 <백만명구령가>의 중요성
이처럼 한국교회 찬송가의 현주소는 역사의식의 빈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몇 개의 찬송가가 한국교회사의 중요한 사건들을 기념하고 있어서 눈길을 끈다. 그중 첫 번째는 1909년의 <백만명구령가>이다. 이 노래는 공인된 찬송가인 1909년의 『찬숑가』 267장에 <백만 명 구원하기를 간구함>이라는 제목으로 실려 있다. 이는 1907년 대부흥운동의 결과로 1909년에 일어난 또 다른 부흥운동을 기념하는 노래였다.
한국교회는 1907년을 전후로 모두 세 차례의 부흥운동을 경험하였다. 1903년의 ‘원산부흥운동’, 1907년의 ‘평양대부흥운동’, 1909년의 ‘백만명구령운동(百萬名救靈運動)’이 그것이다. 그중에서 1907년의 평양대부흥운동이 정점에 있으며, 1903년의 원산부흥운동은 그 서막이라 할 수 있고, 1909년의 백만명구령운동은 그 열매로 볼 수 있다. 1907년 1월 14-15일에 평양 장대현교회에서 있었던 겨울 남자사경회에서 일어난 회개운동은 부흥운동으로 이어지면서 평양은 물론 전국적인 회개와 부흥운동으로 번졌다. 그해 내내 조선의 교회들은 성령의 불길 속에서 쓰러져가는 나라를 위한 회개와 교회부흥을 위한 열기로 가득하였다.
1907년 평양 장대현교회에서 시작된 회개와 부흥운동은 한국교회의 부흥의 열기를 고조시켜 1909년의 ‘백만명구령운동’으로까지 이어졌다. 이 백만명구령운동은 당시 인구 약 1,300만 명과 기독교인 20만 명일 때 전개한 운동이었다.
이 운동은 처음에 ‘새신자 5만 명’을 위한 기도회로 시작되었다. 그리고 당시 조선 땅에 와서 황해도 개성에서 선교하던 미국 남감리교의 스톡스(M. B. Stokes), 갬블(F. K. Gamble), 리드(W. T. Reid) 선교사가 주도한 9월의 감리교 서울 선교사대회에서 “20만 명의 심령들을 그리스도에게”라는 선교 표어가 채택되었다. 이어 개최된 초교파적 복음주의선교회 통합공의회에서는 “백만 명을 그리스도에게로”라고 확대된 표어가 등장하였다. 이에 따라 복음주의연합공의회는 백만명구령운동을 전개하였는데, 한국의 길선주 목사를 비롯하여 선교사들이 앞장서서 1년 동안 전국의 교회를 돌며 순회 부흥회를 개최하였다. ‘백만명구령운동’은 큰 결실을 보지 못하였고, 늘어난 교인 수는 고작 1-2만 명에 불과하였다. 그러나 이는 한일 강제합병에 따른 혼란한 나라 정세의 결과라고 보아야 한다. 교인 수는 미미하게 늘었지만, 이 운동의 결과로 백만 명 이상이 복음을 들었고 전도를 받았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1909년의 부흥운동이 특히 중요한 점은 이를 기념하는 찬송가를 남겼다는 것이다. 이것은 최초로 한국교회사를 찬송가에 담은 선례이므로 아주 중요하다. 1909년 ‘백만명구령운동’은 “백만 명을 그리스도에게”라는 표어와 함께 시작되었고, 이를 기념하고 활성화하기 위하여 <백만 명 구원하기를 간구함>이라는 주제 찬송가를 탄생시켰다. 이 찬송가는 1909년에 발행된 공인찬송가인 『찬숑가』 267장에 수록되었으며, 집회 때마다 따로 인쇄되기도 하였다. 이 찬송은 당시 체프만(J. W. Chapman)과 알렉산더(C. M. Alexander) 선교사를 따라 한국에 온 로버트 하크네스(R. Harkness, 1880-1961)가 작사, 작곡한 것으로 모든 교회에서 전도를 위한 집회가 열릴 때마다 불렸다.
4. <백만명구령가>의 가사
원래 이 찬송가는 하크네스 선교사가 영어 가사를 먼저 붙였고 그것을 다시 한국말로 번역한 것이다. 원래 가사인 ‘백만 영혼을 예수께로’(A Million Souls for Jesus)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1) 영어 가사
1. A Million souls for Jesus! / Lord, this can surely be / A Million souls for Jesus! / This not too much for Thee. / Is not Thy Word pow’ful / To touch the sinful heart? / Is not the spirit willing / The word of Life
t’impart?
(CHORUS) A Million souls for Jesus! / Lord, grant our heart’s desire! / A Million souls for Jesus! / Lord, spread the Gospel fire.
2. A Million souls for Jesus! / In this dark land of sin. / A Million souls for Jesus! / Lord now the work begin! / Make us Thy servants willing / Thy blessed will to do / Give us Thy Holy Spirit, / Fill us with power a new.
3. A Million souls for Jesus! / Sound out the watch word true / A Million souls for Jesus! / The work of God to do. / Korea’s cry is mighty, / But God is mightier far / No band of evil forces / His purposes’ can mar.
2) 『찬숑가』의 가사
이와 같이 영어로 된 가사를 우리말로 옮긴 것이 위 악보의 가사인데, 이를 현대 국어 문법에 맞추어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1. 금년에 백만 명을 / 구원해주소서 / 금년에 백만 명은 과하지 않으며 / 능하신 도(道) 족하여 죄인을 구하니 / 그 도를 성령께서 깨닫게 하소서
(후렴) 금년에 백만 명을 / 구원해주소서 / 참 도를 온 대한에 퍼지게 하소서
2. 금년에 백만 명을 / 이 어둔 지방에 / 주 피로 구원함을 / 곧 얻게 하소서 / 그 일꾼 감화하고 할 마음 주시고 / 성령의 권능받아 / 힘쓰게 하소서
3. 금년에 백만 명을 / 주께로 청하세 / 금년에 백만 명은 주 일꾼 될 잘세 / 인력은 부족하나 주 전능하시니 / 온 마귀 합력해도 / 주 뜻을 못 막네
3) 손승용의 가사
이 <백만명구령가>의 가사는 공식적인 찬송가였던 『찬숑가』에 실린 가사로 교회에서 불렸지만, 이와 다른 번역본이 손승용 목사에 의해 만들어졌다. 손승용은 「독립신문」의 기자를 지냈고, 인천 영화학교 교사로 재직하였다. 그리고 신학을 공부한 후 1905년 제물포교회, 잠두교회에서 시무하였고, 영화학교, 제일합일학교 등의 교장을 맡기도 하였다.
그의 창가집에는 붓글씨로 쓴 <백만명구령가> 번역 가사가 들어 있는데, 이는 UCLA 교수인 옥성득 목사가 인천 영화여자정보학교 교사 이성진으로부터 받은 손승용의 유품에서 발견한 것으로 다음과 같다.
이 가사는 곡과 장단 고저가 잘 맞지 않아 부르기가 무척 어렵게 되어 있으므로 널리 퍼지지 않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백만명구령가>의 또 다른 해석이므로 흥미롭다. 옥성득이 현대 국어로 번역한 가사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1. 삼천여 리 강산 우리 대한국에 / 죄에 빠진 동포 가련하구나
그리스도 왕의 봉명(奉命) 사신 된 자 / 백만 명 구하려 나아갑시다
(후렴) 나아갑시다 나아갑시다 / 백만 명 구하려 나아갑시다
2. 사면진(四面陣)을 벌인 원수 마귀 손에 / 사로잡힌 동포 구원해보세
우리 대장 예수 선봉 되었으니 / 백만 명 구하려 나아갑시다
3. 우리 형제자매 일심 단체하여 / 성신 보검 들고 힘써 싸우세
퇴보하지 말고 용맹 전진하며 / 백만 명 구하려 나아갑시다
4. 열심으로 나가 전도하는 이들 / 천당 영광 중에 면류관 쓰고
할렐루야 찬송 기뻐할 것이니 / 백만 명 구하려 나아갑시다
5. 한국교회 찬송가의 남은 과제
한국교회는 이제 <백만명구령가>의 선례를 기초로 하여 130년 한국교회사의 사건들과 인물들의 발자취를 발굴하고 기념하는 찬송가를 만들어야 한다. 길선주로부터 시작하여 이기풍, 김익두, 이성봉, 최권능, 주기철, 손양원, 한경직, 송창근, 김재준 등 수많은 한국교회 역사를 빛낸 인물에 대한 찬송 가사를 만들고 곡을 붙여 한국적인 찬송가의 자산을 풍요롭게 해야 한다. 또한 토마스, 언더우드, 아펜젤러 등의 선교사들의 발자취와 학교 설립, 병원 설립의 사건, 일제강점기의 사건들인 105인 사건, 삼일운동, 신사참배, 창씨개명, 광복절, 그리고 해방 이후의 교회 역사를 찬송가로 조명하고 정리해야 한다. 그리고 각 지방별로 독특한 교회 역사가 찬송가로 만들어져야 한다. 가령 제암리 사건이나 제주 4·3사건 등의 노래들이 이에 포함된다.
이러한 가사 위에 한국 가락을 입히고 한국 악기로 불려야 한다. 우리의 역사가 우리 가락을 타고 한국교회 교인들의 입에서 불리면서 한국교회의 역사를 배우고 체험하도록 해야 한다. 그리고 전 세계 교회에 자랑스러운 한국교회 역사와 인물을 알려야 한다. 이것이 진정한 토착적 한국 찬송가이고 한국적인 교회의 노래임을 명심해야 한다.
문성모 | 독일 뮌스터대학(Westfälische Wilhelms-Universität Münster)에서 예배학을, 오스나브뤼크대학(Universität Osnabrück)에서 음악학을 연구(Dr. Phil.)했다. 대전신학대학교와 서울장신대학교 총장을 역임했으며, 현재 평택대학교 초빙 교수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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