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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me > 기독교사상 > 특집 > [한국교회 에큐메니컬 운동의 미래]
특집 (2022년 12월호)

 

  2022년 현재, 기독청년들의 에큐메니컬 운동을 본 적이 있는가
  

본문

 

파국의 역사를 돌파한 시대

한국기독학생회총연맹(이하 KSCF)과 한국기독청년협의회(이하 EYCK)는 한국 청년들의 에큐메니컬 운동을 대표하는 단체이다.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면 이 두 단체는 명실공히 한국 에큐메니컬 운동의 산실이었다. 1960-80년대에는 학생들과 청년들이 에큐메니컬 운동을 견인했다. 그뿐인가. 당시 기독청년들은 한국 민주화와 인권 운동, 그리고 통일 운동의 효시이기도 했다. 시작에는 그들이 있었다. 이를 부정할 에큐메니스트는 없을 것이다.
1948년에 시작된 KSCF의 역사는 찬란하다. 5·16 군사쿠데타로 인한 엄혹한 상황에서부터 전태일 분신으로 인한 각성, 군사독재의 극악을 보여준 5·18 광주민주화운동에 애통해하고, 1987년 민주항쟁으로까지 이어지는 굵직한 학원민주화투쟁은 KSCF를 빼놓고 이야기할 수 없다. 1974년 긴급조치4호로 민청학련(전국민주청년학생총연맹) 사건을 포함한 여러 핍박과 탄압이 있었지만, 시대와 역사를 관통하면서 걸출한 인물들이 등장했고, 도시산업선교와 농촌 활동으로 새로운 인물들도 길러냈다. 이들은 교계뿐만 아니라 재야에서도 통하는 인물들이었다. 그 명맥은 1997년 외환위기를 겪으면서 한풀 꺾이는 듯했지만, 평화통일을 새로운 의제로 삼으면서 기독학생 운동의 명맥을 이어갔다.
교회 내 에큐메니컬 운동의 필요성을 인식하고 개교회와 교회연합회로 이 운동을 확산시키던 1970년 초반, ‘남산 부활절 삐라’ 사건과 이듬해 긴급조치4호로 인한 민청학련 사건으로 교회의 청년연합 운동은 그야말로 초토화되었다. 유신헌법 반대 등 시대적 요구가 다시 한번 빗발칠 때쯤 새로운 연합 운동이 요청되었고, 1976년에 EYCK가 시작되었다. EYCK는 교회 내 에큐메니컬 운동의 확산 및 교회갱신 운동과 더불어 사회선교의 인식을 확산시키기 위해 교단별(NCCK 가맹 교단 중심) 기독청년 에큐메니컬 운동을 전개했다. 특별히 KSCF가 농촌 사회에 주목한 것과 마찬가지로, EYCK는 농촌 교회와 연합하며 기독청년 에큐메니컬 운동과 사회선교의 인식을 확대해갔다. 농촌 활동은 비단 농촌 지역의 계몽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EYCK 기독청년 활동가들의 교육과 정체성을 확립하는 계기가 되었다. 당시 각 교단 연합회에서 운영하는 신선한 교육과 각종 프로그램은 대학생들과 교회 청년들의 마음을 움직였다. 또한 에큐메니컬 운동과 문화가 결합되어 전국의 교회 청년들을 매료시켰다. 1987년 이후에는 지역 EYCK가 생겨나고, 그들 스스로 개교회를 넘어 각 교단 청년연합회가 청년 에큐메니컬 운동에 대해서 고민하게 되었다. 그곳에는 청년들이 있었고, 그곳에서는 새로운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KSCF와 EYCK는 국내 네크워크에만 의존하지 않았다. 이들은 해외 네트워크로 연결될 수 있었고, 이들에게는 한국의 여러 쟁점과 의제를 해외에 소개할 수 있는 기회가 많았다. 해외 네트워크야말로 기독청년들에게 매력적으로 다가오기에 충분했다. 특별히 KSCF는, 아시아는 물론 전 세계의 기독학생과 연결될 수 있었다. 엄혹한 상황일수록, 기독학생들은 더 활발하게 해외로 한국의 참상을 고발하고 알렸다. 모순적이게도 이와 같은 고난의 상황으로 말미암아 해외 모금이 확장되고 증가하였으며, 해외 프로그램에 참석한 소수의 참가자들은 새로운 에큐메니컬 운동의 활로를 개척할 수 있었다. 해외 모금과 해외 프로그램은 국내의 기독청년들에게 새로운 배움을 넘어 새로운 기회를 만들어준 계기가 되었다.
파국의 역사에서도 기독청년들이 1970-80년대를 버티고 버티면서 자존감을 잃지 않았던 연유는 바로 많은 해외 네트워크에서 전해지는 물심양면의 응원과 연대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곳에는 소위 ‘돈’이 있었고, ‘기회’가 있었으며, 자아실현을 위한 ‘장소’가 있었다. 그런 청년 에큐메니컬 운동은 회원들에게 마음과 정서적 시야를 넓혀준 것은 물론이거니와 마음만 먹으면 민주화 운동이든, 교육 운동이든, 인권 운동이든, 통일 운동이든 어떠한 내용을 채워도 무방한 유연한 운동이었다. 모든 것을 담아낼 수 있는, 여유가 많은 운동이었으며, 구성원들의 희생과 헌신은 값지고 아름다웠다.
그러나 KSCF와 EYCK로 대변되는 기독청년 운동은 1990년대 말 이후 급격한 내리막길을 걷게 되었다. 이 급격한 축소는 한국교회를 당혹스럽게 했고, 2022년 현재 한국 기독청년들은 똑같은 자리에서 그 좁아진 터를 밟고 위태롭게 서 있다.

2022년 기독청년 에큐메니컬 운동의 자리: 유산이 없다

필자는 EYCK에서 활동을 시작한 2007년부터 기독청년 운동의 찬란한 역사를 수없이 들었다. 불과 30년 전만 해도 ‘홍길동’ 같은 뛰어난 인물이 여럿 존재했다고들 한다. 걸출한 홍길동뿐만 아니라 그 주변의 면면도 화려하고 찬연했다. 군부독재라는 폭압이 강할수록 반작용도 강해져 그 시대는 그야말로 눈부셨다. 많은 방해와 탄압에도 불구하고 청년들이 모였다. 전국대회를 하거나 연합수련회를 하면 1,000명 이상이 모였다고들 한다.
반면 2022년 오늘날의 현실은 당시의 10분의 1조차 모이기 힘들 정도로 초라하다. 30-40년 전의 기필코 버티겠다는 각오와 신앙고백이 기어이 공동체의 명맥을 잇고자 하는 발버둥과 씁쓸한 몸부림으로 변해버렸다. 이뿐인가. 각 교단 전국연합회의 임원들을 세우기조차 버거울 정도이니, 이 운동체를 유지하는 일에만도 많은 에너지를 투여해야 한다. 과거의 화려하고 찬연한 영광에 비하면, 현재의 조직들은 비교 자체가 불가능할 정도로 처참하다. 폐허에 가깝다.
감히 말하건대 2022년의 현실을 놓고 진단을 내릴 때, 에큐메니컬 청년 운동은 ‘실패’로 단정할 수 있다. 보통의 실패는 다시금 재도전하면 그만이지만 기독청년 에큐메니컬 운동의 실패는 그리 가볍게 인식하고 받아들일 문제가 아니다. 그 ‘실패’가 재도전이나 재도약을 위한 웅크림이 아니라, 현재의 기독청년 활동가들에게는 생존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기묘한 일이 아닌가? 한 세대를 풍미한 그 많던 기독청년들은 왜 2022년에 모이지 않는 것인가?
현재의 청년 에큐메니컬 운동의 쇠퇴 원인에 대한 현실 진단을 아래와 같이 볼 수 있다면, 면죄부가 주어질 수 있을까? 1997년 IMF 외환위기 이후 우리 사회가 급속도로 신자유주의 경제 질서에 편입되면서 노동시장이 유연화되고, 무한경쟁 구도가 정교해졌으며, 공동체가 무너졌기 때문에 우리들의 운동이 급격히 무너진 것인가? 아니면 오늘날 MZ세대가 철저하게 개인화되었기 때문에, 혹은 세대의 간극을 극복할 수 없어서 급격히 무너진 것인가? 오늘날 한국의 대형 교회들마저도 변화를 꾀하고 시대에 적응하려 안간힘을 쓴다. 이 모든 것을 시대적 문제로만 여기거나 청년 에큐메니컬 운동의 쇠퇴 이유로만 꼬집기에는, 존재 기반 자체가 허물어지는 상황까지 와버렸다. 결국 한국 청년 에큐메니컬 운동은 외딴섬이 되어버렸다. 생기 자체를 잃었다. 그 진짜 이유는 무엇일까?
찬란했던 과거와 미약한 현재를 이을 수 있는 유일한 연결고리는 ‘유산’이다. 현재 청년 에큐메니컬 운동의 자리에 그 ‘유산’이 존재하는가? 안타깝게도 현재 우리에게 남은 유산은 없다. 정신적 가치이든, 물질적 가치이든 그 유산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2022년 현재, 기독청년 에큐메니컬 운동에서 과거의 성공은 현재의 성공과 연결되지 않는다. 과거의 족적은 현재의 발걸음이 아니다. 과거의 운동은 현재의 물결이 될 수 없다. 과거의 찬연함이 오늘날의 찬연함이 될 수 없다. 속상하게도 많은 이들의 노력과 헌신의 결과가 현재 남아 있지 않다. 과거 ‘고군분투’의 의미와 현재 ‘고군분투’의 의미는 하늘과 땅 차이이다. 군부독재하의 고군분투는 독립지사를 연상시키는 반면, 오늘날의 고군분투는 생존 게임인 것이다. 오늘날 청년 에큐메니컬 운동은 생존이 그 목표가 되었다. 청년 단체들은 매해 조직의 생존을 판가름해야 한다. 기존 EYCK와 KSCF의 임원들은 평신도 청년들이었다. 그런데 지금 평신도 기독청년은 언감생심, 신학생 청년들도 만나기 어려울뿐더러, 한 해 한 해가 지날수록 임원들조차도 세우기 버거운 상황이 되었다. 그야말로 생존이다. 청년 단체의 특성상 1년 단위로 지도력이 교체된다. 공동체 내에 많은 청년이 있는 경우 잦은 지도력 교체는 역동적인 변화로 인식되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에는 그야말로 생존의 문제와 직결된다. 생존은 그 자체로 삶의 의지를 확인하는 것만으로도 최선이다. 그러니 현재 기독청년 활동가들이나 임원들에게 매해 삶의 의지를 확인하는 것이 중요하다. 삶의 의지는 바로 나 자신이 이 단체의 생존을 책임질 수 있는지에 대한 생존 의지의 다른 말이다.
현재의 젊은 에큐메니스트들에게 승계할 유산이 없다는 것은 참으로 서글픈 일이다. 과거의 유산은 버팀목이 되며, 숭고한 동기가 되기도 한다. 그러나 더 나아가면 과거의 유산은 극복해야 할 목표가 되기도 하고, 변주하거나 변형할 수 있는 좋은 틀거리와 재창조의 명분이 되기도 한다. 유산에는 사람을 이끄는 서사가 있고 매력이 있다. 유산은 청년들을 모을 수 있는 좋은 토대가 되기도 한다. 유산이 없는 청년 에큐메니컬 운동에는 헌신할 만한 그 무엇이 존재하지 않는다. 이것이 운동의 급격한 쇠퇴로 나타났다.
청년 에큐메니컬 운동에 헌신하게 하는 그 무엇이 없다. 그 무엇은 바로 소명이다. 소명은 생존경쟁으로 내모는 오늘날의 사회 속에서 버틸 수 있는 힘이며, 신앙의 샘물이다. 그 소명은 유산을 통해서 발견할 수 있다. 유산을 계승할 때, 그 뜨거운 무엇을 발견할 수 있다. 비록 과거의 화려하고 찬연한 공동체가 아닐지라도, 심지어 많은 사람이 모이지 않더라도 유산의 전승이야말로 시대의 소외와 세대의 간극을 극복할 열쇠라고 믿는다. 그러나 계승되어야 할 그 유산은 현재 존재하지 않는다. 그것이 정신이 되었든, 물질이 되었든 말이다.

‘실패’는 끝이다

‘실패’는 다시금 도전할 공간을 선물한다. ‘실패’는 ‘정-반-합’의 ‘합’으로 가는 길목일 수 있다. 실패를 벗어나 반전을 만드는 과정은 괴롭지만 받아들여야 하고, 그만큼의 노력도 필요하다. 이 모든 것은 실패를 긍정적으로 볼 때 할 수 있는 말이다. 공동체가 실패를 능동적으로 돌파할 힘이 있다면 실패는 자양분이 되고 다시 한번 나아갈 수 있는 기회가 된다. 그러나 실패할 ‘기회’조차 없다면, 실패가 끝이라면, 그 공동체는 절망적이다. 2022년의 청년 에큐메니컬 운동의 자리는 실패를 더 이상 긍정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기회가 없고, 그럴 여유조차 없다.
무엇보다 뼈아프게 다가오는 것은 ‘사람’에 대한 실패이다. 사람의 실패는 현재의 청년 에큐메니컬 운동에서 공동체의 생사를 좌우할 중요한 문제가 되어버렸다. 과거처럼 많은 청년들이 공동체에 존재한다면 여러 가능성을 놓고 조직의 미래를 판가름할 수 있겠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사람-선택권’이 없는 공동체는 생존을 선택한다. ‘사람’을 세우는 문제는 바로 공동체의 생사로 연결된다. 사람-실패는 곧 끝이다. 청년이 사라진 청년 에큐메니컬 운동은 종료 버튼을 만지작거리고 있다. 그렇다고 종료 버튼조차 스스로 누르지 못한다.
기회가 많았던 과거에는 청년들이 몰렸다. 그러니 콘텐츠가 넘쳐났고, 역동적이고 진취적이었다. 그 기회를 잡은 이들은 개인적 영광까지 이루기도 했다. 많은 시련과 탄압이 있었지만 그만큼 큰 성과를 이룬 여러 ‘홍길동’이 있었고, 그들을 존경할 수 있었다. 그러나 걸출한 인물들이 올라간 그 많던 상승 사다리는 지금 없다. 그 사다리는 그 시대와 요구가 만들어낸 사다리임은 분명하다.
물론 그들이 사다리를 걷어찬 것은 아니다. 1987년 민주화 이후 자연스럽게 국격이 격상되고, 각종 시민단체가 등장하고 세분화되었으며, 각 분야의 전문화가 이루어졌다. 그렇게 그 사다리들은 현재 기독청년 활동가들이나 청년 에큐메니스트들이 올라갈 수 없는 사다리가 되었다. 한국 에큐메니컬 운동이 1970-80년대 얻었던 소중한 기회를, 이제는 에큐메니컬 정신으로 분쟁 지역이나 민주화 운동 중인 타국가들에 양보해야만 하는 사다리가 되었기에, 현재 기독청년 활동가들에게는 그러한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는다. 이런 상황이라면 현재 기독청년들에게 걸맞는 사다리를 새롭게 만들어야 하고, 각 시대에 맞는 사다리를 다양한 용도로 만들어야 했지만, 어느 누구도 이 문제를 신경 쓰지 않았다. 청년 에큐메니컬 운동의 지속성과 계속성을 생각하지 않은 것이다. 해외 지원을 벗어나 자생하거나 자립할 수 있는 대안을 어느 누구도 고민하지 않았다. 너무나 안타까운 일이다. 결국 본의 아니게 몇몇 출세가도를 달린 이들과 불세출의 몇몇 인물들이 사다리를 걷어찬 꼴이 되었다. 적어도 그다음 사다리를 만들 책임은 도의적으로 있었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 후폭풍은 거셌고 결국 사람은 사라졌다. 무언가를 할 수 있는 찬연한 세대에서, 무엇 하나 제대로 할 수 없는 창연한 세대가 되었다.
실패할 ‘기회’조차 없는 공동체에 희망이 있는가? 현재 청년 에큐메니컬 운동에서 실패는 곧 좌절이라는 등식이 성립된 지 오래이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대면 모임은 위축되었고, 더 이상 기존의 방식으로는 희망이 없다는 것을 현장에서 대부분 체감하고 있다. 변화하는 시대의 벽 앞에서 ‘실패’할 기회조차 없다면, 어떤 선택지가 남을까? 곧바로 냉소와 허무가 밀려온다. 그러니 구성원들은 하루라도 빨리 떠나는 것이 상책이라고 느낀다. 청년 에큐메니컬 운동에 헌신한 이후, 인생의 청사진이 보이지 않는 것이다.
기독청년 활동가들이 자리를 떠나는 것은 좌절을 경험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더 이상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상실감에서 오는 것이기도 하다. 그렇다고 떠난 이들을 다시 붙잡을 수는 없다. 희생을 강요하기에는 최저시급에도 한참 못 미치는 처우를 감당해야 하는 녹록지 않은 현실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들의 상실을 채우거나 만회할 수 있는 반전의 순간조차 찾아볼 수 없기 때문이다.
한국 에큐메니컬 운동 전체를 바라볼 때도 별반 다르지 않다. 실패는 곧 공동체의 ‘리셋’을 누르게 하지만, 그마저도 사람이 있을 때나 가능한 소리이다. 생존 투쟁을 하는 이들에게 실패는 곧 끝이다. 이런 상황까지 왔다는 것은 그 공동체에 희망이 없다는 반증이며, 이제는 회생 가능성을 물어야 한다. 계속 버틸 재간이 있는지 솔직하게 물어야 한다.

한국 에큐메니컬 운동과 기독청년

파국의 시대를 돌파해온 과거의 길과 현재 에큐메니컬 청년 운동이 걷는 길은 돌파할 방법과 버티는 방식이 다를 뿐 사실 동일한 길이다. 단언하건대 같은 방법일 수는 없다. 과거의 운동과 지금의 운동은 문제를 해결하는 데 필요한 시간도 다르고, 쟁점이나 의제를 소화하는 능력도 다르며, 대상도 다르다. 의제가 다양해졌고, 문제가 실타래처럼 엉켜 복잡하다.
이에 더해 ‘청년’ 자체가 특수하게 다뤄지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청년 이슈’를 직접적으로 주목했고, 청년이 스스로 자신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것이 필요했다. 즉 청년의 당사자성이 중요해지고, 이 목소리에 대한민국 사회뿐만 아니라 한국교회도 귀 기울이기 시작했다. 이와 더불어 교회 안팎으로 청년 이슈가 사회문제로 대두되었고, 한국교회 내 청년 이슈는 교회의 지속성과 연결되는 의제가 되었다. 그러니 과거 청년 에큐메니컬 운동이 민주화 투쟁과 평화통일 운동으로 대변되는 큰 의제로 운동을 이끌었다면, 현재 청년 에큐메니컬 운동은 청년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부문 운동과, 기독청년들에게 시대의 요구와 소명을 이해시키고 대의를 위한 운동에 이들을 참여시켜야 하는 중차대한 임무까지 도맡아 소화해야 한다. 또한 기독청년의 정체성을 갖고 현재의 교회 및 에큐메니컬 운동의 쇠퇴 원인을 파악하는 동시에 현 세대의 역할을 충실히 이행하면서, 기존 세대와 대립각을 세우며 대안까지 만들어가야 하는 어려운 과제가 주어져 있다.
이렇게 청년운동은 부문 운동이 되었다. 다양한 의제에서 청년의 목소리를 찾고 개발해야 한다. 대의라는 큰 우산 아래 있을지라도 청년만의 목소리를 내야 한다. 이것은 청년을 배려하거나 청년의 자리를 담보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지극히 현실적인 이유이다. 바로 30년 전에 운동을 이끌어온 이들이 여전히 ‘대의’라는 우산 아래서 한국 에큐메니컬 운동을 이끌고 있기 때문이다. 청년의 목소리나 운동의 지향성은 일정 부분 강요된 측면이 있다. 분명 시간은 흘렀지만, 사람이 바뀌지 않는다. 과거에는 청년들이 주도적이었지만, 현재 청년은 보조적인 역할만을 강요받는다. 교단 내에서부터 세계교회협의회에 이르기까지 청년을 위한 자리와 공간은 주변부로 밀려나 있다. 과거의 청년 학생들은 바깥의 거대한 적과 투쟁하며 길들여짐을 거부했다면, 현재의 청년들은 외부의 적뿐만 아니라 자신의 공간을 쟁취하기 위해서 내부의 기득권과 투쟁하며 길들여짐을 거부해야 하는 상황에 놓여 있다.
한국 에큐메니컬 진영은 다양한 의제를 담기에는 현실적으로 그 공간이 많이 협소해졌고, 그 내용도 사라졌다. 보수화된 개신교의 토양에서 다양성을 담보하기란 여간 쉽지 않다. 그렇다면 세대나 젠더의 다양성이라도 담보해야 하지만 이조차도 어렵다. ‘기독청년’을 다음 세대로 명명하며 ‘청년’으로서의 역할에만 치중하게 만들어 운동의 체면치레만 하는 정도이다. ‘청년’이라는 구호만 존재하고 ‘청년’이라는 의제는 사라진 지 오래이다. 청년을 ‘미래’ 세대로 치부하지만, 청년들이 ‘현재’의 지도력으로 성장하지 않는 이상 미래는 없다. 이제부터라도 청년 지도력을 키우지 않는다면, 한국 에큐메니컬의 미래는 암울하다. 이대로라면 의제는 더 단순화될 것이며, 논의가 직선적이게 됨은 물론 협의회라는 매력은 사라지고 외딴섬처럼 존재하게 될 것이다. 이 징조는 이미 청년 에큐메니컬 운동의 급격한 쇠퇴로부터 시작되었고, 이제는 더욱 노골적으로 드러나기 시작했다. 한국 에큐메니컬 운동이 이 상황을 돌파하지 못한다면, 극우화된 한국 개신교 문화의 늪에서 빠져나오지 못할 것이 뻔하다. 감히 말하건대, 기존 세대들에 대한 ‘기대’는 사라졌다. 이들에게 ‘내용’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내용이 사라졌다는 것은 에큐메니컬의 가치가 변질되거나 더 이상 기독청년들에게 ‘의미’가 없어졌다는 말이다.

같은 길일지라도 같은 방법은 없다

폐허의 자리에서, 절망만이 들려오는 자리에서, 소수이지만 여전히 청년 에큐메니컬 운동을 위해 버티고 있는 기독청년들이 있다. 이들은 ‘에큐메니컬’이라는 같은 길은 걷고 있지만, 과거의 방식으로, 동일한 방법으로 운동을 이끌지 않는다. 비록 절망적인 자리에서 희망은 언감생심이라도 ‘죽지 않았음’을 당당하게 말할 수 있다. 현재 청년 에큐메니컬 운동에는 의제가 있고, 그들만의 목소리가 있다. 부문 운동으로서의 한계를 지니기도 하지만 부문 운동으로서의 한계를 돌파할 지점들이 눈에 드러나기 시작했다. 비록 미미하지만 우리들만의 방식과 방법을 찾아가고 있다.
예전과는 다르게 지금의 기독청년들은 한국 개신교 문화의 영향을 받고 자랐고, 그 문화에 반(反)하여 뛰쳐나왔다. 이들은 기존의 공고한 개신교 문화라는 거대한 벽을 경험했다. 개신교는 날로 극우 성향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혐오와 차별을 조장한다. 이들은 대중에게 이익집단으로 비치기도 하고, 광적인 종교집단으로 비치기도 한다. 사회적 냉소를 당해낼 재간이 없어 보이기도 하지만, 이들이 청년 에큐메니컬 운동에 헌신하는 것은 교회갱신과 사회변화에 대한 꿈이 있기 때문이다.
현재 여기저기서 터져 나오는 이슈들은 청년 에큐메니스트들에게는 택일의 문제가 아니라, 자신들의 의제이다. 이 의제에 답할 선교적 사명과 신앙적으로 응답할 의무가 있다. 외면할 수 없는 시대적 요구이다. 그 의제들이 아직 시기상조라느니, 현실적이지 못하다느니 하는 충고와 조언은 논란이 된 의제의 가치와 맥락을 파악하지 못한 무지이다. 이 새로운 의제들은 세대 문제가 아니라 시대의 문제이고, 반드시 응답해야 할 사명이다.
한국 에큐메니컬 운동은 어느 순간부터 교회와 동떨어져 외딴섬처럼 존재하게 되었다. 그렇다고 여러 현장의 기독 활동가들과 호흡을 같이한 것도 아니다. 의제를 발굴하고 내용을 채울 의무가 있지만, 점점 이 수고로움이 운동에서 사라지고 있다. 의제가 사라지니 다양성과 포용성도 사라지고 담론이 증발했다. 이 최대 원인 중 하나가 청년운동의 급격한 쇠퇴이다. 어찌 보면 2000년 초부터 한국 에큐메니컬 운동의 축소는 예견된 일이었다. 새로운 인물의 유입이나 도전 없이는 에큐메니컬 운동의 지속성을 담보하기 어렵고, ‘운동성’을 펼쳐내기란 쉽지 않은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면 지금부터 어떻게 해야 하는가? 지금부터는 축소되고 위축된 에큐메니컬 운동의 현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그러면 해야 할 일들이 보일 것이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의제를 발굴하고 그 내용을 채워야 한다. 내부 역량이 부족하여 돌파할 힘이 없다면, 돌봐야 할 선한 사마리아인들을 찾고 이웃이 되어야 한다. 한국 에큐메니컬 운동이 있어야 할 자리를 기억하고 그 가치를 지켜나가야 하는 것이다. 그러면 비록 더디지만 그곳에서 소명을 발견할 수 있고, 유산을 발견하는 카이로스의 시간을 체험할 것이다. 신앙고백과 체험이 없다면 앞으로 더 절망적인 상황에서 버틸 수 없을 것이다. 적어도 청년들과 학생들로 대변되는 한국 에큐메니컬 운동의 시작은 그러한 자리에서 예수를 발견했다. 벌써 우리들의 끝이 가시거리 안에 잡힌다. 한국 에큐메니컬 운동은 정말로 정신을 차려야 하고, 거듭나야 한다. 종료 버튼을 누르기에는 아직 할 일이 많다.

남기평|한국기독학생회총연맹(KSCF) 공동회장, 감리교청년회전국연합회 총무, 한국기독청년협의회(EYCK) 총무, 데나리온BANK 운영위원장 등으로 활동하였다. 저서로 『한국교회, 청년이 떠나고 있다』(공저), 『기독청년을 말하다-기독청년프로젝트』(비매품)가 있다.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화해통일위원회 간사로 일하고 있다.

 
 
 

2023년 2월호(통권 77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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