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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2022년 1월호)

 

  SNS 시대의 목회
  

본문

 

코로나19 상황이 닥치면서 강제적으로 비대면 사회가 진행되었다. 물론 이전부터 비대면 사회의 특징들은 있었지만 사람을 만나는 것이 강제로 제한되면서 그 속도가 빨라졌다. 교회 역시 이러한 영향 가운데 있다. 가장 커다란 변화는 비대면 예배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예배당에 사람들이 모일 수 없으니 SNS를 이용한 예배가 이루어지기 시작했다. 처음에 모임이 금지되자 교회는 많이 당황했다. 이전까지 예배당에 함께 모여 예배를 드리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고, 어떤 어려움 속에서도 주일성수를 목숨처럼 여겼는데, 이것이 무너졌다. 그래서 큰 반발이 일었다. 전쟁 중에도 예배를 멈춘 적이 없었다는 이야기는 그때 크게 유행했던 문구다. 그런데 코로나19의 확산세가 커지자 교회들은 예배를 빠르게 비대면으로 전환했다. 불과 1-2주 사이에 한국교회는 온라인 예배로 전환했다. 마치 모든 것이 준비되어 있던 것처럼 한순간에 말이다.
그 과정은 ‘기적’이라고 할 만하다. 한국교회의 지각을 변동시킬 만한 엄청난 일이 큰 어려움 없이 이루어졌다. 그 이면에는 당연히 대한민국의 온라인 인프라가 자리하고 있다. 90%를 넘는 스마트폰 보급률은 거의 모든 교인이 온라인 예배를 맞이할 준비가 되어 있음을 의미한다. 더군다나 교회 입장에서도 특별한 장비 없이 핸드폰을 걸어놓고 예배를 중계할 수 있었다. 필자가 현재 출석하고 있는 교회도 건물 지하의 작은 공동체인데, 온라인 예배를 진행하며 특별한 장비 없이 목사의 핸드폰으로 중계를 했다. 그리고 교인들 역시 불평이나 불만 없이 따라왔다. 아마 대부분의 교회들이 이와 비슷했을 것이라고 본다.
어쩌면 우리에게는 아주 자연스러운 상황인지 모르지만 세계 어느 교회에서도 이처럼 큰 어려움이 없이 온라인 예배가 이루어지지는 않았다. 교회뿐만 아니라 어느 종교단체도 이와 같은 기적을 경험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더군다나 한국 내에서도 타 종교와 비교해볼 때 한국교회는 이 상황을 아주 슬기롭게 이겨냈고, 이겨내고 있다. 다른 종교들은 이 상황에서 모두 교인들과 단절된 상황 가운데 있는데, 한국교회만이 유일하게 새로운 길을 만들어내고, 많은 교인이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이 모든 것이 대한민국의 인터넷 인프라와 SNS의 발달, 그리고 교회의 유연한 대처 덕분이라고 할 수 있다.
이제 코로나 상황은 거의 2년이 다 되어 가고, 비대면 예배가 아주 자연스러운 것이 되었다. 초기의 그 어색함이나 불편함은 이미 사라졌고, 온라인 상황에 맞는 형식들도 나타나고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온라인상의 스타들이 등장하면서 교계의 새로운 판도가 그려지고 있다. 이러한 여러 변화를 마주하여 이 글에서는 SNS의 시대에 새롭게 나타나는 현상과 목회의 변화에 대해서 잠시 생각해보고자 한다.

매체의 변화가 콘텐츠의 변화를 이끈다

온라인 예배가 처음 도입될 무렵 사람들은 SNS를 도구로만 생각했다. 즉 예배를 손쉽게 중계할 수 있는 도구로 본 것이다. 그래서 사람의 유무와 관계없이 진행되는 예배를 핸드폰이나 컴퓨터를 통해서 전달받는 것으로 보았다. 그런데 이런 관점에는 중요한 부분이 빠져 있다. 매체가 바뀌면 내용도 바뀌어야 한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서 TV에서 방송하는 내용이 그대로 유튜브로 옮겨질 수는 없다. 거기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다르고, 보는 이들의 환경이 다르다. 유행하는 TV 드라마를 유튜브로 옮긴다고 같은 인기를 누릴 수는 없다는 말이다. TV와 유튜브가 무엇이 다르길래 이러한 차이가 생길까?
먼저 TV 프로그램은 심의 과정이 있다. 회사 자체의 위계질서에 의한 검열이 있을 것이다. 사람들의 관심을 끄는 것도 중요하지만, 회사의 이미지도 있고, 공적 기관으로서 지켜야 할 바가 있다. 물론 프로그램 자체에 대한 현장 피디들과 간부들의 시각차로 인한 자체검열도 있을 것이다. 이에 더해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검열이 있기에 내용은 물론이거니와 흡연 장면이나 욕설, 심지어는 복장 등 지적받을 만한 내용이 있는지 철저한 검토가 이루어진다. 우리가 TV를 통해 보는 프로그램은 이러한 수많은 절차를 걸쳐서 방송된다. 더군다나 이러한 프로그램은 방송사가 고용한 피디들을 통해 만들어진다. 소위 ‘언론고시’를 통과한 자들이다. 거기에 다양한 스태프들 역시 직장인으로서의 자기 위치가 있다. 이들의 시각이나 환경에서 만들어지는 것이 TV 프로그램이다.
그런데 유튜브나 SNS에서 만들어지는 콘텐츠는 이런 모든 절차가 없다. 그냥 한 사람이 자기가 가진 콘텐츠를 가지고 승부한다. 거기에는 심의 절차도 없고, 검열이나 격식도 없다. 단지 자신의 콘텐츠에 사람들이 모이느냐가 가장 중요하다. 즉 ‘좋아요’와 ‘구독’으로 모든 것이 결정된다. 그러다 보니 자극적일 수밖에 없다.
필자가 개인적으로 자주 보는 유튜브는 ‘먹방’이다. 특히 ‘쯔양’이라는 크리에이터의 방송을 자주 본다. 그 사람의 가장 유명한 영상은 혼자서 라면 18봉지를 먹는 내용이다. 조그맣고 얌전해 보이는 여성이 30분 동안 라면을 먹는다. 30분 동안 18봉지의 라면을 먹는 장면을 담았으니, 정말 먹는 것밖에 없다. 특별한 말도 없고 소란함도 없다. 만약 이 영상을 TV에 틀게 되면 어떻게 될까? 아마 방송사고라고 할 것이다. 물론 위의 절차들을 다 거쳐서 실제 방송이 될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그런데 유튜브에서 이 영상은 1,000만 명이 시청했다. 시청률로 치면 20%에 달하는 큰 수이다.
또 특이한 영상은 ‘연고TV’라는 곳에서 나온 영상이다. 연세대 의대 재학생이 밤샘 공부를 하면서 찍은 영상이다. 무려 4시간 동안 책상에 앉아서 공부만 하는 것을 영상으로 만들었다. 별다른 내용도 없고 멘트도 없다. 그냥 책상에 앉아서 공부하는 것만 4시간 동안 보여주는데, 무려 800만 명이 보았다. 어마어마한 숫자다.
교계도 다르지 않다. 2020년 7월에 목회데이터연구소에서 유튜브 조회수를 기준으로 교회의 서열을 정리한 적이 있다. 그런데 한 교회가 타의 추종을 불허하며 1억 회를 넘겼다. 서울 목동에 있는 한영교회다. 널리 알려진 대형 교회도 아닌데, SNS 세계에서는 가장 큰 교회이다. 그다음으로 나오는 교회가 당시 조회수 5,000만 회를 못 넘기고 있었다. 기존에 우리가 아는 전통적인 대형 교회들은 10위권 안에 들지 못했다. 아마 명단을 공개했다면 상당한 파장이 일었을 것이다. 오프라인에서의 대형 교회와 SNS상의 대형 교회 서열이 전혀 달랐기 때문이다.
또 최근에는 줌(Zoom)과 같은 그룹 회의 프로그램을 이용한 소그룹 활동이 활발하다. 처음에는 상당히 어색했는데, 이제는 많은 사람이 이 프로그램에 익숙해지면서 자연스러워졌다. 참여한 사람들의 의견을 들어보면 오히려 오프라인 모임보다 더 좋다고도 한다. 무엇보다 소외되는 사람 없이 모두가 자기 의견을 말할 수 있는 기회를 얻는다는 점이 좋다고 한다. 그리고 화면에 얼굴이 온전히 나오니 반응도 좋고, 강의나 토론을 할 때 다양한 자료를 쉽게 보여줄 수 있어서 좋다고 한다. 게다가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받지 않고 사람들의 참여가 이루어지니 더 활발하다. 기존 소그룹 모임의 장점 중 하나는 함께 모여서 교제를 나누고 식사를 하는 것이었는데, 이는 코로나19로 인해서 불가능해졌다. 그런데 기존 모임이 제한되니 오히려 시간에 제약을 받던 사람들이 편해졌고, 이들이 직접 교제 가운데로 들어오니 모임 구성원의 관계가 더 긴밀해지기도 한다.
코로나 상황에서 많은 교회가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소그룹이 활성화된 교회들은 그 타격을 덜 받았다는 소개가 있었다. 실제로 소그룹 중심의 교회들은 줌과 같은 프로그램을 이용해서 더 활발히 모이기도 했고, 온라인 예배를 드릴 때 두 가정이 함께 모여서 예배를 드리기도 하면서 좀 더 친밀해질 수 있었다는 사례도 있다.
매체가 변하면 콘텐츠도 변해야 한다는 것은 아주 확실한 명제이다. 어떻게 보면 도구가 변한 것이 아니라 세계가 변했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당연히 교회 모임의 내용도 변해야 한다. SNS에 익숙한 그들의 세계를 이해해야 하고, 무엇보다 그곳에서 통하는 문법을 이해해야 한다. 현재와 같이 서술형이 아닌 그들의 세계와 문법에 맞는 방법이 필요하다.

개인주의에 기반한 비대면 사회

미국 메사추세츠공과대학(MIT)의 사회심리학 교수인 셰리 터클(Sherry Turkle)은 SNS 시대의 관계에 대해서 관심을 갖고 연구해왔다. 그녀의 책은 『외로워지는 사람들』이라는 제목으로 번역되어 한국에도 소개되었는데, 원제는 Alone Together이다. 원제의 두 낱말은 참 모순된다. ‘Alone’이라고 하면 외롭다는 말인데, ‘Together’는 함께한다는 뜻이다. ‘외로운 함께’라고 하니 앞뒤가 안 맞는다. 저자는 이 책에서 사람들이 함께 있을지라도 각자의 SNS 세계에 빠져 있으니 서로 다른 세계에 있다는 것을 말한다. 즉, 사람들이 모여 있지만 ‘함께’ 하지는 못한다는 의미이다. 저자는 딸의 사례를 이야기한다. 딸이 친구를 데려와서 방에 간식을 들고 올라갔는데, 딸과 친구는 같은 방에 함께 있었지만 각자 핸드폰을 통해서 다른 세상에 가 있더라는 말이다.
그러면서 저자는 현대 사회의 인간관계에 대해 이야기한다. 현대인들은 대면도 힘들어하고, 심지어 전화통화도 불편하다고 한다. 저자 자신도 외지에 있는 딸과 통화하기가 힘들다고, 문자를 주고받는 정도가 알맞다고 한다. 물론 엄마가 아니라 딸의 입장이다. 실제로 우리 역시 문자로 서로 소통하는 것을 선호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카카오톡’ 애플리케이션이 모든 사람에게 필수적으로 여겨지며, ‘톡하자’는 말이 이제는 일상화되어 있다. 2010년에 카카오톡이 개발되었으니, 이제 10년이 겨우 넘은 통신수단이 이 시대에 가장 적절한 통신수단으로 자리잡고 가장 많이 사용되는 것이다.
한국 사회도 점점 개인주의화되고 있다. 가장 확실한 지표는 1인 가구의 증가이다. 2015년 이후 1인 가구 수는 전체 가구 형태에서 줄곧 1위를 차지하고 있는데, 2020년 기준 1인 가구는 전체 가구의 31.7%를 차지한다. 그 증가세가 그 어느 때보다 빠르다. 이러한 증가세는 다른 어느 나라에서도 볼 수 없는 수준이다. 한국에서 가장 원초적인 관계는 가족이다. 그런데 이제 이런 관계마저 희미해졌다는 보고는 한국의 개인주의가 어느 지점에 이르렀는지를 확인할 수 있는 지표가 된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렇게 개인주의화된 사람들이 찾는 것은 바로 공동체이다. 2017년 학원복음화협의회가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청년들이 생각하는 청년부는 공동체이다. 이상적인 청년부의 모습 역시 절대적으로 공동체이다. 이 부분을 중요하게 보아야 한다. 철저히 개인주의화되어 1인 가구로 살아가는 청년들이 가장 바라는 것은 바로 공동체이다. 그러면 이들이 바라는 공동체는 어떤 것인가를 생각해보아야 한다. 그것은 이전에 우리가 생각하는 공동체와는 다르다. 이들이 원하는 공동체는 ‘Alone Together’의 형태이다. 같이 있지만 혼자일 수 있는 공동체, 공동체이지만 자신의 울타리는 지켜지는 공동체, ‘혼자이고 싶지만 외로운 건 싫다’고 하는 이들이 함께할 수 있는 형태이다. 아마 이것이 터클이 이야기하는, SNS로 소통할 수 있는 수준의 관계를 말할 것이다.
한 기독교 방송에서 〈안녕히 계세요, 하나님〉이라는 다큐멘터리를 방영한 적이 있다. 교회를 떠나는 청년들을 대상으로 하여 인터뷰를 했다. 이들이 교회를 떠나는 가장 큰 이유는 사람들과의 관계 때문이었다. 신앙적 고민 때문이 아니라 사람들과의 관계를 유지하기 어려웠다는 것이다. 교인들, 특히 교회 안에 있는 어른들이 툭툭 던지는 말 한 마디, 한 마디가 상처가 되어 교회를 떠났다. 공동체는 좋지만 인간 사이에 나타나는 그런 어려움이 큰 부담이 되는 것이 현대인들의 모습이다.
사실 이런 현상은 전에도 있었다. 그러나 SNS 시대에 이르러 이런 관계를 힘들어하는 현대인들이 더 많아졌다. 특히 인권 의식이 발달하고 약자에 대한 감수성이 뛰어난 이들이 다른 시대를 살아온 사람들과 같이 지낸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거기에 학창시절에 ‘왕따’와 같은 문화를 경험했던 이들은 사람들과 교제하는 것이 더욱 힘들다. 이런 의미에서 SNS는 아주 좋은 도구이다. 적절한 관계를 유지할 수 있고, 나의 보여주고 싶은 부분만 보여주고, 서로에게 편하게 격려해주고, 하지만 책임은 안 져도 된다.
요즘에는 SNS를 통해 교인들과 소통하는 목회자들도 늘어나고 있다. 교회에 오지 않는 교인들에게 안부라도 전하려면 카카오톡 정도가 적절하다. 그리고 무엇보다 대화의 실마리를 풀어가기 위해서 먼저 상대방의 페이스북이나 인스타그램을 둘러보며 근황을 살피는 것은 기본이다. 격려나 축하가 필요할 때면 카카오톡의 선물 보내기 기능을 이용한다. 교인들과 함께 모이기 위해 네이버 밴드를 이용하고, 좀 더 가볍게 나눌 때는 단체 카톡이 유용하다. 물론 설교와 예배는 유튜브가 가장 적절한 것 같다. 그리고 그들의 헌신은 이제 인터넷 뱅킹으로 들어온 헌금 숫자로 확인한다. 목회자들 입장에서는 참으로 답답하지만, 오히려 일부는 교회라는 울타리에서 상처받지 않고 자신의 신앙을 유지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기도 한다.

가상세계

SNS를 중심으로 목회가 가상세계로 옮겨지면서 빠른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먼저 목회자들은 실체가 없는 교인들을 대상으로 목회를 하고 있다. 실제로 눈앞에 보이는 교인들은 현재 예배당 좌석의 50%다. 그런데 자리가 차지 않는다. 교회마다 현재의 목회를 어떤 기준을 가지고 평가해야 할지 고민하고 있다. 이제 교인 수를 예배에 참석하는 인원만으로 볼 수는 없다. 그렇다고 유튜브 조회수를 기준으로 할 수도 없다. 필자는 교회에 부임한 지 이제 1년여 된 목사를 얼마 전에 만났는데, 그가 하는 말이 교인들을 모르겠단다. 항상 마스크를 쓴 모습만 보았지 얼굴을 제대로 본 적이 없다는 말이다. 그가 어느 날 근처 식당에서 밥을 먹고 계산을 하려는데, 누가 먼저 계산을 했다고 한다. 계산한 분을 가리키는데 알 수가 없더란다. 분명 교인일 텐데 알 수가 없다. 밥을 먹는다고 마스크를 벗은 상태라 오히려 상대를 못 알아보겠다는 말이다. 항상 마스크를 쓰고 눈만 보았기 때문에 얼굴 전체가 드러나니 매치가 안 되는 것이다. 마냥 웃을 수만은 없는, 현재의 목회를 잘 나타내주는 이야기이다.
현재 우리는 전혀 다른 목회 환경에 처해 있다. 무엇보다 기존 목회나 교회의 틀이 무너지고 있다. 주일예배를 기준으로 교회와 목회가 구성되어 있었는데, 바로 그 부분이 무너졌다. 예배를 인도하고 설교를 하기 위해 세워진 것이 바로 목회자인데, 그 자리가 달라졌다. 예배를 드리기 위해 마련된 예배당인데 사람들이 모이지 않고, 그 자리가 차지를 않는다. 이제 주일 11시에 모이는 예배의 시대는 저물어가는 것 같다. 교인들은 그런 틀에 머무르려 하지 않는다.
그 자리를 가상세계가 채워가고 있다. 사람들은 이제 주일 11시에 교회당에 모여 드리는 예배를 기독교인의 정형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그리고 이제는 그 틀에서 이어지는 실시간 온라인 예배에 기대지도 않는다. 온라인으로 예배에 연결되어도 실시간으로 드려야만 성령이 임할 것 같은 마음으로, 정해진 시간이라도 지키려 했던 마음도 많이 사라졌다. 대부분의 교회를 보면 지금도 1부부터 4부까지 모두 실시간 온라인 예배를 고집하고 있는데, 큰 의미가 있는지는 모르겠다. 이제는 점점 실시간 조회수보다 주중에 예배 영상을 시청하는 조회수가 늘어나고 있다. 이것은 이제 그 시간이 아니더라도 예배의 참여 자체에 의미를 두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음을 말한다.
이러한 현상들을 보면 기존 틀이 무너져 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교단을 중심으로 해서 목사 안수를 하고 유지하는 형태, 그리고 목회자를 중심으로 세워졌던 수직적 구조의 교회 형태, 교인들이 점점 고령화되며 세워진 노령목회 등이 무너질 것으로 보인다. 기존 틀이 무너지고 SNS에서 목회가 이루어지면 과거의 조직 중심의 교회 구조는 유지할 수 없다. 물론 모든 교회가 SNS 목회를 하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일부에서 그런 현상이 일어날 때 기존 교회 구조에 대한 질문이 들어올 수밖에 없다. 가상세계 안에서는 목사의 자격이 중요하지 않고, 그 교단에 대한 질문이 없다. 그가 정말 복음을 전하고 있는지가 중요하다. 하지만 어떤 면에서는 사람들이 원하는 복음을 전해줄 수 있는지가 중요하다. 아니면 단 한 곡의 감동적인 찬양을 부르고 있는지가 중요할 수 있다. 거기서 내가 목사요, 내가 장로요 하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다.
또 하나 중요한 것은 건물 중심의 목회가 줄어들 것이라는 점이다. 건물은 공동체를 담는 그릇이다. 그런데 어느 순간엔가 건물을 마련하고 유지하기 위한 목회가 된다. 건물은 목회에서 없어서는 안 되지만, 그 건물이 중심이 되면 목회가 변질되기 쉽다. 그런데 이제 교인들이 가상세계에서 모이니 건물이 중요하지 않다. 그러고 보니 목회에 다양한 가능성이 열린다. 월세를 줄이고 보니 할 수 있는 일들이 많다. 그래서 요즘 나타나는 현상들이 공유교회나 온라인 개척 같은 것이다. 건물을 내려놓은 목회자들이 이제 아예 가상공간에 교회를 마련하고, 그곳에서 목회를 한다. 이들이 만들어내는 목회는 이전과 전혀 다를 것이다. 월세를 마련하고, 대출이자를 갚기 위한 발버둥에서 이제는 내가 원하는 복음을 전하는 목회로 바뀌는 것이다. 여기저기에서 공간과 사람에 매이지 않는 목회를 한다는 간증이 나오고 있다.
가상세계가 하나의 축으로 들어오면 목회는 전혀 다른 세계가 된다. 기존에 교회당과 조직에 의지했던 교회와는 전혀 다른 형태이다. 물론 모두가 이렇게 변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이들이 만들어놓은 세계는 우리에게 계속 질문을 던질 것이다. 결국 우리는 머지않아 우리가 잡고 있는 그 기준을 내려놓아야 할지 모르겠다.

SNS 시대의 목회를 세 가지 정도로 정리하였다. 물론 더 다양한 세계가 펼쳐지겠지만, 지면상 세 가지로 정리한다. 이 세 가지만 해도 현재의 목회자 입장에서는 어지러울지 모르겠다. SNS 시대를 한마디로 정리하면 시공초월(時空超越)이다.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다는 말이다. 이 경계들이 무너지면서 누군가는 커다란 기회를 발견할 것이고, 누군가는 울타리가 무너지는 위험을 느낄 것이다. 중요한 것은 적절한 자리를 찾는 것이다. 세상이 빠르게 변한다고 전부 쫓아가다 보면 내 자리를 잃을 것이다. 그렇다고 그 변화를 외면하면 도태될 수밖에 없다. 결국 자신이 잡은 복음을 확실히 하면서, 시대의 변화를 같이 타야 한다. 이 변화가 무섭다고 막고만 있다가는 예루살렘 공동체와 같이 사라질 수 있다. 오히려 모든 규례를 내려놓고, 오직 복음 하나만으로 세계로 뻗어갔던 바울의 지혜를 구해야 할 때이다.

조성돈|독일 마르부르크대학에서 실천신학을 전공하여 박사학위를 받았다. 저서로 『목회사회학』, 『세상을 사는 그리스도인』, 『그들은 왜 가톨릭교회로 갔을까』, 『한국교회를 그리다』 등이 있다. 현재 실천신학대학원대학교 부교수로 재직 중이다.

 
 
 

2022년 4월호(통권 76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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