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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me > 기독교사상 > 특집 > [특집] 개선 시급한 한일 관계
특집 (2019년 6월호)

 

  한일 협력으로 북일 국교 수립을
  

본문

 

* 이 글은 대화문화아카데미와 동아시아평화회의가 공동주최한 3・1운동 100주년 특별 대화모임 “한일 관계: 새로운 백 년을 모색한다”에서 발표된 발제문이다. 이 대화모임은 2019년 3월 29일, 대화의 집에서 이루어졌다. - 편집자 주

저는 올해 2월 6일에 “2019년 일본 시민·지식인 성명: 무라야마 담화, 간 총리 담화를 바탕으로 식민지 지배에 대해 반성·사죄하는 것이야말로 한일·북일 관계를 지속 발전시키는 열쇠이다”를 발표한 발기인의 한 사람으로 그 성명의 원안을 기초했습니다. 발기인 21명 중 16명은 우쓰미 아이코[内海愛子, 게이센(恵泉)여학원대학 명예교수], 가스야 겐이치[糟谷憲一, 히토쓰바시(一橋)대학 명예교수], 가노마 사나오[鹿野政直, 와세다(早稲田)대학 명예교수], 나카쓰카 아키라[나라(奈良)여자대학 명예교수], 미즈노 나오키[水野直樹, 교토(京都)대학 명예교수] 등 2010년에 발표된 “한국 병합 100년에 즈음한 한일 지식인 공동성명”의 일본 측 발기인입니다. 미타니 다이치로[三谷太一郎, 일본학사원 회원, 도쿄(東京)대학 명예교수]는 2010년 성명 당시에는 서명자였는데, 이번에는 발기인으로 참여해주었습니다. 이번 성명의 발표는 2010년 성명을 일본 측에서 계승한 것입니다.
2010년 “한국 병합 100년에 즈음한 한일 지식인 공동성명”은 일본의 지식인 500명과 한국의 지식인 500명이 발표한 공동성명으로 병합과정과 병합조약을 준엄하게 단죄하였습니다. 이 성명은 “한국 병합은 대한제국의 황제로부터 민중에 이르기까지 모든 사람들의 격렬한 항의를 군대의 힘으로 짓누르고 실현시킨, 문자 그대로 제국주의 행위이며 불의하고 부정한 행위였다.”라고 지적하고, 병합조약에 대해 “힘으로 민족의 의지를 짓밟은 병합의 역사적 진실”을 “평등한 양자의 자발적 합의로 한국 황제가 일본에 국권 양여를 신청하여 일본 천황이 그것을 받아들여 ‘한국 병합’에 동의했다고 하는 신화”로 덮어 숨긴 것이어서, 전문도 조약 본문도 거짓이라고 밝혔습니다. “이렇게 해서 ‘한국 병합’에 이른 과정이 불의부당하듯이 ‘한국 병합조약’도 불의부당하다.”라는 것이 성명의 결론이었습니다. 그러한 결론에 따라, 이 성명에서는 1965년의 한일 기본조약 제2조, 병합조약의 무효와 관련된 조항을 둘러싼 해석의 차이를 한국 측 해석으로 통일할 것을 제안했습니다. 즉, 병합조약은 당초부터 무효였다고 인식하도록 일본 정부에 제안한 것입니다.
2010년에 이러한 인식, 주장을 내놓았던 우리가 다시 일어나 성명을 발표하기로 한 것은 작년 가을부터 한일 관계가 대립으로 치닫고 한국에 대한 일본의 태도가 극도로 험악해졌기 때문입니다. 작년 10월 30일, 한국 대법원이 강제동원 노동자의 호소에 대해 일본 기업에 지불을 명하는 판결을 내리자, 일본 총리와 외무대신은 한일조약과 청구권 협정으로 이미 해결된 문제라며 격렬한 반응을 보였습니다. 11월 21일에 이루어진 한국 정부의 화해치유재단 해산 발표에 즈음해서도 마찬가지 반응을 보였습니다. 12월 20일 한국 구축함이 일본 자위대기에 레이더를 조사(照射, 비춤)했다는 사건으로 문제가 발생하자, 일본 정부는 지체 없이 공개적으로 비난·공격하는 방침을 취했습니다. 그리고 올해 1월 28일 아베 총리는 시정 방침 연설에서 중국 및 러시아와의 양호한 관계를 언급하고 북한과는 국교 정상화를 목표로 삼겠다고 하면서, 한국과의 관계에 대해서는 일절 언급하지 않는, 한국을 무시하고 적대시하는 태도를 보여 충격을 안겼습니다. 우리는 한일 관계가 비정상적 상태에 있음을 인식하고 의견을 표명하자고 생각했습니다.
우리는 지극히 당연한 사항들을 확인해야 한다고 보았습니다. 일본과 한국은 이웃 나라이며, 협력하지 않으면 양국에 사는 사람들이 인간답게 살아갈 수 없는 사이입니다. 한국과 일본의 평범한 사람들은 이를 알고 있습니다. 지금 한국에서는 일본 여행이 붐을 이뤄 일본의 생활과 문화를 재인식하고 있다고 합니다. 일본에서는 한류 붐이 수차례에 걸쳐 일어나 현재는 아주 어린 소년·소녀들의 K팝 열풍이 주류라고 합니다.
하지만 두 나라 사이에는 커다란 문제, 불행한 역사의 문제가 존재합니다. 문제가 있으니 협력할 수 없다거나 친구가 될 수 없다는 얘기가 아닙니다. 이미 친구가 되었지만 더 좋은 친구가 되려고 생각한다면 커다란 역사 문제를 명확하게 인식하고 그에 대해 확고한 태도를 보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일본과 한국/조선 사이에 존재하는 커다란 역사적 문제란 식민지 지배 문제입니다. 1904년 이래 41년 동안의 군사 점령과 1910년 이래 35년 동안의 식민지 지배가 일본 제국에 의해 한반도와 그 땅의 사람들에게 가해졌습니다. 이것이 양국의 역사에 어둠을 형성하고 있습니다. 한국/조선인의 역사 기억에서 이 일을 지울 수는 없으며, 일본인은 이에 대해 인간적으로 대처하는 일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조선에 대한 식민지 지배는 1945년 8월 15일 자로 끝났지만, 일본인은 국가, 국민으로서 한국 병합과 조선 식민지 지배를 반성하고 사죄하는 움직임을 길게 보이지 않았습니다. 일본은 독립 조선의 한 나라인 대한민국과 국교를 정상화하는 한일조약을 1965년에 체결했습니다. 그러나 1910년의 병합조약이 당초부터 무효였다고 하는 한국 측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고, 병합은 합의에 의해 이루어졌고 식민지 지배는 없었다는 주장으로 일관했습니다. 쌍방의 청구권에 관한 문제가 “완전히 그리고 최종적으로 해결된 것임을 확인한다.”라고 명기한 청구권 협정을 체결했지만, 근본적인 인식 분열은 극복되지 않은 채 방치되었습니다.
이러한 한일조약 아래서 일본은 대한민국과 국교를 유지하고 경제적 관계를 체결하며 다각적인 협력을 발전시켜 왔습니다. 20여 년이 지난 1987년, 한국에서는 군부 독재정권 시대에 종지부를 찍는 민주 혁명이 일어났습니다. 그 뒤가 되어서야 1995년 자민당–일본사회당–신당 사키가케 3당 연립내각의 무라야마 도미이치(村山富市) 총리가 각의 결정에 따라 패전 50년 총리 담화를 발표하며 처음으로 식민지 지배에 대한 반성을 표명하고 사죄했습니다. 일본 국가가 “아시아 여러 나라 사람들”에게 “식민지 지배와 침략”으로 “다대한 손해와 고통을 주었”음을 인정하고 “통절한 반성의 뜻을 표하며 진심으로 사과의 마음을 표명”한 것입니다. 이 반성과 사죄는 1998년 김대중 대통령–오부치 게이조 총리의 한일 파트너십 선언에서 ‘한국 사람들’을 향해 표명되었고, 2002년 김정일 위원장–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의 북일 평양선언에서 ‘조선 사람들’을 향해 표명되었습니다.
식민지 지배에 대한 이 반성과 사죄는 획기적인 인식, 획기적인 표명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를 완성시키기 위해서는 아울러 병합 자체에 대한 역사 인식이 덧붙여져야 했습니다. 2010년 ‘한국 병합’ 100년을 계기로 한·일 1,000명의 지식인이 발표한 성명은 병합에 대한 인식을 바로잡도록 촉구했습니다. 이 성명은 우선 2010년 5월 10일에 발표 후, 이어 제2차 서명자를 추가해 7월 28일에 발표되었습니다. 그러자 이 성명에 응답이라도 하듯 일본 정부의 간 나오토(菅直人) 총리는 8월 10일 각의 결정에 따라 한국 병합 100년의 총리 담화를 발표했습니다. 거기서는 다음과 같은 일본 정부의 인식 서술을 통해 병합에 대한 반성과 사죄 표명이 이뤄졌습니다.
“정확히 100년 전 8월, 한일 병합조약이 체결되고, 이후 36년에 걸친 식민지 지배가 시작되었습니다. 3·1 독립운동 등의 격렬한 저항에서도 나타났듯이 정치·군사적 배경 아래 당시 한국 사람들은 그 뜻에 반하여 이루어진 식민지 지배로 인해 나라와 문화를 빼앗기고 민족의 자긍심에 깊은 상처를 입었습니다. 저는 역사를 성실하게 마주 대하고자 합니다. 역사의 사실을 직시하는 용기와 이를 받아들이는 겸허함을 갖고 스스로의 과오를 돌아보는 일에 솔직하고자 합니다. 아픔을 준 쪽은 잊기 쉽고, 받은 쪽은 이를 쉽게 잊지 못하는 법입니다. 이 식민지 지배가 초래한 다대한 손해와 고통에 대해, 여기에 다시 한 번 통절한 반성과 진심 어린 사과의 마음을 표명합니다.”
이것이 일본이라는 국가가 ‘한국 병합’으로부터 100년, 식민지 지배의 종언으로부터 55년 만에 도달한 역사 인식입니다. 한국 국민의 비판에 의해 촉구되고 스스로도 노력해서 손에 쥔 반성과 사죄의 새 지평입니다. 이 총리 담화에 바탕을 둔 행위로서 일본 정부는 일본 통치하에서 조선총독부가 빼앗아 일본의 황실 재산으로 삼았던 ‘조선왕조의궤’ 등을 그해 안에 한국 정부에 인도했습니다. 따라서 무라야마 담화와 간 총리 담화는 일본 정부가 한국/조선에 대해 생각하고 시책을 취할 때 기준으로 삼아야 할 기본적 문서가 된 것입니다.
그것이 이번 우리 성명의 주장이었습니다. 하지만 성명을 발표하고 나서 분명해진 것은 간 총리 담화는 일본 안에서 일본 국민의 의식 속에 확실히 자리매김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었습니다. 우리 성명 그룹도 국회에서 사민당 마타이치 세이지(又市征治) 의원에게 요청해 간 총리 담화에 대해 한 번 질의하도록 했을 뿐이고, 2013년 한일 공동성명과 간 총리 담화를 논한 책을 서울과 도쿄에서 출간하는 데 그쳤습니다. 다른 한편 (당시의) 야당인 자민당은 간 총리 담화에 심한 적대감을 드러냈습니다. 다니가키 사다카즈(谷垣禎一) 자민당 총재는 “담화가 미래지향적 한일 관계에 방해물이 되지 않을까 우려한다.”(「아사히」, 2010년 8월 11일)라고 말했습니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전 총리(당시)는 “자기 믿음만으로 선의를 보여주면 된다는 건 큰 잘못, 어리석은 총리”라고 말했습니다.(「아사히」, 2010년 8월 11일) 아베가 회장을 맡고 있는 초당파 의원연맹인 창생 ‘일본’(創生 ‘日本’)은 총리 담화가 “국민과 역사에 대한 중대한 배신이며 용납할 수 없다.”라는 성명을 발표했습니다. 자민당이 집권 여당으로 복귀해 아베 2차 정권이 성립된 2012년 이후, 간 총리 담화를 철저히 무시한 것은 우연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지금은 먼저 무라야마 담화와 함께 간 총리 담화를 일본 국가의 방침으로서 재확인시키기 위한 노력이 선행되어야 합니다. 이와 함께 식민지 지배에 대한 일본의 사죄와 반성을 최종적으로 확인하기 위해, 어떻게 해서라도 한일 기본조약 제2조에 대한 한국 측 해석의 채택 문제를 한일 외교 협상 일정에 올릴 필요가 있습니다. 일본 측 역사가는 병합과정에 대한 새로운 연구를 소책자 형식으로 간행하여 병합조약의 무효성과 기만성을 백일하에 드러낼 생각입니다.
식민지 지배에 대한 사죄와 반성의 최종적 확립을 목표로 전진하는 가운데 한국과 일본 사이에 이미 생긴 문제나 앞으로 생길 문제는 모두 식민지 지배 사죄와 반성의 정신에 따라, 양국 정부와 국민의 협의・협력을 바탕으로 새로운 마음으로 성실하게 해결해나갈 수 있습니다. 이미 일본의 침략 전쟁과 식민지 지배가 끝난 지 거의 75년이 경과했습니다. 침략과 지배의 실행자, 책임자는 이미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습니다. 전쟁과 식민지 지배 피해자의 호소가 제기된다면 일본 국가의 사죄와 반성을 바탕으로, 양국 정부와 국민이 협력하여 고통에 대한 조치를 생각하고 실시해나가야 합니다.
지난 30년간 한국과 일본 양국 국민은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해왔습니다. 한국 국민이 2015년 합의에 강한 비판과 불만을 갖고 있다는 것은 이해하지만, 이 문제가 지금 새로운 국면을 맞고 있음은 분명합니다. 문 대통령이 이 사안으로 일본 정부에 재협상을 요구하지 않겠다고 하고 화해치유재단의 활동 종료를 확인하면서 앞으로는 위안부 문제의 철저한 연구를 추진하려 하는 것은 의의가 깊습니다. 말할 것도 없이 앞으로는 북한의 위안부 피해자에 대한 대응도 있어야 합니다. 지금은 이른바 ‘징용공’ 문제, 전시 노무동원 피해자 문제가 한일 간의 큰 문제로 대두하고 있습니다. 한일조약 당시 협의가 이루어지고 2000년대에는 한국 정부가 적극적인 노력을 기울였지만, 20만 명이라 얘기되는 전시 노무동원 피해자와 그 유족의 불만의 목소리가 다시 한일 사이에 격진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이 문제는 위안부 문제와 마찬가지로 진지한 대처가 필요합니다. 한일 양국 정부와 한일 기업이 협력해서 취할 수 있는 방책을 생각해야 합니다. 그 밖에 ‘한국인 BC급 전범’ 문제도 존재합니다. 전범으로 사형 판결을 받은 바 있는 93세의 이학래(李鶴来) 노인은 일본 정부에 사죄와 보상을 계속 요구하고 있습니다.
한일의 현재 긴장 상황 속에서 우리는 3・1 독립선언 100년 기념일을 맞이했습니다. 저는, 조선 민족이 병합 후 10년의 고통을 거치면서도 여전히 조선의 독립 요구가 일본을 위하는 것이기도 하다고 일본을 설득하려 했던 것을 상기합니다. 3·1 독립선언은 말했습니다. “오늘 우리가 조선의 독립을 도모하는 것은 조선인에게는 민족의 정당한 번영을 획득하게 하는 것인 동시에 일본에 대해서는 사악한 길에서 나와 동양의 지지자로서 중책을 다하게 하는 것이다.”라고 말입니다.
우리가 발표한 성명은 다음과 같이 끝을 맺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는 조선 민족의 이 위대한 설득의 목소리를 듣고 동양 평화를 위해, 동북아시아의 평화를 위해 식민지 지배에 대한 반성과 사죄를 바탕으로 한일·북일의 상호 이해, 상호 부조의 길을 걸어야 할 때이다.” 한국에서 제기되는 비판의 목소리를 우리에 대한 설득의 목소리로 받아들이고, 한일 협력, ‘상호 이해’와 ‘상호 부조’를 통해 문제가 해결되는 방향으로 나아가기를 바라는 바입니다.
한일 관계를 개선하고 정상으로 유지·발전시키는 것이 지금만큼 필요한 때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한국의 문재인 대통령이 필사적인 노력을 기울여 조미 전쟁의 위기를 피하고 북미 정상회담 개최를 성공시킨 위대한 업적을 더욱 연장시키면서 동북아 평화 프로세스의 길이 열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일본에는 지금까지의 대화 거부, 제재와 위협의 길에서 벗어나 북일 국교 정상화로 확실하게 나아갈 것이 요구되고 있습니다. 일본 국민에게 그렇게 하도록 호소하고 설득하여 함께 어깨 걸고 나아갈 이는 한국 국민, 한국 정부 외에는 없습니다. 일본이 그렇게 나아가게 하는 것은 한국의 국민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도 사활을 걸 만큼 중요합니다. 한국 단독으로 북미 양국을 중개하고 평화 프로세스를 무사히 추진해나갈 수는 없습니다.
북한이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라는 약속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미국이 완전한 ‘안전 보장’을 해주어야 합니다. 그것은 최종적으로는 미–일–남–북 4개국의 기존 방식을 근본적으로 변화시켜야 함을 의미합니다. 한국과 일본에는 미군기지가 존재합니다. 장차 어떠한 모습을 그려볼 수 있을까요? 이 점만 보아도 대한민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일본이 양국의 동반자로 남아야 할 필요성을 안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일본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과의 국교 정상화를 신속하게 실현해야 합니다. 그러나 아베 총리가 2006년에 내놓은 ‘납치 3원칙’이 이를 가로막고 있습니다. 특히, 납치 문제의 해결 없이 국교 정상화는 없다는 제2원칙, 그리고 사망했다는 납치 피해자는 모두 살아있으니 당장 돌려보내라는 제3원칙이 국교 정상화를 방해하고 납치 문제 교섭도 가로막고 있습니다. ‘아베 3원칙’을 버리고 국교 정상화로 나아가야만 납치 문제를 둘러싼 정상적인 협상도 가능해집니다. 오바마 대통령의 무조건적인 쿠바 국교 수립 전례를 본받아, 제재를 유지한 채 평양선언에 따라 국교를 맺고 대사관을 개설하고 즉각 핵미사일 문제, 경제 협력 문제, 납치 문제에 관해 협상하는 것이 좋습니다. 여기까지는 제재에 저촉되는 사항이 아닙니다. 그러나 국교를 맺으면 북한에 대한 문화 교류, 인도적 지원이 가능해지고, 북한은 되돌아갈 여지없는 국제 환경 개선을 얻어낼 수 있습니다. 이렇게 함으로써 북미 협상과 남북 협상을 도울 수 있게 될 것이 분명합니다.
한일 협력을 통해 북일 수교를! 이것이 바로 남–북–일 3국의 새로운 협력으로 향하는 길입니다.


* 아래 글은 발제에 이어 진행된 대화 내용을 간추려 정리한 것이다. - 편집자 주
대화

이부영(사회, 동아시아평화회의 운영위원장) 우리는 세 달 전부터 오늘의 모임을 준비해왔습니다. 그간 한일 관계가 악화하는 쪽으로 파고가 높아졌는데, 의도치 않게 적시에 이 모임을 마련하게 되었습니다.
최상용(고려대 명예교수, 전 주일대사) 하토야마 유키오 전 일본 총리는 미래지향적인 한일 관계를 위한 기조연설에서 정치 신념으로서의 우애, 한일 관계에서 역사와 외교 문제, 평소의 지론인 ‘동아시아 부전(不戰) 공동체’에 대한 소신을 밝혔습니다. 그리고 최근 한일 관계의 쟁점들에 대해서도 솔직한 의견을 피력했습니다. 프랑스 혁명이 지향한 3대 이념이 자유, 평등, 박애입니다만, 총리는 우애를 자유와 평등의 가교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한일 관계의 어려움도 우애의 정신으로 풀어보려는 진정성이 느껴집니다. 그러나 힘의 정치의 현장인 국제 정치에서는 자국의 국가 이익을 최우선으로 하고 있는데 거기에 우애를 기대할 수 없습니다. 따라서 우애는 큰 정치가의 자질일 수 있으나 현실의 외교나 국제 관계를 설명할 수 있는 유효한 개념이 되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저는 외교에서는 국가 이익의 상호 인정 내지 상호 존중을 우애로 해석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하토야마 총리는 한일 관계에서 현 일본 천황과 무라야마 전 총리, 두 분의 과거사 반성에 대해서 그 진정성을 높이 평가하고 있습니다. 저도 대사 재임 중에 두 분과 역사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는데, 현 천황이 일부 천황주의자(극우)의 역사관을 경계하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무라야마 담화에 대해서는 대부분의 한국인이 호감을 가지고 있고 사회당 위원장 출신 총리로서 당연한 역사관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총리께서는 ‘김대중–오부치 게이조 공동선언’에 나타난 두 정상의 역사 인식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묻고 싶습니다. 공동선언은 1998년 10월 8일 김대중 대통령의 일본 국빈 방문 중에 도쿄에서 오부치 게이조 총리와 함께 조인한 협정으로, 한마디로 말하면 무라야마 담화를 구체화한 것입니다.
하토야마 총리는 동아시아에서도 EU처럼 부전 공동체 형성이 가능하다고 보고 있습니다. 이미 아세안(ASEAN) 10개국은 지역협력체(regionalism)로 뿌리를 내렸기 때문에 동아시아 공동체는 실제로 한·중·일 협력이 핵심이고 거기에다 한반도 평화공존, 나아가 평화통일이 촉진 요인이 될 것입니다. 그런데 현실을 보면 시진핑(習近平) 주석의 ‘중국의 꿈’이나 아베 수상의 ‘적극적 평화주의’, 그리고 북한 핵문제 해결이 불확실한 상황에서 동아시아 공동체 형성을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박원순(서울시장) 저는 하토야마 총리께서 말씀하신 ‘아시아 공동체’에 굉장히 관심이 많습니다. 아까 말씀에서도 나왔지만, 사실 독일,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도 마찬가지였다고 봅니다. 수백 년의 전쟁과 피로 물든 대륙이었고, 제2차 세계대전에서만도 600만 명이 희생된 엄청난 비극 속에서 희망과 연대와 평화의 싹이 돋아났다고 생각합니다. 그때 그야말로 한 사람의 상상, 즉 프랑스의 로베르 쉬망 외무장관이 유럽석탄철강공동체(ECSC)를 만들자고 제안했던 것이 점차 발전해 의회, 행정부, 사법부까지 한 국가의 주권을 넘어서는 유럽연합을 만들어냈습니다. 어찌 보면 하나의 환상, 꿈이었던 것이 결국에는 실제로 일어났습니다. 물론 거기에는 패전국 독일의 철저한 반성과 전후 배상 등 조치들이 전제되어 있었습니다. 이런 과정을 생각해보면, 이것을 반드시 허상으로만 볼 것은 아니라고 봅니다.
김성재(김대중아카데미 원장, 전 문화부 장관) 지금 한일 갈등의 문제는 사실 1998년 김대중–오부치 한일 파트너십 공동선언에서 이미 치유되고 새살이 돋기 시작했는데, 최근 다시 불거져 악화됐다고 봅니다. 사실 동아시아 공동체는 이미 1998년 김대중 대통령께서 아세안+3(한·중·일) 정상회의를 통해 제안했던 부분입니다. 처음으로 한·중·일 공동 정상회담을 하고 아세안과 한·중·일 3국이 함께 모였을 때 아시아 공동체에 대한 비전을 이야기했습니다. 와다 교수께서 일본과 북한의 수교 문제를 말씀하셨는데, 이미 김대중 대통령이 당시 오부치 수상, 고이즈미 수상에게 북일 수교를 제안했고, 동시에 김정일 당시 국방위원장에게도 일본과의 국교 수립을 제안했습니다. 2000년 서울에서 열린 아시아·유럽 정상회의(ASEM) 때는 유럽 국가들에도 북한과 수교해달라 적극 권유해서 유럽의 많은 국가들이 현재 북한과 수교하고 있는 상황이기도 합니다.
이런 문제들이 이미 1998년부터 2002년까지 진행되었는데 왜 지금에 와서 다시 악화 일로로 갈까? 저는 이것이 단순히 과거사 사죄의 문제가 아니라, 2012년 일본에는 아베 정부가, 한국에는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면서 불거졌다고 봅니다. 아베 정부의 우익화 국가주의가 나타남과 동시에 독도가 일본 영토라는 주장이 제기되었고, 야스쿠니 신사참배 문제도 불거졌습니다. 같은 해인 2012년 이명박 정부가 독도를 방문했고 일본 천황이 방한하려면 사과하고 오라는 발언이 있었습니다. 그때부터 갈등이 확산돼 오늘에 온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일본 아베 정부의 독도 영유권 주장, 위안부 국가 주도 부정, 강제징용 보상 완료 주장, 역사교과서 왜곡 문제 등은 과거사가 아니라 현재 문제로 재생산되고 있습니다.
이부영 악화되는 한일 관계에 대해, 김성재 교수의 말씀에 이야기를 보탤 분 있으신지요?
김영호(단국대 석좌교수, 전 산업자원부 장관) 저는 지금의 한일 관계를 한일 기본조약과 청구권 체결이 이뤄진 ‘65년 체제’가 새로운 한일체제로 가는 진통기의 아픔이라고 생각합니다. 위기가 아니라 진통입니다. 진통을 단순히 위기로만 여기면, 잘못하면 새로운 옥동자를 만들지 못하고 불임의 위기가 계속될 수 있습니다. 이 위기 속에서 ‘신 한일체제’를 만들어야 합니다. 이것이 중요하다고 보는데요, ‘65년 체제’로는 가령 위안부 문제, 징용공 문제 등 식민지 범죄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고 봅니다. 저는 ‘65년 체제’가 ‘신 한일체제’로 바뀌는 게 중요하며, ‘신 한일체제’에는 지금 공중에 떠도는 무라야마 담화와 김대중–오부치 공동선언, 간 나오토 담화를 한데 모으는 동시에, 2010년 ‘한일 지식인 공동선언’에서 주장했던 한일 병합조약의 원천 무효 문제를 중요한 요소로 살리는 게 중요하다고 봅니다. 또한 ‘북일 기본조약’이 한일 기본조약과는 다르게 맺어지도록 한국이 협조하고, 그것을 계기로 한일 기본조약을 개정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이태진(전 국사편찬위원회 위원장, 서울대 명예교수) 하토야마 총리께서 천황의 역사 인식을 강조해서 이야기했는데, 천황까지도 그러는데 왜 아베 총리와 같은 자민당계 우파들이 사회적으로도 상당한 지지 기반을 갖고 있느냐, 이 문제가 앞으로 한일 관계의 궁극적 극복을 위해 짚어봐야 할 문제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오늘 와다 선생 발표문 가운데 1910년 한국 병합 전에 1904년 ‘군사 강점’이라는 표현을 쓰셨습니다. 이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러일전쟁을 일으키며 한반도에 진입한 일본군은 계엄령을 갖고 들어왔습니다. 일본이 1904년 군사 강점 전, 1902-03년에 이미 한국 역사를 일본 역사에 완전히 편입시켜버렸습니다. 1894년 4월, 일본 역사학자이자 교육가가 일본 중등교육에서 역사교육 체계의 변경을 제안했습니다. 그때 성립된 것이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일본 역사, 동양사, 서양사 체계입니다. 그 이전에는 일본사, 지나사 두 가지였습니다. 그런데 지나사를 동양사로 바꾸고 중국사에 더해 북방계 유목민족사를 거기에 넣었습니다. 그렇다면 한국사는 당연히 동양사에 들어갔다고 생각하겠지만, 아니었습니다. 한국사를 일본 역사에 집어넣어 버렸습니다. 369년 신공황후(神功皇后)가 신라를 정벌했을 때 한반도 역사는 이미 일본의 역사였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뒤에 무례하게도 조공을 안 바쳤다는 것이고, 이 무례한 몇 백 년 역사를 바로잡는 것이 지금 일본이 한반도를 차지하는 명분이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이야기하는 동양사, 서양사는 지역 구분이 아닙니다. 일본 천황이 지배하는 새로운 동아시아 세계를 ‘동양’이라 하고, 그걸 건설하는 데 역사학자의 연구와 교육이 기여해야 한다는 게 동양사의 정의였습니다. 궁극적으로 대동아 공영권으로 가는 것입니다.
중등 역사교과서 역사교육 체계 수정의 제안은 1894년 청일전쟁 직전이지만, 실제 교과서를 만들어 교육이 시행된 것은 1902년 말–1903년부터였습니다. 러일전쟁, 군사 강점 전에 역사 강점부터 했고, 조선총독부의 국사는 일본사에 조선 역사를 부분적으로 넣은 것입니다. 적어도 아베 총리와 그 지지 세력에게는 그런 역사 인식이 있습니다. 그런 인식을 가진 이들이 조선, 한국을 보는 눈은 다릅니다. 왜 사죄를 해야 하느냐는 것이죠.
이종찬(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관 건립위원장) 두 분 발제자께서 좋은 말씀을 하셨는데, 지금 일본의 사정을 보면 이미 중의원에서는 개헌선을 넘었고, 오는 7월 참의원 선거에서도 지금 분위기라면 개헌선을 또 넘길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아베 총리는 이미 공헌한 바와 같이 개헌을 하려 할 것입니다. 그럼 일본 평화헌법은 전쟁 가능한 헌법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 상황에서 우리가 동아시아 평화공동체, 동아시아의 집을 짓는다? 두 분 말씀은 아주 좋지만, 현실적으로는 반대 방향으로 가는 부분에 대해 어떻게 해석하고 계시는지 묻고 싶습니다.
백낙청(문학평론가, 서울대 명예교수) 김영호 선생께서 지금이야말로 ‘신 한일체제’를 만들 때라고 말씀하셨는데 그 점에 동의합니다. 완전히 새로운 관계를 정립할 시점에 왔습니다. 그러려면 ‘신 한일체제’라고 할 때 ‘한’에 한국도, 북한을 포함한 한반도도 포함된다는 양면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안중근 의사가 동양 평화를 이야기했을 때, 또는 3·1운동 선언문에서 동양 평화를 이야기했을 때, 한·중·일 동양 3국에서 ‘한’은 분단된 한국이 아니었습니다. 당시 비록 위기에 처했거나 식민지였더라도 통일 조선을 염두에 두고 동양 3국의 평화를 이야기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어느새 우리는 ‘신 한일체제’나 ‘동아시아 공동체’를 이야기할 때 북을 제외하고 이야기하는 경우가 많아졌습니다. 이것이 제대로 된 지속가능한 체제가 되려면 한반도와 일본의 관계라는 큰 틀 안에서 한국과 일본의 관계, 한국과 북한의 관계를 이야기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지금이야말로 그런 식의 새로운 ‘신 한일체제’를 만들 적기가 도래했다고 믿습니다.
와다 선생이 일본이 태도를 바꿔 옳은 길로 들어서려면 한국 국민의 위대한 설득이 필요하다고 말씀했는데, 우리가 한반도에서 새로운 평화체제를 만들고 점진적이고 단계적이며 창의적인 한반도 대통합을 추진해나갈 때에야, 비로소 일본 정부나 국민을 설득할 수 있을 것이라고 봅니다. 이미 그런 설득이 시작되었습니다.
이부영 백 선생 말씀을 더 현실적으로 뒷받침할 논리들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남기정(서울대 교수, 일본연구소 연구부장) 지금 동북아시아 국가들이 도전해야 할 역사적 과제는 두 개의 ‘전후’를 극복하는 것이라고 봅니다. ‘두 개의 전후’는 ‘한국전쟁 이후’가 휴전 또는 정전의 이름으로 전쟁에 준하는 체제로 계속되고 있는 것, 그리고 ‘제2차 세계대전 이후’가 냉전이란 이름으로 지속되고 탈냉전 이후에도 아시아에서 냉전 상태가 지속되고 있는 것을 의미합니다. 전자는 우리가 정전협정 체제라고 말하는 것이고 그 기원은 1953년입니다. 후자는 샌프란시스코 조약 체제라고 말하는 것으로 1952년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이 두 개의 전후가 중첩되어 위기가 고조되고 있는 현장이 한반도이고, 그런 의미에서 그 해체에 일본의 책임이 크다는 것을 지적하고 싶습니다.
샌프란시스코 조약 체제의 극복이 일본의 과제라는 것은 분명합니다. 샌프란시스코 조약 체제가 한일 관계에 적용된 것이 바로 ‘1965년 체제’이며 그 극복이 진정한 전후의 극복이라는 점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정전협정 해체에도 일본에 중요한 역할이 주어져 있습니다. 한국전쟁에서 일본은 후방기지로 편입돼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따라서 한반도에서 두 가지 전후의 극복은 일본이 담당자로서 맡아야 할 과제라고 봅니다.
두 가지 전후의 극복이 한국·북한·일본의 공동책임이므로 한일 관계, 북일 관계, 남북 관계 이 세 가지 양자 관계가 동북아 평화의 핵심이고, 저는 이러한 한국·북한·일본의 핵심 삼각형이 동북아 평화의 핵심 삼각형이라고 봅니다.
한편 북일 관계 정상화는 1988년 ‘7・7선언’이 제시한 평화 프로세스의 재개라는 생각도 듭니다. 7・7선언은 남북 화해와 동시에 남북 교차 승인을 목표로 했습니다. 그러나 중국과 소련이 한국과 국교를 맺은 것에 비해 미국과 일본이 북한과 국교를 맺지 못한 것이 그 한계였고, 이러한 북미 관계, 북일 관계 개선의 실패가 북 핵미사일 위기의 기원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때문에 북 비핵화는 미국·일본과 북한 간 관계 개선과 등가물이라고 봅니다. 북미, 북일 국교 정상화를 통한 동북아시아 국제 관계의 정상화가 한반도 비핵화 평화 프로세스를 촉진하고 안착시키는 길이라는 의미에서 북일 국교 정상화 없이는 이런 과정이 완성되지 않는다고 봅니다. 한일 관계를 정상화해서 북일 관계를 중재하는 것이 우리 정부의 과제라고 생각합니다.
이부영 구체적인 말씀 감사드립니다. 조금 전 이종찬 선생께서 일본의 평화헌법 문제가 한반도에 드리우고 있는 어두운 그림자에 대해 말씀하셨는데, 최근 한일 시민사회 사이에서 그런 문제로 논의를 했습니다. 현재 일본 시민운동 쪽에서도 개헌과 관련해 위기감을 갖고 올 5월 평화헌법을 지키기 위해 대대적인 집회를 할 모양입니다. 우리도 관심을 갖고 지켜보고 있는데, 관련해서 말씀해주시면 좋겠습니다.
정강자(참여연대 공동대표) 간단히 말씀드리면, 시민사회는 일본이 평화헌법을 전쟁헌법으로 바꾸려 하고 전쟁국가로 회귀하려는 게 아닌가 의심하고 있습니다. 한국은 2016년과 2017년 촛불항쟁을 경험했고 이후 국제 토론회를 연 바 있습니다. 그때 일본 측 참가자가 있었는데 저희에게 감동을 주었습니다. 그분들의 슬로건이 ‘일본의 전쟁을 허용하지 않는다. 헌법 9조를 부수지 말라. 그래서 우리는 총궐기위원회를 만들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한국과 유사한 촛불 행동에 나서기도 했습니다. 만일 평화헌법 9조가 부서진다면 이것은 일본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한국, 중국, 러시아, 나아가 동아시아 평화와 세계 평화에 이것이 어떤 ‘역작동’을 할 것인가 우려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부영 이야기가 상당히 진행됐는데, 하토야마 총리, 와다 선생이 중간 답변을 해주시고 토론을 더 진행하면 좋겠습니다.
하토야마 유키오(전 일본 총리) 현재 아베 정권의 ‘적극적 평화주의’라든가 중국 시진핑 주석의 ‘중국몽’ 실현 등을 생각했을 때 동아시아 공동체라는 것이 손쉽게 실현될 수 있을 것 같진 않습니다. 다만 시진핑 주석은 여러 차례에 걸쳐 동아시아 공동체에 대해 이야기했고 ‘일대일로’의 구상 목적이 주변 각국의 번영을 통해 평화를 구축하는 데 있다고 했습니다. 저는 그 말을 믿고 싶습니다. 그렇다면 오히려 문제는 일본 측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일본의 현 아베 정권은 이러한 우애 사상에 입각한 동아시아 공동체 등의 구상에 대해 전혀 언급하지 않고 있습니다. 유감스럽습니다.
제가 총리였던 시절 동아시아 공동체 구상에 대해 발표했지만, 간 나오토 총리 때 이후 동아시아 공동체라는 단어는 사라졌습니다. 하지만 이런 말이 있습니다. “역사적으로 위대한 모든 업적은 처음에는 유토피아라는 비판을 받았다.” 현 정권이 공동체라는 발상에 대해 소극적이라고 해서 불가능하다고 보기보다는 이러한 것을 지탱하는 민간의 힘을 한층 더 강화하는 게 지금 가장 중요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이를 위해 저는 ‘동아시아 경제공동체’ 라는 것도–이미 중국의 리커창 총리가 말했는데–의미 있다고 봅니다. 문화공동체, 경제공동체 등 다양한 주제의 공동체를 부분적으로 만들어나가는 것도 의미 있을 것입니다. 아주 사사롭고 작은 움직임이지만 4년 연속으로 오키나와에서 ‘동아시아 면류공동체’라는 것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먹는 ‘면’을 말하는 것입니다.(웃음) 동아시아는 면이라는 하나의 같은 문화를 공유하고 있습니다. 면 문화를 무대로, 면이라는 공통적인 주제를 통해 각각의 나라에 따라 서로 다른 음식을 만들어 함께 먹고 즐기고, ‘다른 건 참 좋은 거구나’ 하고 서로 느끼고 또 ‘비슷한 부분도 있구나’ 하고 기쁨을 나눠 갖는 등 이러한 다양한 움직임을 계속 만들어가는 게 중요합니다.
우애와 박애라는 것은 물론 같은 개념은 아닙니다. 박애라는 말에는 도와주는 사람과 도움받는 사람 측이라는 일종의 방향성이 존재합니다. 하지만 우애는 양쪽이 함께입니다. 앞서 말씀이 있었는데 ‘상호 존중, 상호 이해, 상호 부조’인 것입니다. 이런 발상은 박애보다 우애 개념에 더 가깝습니다. 때문에 그런 정신을 가진 민간 차원의 활동을 먼저 시작하고, 그 움직임들이 궁극적으로 정치를 움직이고, 양국 정상 간 신뢰가 구축되는 수순으로 나아가는 게 낫지 않나, 이런 방향성이 바람직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그리고 저는 아베 정권이 개헌을 실현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개헌에 관해 여러 말들을 하고 있지만, 실제로 개헌은 불가능하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결국 개헌을 하려면 일본 국민의 과반수가 개헌안에 찬성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성립이 안 됩니다. 7월에 실시될 참의원 선거에서 자민·공명당 연립정권이 (개헌안 발의 가능선인) 3분의 2 이상 의석을 획득한다 해도 국민의 과반 이상이 (국민투표에서) 개헌에 찬성해야 하는데, 힘들다고 봅니다. 내용에 따라 달라질 수 있겠지만, 헌법 9조를 움직이려 할 때 지금 일본 국민의 여론을 보면 과반수의 찬성을 얻을 수 없을 거라고 봅니다. 그런 의미에서 국민들이 방파제 역할을 해 개헌을 저지할 수 있다고 봅니다.
저는 본질적으로 아베 총리의 북에 대한 태도가 스스로의 의지를 통해 변화했다기보다는 미국으로 인해 변화되었다고 봅니다. 원래 아베 총리는 납치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북일 국교 정상화는 없다고 이야기하고 있었고, 최근까지도 그런 생각을 고수하고 있었습니다. 그것을 변경하게 된 것은 주변의 상황, 즉 문재인 대통령의 대단한 노력으로 남북 정상회담이 실현되고, 북미 정상회담도 2차례 개최된 등의 상황 때문일 것입니다.
와다 하루키(도쿄대 명예교수) 하토야마 총리께서 마지막에 말씀하신 것 중 헌법 개정이 어려울 것이라는 말씀은 저와 거의 같은 의견입니다. 아베 총리는 당초 러시아와의 영토 문제 협상을 성공시키고 그 기운에 힘입어 참의원 선거에서 승리하려는 생각이었습니다. 북방 4도 반환은 포기하고 2개 섬이라도 우선 반환을 성공시키려 했고, 그렇게 얻은 지지율로 헌법 개정으로 나아가려는 의향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그러나 러시아의 결단이 너무 늦어져 상황이 어려워지고 있었습니다. 헌법 개정과 관련해서도 국민들은 기본적으로 현상 유지를 바랄 것이고, 그러니까 그렇게는 넘어가지 않을 거라고 봅니다. 또한 아베 총리는 북한과 협상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강하게 하고 있습니다. 납치 문제 때문이죠. 그러나 북한은 아베가 납치 문제를 가져가면 응하지 않을 것입니다.
지역주의 문제와 관련해서는, 하토야마 총리도 말씀했고 저도 줄곧 그것이 새로운 ‘유토피아’라고 믿고 있습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아세안+3’을 제안한 바 있습니다. 그러나 결국 그것은 중국과의 충돌 속에서 사라졌습니다. 또 노무현 전 대통령이 제안한 동북아 공동체가 있었습니다. 동북아 공동체 위원회까지 대통령 직속기구로 설치해 노력했지만 중간에 사라져버렸죠. 동북아 공동체가 북한과 충돌했고 결국 흘러가 버렸습니다. 지역주의적 생각이라는 건 여전히 중요합니다. 지금 새로운 가능성이 열렸다고 볼 수 있고, 그게 북미 정상회담 이후의 상황입니다. 북이 조선반도 비핵화를 표현하고 핵을 포기할 테니 자국의 안녕을 보장하라고 하고 있습니다.
어찌 됐든 이런 상황에서 가장 어려움에 처한 건 아베 총리라고 생각합니다. 아베는 트럼프와 함께 북을 철저히 목 졸라 핵을 없애자는 식으로 궁지로 몰아가면 체제 붕괴가 가능할 거라는 생각을 했다고 봅니다. 그런 프로세스로 헌법 개정도 가능하다고 봤겠지만, 트럼프가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갔기 때문에 굉장히 당혹스러운 상황일 것입니다. 아베가 ‘환생’해 다시 생각해주길 바라지만, ‘아베 원칙’이란 게 여전히 있어 본인은 그걸 바꾸지 못하나 봅니다. 일본은 자기 힘만으로는 스스로를 바꾸지 못합니다. 그러니까 지역주의적으로 생각해야만 하는 상황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부영 1965년 한일협정 협상이 잘못된 방향으로 간다고 보고 항의 반대운동을 벌였던 6.3세대 대표들이 이 자리에 나와 계십니다. 대표 격인 김도현 선생의 말씀을 청해보고 싶습니다.
김도현(전 문화체육부 차관) 우리 마을의 일족 사이에서 독립운동 서훈자가 44명이 나왔습니다. 불과 100여 호 되는 안동의 조그만 마을에서 독립운동 서훈자가 44명이나 나오려면 근 50여 년간 감시, 투옥, 체포, 고문, 망명, 빈곤 등이 일상이 되어야 했을 텐데요. 또 그 한참 전 400년 전인 1591년, 저의 15대 선조는 풍신수길(도요토미 히데요시)을 만났습니다. 이분이 국서를 갖고 갔는데 그 국서에는 ‘친목을 도모하자’(講信修睦)라고 쓰여 있었으며 ‘화호’(和好)의 양국 관계를 만들자고 역설했습니다.
그러나 대답은 알다시피 침략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래서 이분들은 일본 사람들과는 같은 하늘 아래 살지 않겠다고 맹세했습니다. 우리 선조들은 일본인과 같은 하늘 아래 살지 않겠다고 했지만, 그럴 도리가 없고, 저는 한일이 친목과 우애의 국가 관계가 되기를 바란다는 것을 말씀드립니다.
윤영오(국민대 명예교수) 장기적으로 북일 수교나 동아시아 공동체 다 중요하지만, 중요한 것은 현재 악화되는 한일 관계입니다. 한일 관계가 나쁠 때마다 일본 내 양심 있는 지성인들의 선언서 같은 것이 얼마나 위로가 되는지 모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도 용기를 내어 일본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는 역할을 해야지 자꾸 일본 국민들에게 깨우쳐라 이래라 저래라만 해서는 안 된다고 봅니다. 그 한 방법으로, 한국의 지식인들이 오늘 하토야마 총리께서 말씀한, 곧 은퇴하실 일본 천황의 방한을 요청하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이분의 그간 언행을 보면 한국에 우호적이에요. 우리를 실망시키지 않고 훌륭한 말씀을 해주리라 믿습니다. 자꾸 여기서 학문적인 이야기만 하는 것보다 구체적 액션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이부영 오는 2020년 도쿄 하계올림픽, 2022년 베이징 동계올림픽이 열립니다. 우리는 지난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이 우리 안에 어떤 변화를 가져왔는지 직접 목격한 바 있습니다. 도쿄와 베이징에서 연이어 열리는 이번 올림픽이 동아시아, 한반도에 평화의 메시지가 다시 퍼지도록 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특히 한일 간 더 깊은 관계, 북한까지 참여하는 계기가 되어야 할 것 같은데, 이 부분과 관련해서도 말씀해주시면 좋겠습니다.
유승삼(전 서울신문사 사장) 우연히도 동아시아에서 연속으로 스포츠 행사가 열립니다. 평창 동계올림픽(2018년)–도쿄 올림픽(2020년)–베이징 동계올림픽(2022년)–항저우 아시안게임(2022년)–나고야 아시안게임(2026년) 등입니다. 하토야마 총리가 ‘경제 중심 부전 공동체’ 말씀도 했고, 최상용 박사도 경제적 상호 의존 관계가 있는 나라 사이에는 전쟁이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비슷한 논리로 스포츠 행사의 상호 부조 관계가 있으면 무력 충돌은 없을 것입니다. 이것은 북일 관계 개선에도 도움이 될 것으로 봅니다.
이홍정(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총무) 동북아에서 진행될 일련의 올림픽 행사에 거는 한 가지 큰 기대는, 그동안은 올림픽 스포츠 행사가 특히 동북아에서 국가 중심주의에 기반한 관제 민족주의를 강화하는 도구로 전락해왔는데, 이제는 그걸 평화를 만드는 계기로 삼을 수 있다는 점입니다. 그게 결국 동북아 관제 민족주의, 신 냉전주의의 뿌리라 할 수 있는 샌프란시스코 체제와 판문점 체제의 연동으로 이어지는 ‘동북아 대 냉전의 분단선’을 무너뜨리는 계기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평화 올림픽을 계기로 2032년 남북 공동 올림픽의 꿈까지 우리가 함께 꿨으면 좋겠습니다. 그를 통해 동북아 공동의 집이 만들어졌으면 하고, 그 토대가 되는 동북아 시민평화연대가 굳건히 자리 잡았으면 합니다.
이종오(경제사회포럼 이사장, 전 대통령자문 정책기획위원장) 새로운 100년을 모색하면서 미래를 이야기했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과거를 정확히 봐야 하고, 미래를 보지 않고 과거만 들여다보면 건설적이지 못하다 하는, 그걸 합의하신 것 같습니다. 즉 과거에 대한 정확한 인식 위에 미래를 건설해나가자는 시간적 축이 하나 있었고 한일 관계가 한·일만 갖고는 해결이 안 되고, 한반도라는 공간의 확장 속에서 생각해야 한다는 말씀이 있었습니다. 더 나아가 중국, 미국, 러시아, 동아시아 전체 공간의 차원에서 이 문제를 봐야 한일 관계의 단선적 관계도 정확히 풀어낼 수 있다, 그렇게 이야기가 진행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와다 선생의 말씀 중 인상 깊었던 것이, 북일 문제의 해결을 위해서는 한일 문제가 이것을 추동하는 힘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백낙청 선생은 남북 관계가 북일 문제와 북미 문제 추동의 힘이 되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한일회담 반대운동에 참여하고 고초를 겪으신 선생들의 말씀도, 우리가 일방적으로 도덕적으로 단죄하고 우월 의식을 갖는 것만으로는 문제 해결이 안 되며 용서, 화해, 이해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와다 교수, 하토야마 총리도 같은 취지로 말씀하셨고요. 그런 화해와 용서의 과정은 상호 과정이 되어야 하고, 그럼으로써 유럽 공동체처럼 동아시아 공동체적 질서, 평화와 번영의 질서를 꿈꿔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이삼열(대화문화아카데미 이사장) 오늘 좋은 제안들을 많이 해주셔서 기쁘고, 앞으로 한일 관계를 개선하고 발전시키는 데 중요한 씨앗과 토대가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새로운 백 년의 모색’이라는 큰 제목을 걸었는데, 이런 의식으로 이제부터 논의를 시작하자는 뜻입니다. 정부가 어렵고 정치적으로 곤란하더라도 시민사회와 국민들이 나서서 새로운 100년을 만들어보자는 뜻으로 모임을 주선했습니다. 감사드리며 오늘 모임을 마치겠습니다.

 
 
 

2019년 7월호(통권 72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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