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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me > 기독교사상 > 특집 > [특집] 개선 시급한 한일 관계
특집 (2019년 6월호)

 

  한일 관계의 새로운 100년을 찾아
  

본문

 

* 이 글은 대화문화아카데미와 동아시아평화회의가 공동주최한 3・1운동 100주년 특별 대화모임 “한일 관계: 새로운 백 년을 모색한다”에서 발표된 발제문이다. 이 대화모임은 2019년 3월 29일, 대화의 집에서 이루어졌다. - 편집자 주

3・1 독립운동 100주년을 맞이한 오늘, 한일 관계의 앞으로의 새로운 100년을 내다보며 논의하는 것은 대단히 뜻깊은 일이라 생각합니다. 또한 이러한 논의의 자리에 저를 초청해주신 데 대해 감사드립니다.
남북 관계가 몇 년 사이 어떻게 움직일지조차 분명한 예측이 어려운 가운데 100년 후까지는 가늠도 안 되는 것이 사실입니다만, 과거의 연장선상이 아닌 형태로 한일 관계가 어떠했으면 좋겠다는 기대를 담아 조망하는 것은 의미 있는 일입니다. 그리고 한일 관계의 향후 100년을 이야기하기 위해서는 아무래도 우선 과거 100년의 총괄에서부터 시작할 필요가 있겠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3・1 독립운동 100주년 기념식에서 “역사를 바로 세우는 것이야말로 중요하고 친일잔재 청산이 과제다.”라고 언급하는 한편, “이웃 나라와의 외교에서 갈등 요인을 만들자는 것이 아니다. 친일잔재 청산도, 외교도 미래지향적으로 이뤄져야 한다.”라고 주장하셨습니다. 나아가 문 대통령은 “한반도 평화를 위해 일본과의 협력도 강화할 것”이라면서 “힘을 모아 피해자들의 고통을 실질적으로 치유할 때 한국과 일본은 마음이 통하는 진정한 친구가 될 것”이라고 호소하셨습니다. 피해자들이란 분명 최근 현안인 징용공이나 위안부였던 분들을 염두에 둔 발언이겠지만, 이들 문제를 직접적으로 언급하지는 않았습니다. 한일 외교 마찰의 심화는 최대한 피하고자 하는 마음을 문 대통령의 연설에서 느꼈습니다. 문 대통령께서는 훌륭한 연설을 하셨다고 생각합니다. 이 연설에 대해 일본 정부 측이 어떻게 응답할지가 앞으로 한일 관계의 방향을 결정하게 될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100년 전 한반도는 일본의 식민지였습니다. 개국을 한 일본은 구미 열강에 져서는 안 되겠다며 뒤늦게 해외에 진출하고, 오키나와, 타이완 등과 함께 한반도를 식민지로 삼았습니다. 그 행동은 대일본주의(大日本主義)라 불립니다. 일본은 탈아입구(脱亜入欧)라는 열병에 걸려 식산흥업(殖産興業), 부국강병(富国強兵)의 구호 아래 크고 강한 나라를 지향하며 식민지 쟁탈전에 참여했습니다. 그 결과, 만주사변에서 태평양전쟁으로 전선은 확대되고 일본은 역사적 패배를 맛보았습니다. 문제는 일본이 대일본주의에 따라 일련의 행동을 취한 일에 대한 일본 스스로의 총괄이 이뤄지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일본은 도쿄재판 결과를 수용했지만, 이는 연합국 측이 수행한 재판입니다. 때문에 식민지화나 전쟁을 통해 고통과 비극을 입힌 분들에게 진심 어린 사죄가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대일본주의를 수행한 것은 정부였지만, 당시의 최고 책임자는 천황 폐하였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지난번 문희상 국회의장이 “위안부 문제를 해결하려면 천황의 사죄가 필요”하다고 한 말은 최고 책임자가 사죄하면 문제가 해결된다는 것으로, 한국 측에서는 당연히 이해할 수 있는 발언일 것입니다. 다만 일본인 대부분은 천황 폐하를 숭상(尊崇)하고 있으며, 현 헌법상 천황 폐하는 어디까지나 국정에 관한 권능을 갖지 않는 상징적 존재이다 보니, 많은 일본 국민이 “문 의장이 그런 말까지 하나”라고 생각한 것은 부자연스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렇다면 천황 폐하는 사죄하지 않았던 것일까요? 현재의 아키히토(明仁) 천황은 오는 5월에 ‘생전 퇴위’를 하십니다. 아키히토 천황이 1990년 5월, 귀국의 노태우 대통령이 방일했을 때의 궁중만찬회 자리에서 다음과 같이 사죄의 마음을 표하셨습니다. “한반도와 우리나라의 길고도 풍요로운 교류 역사를 돌아볼 때, 쇼와(昭和) 천황께서 ‘금세기의 한 시기에 양국 사이에 불행한 과거가 존재했음은 참으로 유감이며 또다시 되풀이되어서는 안 된다.’고 하셨던 말씀을 상기합니다. 우리나라로 인해 초래된 이 불행한 시기에 귀국 사람들이 맛본 고통을 생각하며, 저는 통석(痛惜)의 염(念)을 금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이듬해 탄생일에 즈음해서는 폐하 자신의 말로서, “간무(桓武) 천황의 생모가 백제 무령왕의 자손이라고 『속 일본기』에 기록되어 있어 한국과의 인연을 느끼고 있습니다.”라는 표현으로 본래는 금기가 아닐까 생각되는 발언을 하셨습니다. 아키히토 천황이 자신의 태생에 관한 사항까지 언급한 것은 천황 폐하가 현재와 같은 한일 관계를 얼마나 우려하고 있는가, 또한 풍부한 교류가 이뤄지던 옛 관계로 되돌리고 싶어 하시는가 하는 의사 표현이었다고 믿습니다.
이어 1994년 3월에 김영삼 대통령을 초청한 궁중만찬회에서 천황 폐하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귀국은 우리나라와 가장 가까운 이웃 나라이며, 사람들의 교류는 역사서에 드러나기 이전의 아득한 옛날부터 이루어졌습니다. 그리고 귀국 사람들로부터 다양한 문물이 우리나라에 전해져 우리 조상은 귀국의 사람들에게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이러한 양국의 길고도 밀접한 교류 동안 우리나라가 한반도 사람들에게 다대(多大)한 고난을 입힌 한 시기가 있었습니다. 지난해 저는 이 일에 대한 저의 깊은 슬픔의 감정을 표현했습니다만, 지금도 변함없는 마음을 안고 있습니다. 전후 우리 국민은 과거 역사에 대한 깊은 반성 위에 서서 귀국 국민과의 사이에 흔들리지 않는 신뢰와 우정을 만들어내고자 힘써왔습니다.”
천황 폐하가 가장 일찍, 가장 진지하게, 가장 명확하게 한국 국민인 여러분에게 사죄의 마음을 표명한 것입니다. 저는 천황 폐하의 한국 국민에 대한 마음을 일본 정부, 그리고 일본 국민이 공유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이 사실을 여러분들이 알아주셨으면 합니다. 저는 총리 재임 중에 이명박 대통령으로부터 천황 폐하의 한국 방문을 희망한다는 메시지를 받고 그 뜻을 천황 폐하께 전달해드렸습니다. 아쉽게도 폐하의 방한은 이뤄지지 않았지만, 5월에 탄생하는 새로운 천황 폐하가 한국 국민의 환영 속에서 방한하게 될 기회가 생기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이는 간단한 일이 아닐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천황에 대한 복잡한 마음을 갖고 계실 테니 말입니다. 하지만 만일 그러한 기회가 생겨 새로운 천황이 헤이세이(平成) 천황과 같은 심정으로 한국민을 접할 때 한일 관계는 커다란 진전을 이루게 되리라고 확신합니다.
총괄이라는 의미에서는 천황 폐하보다도 국민의 의사로서 일본 정부가 행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시도가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1995년, 전후 50주년 기념일을 맞아 무라야마 담화가 발표되었습니다. 무라야마 도미이치(村山富市) 총리는 먼저 “우리는 과거의 잘못을 두 번 다시 되풀이하지 않도록 전쟁의 비참함을 젊은 세대에게 전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라고 밝히며 평화의 소중함과 고마움을 쉬이 망각하고 있는 상황에 대하여 경종을 울렸습니다. 그리고 “우리나라는 멀지 않은 과거의 한 시기에 국책을 그르쳐 전쟁으로 가는 길을 걸어 국민을 존망의 위기에 빠뜨렸으며, 식민지 지배와 침략으로 많은 나라들, 특히 아시아의 여러 나라 사람들에게 다대(多大)한 손해와 고통을 주었습니다. 저는 미래에 잘못이 없도록 하기 위하여 의심의 여지도 없는 이와 같은 역사의 사실을 겸허하게 받아들이면서, 여기에 다시 한 번 통절한 반성의 뜻을 표하며 진심으로 사과의 마음을 표명합니다. 또한 이 역사로 인한 내외의 모든 희생자에게 깊은 애도의 뜻을 바칩니다.”라면서 식민지 지배와 침략으로 많은 아시아 사람들에게 고통을 입힌 일에 대하여 명확한 반성과 사죄의 발언을 했습니다. 그리고 깊은 반성 위에서 독선적인 내셔널리즘을 배척하고 평화의 이념과 민주주의를 널리 확산시켜야 한다고 끝맺었습니다. 천황 폐하의 마음을 더욱 구체적으로 표현하고 일본이 나아갈 길을 제시한 것으로 평가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그 무렵 일본은 훗날 잃어버린 20년이라 불리게 된 경제적 침체의 입구에 이미 들어서 있었습니다. 일본은 패전 후, 반성 아래 평화헌법을 제정함으로써 국권의 발동인 전쟁과 무력에 의한 위협 또는 무력의 행사를 국제 분쟁 해결 수단으로서는 영구히 포기하였습니다. 그리고 육해공군과 기타 전력을 보유하지 않겠다고 헌법 9조를 통해 맹세했습니다. 그 결과 일본은 경제를 중심으로 발전을 이루어 기적적인 전후 부흥을 이루었을 뿐만 아니라 미국에 버금가는 제2의 경제대국으로 성장하기까지 했습니다. 그러나 기쁨도 잠시여서, 경제에 거품이 일었고 그 대책에 실패한 탓에 이후 오랫동안 경제 불황 시대가 계속되었고 국민들은 자신감을 상실했습니다. 그 사이 중국 등을 필두로 주변 국가들은 급속한 경제 발전을 이루었기 때문에 일본 국민은 중국이나 한국 등의 사람들에게 관용의 마음을 점차 잃게 된 것 같습니다. 이러한 배경이 일부 일본인의 혐한(嫌韓)과 혐중(嫌中) 감정을 증폭시켰습니다. 독선적이고 편협한 내셔널리즘이 확산되는 바탕을 만든 셈입니다.
국민의 불만이 한때는 정–관–재계의 유착 체질로 물든 자민당 정권을 향해 2009년 총선에서 민주당의 압승으로 선거를 통한 정권교체가 실현되었고 하토야마 정권이 탄생했습니다. 하토야마 정권은 일본 외교의 중심축을 옮겨 대미 의존보다 미일 안보를 기본으로 삼되, 아시아를 보다 중시하는 방향으로 이끌고자 했기 때문에 한일, 중일 관계 모두 양호했다고 봅니다.
그러나 이후 아베 자민당 정권이 복귀하자, 아베 총리는 무라야마 담화에 대한 재검토 의향을 보였을 뿐 아니라 종군 위안부 문제에 관한 고노 담화 검증 발언과 야스쿠니 신사 참배 등이 이어져, 한일 관계는 정상회담이 오랫동안 열리지 않는 최악의 상황을 맞았습니다. 그 후 총리가 야스쿠니 참배를 하지 않고 위안부 문제에서도 양국 정부 간 합의가 성립하는 등 일시적으로는 최악에서 벗어난 것처럼 보였지만, 작금은 징용공 출신자 문제나 한국 해군의 레이더 조사(照射) 문제가 일어나면서 한일 관계는 지극히 비정상적 상태에 놓여 있다고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위안부 문제와 관련해서는 2015년에 미국의 요청도 있어 한일 외교장관이 회담한 결과 합의가 이루어졌습니다. 저는 이 합의를 읽은 순간, 이것 가지고는 최종적 결말을 볼 수 없는 게 아닐까 우려했습니다. 왜냐하면 합의에 따라 총리의 사죄와 일본 정부의 10억 엔 거출이 결정됐지만, 이 합의를 ‘최종적이고도 불가역적인 해결’이라 한 것은 일본이 위에서 내려다보는 태도로 두 번 다시 사과하지 않겠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져 한국민의 감정을 자극할 것이라 우려됐기 때문입니다. 아니나 다를까 우려한 대로 되고 말았습니다.
이와 관련해 저는 일본의 철학자 우치다 다쓰루(内田樹) 선생의 말이 가슴에 와닿습니다. “우리는 지금도 여전히 한국으로부터 과거 전쟁 당시의 종군 위안부 제도에 대하여 냉엄한 비판과 사죄 요구를 받고 있습니다. 한일조약으로 법적으로는 결말을 봤다, 또는 한국에 충분한 경제적 보상을 했으니 언제까지나 똑같은 문제를 들먹이지 말라는 식으로 짜증 섞인 말을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만, 전쟁 피해에 대해서 패전국이 짊어지는 것은 사실상 ‘무한책임’입니다. 정해진 배상을 했으니 이제 책임을 다했다는 말을 패전국 측에서 할 수는 없습니다. 전승국이든 구 식민국이든 그쪽에서 먼저 ‘이제 더 이상 책임 추궁은 안 하겠다.’는 말이 나올 때까지 책임은 계속 짊어져야 합니다.” 저는 이 생각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마음을 일본 위정자가 가질 수 있을 때에 위안부 문제는 해결될 것입니다.
전 징용공 문제와 관련해서는 한국 대법원이 배상을 명한 판결에 대하여 고노(河野) 외상 등이 비난 발언을 거듭했지만, 거슬러 올라가면 1991년에 야나이(柳井) 조약 국장이 “개인청구권 자체를 국내법적 의미에서 소멸시킨 것은 아니다.”라고 답변한 바 있으며, 한일 청구권 협정으로 완전하고도 최종적으로 문제가 해결된 것이 아닙니다. 따라서 한일 양국 정부가 징용공 피해자분들의 존엄과 명예를 회복시키기 위해 냉철하게 대화하는 것이 대단히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한국 해군 레이더 조사(照射) 문제는 작년 말 일본해(동해)에서 한국 해군 구축함이 해상 자위대의 P1 초계기에 화기 관제 레이더를 조사한 데 대해 일본 정부와 많은 국민이 대단히 위험한 행위라며 항의한 것이 발단이었습니다. 아시는 바와 같이 한국 함정은 조난된 북한 어선을 구조하는 중이었고, 한국군 측에 자위대기를 공격할 의도가 있었다고는 생각되지 않습니다. 항공막료장을 지낸 다모가미(田母神) 씨에 따르면, 최근의 화기 관제 레이더는 상시적으로 거의 전방위로 전파를 계속 배출하기 때문에 주변에 있는 항공기 등에 전파가 조사된다고 합니다. 그러니 위험하다며 크게 법석할 이야기가 아닙니다. 서로가 냉철해지고, 지나친 일이 있었다면 미안하다고 사과하면 끝날 이야기입니다. 문제는 이러한 문제가 냉철함을 잃게 하여 호전적 분위기로 순식간에 기울어버리는 일본 여론에 있다고 느껴집니다.
지금만큼 한일 관계에서 미래를 직시하며 냉철해야 할 때가 없는 것 같습니다. 우리는 역사적으로 주변 사람들로부터 다양한 혜택과 영향을 받아왔으며, 앞으로도 누구보다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받을 것입니다.
이웃끼리 서로 증오하면 서로에게 나쁜 영향을 받을 터이고, 반대로 이웃끼리 서로 사랑하면 서로에게 좋은 영향을 받을 것입니다. 일본인과 한국인이 더욱더 서로 신뢰하고 함께 협력할 수 있게 되기를 바라 마지않습니다.
저의 조부이신 하토야마 이치로(鳩山一郎)는 1954년 총리대신으로 취임했다가 1956년 일소 국교 회복을 이루고 사임하셨습니다. 그는 전후에 곧 총리가 될 기회가 있었지만 내각 구성 직전에 추방 처분을 받았습니다. 추방되어 청경우독(晴耕雨読)의 나날을 보내던 중 리하르트 코우덴호페칼레르기(Richard Coudenhove-Kalergi) 백작의 저서 『전체주의 국가 대 인간』을 읽고 심취하게 됐고, 그의 ‘우애’ 이념에 공감하여 『자유와 인생』이라는 제목으로 그 책을 번역했습니다. 그리고 정계에 복귀한 후에는 우애를 ‘상호 존중’, ‘상호 이해’, ‘상호 부조’라고 설파하면서, 우애 사회의 실현에 힘썼습니다.
일본인 어머니를 둔 오스트리아인 코우덴호페칼레르기 백작은 자유와 평등의 가교로서 ‘우애’의 중요성을 역설했습니다. 20세기 초 히틀러와 스탈린이라는 두 전체주의로 뒤덮인 유럽에서 전체주의와 싸우기 위한 사상으로 ‘우애’를 제창한 것입니다. 그는 우애의 이념에 바탕을 두고 범유럽주의를 주창했으며, 그것이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유럽의 석탄철강공동체(ECSC)를 탄생시키는 기초가 되었습니다. 그때까지 서로 미워하던 독일과 프랑스 양국은 석탄과 철강의 공동 관리를 비롯한 협력을 쌓아 나갔습니다. 또한 독일과 프랑스를 중심으로 유럽 주변국에서도 경제 중심의 협력 관계가 심화되어 우여곡절을 거치면서도 그 움직임이 오늘날의 유럽연합(EU)으로 결실을 맺었습니다. 이제 독일과 프랑스가 또다시 전쟁을 하리라고는 아무도 상상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유럽이 사실상 부전(不戦) 공동체가 된 것입니다.
제가 드리고 싶은 말씀은 우애가 결코 과거 이념이 아니라 바로 지금의 세계 정치에서 가장 소중한 이념이라는 점입니다. 우애란 자기 존엄성을 존중하는 동시에 타인의 존엄성도 똑같이 존중함을 말합니다. 자신의 자유를 존중하면서 타인의 자유도 존중하고, 서로 차이를 인정하고 개성을 살려 서로 돕는 일입니다. 달리 표현하면, 우애는 자립과 공생으로 인수분해될 수 있습니다. 자신이 자립하려고 노력함으로써 스스로의 존엄성이 존중됩니다. 하지만 자기 혼자서는 살아갈 수 없으니 타자와 자신이 다른 존재임을 이해하고 기뻐하면서 서로 돕고 살아가게 됩니다. 이는 의존하거나 무작정 기대는 것이 아닌 공생입니다. 공생 없는 자립도, 자립 없는 공생도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우애란 사람과 사람 사이만이 아니라 국가 간에도 성립되는 이념입니다. 근대 국가는 한 나라만으로 존재할 수 없습니다. 타국과의 다양한 협력과 영향 속에서 존재합니다. 국가로서 어떻게 자립을 도모하며 다른 나라와 공생해나갈 것인가가 국가 운영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말씀드리자면, 현재 일본은 미국에 대한 의존이 지나쳐서, 그 중심축을 보다 한국과 중국 등 아시아로 옮기는 것이 우애 국가가 되는 길이라 생각합니다.
우애의 이념을 더 넓게 바라보면 인간과 자연 사이에도 성립된다고 하겠습니다. 인간이 자립하면서도 자연과 어떻게 공생할 수 있을지는 인류 최대의 과제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정치적으로 세계화가 작동하지 않고 내셔널리즘이 고양되고 있는 현재, 우리는 무엇을 하면 좋겠습니까? 저는 편협한 내셔널리즘을 억제하기 위해서는 우애 이념에 따라 지역기구를 창설하고 구성 국가들의 상호 이해의 장을 공유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이른바 지역주의(regionalism) 이념에 따라 공동체를 구축하는 것 말입니다. 공동체 안에서는 결코 무력을 사용하지 않고 모든 분쟁은 철저히 대화로 해결하도록 노력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힘의 행사는 결코 분쟁의 본질적 해결이 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저는 이러한 우애 이념에 기초해 동아시아 부전 공동체를 꿈꾸면서 ‘동아시아 공동체’를 창설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아세안(ASEAN) 10개국은 이미 경제를 중심으로 통합되어 공동체를 형성했습니다. 또한 시진핑 주석은 아시아를 ‘운명 공동체’라고 하면서, 2020년까지 동아시아 공동체를 만들고 싶다고도 했습니다. 아세안 10개국에 한·중·일 세 나라가 더해지면 동아시아 공동체의 핵심이 형성됩니다. 중국은 그러한 의사를 표명했으니, 한국과 일본의 태도가 남아 있습니다. 저는 일본이야말로 그 선두에 서서 깃발을 흔드는 역할을 맡아야 한다고 생각해왔습니다. 왜냐하면 이 지역에서는 다름 아닌 일본이 많은 나라들, 특히 아시아 여러 나라 사람들에게 다대한 손해와 고통을 입혔고, 이후 74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진정한 화해가 달성되었다고 여겨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70년이란 획을 맞이하던 해에 일본이 역사를 응시하고 침략과 식민지 지배로 인해 고통받은 사람들과 국가들에 대해 분명한 사죄와 보상을 할 수 있었다면 동아시아 공동체를 향해 크게 전진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저는 총리 재임 중 동아시아 공동체 구상의 중요성을 설파했습니다. 그리고 한·중·일 3국 협력 사무국을 서울에 설치할 수 있었습니다. 소기의 목적이 아직 이뤄졌다고는 보기 어려워 안타깝습니다. 한·중·일 정상회담이 차차 재개되어 한·중·일 협력이 다양한 분야에서 진행되기를 바랍니다.
이제 한반도는 평화를 향해 크게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남북 정상회담이 몇 차례나 열렸고, 두 번째 북미 정상회담도 하노이에서 개최되었습니다. 두 번째 북미 정상회담에서 아무런 합의도 얻어지지 않았으니 회담이 결렬됐다, 실패했다는 식의 부정적 논조가 눈에 띄었습니다만,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북한이 핵 개발을 완전히 멈추고 미국이 경제제재를 완전히 풀어 양국 간 평화조약을 체결하는 것이 한두 번의 정상회담으로 결론날 일은 아닙니다. 오히려 이번 회담에서 양자가 어떻게 타협점을 찾아갈지 그 윤곽이 어렴풋이나마 드러난 만큼, 좋았던 게 아닌가 생각합니다. 중요한 것은 앞으로도 정상회담을 이어감으로써 그 사이 북한이 미사일을 발사하지 않고 미국도 북한을 군사적으로 공격하지 않을 것이란 점입니다. 북미 관계가 질적으로 개선되어 한반도는 위기 상황에서 벗어나고 있습니다. 한국은 말할 것도 없지만, 지금이야말로 일본과 중국이 한반도의 평화 움직임을 지원하는 자세를 보여주는 것이 중요합니다. 특히 일본은 한반도의 남북 분단에 커다란 책임이 있는 나라입니다. 그저 트럼프 대통령을 전면적으로 지지한다는 데 그칠 것이 아니라 한국에 적극적으로 협력하는 자세를 보여야 할 것입니다. 100년 후를 바라본다면 한반도는 어떤 형태로든 하나의 국가가 되어 있을 테니 말입니다.
몇 년 전까지는 동아시아 공동체의 구상 안에 어떻게 북한을 편입시키는가의 문제가 결코 쉽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남북 관계의 급진전으로 이 틀에 북한을 넣어서 생각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저는 동아시아 공동체 의회를 설치하고, 그곳을 경제·무역만이 아니라 환경·에너지·교육·문화·안보 등 모든 분야를 논의하는 장으로 삼아야 한다고 보는데, 오키나와(沖縄)와 제주도가 그러한 회의의 개최 지역으로 적합하리라고 생각합니다. 한국과 일본이 중심적 역할을 수행하면서 세계 양대 강국의 하나로 자리매김한 중국이 경제적으로나 정치적으로 동아시아 국가들과 평화적으로 발전해갈 수 있도록, 또한 북한이 경제적·정치적으로 평화롭고 안정된 국가로 발전하도록 이끄는 역할을 해야 하리라 사료됩니다. 거기에 성숙한 국가인 한국과 일본의 커다란 삶의 방식이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이러한 발상에 공감해주시는 분들이 일어나 동아시아를 평화롭고 매력적인 지역으로 만들기 위해, 그리고 그 목적을 다하고자 동아시아 공동체 구상을 전진·실현시키기 위해 한국, 중국, 일본이 중심이 되어 국가를 초월한 인터내셔널 파티를 만들지 않겠습니까? 이를 제안하면서 제 연설을 맺고자 합니다. 경청해주셔서 감사합니다.

 
 
 

2019년 7월호(통권 72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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