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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me > 기독교사상 > 문화·신학·목회 > [문화와 신학]문익환 목사 헌정음반 <뜨거운 마음>을 기록하다 01
문화·신학·목회 (2019년 6월호)

 

  사랑은 지치지 않아라 -<고마운 사랑아>
  

본문

 

빈틈없이 열아홉 해를 거쳐온 옛일을 오늘 일처럼 쓰는 이 글은 문익환 목사 헌정음반 <뜨거운 마음>에 담긴 노래 열한 곡에 관한 것이다. 그 노래들은 모두 늦봄의 시(詩)를 마음으로 품고 쓴 몸뚱이 가락들이다. 늦봄의 시가 작곡가의 속내에 콕 와서 박힌 것들, 박혀서 떠나지 않은 것들, 굳은살처럼 이미 내 인생의 일부로 자리잡은 것들에 관한 기록이 이 글의 주된 알맹이다.
늦봄을 지렛대 삼아 살아온 여러 음악인들이 모여 <뜨거운 마음>이라는 타이틀로 헌정음반을 만든 것은 2000년 6월의 일이었다. 나는 작곡과 음악 프로듀서로 이 일에 참여했고, 정태춘, 김원중, 홍순관, 전경옥, ‘노래마을’의 윤정희, CCM 아티스트 송정미와 조수아, 소리꾼 김용우, 기독노래모임 ‘새하늘새땅’이 노래를 불렀다.1
나는 ‘기록자’의 입장에 튼실하게 서서 이 음반이 만들어진 과정의 애틋하고 순전한 이야기를 쓸 것이다. 소소하고 시시껄렁한 일화도 방만하지 않게 쓸 것이다. 그러다 보면 긴 글도 되고 짧은 글도 되겠지만, 군더더기는 쓰지 않겠다. 다만 음악이 글로는 온전히 담기지 않을 것이니 몇 차례 연재가 계속되는 동안 그 노래들을 함께 들을 필요가 있다.
이 지상의 많은 시인들은 자신의 시가 노래로 불리는 것을 열망하지만, 늦봄의 갈증은 각별해서 자신이 직접 기존 찬송가 가락의 음수율에 맞추어 시를 썼다. 그리고 그것을 모아 노랫말 악보집을 만들기도 했다. 그 열망에 조응하며 탄생한 늦봄 헌정음반 <뜨거운 마음>. 노랫말로 쓰인 그의 시에 본래 한 몸 같은 가락을 입힌 후, 시인의 노랫말도 작곡가의 가락도 본래 자기 것인양 부르는 여러 가수들에 의해 다양한 개성의 음악 콘텐츠로 분화(分化)되기를 바라며 만든 결실이다. 이를테면 늦봄 정신의 음악적 육화(肉化)이다. 이 음반의 재킷에 그 소치(所致)를 밝힌 바 있는데, 이 지면도 같은 심정으로 채울 것이다.
문익환과 더불어 작품을 쓰고, 그의 시를 가슴에 담아 부르고, 그 노래의 결을 따라 악기를 타고 채워내는 이 모든 과정이 실은 감동 없는 삶에 익숙한 (이 음반에 참여한) 음악인 자신을 치유하고 북돋고 일깨우는 과정이었던 것이다. 우리 자신이 이렇게 기특하고 대견스러웠던 적이 또 언제였을까? - <뜨거운 마음> 연출의 글에서
늦봄에 관한 전기나 회고록이 더러 있지만, <뜨거운 마음> 음반으로 규합된 늦봄과 음악인들의 밀도 높은 조우를 다룬 글은 아무리 뒤져봐도 없었다. 섭섭했고 답답했다. 하지만 어디 적당히 말 붙일 곳이 없었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누가 대신해줄 일이 아니었다. 열아홉 해 전에 시작한 일을 내가 아직도 내려놓지 못하고 이 지면을 마주하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늦봄의 옥중 콘트라팍툼, 『늦봄 문익환 목사 성가집』
1999년 4월, 아내와 함께 인사차 봄길 박용길 장로를 수유리 댁으로 찾아뵈었다. 서른여섯 된 나이로 막 늦장가를 든 터였다.
“문 목사가 그 노랠 얼마나 좋아했는지 몰라.” 이따금 나를 만나면 봄길의 첫마디는 어김없이 그랬다. ‘그 노래’는 늦봄의 방북소식을 아침 신문으로 접한 1989년 4월 2일, 하루를 꼬박 달구어 써낸 헌정곡 <그대 오르는 언덕>이다. 당시 나는 대학 4학년이었고, 이후로 30여 년을 꽉 채워 전업 작곡가로 살면서 400곡이 넘는 작품을 발표했지만, 아직도 많은 이들이 기껏 스물여섯에 쓴 이 노래로 나를 기억한다.
이런저런 음식을 대접받았는데, 기억나는 건 꿀에 찍어먹으라고 건네준, 엄지보다 굵은 덩어리 인삼이었다. 다른 건 몰라도 그건 꼭 먹어야 할 것 같아 몇 차례 나누어 씹으며 소소한 정담을 나누었다. 막 나의 아내가 된 이는 CBS에서 일하며 인터뷰 관계로 봄길과 몇 번 왕래가 있었고, 늦봄의 까마득한 한신대 후배이기도 했다.2 사람과의 관계 면적이 제법 두텁고 말 붙임이 살가운 그 사람 덕분에 더없이 정겹고 안온한 대화가 우리 사이를 오갔다.
정담의 성찬이 무르익을 즈음, 봄길은 늦봄의 유품들이 진열되어 있는 방으로 우리를 안내했다. 여든을 훌쩍 넘겨 한국 현대사의 응집된 실체로 살아온 어른이 움직일 때마다 어린 시절 외할머니에게서 맡았던 눅눅한 냄새가 배어 나왔다. 그 냄새는 유품이 진열된 방 안에도 구석구석 깃들어 있었다. 오래된 것은 다 그만한 이유가 있고 그 이유의 대부분은 정당하다는 것을 증명해보일 기세로 방 안을 가득 채우고 있는 오래된 찬송가, 낡은 성경책, 몇 개의 안경집, 옥중편지 묶음, 펴낸 책, 읽은 책, 나무 십자가, 허다한 사연들로 색 바래고 손때 묻은 장식과 그림들…. 눅눅한 배경음악 하나 깔아 두고픈 심정으로 나는 유품들의 낱낱을 살펴보는 데 제법 많은 시간을 들였다.
그중에 내 눈에 쏙 들어와 박히는 얇은 책 한 권을 집어 들었다. 『늦봄 문익환 목사 성가집-통일맞이 7천만 겨레모임』. 가로 세로가 딱 찬송가 크기로 된 스무 쪽 분량이었는데, 흑백의 조악한 인쇄 상태를 보니 정식출판물이 아니라 워드프로세서로 누군가 타이핑한 것을 복사해서 나누어 가진 기념문집 수준이었다. 제목을 보고는 악보집을 기대했지만 막상 열어보니 기껏 노랫말 열다섯 곡이 수록되어 있었다. 봄길 말씀이, 늦봄이 옥중에 있을 때 기존 찬송가 가락의 음수율에 맞추어 새로 노랫말을 붙인 것이라 했다. 이를테면 이런 모양이었다.\

[영광의 주]
새 찬송가 50장 (큰 영화로신 주)
옛 찬송가3 12곡
문익환 옥중작사 1982년


1. 고마운 사랑아 샘솟아 올라라
   이가슴 터지며 넘쳐나 흘러라
   새들아 노래불러라 난흘러흘러 적시리
   메마른 이내 강산을

2. 뜨거운 사랑아 치솟아 올라라
   누더기 인생을 불질러 버려라
   바람아 불어오너라 난너울너울 춤추리
   이언땅 녹여 내면서

3. 사랑은 고마와 사랑은 뜨거워
   쓰리고 아파라 피멍든 사랑아
   살갗이 찢어지면서 뼈마디 부서지면서
   이땅 물들인 사랑아


작사 연대가 열다섯 곡 모두 1982년으로 되어 있는 걸 보니, 세 번째 옥고를 치를 끝 무렵이나 혹은 그전부터 써온 것을 콘트라팍툼(contrafactum)4 노랫말 악보로 정리한 것이다. 행여 부르는 이들이 혼란을 겪을까 봐 새로 만든 노랫말은 원곡의 음수율에 준하여 줄 간격까지 꼼꼼하게 맞추어져 있었다. 원곡을 아는 이들에게는 충분히 악보 기능을 했을 것이다. 나는 위 ‘노랫말 악보’를, 훗날 내게 살짝 귀띔해주었으면 기꺼이 아래와 같이 만들어 드렸을 오선보 상태로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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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감옥은 필기구가 충분하지 않았으니 늦봄은 손가락으로 바닥에 음수율을 짚어가며 열 번 스무 번, 서른 번 거듭 불러보았을 것이다. 원곡 찬송가 가락이 지닌 구성의 틀이라는 제약 때문에 본래 한 몸인 것 같은 노랫말을 감각으로 찾는 게 그리 간단한 작업은 아니다. 머리로는 이미 잘 다듬어졌어도 자꾸 불러보면서 노래다운 느낌에 적합하도록 다듬고 또 다듬어야 했을 것이다. 기왕이면 입에 착착 달라붙는 노랫말을 위해 불러보고 또 불러보면서 감각적으로 승인할 수 있어야 했다. 시(詩)만으로도 충분해서 오히려 노랫말로 적합하지 않은 것들이 발견되면 무언가를 덜어내기 위해 안간힘을 썼을 것이다. 어떤 것은 메모해두었다가 적확한 단어가 찾아질 때까지 오래오래 곱씹어보았을 것이다. 단어 하나가 바뀌면 문장의 뉘앙스가 달라지듯, 가락의 느낌도
애초 품었던 것과 다르게 변색되어 처음부터 다시 손을 본 노랫말이 허다했을지 모를 일이다.
그러다 그만 길을 잃고 포기한 곡이 있었는가 하면, 어떤 노랫말은 3절까지 달음질로 쓰여서 그날은 깃털 같은 잠을 잤을 것이다. 또 어떤 곡은 아리디 아려서, 전태일이나 김동수나 김상진이 자꾸 생각나서, 그 여린 영혼들이 당신의 통증으로 와 닿아서, 가슴을 연신 쓸어내리거나 목울대가 저미는 것을 애써 누르며 꾹꾹 쓴 것도 있었을 것이다. 그리 애통하며 쓴 것을 노래를 부르는 이들도 같은 통증으로 공감할 수 있기를 갈망하며 이 옥중 콘트라팍툼이 겨우겨우 빚어졌을 것이다.
다 알 수는 없다 해도 느낄 수는 있다. 때때로 느낌의 세계는 그 자체로 순전한 진실이어서 논리로 설명하는 게 군더더기 같을 때가 있다.
기껏 상상에 불과하지만, 나는 늦봄의 옥중 콘트라팍툼이 만들어지는 과정이 어제 겪은 내 일처럼 생생하다. 적어도 내가 상상하는 이 범위 안에 놓여 있어야 이 노랫말들이 빚어질 수 있는 것임을, 30년을 밥벌이로 음악과 씨름해온 나는 감히 증명할 수 있다.
늦봄의 옥중 콘트라팍툼 열다섯 곡을 다 읽은 후, 삼가 여린말 한마디 내려놓고 봄길의 집을 나섰다. “이 자료를 좀 빌려주세요. 제가 시간을 보내 보겠습니다.”

<고마운 사랑아>
늦봄은 자신의 시가 시집 안에 안온(安穩)하기보다 사람들의 일상 한복판을 종횡무진하기를 원했다. 노래가 시보다 더 우월할 수 있는 유일한 단서인 ‘일상성’, 그 가치를 늦봄은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굳이 노랫말로 시를 쓴 것이다.
하지만 늦봄 곁에는 작곡가가 없었다. 신랑이 신부 방을 드나들 듯 감옥을 오가는 늦봄의 1982년 겨울 독방에는, 세상에 그 흔해빠진 작곡가 하나 없었다. 늦봄 곁에 없었으니 늦봄이 만나는 수많은 사람들 곁에도 없었다. 늦봄이 기존 찬송가 가락에 굳이 새로운 노랫말을 달아 붙여서라도, 달래주고 품어주며 싸매주고픈 애처로운 사람들 곁에, 늦봄의 노랫말과 본래부터 한 몸 같은 가락을 오롯하게 붙여줄 작곡가가 없었던 것이다. 그러니 늦봄은, 가락만 놓고 보면 기껏 서구 민요일 뿐인 찬송가 가락을 빌려 노랫말을 써야 했고, 나는 이 노랫말을 기어이 노래로 써내야 했다.
빚더미에 눌린 것 마냥 주인 없는 그 노랫말을 곁에 두고 나는 몇 날을 시름시름 앓았다. 딱 한 곡이 만들어지면 될 것 같았다. 나머지 곡들은 봇물 터지듯 순식간에 써질 것이라고 근거 없는 확신이 거듭 얹혔다 풀리는 시간들을 보내던 어느 날, 거짓말처럼 딱 한 곡이, 오백억 년의 어둠을 날아온 별빛 한 줌 같은 딱 한 곡이 반짝 만들어졌다. 이 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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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를 알 수 없지만, 나는 지금도 이 곡을 내가 쓴 곡이 아닌 것처럼 듣고 또 듣는다. 쑥스럽게 자주 찾아 듣는다. 그때마다 이 곡은 노래를 부른 정태춘이 쓴 것 같고 늦봄의 노랫말은 마치 내가 나 자신에게 써보내는 위안 같다. 어쩌면 나는 이 한 곡으로 더 새로울 것이 없는 내 음악의 어떤 정점 하나에 진즉 가 닿았는지 모른다.
남이 만든 곡을 부르지 않는 것으로 유명한 정태춘은 후배의 서툰 곡을 마치 자신이 오래 걸려 쓴 곡처럼 짙고 깊게 우려 불렀다. 그가 정녕 기개 높은 음악 지사(志士)인 증거는 이 곡에 담긴 성음5 하나만으로도 충분하다.(아뿔사! 이 글을 쓰는 2019년은 그의 음악인생이 마흔 해를 맞는
해이다.)
간주의 첼로 선율에 묻어 있던 가락이 3절 후렴에서 코러스(chorus)와 현악 앙상블로 뒤엉켜 확장된 배경을 이루는데, 이 곡을 들은 많은 이들이 ‘아리디 아려서 통증이 온다.’고 말했던 그 선율의 출처는 1994년 1월 늦봄 장례식 때 관현악과 합창으로 연주한, 특히 노래모임 ‘새하늘새땅’의 솔리스트 방기순이 눈보라 흩날리는 수유리 한신대 교정을 울려버린 추모가 <늦봄 가시는 길목>(류형선 글곡)의 주제선율이다.
늦봄의 긴 장례를 치르던 한신대 수유리 교정에서 가장 가까운 여관방을 빌려 쓴 선율인데, <고마운 사랑아>는 이 테마 선율을 지렛대 삼아 쓴 작품이다. 나는 이 선율에 ‘늦봄 기억테마’라는 이름을 붙였다. 이후로 늦봄과 관련된 음악작업이 주어질 때는 반복적으로 이 테마를 활용했다. 앞으로도 어김없이 그럴 것이다.6

늦봄 문익환 목사 헌정앨범 <뜨거운 마음>
봇물 터지듯 세 곡의 노래가 잇대어 만들어졌다. 모든 곡은 가수 하나하나를 낱낱이 떠올리며 만들었다. 노래는 뭐니뭐니 해도 노래 부르는 이의 표정과 호흡과 섬세한 숨결로 배어 나오는 것이어야 비로소 생명력을 갖기 때문이다. <뜨거운 마음>(홍순관), <빛은 무덤에서 나온다>(새하늘새땅), <이 작은 가슴>(송정미), 여기에 늦봄의 시에 붙인 <서시>(윤정희), <두 하늘 한 하늘>(전경옥・김원중), <평행선>(이정열), <우리는 호수랍니다>(새하늘새땅・조수아・홍순관), <비무장지대>(김용우), 이상 다섯 곡이 더해졌다.
늦봄이 평양으로 가기 위해 몸을 실은 비행기 안에서 공표한 성명서로 만난 서산대사의 시 <오늘 내가 디딘 자국은>을 이 음반의 프롤로그로 붙였다. 마지막으로 1989년 필자가 대학시절에 쓴 헌정곡 <그대 오르는 언덕>을 에필로그로 붙여서 총 11개의 음원이 만들어졌다.
문익환기념사업회와 오래 동행해온 한국예술기획연구소 이금로 대표를 만났다. 기억으로는 5분 남짓 사업 제안을 툭 한 것 같은데, 꾸부정한 표정의 그가 찰나의 지체 없이 툭툭 받아 음반의 기획을 진행했다. 2000년 6월의 일이니, 봄길 댁을 나선 뒤 1년 2개월 만이었다.
우리는 굳이 문익환의 권위에 기대지 않는 음악 콘텐츠를 만들고 싶었다. 늦봄이 노랫말로 쓴 시는 노래를 만든 나와 노래를 부른 이들의 가슴을 달구는 용도로 충분했다. 늦봄을 기억하는 이들이 찾는 노래이고도 싶었지만, 노래가 좋아 찾아 듣다가 우연히 노래의 이면을 들여다보니, ‘아! 이게 늦봄으로부터 비롯된 노래였구나!’라고 뒤늦게 알아채는 수순으로 사람들의 일상에 용해되는 음악이길 원했다. 심지어 이 노래들을 제 일상의 길동무로 승인하며 살아가는 뭇 사람들이 굳이 늦봄을 몰라도 괜찮을 것이었다. 민들레 홀씨로 아득히 번져 낯선 땅에 뿌리내리듯, 음악 콘텐츠로 늦봄이 분화될 수 있다면 이 음반을 만드는 정당한 연유로 충분했다.
열아홉 해 전에 우리가 품은 이 좌표는 오늘 이후로 문익환을 클릭하고픈 수많은 이들이 곱씹어봐도 좋을 것이다. 굳이 문익환을 소환하지
않아도 좋을, 문익환으로부터 비롯된, 예술 콘텐츠!

문익환을 만난 감동의 실체는 무엇일까? …평온한 안식이거나 유쾌한 일탈이거나 신바람 나는 유희이거나 통렬한 질주이거나… 음악이 그런 것일 수 있지만, 굳이 문익환을 만나 음악이 덧입을 수 있는 변별력 있는 가치는 무엇일까? …‘역사에 대한 섬세한 감수성’이 아닐까 싶다. 문익환을 노래하는 것, 문익환의 시를 만나고, 그의 눈빛과 호흡을 되새김하는 일은 음악인 자신이, 혹은 우리들 모두가 역사에 대한 섬세한 감수성을 덧입는 일이다. 그것은 사람이 사람을 사랑할 수 있는 가장 고결한 수위일 것이다. 고결한 수위의 사랑이 다소 부담스러운 분들에게는 내 기억의 세포 속에 오래오래, 참으로 오래 묻어 있는 문익환 목사의 일갈을 추신한다. “사랑을 가져라. 사랑은 지치지 않는다.” - <뜨거운 마음> 연출의 글에서


1 이 음반은 2000년에 ‘문익환기념사업회’와 ‘한국예술기획연구소’(대표 이금로)의 공동제작으로 처음 발표되었다. 2011년에 한국기독교장로회총회(총무 배태진 목사)의 도움으로 네 곡의 트랙을 새로 녹음하였고, 재킷은 숨엔터테인먼트(대표 유수훈)의 기획으로 온전히 다시 만들어 재발매하였다.
2 어느새 마흔 끝 무렵을 살고 있는 아내 정경아 작가는 2019년 벽두부터 봄길 회고록을 집필 중이다. 10월쯤 세상에 내놓을 계획이다.
3 여기서 ‘새 찬송가’는 1983년 11월에 한국찬송가공회가 새로 발행한 통일찬송가를 뜻하며, ‘옛 찬송가’는 늦봄의 교단(기장)에서 통일찬송가 발간 이전까지 사용하던 ‘개편찬송가’이다.
4 널리 알려진 노래(또는 민요) 선율에 성서 구절이나 복음의 메시지를 담아 새로 만든 노랫말을 붙여 부르는 것을 ‘콘트라팍툼’(contrafactum, 노래가사 바꾸어 부르기)이라 한다. 종교개혁 이후 마땅히 부를 만한 회중찬송 레퍼토리가 부족하던 프로테스탄트 교회에서 널리 시행되었고, 이후에는 현행 찬송가의 모체가 되었다.
5 국악에서는 노래하는 이와 연주하는 이가 빚어내는 소리의 빛깔, 느낌, 해석, 개성 있는 발음 등을 통칭하여 ‘성음’이라 부른다. 성음을 한자로 어떻게 쓰는지에 관한 문헌상의 근거는 명료하지 않다. 다만 명인 김명환 고수의 전언에 의하면, 성품 성(性) 자에 가장 가깝다. 예컨대, 그 연주자(소리꾼)의 성품(性品)을 닮은 소리가 성음(性音)이다.
6 필자는 2019년 8월 15일 개봉 예정인 CBS 다큐멘터리 영화 <북간도의 십자가>의 음악감독 및 작곡을 맡아 현재 막바지 작업이 진행 중이다. 이 영화에서도 문익환·문동환·윤동주 등 북간도 2세대 크리스천들의 지사(志士) 이미지를 대변하는 용도로 ‘늦봄 기억테마’를 활용했다.


류형선 | 한양대학교 작곡과 및 한국예술종합학교 전통예술원 예술전문사과정을 졸업했다. 국립국악원 예술감독을 역임하였으며, KBS 국악대상(2008) 및 기독문화대상(1995)을 수상하였다. 작곡가로서 400여 편의 작품을 발표하였고, 음반 프로듀서로서 50종의 음반을 제작하였다. 현재 숨엔터테인먼트 예술감독, 정동극장 이사, 국악TV 준비위원으로 재직 중이다. 저서로 북시디 『전래자장가 자미잠이』, 음악에세이 『음악에게 차 한 잔을』 등이 있다.

 
 
 

2019년 7월호(통권 72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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