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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신학·목회
116
당시 국사편찬위원회는 어떻게 안창호설을 배척했는가

| 이승만과 친일파 세력의 뜻에 따른 국사편찬위원회의 <애국가> 작사자 조사활동 <애국가> 작사자 조사위원 19명 가운데 9명이 비중 있는 친일파였으며, 친일 실증사학자 이병도와 친일 세력이 국사편찬위원회(국편)를 주도했기 때문에 <애국가> 작사자의 진상 규명은 처음부터 결정적인 문제와 한계를 안고 있...
박재순 | 2019년 5월
115
중세인의 성추문을 둘러싼 현대인의 유감

아름다운 삶의 극치는 아무래도 ‘~답게’ 살아가는 것이 아닐까? 대입해보자면 학생은 ‘학생답게’, 교사는 ‘교사답게’, 어른은 ‘어른답게’ 정도가 되겠다. 이런 정도(正道)가 무너질 때에는 그리 아름답지 못한 향을 뿜어내는 듯하다. 굳은 서약 끝에 수도복을 입은 수도자가 성추문에 휩싸여 법정에 섰다는 것...
양태자 | 2019년 5월
114
‘죽음 윤리’의 변화와 갱신에 대하여

그대의 자식이나 배우자가 영원히 살기를 바라는가? 그렇다면 그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그대는 자신의 의지에 달려 있지 않은 일을 자신의 의지대로 바꾸려 하고 있다. 또 자신의 것이 아닌 것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려 하고 있다. 그들은 그대 자신과 마찬가지로 유한한 존재다. 그대가 이 유한성의 법...
박충구 | 2019년 5월
113
소설 속에 비친 상해 임시정부

| 문인들의 상해 체험 1910년 한일강제병합을 전후한 시기에 많은 애국지사들이 상해에 망명했다. 일제 식민주의가 갈수록 강고해지면서 지사들의 망명 행렬은 계속되었고, 1919년 3・1운동 뒤에는 아예 봇물을 이루다시피 했다. 만세운동을 주도하고 나섰다가 쫓기는 처지가 된 애국지사들과 일제 식민주의 현...
표언복 | 2019년 4월
112
로스가 번역한 누가복음과 요한복음, 그리고 이수정의 마가복음

| 개신교 최초의 한글 성서 『예수셩교누가복음젼셔』 존 로스는 개신교 최초로 누가복음을 한글로 번역하여 출판하였습니다. 로스 번역 팀의 『예수셩교누가복음젼셔』(1882) 출판은 당시 대부분의 조선인들이 우리 언문을 멸시하고 천하게 여기던 상황에서 이루어진 일이었습니다. 순 한글로 성서를 번역함...
전무용 | 2019년 4월
111
로스에게 한국어를 가르치고 함께 성서를 번역한 이응찬

| 고려문, 연행사가 출입국 수속을 하던 책문 한국 기독교 사상 첫 번째로 선교사가 한국어 교사를 만나 성서를 번역하던 고려문은 예전에 책문(柵門)이라는 이름으로 더 잘 알려져 있던 옛 마을이다. 연암 박지원은 팔촌 형인 박준원이 1780년에 건륭제의 70세 진하사절 정사로 청나라에 가게 되자 개인 수행원...
이숙 | 2019년 4월
110
이병도와 국사편찬위원회가 주도한 공식적 논의(1955)의 문제점

<애국가>가 만들어진 지 100년이 지났고 해방 후 나라를 되찾은 지도 70년이 지났다. <애국가>의 작사자를 모르게 된 것은 참으로 부끄럽고 당혹스러운 일이다. <애국가> 작사자를 미궁에 빠트리고 한국의 정신문화와 학술연구를 천박하게 만든 것은 친일 사학자 이병도와 1950년년대의 국사편찬위원회였다. 이병도는 친...
박재순 | 2019년 4월
109
중세인의 사순절, 단식과 금육의 현장을 들추다

사순절은 속죄와 회개로 예수의 부활을 준비하는 기간이다. 4세기부터 시작된 40일간의 사순절 단식과 금육은 그대로 정착되었고, 가톨릭에서 거의 유사한 모습으로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숫자 40과 성서적 결합은 잘 알려져 있으니 생략하고, 이 글에서는 사순절 기간에 중세인들이 어떻게 단식과 금육을 지켜나갔...
양태자 | 2019년 4월
108
삶의 마지막 선택에 관하여

죽음이 나에게 찾아오는 날은 화려하게 꽃피는 봄날이 아니라 인생을 생각하게 하는 가을이 되게 하소서 … 병으로 인하여 몸이 너무 쇠하지 않게 하여 주시고 가족이나 이웃에게 불편함을 주지 않는 기력이 있고 건강한 때가 되게 하소서 - 용혜원, <죽음이 나에게 찾아오는 날은> 시...
박충구 | 2019년 4월
107
개신교 최초의 한글 문서 『예수셩교문답』, 『예수셩교요령』

1976년 봄에 로스 목사는 2차로 고려문을 방문하여 한국어를 가르쳐 줄 수 있는 어학 선생을 찾았습니다. 거기서 의주 청년 이응찬을 만나 그에게서 한국어를 배우고, 1877년에 『조선어 교재』(Corean Primer)를 발행했습니다. 이 책에 실린 글말을 보면, 로스가 배운 한국어의 뿌리가 이응찬이 사용하는 의주 말이었음을 알 ...
전무용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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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11월호(통권 73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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