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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me > 기독교사상 > 문화와신학 > 종교개혁과 예술 - 미술 (3)
문화와신학 (2016년 5월호)

 

  17세기의 종교미술
  

본문

 

종교개혁 이후 반세기가 지난 17세기에 이르면 종교개혁의 영향이 미술에 본격적으로 나타난다. 종교개혁 이전까지 서유럽은 통일 그리스도교라는 개념 아래 동쪽의 이슬람 왕조와 대항하는 공통된 문화권을 형성하였으나, 종교개혁 이후 교황청을 중심으로 한 이탈리아, 스페인, 프랑스의 미술과 프로테스탄트 국가인 독일, 네덜란드, 스위스 미술의 주제와 장르, 양식이 달라진다.

가톨릭 개혁, 반종교개혁 영향의 가톨릭 국가의 미술
이탈리아를 중심으로 한 가톨릭 국가에서는 미술의 주요 후원자로서 교황과 교회의 역할이 지속되었다. 당시 변화의 필요성을 느낀 교부들과 로마 교황청은 종교개혁에 대응하여 1545년부터 3차에 걸쳐 트렌트 공의회(Council of Trent)를 열고 교리 전반에 관해 토론하고 교황청의 입지를 확정짓는 움직임을 시도하였다. 정치, 사회, 예술, 교육 각 분야에서 가톨릭 개혁(Catholic Reformation)의 교리가 실행되었는데, 반종교개혁운동(Counter Reformation)이라고도 불리는 가톨릭 개혁운동은 프로테스탄트가 공격한 점을 수용하고 고쳐나가는 방향과 원래의 전통을 고수해나가는 두 가지 방향으로 전개되었다. 미술에서는 누드의 그리스도라든지, 전설의 성인 등을 금하는 개혁적인 모습을 보이기도 하였으나, 결과적으로는 가톨릭 교리의 우위와 교회의 정통성을 강조하는 데 총력을 기울이기로 하였다. 미술의 정치선전용 프로파간다적인 가능성에 주목하여, 미술을 통해 가톨릭교회를 선전하고 신도들을 설득하고자 한 것이다.
프로테스탄트 측에서는 교회에서의 이미지 사용을 비판한 데 대하여, 이미지가 단순히 교회를 장식하는 기능만 있는 것이 아니라, 이미지를 통해 신도들을 가르치고 교화시킬 수 있다고 주장하며, 교회에서의 이미지 사용을 옹호하였다. 또한 유명 화가들의 제단화를 통해 미사와 화체설, 성인숭배의 정당성을 변호하였으며, 성모의 무염시태설 등도 구체화하였다. 양식적인 면에서도 당시 이탈리아는 르네상스 대가들의 매너에 기초한 매너리즘이 유행하였으나, 매너리즘이 수수께끼 같은 모호한 양식과 엘리트만 즐기는 소수의 미술로 전향하자, 교황청에서는 더 많은 대중을 상대로 관람자를 한눈에 사로잡을 수 있는 바로크적 양식을 채택하였다. 드라마틱한 주제, 장엄한 규모, 정교한 장식성을 자랑하는 바로크의 조형언어를 통해 신도들을 설득하고 교회의 우위와 정통성을 강조하고자 한 것이다.
로마는 다시 한 번 교황의 상징으로서 재건 프로젝트를 진행하였다. 교황 식스투스 5세(1585-90)는 교황의 자금을 늘려 더 새롭고 장엄한 로마를 건설하기로 하고, 이후의 야망 있는 교황들-바오로 5세, 우르반 8세, 이노센트 10세, 알렉산더 7세-도 식스투스 5세를 계승하여 가톨릭 개혁의 에너지를 미술과 건축으로 구체화하는 데 힘을 쏟았다.
성베드로성당은 르네상스 시기부터 계속 건축되어 왔으나, 성당의 파샤드와 성당 입구로 들어오는 광장, 열주 디자인은 당대 최고의 조각가이자 건축가인 베르니니(Bernini)가 맡아서 작업하였다.(그림 1) 베르니니는 성당과 타원형 광장 사이에 사다리꼴의 공간을 두어 관람자들이 성당 입구 파샤드를 더 가깝게 볼 수 있도록 하였다. 타원형 광장을 둘러싸고 있는 열주의 디자인에 대해서는 베르니니 자신도 신도들을 감싸안는 교회의 환영하는 팔 같다고 언급하였다. 이렇듯 성베드로성당은 규모나 연극적인 효과 면에서 경외감이 들고 권위적인 비전을 잘 구현함으로 반종교개혁 측 가톨릭교회의 열망을 충족시켰다.
<성 테레사의 황홀경>(그림 2)과 같은 베르니니의 조각 또한 천사를 보고 황홀경에 빠져 있는 성녀의 모습을 통해 관람자들에게 연극성과 감각적인 충격을 준다. 예수회 창시자인 이그나티우스 로욜라(Ignatius Loyola)는 영적인 경험이 신도들의 신앙을 고양시킨다고 하였는데, 이렇게 드라마틱한 연극성과 감각을 자극하는 소재와 묘사가 이탈리아 종교미술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 시기에 제작된 교회 벽화의 경우에는 아래에서 올려다보았을 때 천정이 뚫려 있는 듯한 착각을 일으키게 하는 환영(illusionism) 효과를 준다.
로마 일 제수 교회에 있는 가울리(Gauli)의 벽화(그림 3)는 천국으로 들어가는 인물들과 다시 지구로 떨어지는 죄인들을 형상화하였는데, 환영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인물들을 석고로 제작해 매달아, 결과적으로 어디까지가 회화이고 어디까지가 조각인지 모를 결과를 도출시켰다. 이는 신의 영역인 천국이 더 깊숙이 보이도록 하며, 보는 사람에게 천국을 보고 있는 듯한 착각을 일으킨다.
포초(Pozzo) 또한 로마의 성 이그나치오 성당의 천정에 원근법을 사용한 벽화를 그려, 천국이 교회 건축의 볼트 위에 위치하고, 신도들의 머리 위로 하늘이 열리는 듯한 효과를 내었다.(그림 4) 이러한 공간에서는 모든 게 올라가는 듯한 수직적인 움직임에서 천상과 현세가 합쳐진 것 같은 환영을 일으키며, 관람자는 위를 쳐다볼 때 환영 속에서 천국과 영적인 현존을 경험하게 된다. 교회 자체가 음향효과를 고려하여 설계되었기 때문에 이 시기 교회에는 바로크 음악이 깔리고, 음악과 미술이 시각과 청각을 모두 자극하며 성도들을 설득하게 되는 것이다. 영국의 시인 존 밀턴(John Milton)은 이러한 교회의 모습을 두고 ‘잃어버린 천국’이라고 말하며, 신도들의 눈앞에 이미 모든 천국을 가져다 놓았다고 지적하였다.

칼뱅주의의 영향을 받은 신교 국가들의 미술
반면 네덜란드, 독일, 스위스 등 프로테스탄트 국가에서는 구교의 체제와 이미지 숭배의 원인이 되는 성상을 파괴하고 교회에서 종교미술을 제거하는 작업에 들어갔다. 한 예로, 1566년 일어난 네덜란드의 ‘성상파괴운동’의 경우, 8월부터 10월까지 스테인프로더(Steenvoorde)에서 안트베르펜에 이르기까지 교회와 수도원 등 종교기관에 있던 수천 점의 미술작품이 손상되거나 소실되었다. 17세기의 미술비평가 카럴 판 만더르(C. van Mander)는 자신의 저서, 『화가의 책』(Het Schilder Boeck)에서 1566년 이전에 제작된 대가들의 작품이 소실된 것이 무엇보다 큰 손해라고 적고 있다.
성상파괴운동 이후에도 미술과 관련된 여러 가지 의문, 예를 들면 신의 근본적 성질인 ‘무형용성’이 그림에서 어떻게 형용될 수 있는지, 가난한 사람들을 돕는 것보다 그림에 많은 돈을 들이는 것이 올바른 것인지, 그림이 성서의 내용을 감각적인 유혹으로 이끌지 않았는지 등 이미지의 효용성에 대한 의문이 꼬리를 물었다. 그 결과 더 이상 교회에서 제단화와 종교화의 주문은 사라지고, 미술가들은 새로운 시장과 후원자를 찾아나서야 했다. 이 시기 네덜란드 교회의 모습은 산레담의 회화에 잘 나타나 있는데, 교회 실내에서 제단화와 성물이 모두 보이지 않는다.(그림 5)
종교개혁 미술에 대한 오해 중 하나가 종교개혁으로 미술이 쇠퇴하고 문화예술의 발전이 저해된 것은 아닌가 하는 의문이다. 지난호에서 살펴본 대로, 많은 화가들과 교회용품을 제작하는 장인 예술가들이 종교개혁 직후 직업을 잃고 고향을 떠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로부터 반세기가 지난 17세기 네덜란드 미술의 결과를 보면, 오히려 종교개혁으로 인해 미술이 더욱 발전한 현상을 발견할 수 있다. 교회가 더 이상 예술가들의 후원자 역할을 할 수 없게 되자, 화가들은 미술시장을 대상으로 팔 수 있는 그림을 제작하기 시작하였다. 이전의 주문자들은 귀족과 군주가 주류를 이루었다면, 이제는 중산층 이상의 시민을 대상으로 하였다.
당시 17세기 북부의 네덜란드는 12년 휴전이 끝나고 스페인으로부터 독립한 후 칼뱅주의자들이 공화국을 설립하였고, 동인도회사(VOC, Dutch East Indian Company)를 설립하여 해상무역을 주도하는 경제적 급성장과 아울러 학문, 과학, 종교 등 여러 분야에 괄목한 만한 성장을 이루었다. 그리하여 시민들이 주체가 된 미술시장에서는 다른 나라에서는 하류로 취급되어 작품의 주제로 잘 채택되지 않았던 풍경화, 정물화, 인물들의 생활상을 그린 장르화가 새로운 주제로 개척되었고, 작품의 규모도 중산층 가정의 실내에 맞는 소규모로 제작되어 철저히 고객 위주의 미술판매가 이루어졌다. 이에 따라 화가의 수도 엄청나게 증가하여 한 화가가 모든 종류의 그림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초상화가, 장르화가, 정물화가, 풍경화가 등 각 주제별로 전문화가 이루어졌다.
칼뱅주의 지도자들이 공화국을 이끌어간 네덜란드 사회에서는 ‘관용’(toleration) 정책을 기조로 다른 종교나 민족에 대해 수용하고 박해하지 않는 태도를 취했기에 여러 나라의 화가들이 네덜란드로 대거 이주했다. 또한 왕이나 귀족이 부재했기에, 가족을 종교생활의 핵심 단위로 설정한 칼뱅주의의 이상이 일상생활 장면에 나타나 있다. 렘브란트의 <성 가족>(1642)(그림 6)에서 어머니 마리아는 아이에게 책을 읽어주며 ‘교육하는 어머니’로서 소시민의 이상적인 모범을 보여주며, 아버지 목수도 뒤편에서 묵묵히 자신의 목수일을 감당하며 가족의 부양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그리고 있다. 외과의사 길드와 같이, 같은 직업을 가진 직업조합, 길드에 속한 회원들을 그린 그룹 초상화에서도 칼뱅주의에서 강조하는 박애정신과 직업소명설을 찾아볼 수 있다.
예를 들어 프란스 할스(Frans Hals)의 그룹 초상화, <양로원의 여성 운영위원들>(그림 7)을 보면 사회의 지도층이자 부유한 여성들이 검소한 옷을 입고 남을 위해 자신의 시간과 재산을 기부하는 박애정신이 잘 표현되어 있다. 그림의 뒤편 배경으로는 언덕을 그려넣어, 덕을 이루는 것은 언덕을 넘는 것처럼 힘들지만 언덕 위에는 평원이 있는 것처럼 덕을 이루고 나면 평안과 천국을 맛보게 될 것임을 암시한다. 렘브란트의 그룹 초상화 <툴프 박사의 해부학 교실>(그림 8)에서도 외과의사 길드에 속한 의사들이 툴프 박사에게 최신 의술에 대한 강의를 듣는 모습을 볼 수 있는데, 자기가 가지고 있는 지식을 다른 회원들과 나누며, 자기 직업에 사명감을 가지고 최선을 다하는 직업소명설의 반영이라고 볼 수 있다.
종교화의 경우 칼뱅 역시 루터처럼 교회에서 미술품을 오용하거나 남용하는 것에 대해서는 반대했지만, 미술 자체는 혐오하지 않았기에 종교미술이 허용되었고, 경배의 대상으로서의 성상 이미지보다는 성경의 이야기, 내러티브를 묘사한 성경 장면이 주를 이룬다. 성경 장면을 그린 대표적인 화가로는 렘브란트(Rembrandt van Rijn, 1606-69)를 꼽을 수 있다. 렘브란트의 아들 티투스(Titus)가 네덜란드 개혁교회(Reformed Church)에서 세례를 받은 기록이 있고, 이탈리아 비평가 발디누치(Baldinucci)가 렘브란트가 메노파 교도라고 그의 제자가 얘기했다는 언급이 있기는 하지만, 네덜란드의 교회 문서에서 그에 관한 기록은 보이지 않는다. 렘브란트가 어느 교단에 속한 신자인지는 증명할 수 없지만, 그의 종교화에 인간의 영혼, 내면에 대한 관심, 성숙한 태도는 작품에 잘 나타나 있다.
<엠마오에서의 저녁 식사>(그림 9), <요셉의 아들들에게 축복하는 야곱>,
<예언자 이사야> 등에서 정신적인 고요함, 내적으로 향하는 명상을 살펴볼 수 있는데, 이러한 양식은 가톨릭교회의 장엄함을 주제로 한 이탈리아의 베르니니나 포초 등의 회화와는 상반되는 특징이다. 또한 <성 가족>(그림 6)에서처럼 성경 장면을 직접적 유대감을 가질 수 있는 주변의 일로 그리는 점이 칼뱅주의 해석과의 유사점이자 그의 회화의 특징이다. 특히 말기에 윤곽선을 강조하지 않고 부드러운 빛과 그림자를 통해 기독교의 휴머니티, 박애정신과 자비의 교훈을 전달한다는 점에서 그의 종교화는 헨리 나우웬 등 많은 기독교인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유태인 신부>(그림 10)에서는 빛이 단순히 대상을 묘사하는 기능을 벗어나 그 자체로도 신성함과 심리적인 내용을 표현한다. 가장 잘 알려진 작품,

<돌아온 탕자>(그림 11)는 다 떨어진 신발과 부랑자와 같은 아들이 따뜻하고 풍요로운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와 안식을 얻는 모습을 그리고 있다. 네덜란드 미술에서 노인이 긍정적으로 그려진 예는 많지 않지만, 이 작품에서 아버지는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주는 자애롭고 푸근한 긍정적인 노인의 상을 보여준다. 프로테스탄트적 시간에서 본다면, 지치고 죄지은 인간이 중재자인 사제나 성인을 통하지 않고 하나님께 바로 다가갔을 때, 그를 있는 그대로 포용하고 받아들여 주신다는 신교의 교리적 특징으로도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작품은 기독교의 사랑과 자비의 정신이 등장인물의 심리 표현과 빛의 묘사를 통해 가장 잘 드러났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손수연 | 미국 위스콘신 주립대학교 미술사학과에서 렘브란트 후원자 연구로 석사학위, 얀 라이켄의 엠블럼집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쓴 책으로 공저 『서양미술사전』과 『근세 유럽의 미술사: 르네상스, 바로크, 로코코』 I, II가 있으며, 논문으로 Fully Integrated Household Articles: Jan Luyken’s Het Leerzaam Huisraad 등이 있다.

 
 
 

2021년 9월호(통권 75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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