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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가신 나라에는 일만 송이 꽃이제각각 아름답겠지요 |
권정생 선생님
아마 그날부터였을 것입니다. 저는 곧잘 들판에 서 있곤 했습니다. 이웃한 집들의 지붕을 간신히 빠져나온 아침 햇살이 제 방 창가까지 밀려들 때도, 인파로 북적이는 서울의 지하철 속에서 시달리다가도, 맨 땅 한번 밟... |
이영란 | 2007년 07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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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그렇게 ‘미안해요’, ‘고맙습니다’ 말하는 이 |
안동이란 곳을 생각하면, 막연하게 여유로움이 느껴진다. 편안한 골(安洞)이란 지명도 그렇거니와, 십여 년 전 방문했던 안동여행이 그런 느낌을 더해주었을 수도 있겠다. 여행을 통해 본 전통적인 고택은 과거의 시간을 붙잡아 맨 듯 ... |
이영란 | 2007년 06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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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위무(慰撫) |
천지가 봄이다. 사방이 봄의 색이다. 색은 햇빛을 안고 오롯이 천연(天然)의 빛깔로 태어난다. 늘 오는 봄이되, 늘 다른 봄이다. 당신은 세상이라는 화폭에 그림을 그리시지만, 봄이 되면 특별히 더 많은 색을 사용하신다. 그로서 색은 ... |
이영란 | 2007년 05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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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리데기 치유사, 자운영꽃으로 피다 |
피,아이,엘,지,알,아이,엠. 수화기 너머로 또박또박 스펠링이 건너온다. 필그림(pilgrim), 순례자이지요. 왼손이 치는 흰색 건반 같은 목소리가 뒤따라 들려왔다.
강은교 선생의 아이디를 받아 적는 중이었다. ‘순례자…’ 그녀에게 어... |
이영란 | 2007년 04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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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 없는 아우성’ DMZ |
1953년 생(生)이오
태어날 때부터 고통의 울음을 들었소
나자마자 원망에 찬 목소리를 들었소
저주받은 생이라 했소
사람들은 중무장한 내 몸 위로 춤을 추었소
피비린내 나는 살육의 춤을 추었소
광풍의 춤사위 사이로 폭격을 ... |
이영란 | 2007년 03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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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미쳤지? 언니도 미쳤구나? |
우연인지 몰라도 장향숙 의원을 만난 그날, 종로3가 지하철역에서 시각장애인 한명을 만났다. 아니 만났다기보다는 내가 일방적으로 그의 옆에 다가가섰다. 밤 10시가 넘은 시간이었고, 지하로 몰려든 찬바람은 퇴근하는 걸음을 더 종... |
이영란 | 2007년 02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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척박한 땅에 찾아 든 꽃무리들, 우리 아이들 |
강진이라고 했다. 한때 유배의 땅, 하지만 정약용은 18년 간 그곳에서 살면서 실학을 집대성하고 많은 저술을 집필함과 더불어 도리를 다함으로써 스스로를 후세 사람들에게 ‘다산 정약용’으로 자리매김하게 했다.
이제 그 땅으... |
이영란 | 2007년 01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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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나라와 동무하고 노래하는 철부지 |
참 자연스러웠다. 식사를 하기 위해 감자탕이 불 위에 올려지자 <철부지>는 노래를 불렀다. 우선 ‘밥가’를 불렀다.
밥은 하늘입니다. 하늘은 혼자 못 가지듯이 밥은 서로서로 나누어 먹습니다. 밥이 입으로 들어갈 때 하늘은 몸속... |
이영란 | 2006년 12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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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기려 그 사람 |
‘한국의 슈바이처’, ‘살아 있는 성자’, ‘바보 의사’, ‘작은 예수’ 등으로 불리며 우리 곁을 살다간 성산 장기려 선생(1911-1995)은 이면과 표면의 경계를 허문 사람이었다. 감출 것이 없는 삶을 살았고, 어떤 상황에서든 있는 그대... |
지유철 | 2006년 11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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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자와 죽은 자의 퍼포먼스 |
순간 당황했다. 무대 뒤편에서 나타난 그가 티셔츠를 입고 모자를 쓴 채 나타났기 때문이다. 낭패감이 들었다. 연극은 끝났는데, 아직도 그에게서 <염쟁이 유씨>를 찾고 있는 모습이라니……. 잠시 실소(失笑)했다. 그가 다가 와 악수를... |
이영란 | 2006년 10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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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꾸로 가는 세상, 핸들과 펜을 잡다 |
이런…! 마당이 있었다. 안건모 편집장을 만나기 위해 방문한 <작은책>사무실은 마당이 딸린 주택이었다. 현관을 열고 들어서면 방이 있고 거실이 있고, 주방이 있었다. <기독교사상>도 올 4월에 독립할 사무실을 찾으면서 이런 공간을 ... |
이영란 | 2006년 09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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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아름다운 추억을 가지고 살았어요” |
낮은 철문 사이로 경쾌한 음악이 흐르고 있다. 요즘 꽤 유행하는 대중가요다. 이곳의 생활자들이 모여서 함께 운동하는 시간. 서로들 운동장을 돌면서 가볍게 몸을 흔들고 있다. 우창웅 장로는 의자에 앉아 그 모습을 지켜보다, 기자 일... |
이영란 | 2006년 08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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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안의 친구, ‘대~한민국’ 안의 나그네 |
요즈음 자주 일어난 일이다. 곧 27개월 된 조카애는 태극기만 보면 고 작은 입술을 움직여 ‘대~한민국 짝짝짝 짝짝’하고 소리를 낸다. 월드컵 때문이겠지만, 가르쳐 주지 않아도, 어디선가 듣고서 그렇게 따라하는 것이다.
월드컵 얘... |
이영란 | 2006년 07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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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 말씀을 삶으로 사는 이 |
이맘 때의 산 빛깔처럼 수려한 색감이 어디 흔할까. 앞서 엽록의 색을 얻은 나뭇잎새는 그 푸른빛을 점차 더해가고, 뒤이어 잎을 틔운 나무들은 연초록 잎사귀들을 와와 급히 피어 올리는데, 희고 붉은 산철쭉과 진분홍빛의 복숭아꽃이... |
이영란 | 2006년 06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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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레를 파고 거름을 주겠습니다 |
그것은 다만 하루 동안 일어난 현상이었다. 하늘은 뿌옇다 못해 누르스름해지고, 태양은 제 빛을 지상에 내려주지 못한 채, 떠도는 먼지 위로 부유할 뿐이었다. 입과 코로 들어오는 차가운 기운을 가진 지저분한 흙먼지는 공격적이기까... |
이영란 | 2006년 05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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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움을 그려 스티그마를 새기다 |
님의 숨결 같은 부드럽고 따스한 볕이 차곡차곡 쌓이는 시간, 정오를 향하고 있다.
그간 그리웠던 봄…. 황사의 너울과 코 끝 아린 봄샘추위 속에서도 결국 찾아오고야 말았다. ‘햇빛은 핥을수록 허기가 진다’던 시인의 말은 오늘만... |
이영란 | 2006년 04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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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파리(突破理)의 잔소리 좀 들으시오 |
십자가도 간판도 없는 교회
마을 어귀로 들어섰다. 시골교회는 쉽게 눈에 띄었다. 물론 미리 교회 모습에 관한 정보를 약간이나마 듣고 간 터였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한옥의 형태를 접목시킨 그 ‘교회’는 늠름했다. 화악산 자락에 ... |
이영란 | 2006년 03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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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하여 지속적인 삶, 진정한 진보로 가는 길 |
“단 거를 꼭 먹어야 되는 이유가…, 뭐 있습니까?”
빠르고 높았던 말투가 일순 낮아졌다. 여러 말끝에 나온 설탕과 커피를 안 먹는 이유를 말하던 중이었다. 설탕이나 커피가 몸에 안 좋아서 안 먹는 그런 보신주의가 아니라, 그걸 ... |
이영란 | 2006년 02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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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다 두려움 없이 간다 그대와 함께 |
어둡다. 조용하다. 간혹 땅 밑에서 울려오는 듯한 밭은 기침소리만이 인기척을 느끼게 했다. 찰나의 지루함. 즐겁게 견디고 있었다. 그때 어디선가 들리는 맑고 어린 목소리.
“엄마, 시작 안 해?” 그제야 사람들이 와르르 웃어댔다. ... |
이영란 | 2006년 01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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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민이 살아야 생명이 삽니다 |
농업, 그 한 별을 우러러 보네
하마터면 효선 마을을 지나칠 뻔 하였다. 무수한 산길을 넘으면서 그만그만한 산골마을들을 지나쳐 온 탓이다. 두 갈래의 길이 시작되는 곳에 놓인 작은 바위 위에 새겨진 ‘효선리’를 만약 발견하지 못... |
이영란 | 2005년 12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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